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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총 제11회 과학커뮤니케이션 포럼 토론문 (2018.10.10)

위기론기반 과학기술인력정책에 대한 비평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전준하

대학원생이라는 사회적 지위 특성상 주로 청중 자리에 앉아있기 마련이지만, 이런 행사에 참석하게 되면 주최 측에서 배부하는 자료에 나오는 단어들을 유심히 살펴보곤 합니다. 오늘은 어쩌다 지도교수님 인맥을 통해 창의재단 이사장님, 교수님, 회사 대표님 사이에 끼어 패널토론자가 되긴 했는데,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여성과총에서 제시한 단어들을 뜯어보며 토론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포럼의 주제는 디지털변환시대: 벼랑 끝 대학교육, 미로 속 과학인재 위기탈출하기이며, 기조강연으로 민동준 연세대 부총장님께서 새로운 과거와 오래된 미래를 위하여라는 알쏭달쏭한 제목으로 발표해 주셨습니다. 제목이 다소 철학적인데, 제멋대로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모로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대학은 위기에 처해있고, 위기의 본질과 그 해법 모두 교육에 있으니 새로운 교육을 모색해야 한다.’ 이어서 여성과총에서는 제게 급변하는 세상, 융합인재로 살아가기라는 제목 아래 우리나라 과학기술인력정책에 대한 청년의 시각을 다뤄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제 눈에 띈 단어들을 한번 읊어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전환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만) 변환, 급변, 벼랑, 미로, 위기. 다시, 전환, 급변, 벼랑, 미로, 위기, 그리고 과학기술인력정책.

이 단어들이 함께 쓰인 것과 그것이 너무나도 익숙하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과학기술인력정책은 이른바 위기론에 큰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지요. ‘전 산업에서 디지털전환이 일어나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 속에서 우리나라는 발빠르게 대응하지 않으면 안될 벼랑 끝 위기에 처해있다.’ 20년이 넘도록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어 왔고, 작금의 ‘4차 산업혁명광풍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여기에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인구절벽, 이공계 기피현상과 두뇌유출 등의 뉴스는 위기론에 불을 더욱 지피고, 결국 이는 다른 무엇보다도 과학기술인력육성에 더욱 힘을 써야한다는 당위로 이어집니다. 글로벌 경제 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특정 산업에서의 이들의 합집합은 결국 과학기술 전분야지요 국가 경쟁력을 갖추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해당 산업에서의 우수인재를 육성하여 확보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과학기술인력정책은 다음과 같습니다.

‘4차 산업혁명 선도 SW인재육성: 실무인재 4만명, 핵심인재 4천명’ (4차 산업혁명 시대 혁신성장을 통한 소프트웨어 일자리 창출 전략. 관계부처 합동, 2018.9.11.)

혁신성장 핵심인재 1만명을 신규로 육성’ (혁신인재 양성을 위한 5개년 로드맵 만든다: ‘혁신인재 양성 TF’ 발족.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018.9.6.)

미래수요 대응 전문인력 확충 : 청년고급인재, 실무인력 중심 5만명 양성’ (데이터 산업 활성화 전략: I-KOREA 4.0 데이터 분야 계획, I-DATA+. 관계부처 합동, 2018.6.)

위 내용은 모두 올해 발표된 정책입니다. 사실 이런 정책은 시간과 장소를 막론하고 돌고 돕니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내용이지요. 중앙정부 예시만 들었지만 비슷한 정책을 지방자치단체별로, 산업군별로, 대학별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모두 같은 위기론에 기반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5년 전 정부는 다음과 같은 정책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인력 22만 대군 양병” (최문기 당시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인터뷰. 중앙일보, 2013.10.01,)

제 인생도 그렇고 우리나라도 그렇고 위기라면 오늘도 위기이고 언제든지 위기가 닥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위기에 대비하여 장기적인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키우기 위한 정책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으나, 우리나라 과학기술인력정책은 그보다 위기에 대한 불안감에 기초한 사재기(panic buying)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정책의 문제는 앞서 나열한 사례에서 읽을 수 있듯 특정 산업분야 과학기술인력의 섣부른 공급 확대를 불러온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이를 정부와 대학, 기업 모두 윈윈하는 방법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정부에게는 정책을 통해 배출된 인력이 곧 실적이니 뭔가 대처했다는 위안을 삼을 수 있어 좋고, 대학은 해당 인력을 교육하라고 정부에서 돈을 주니 좋고, 기업은 뽑을 수 있는 인력풀이 늘어나니 좋지요. 정책을 결정하는 이 세 이해관계자 집단이 모두 좋기 때문에 비슷한 정책이 반복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정부 지원 하에서 교육받은 수 만명의 과학기술인력이 알아서 학계나 산업계의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그 숫자만큼이나 정부 의도대로 우리나라의 국가 경쟁력 증대에 기여한다면 좋겠지만, 현실에선 대부분의 과학기술인력은 험난한 일자리 시장에서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다들 윈윈했다고 안심하는 사이 사실 정책의 가장 큰 수혜자여야 할 과학기술인재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지요. 기실 더 나아가 정책이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모두가 졌다고 하는 것이 옳습니다.

앞서 언급한 ‘SW인력 22만양병 정책에 대해 당시 SW 개발자 커뮤니티 OKJSP(OKKY)가 미래부 장관에게 보낸 공개질의서를 인용하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소프트웨어 개발자 수가 부족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정부지원 IT 취업과정을 통해 인력 시장이 과포화 상태에 이를 지경으로 많은 신규 개발자들이 양산되고 있습니다. 정말로 부족한 것은 절대적인 개발자의 수가 아니라 국제 수준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행복경제 구현에 도움을 줄 핵심역량을 지닌 우수 개발 인력입니다. …(중략)… 우리나라 개발자들이 전 세계 개발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실력을 갖추기 힘든 것은 정부 지원 교육을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시장 구조가 기술력에 대해 보상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중략)…왜곡된 시장 구조에 대한 근본적 문제 해결이 선행되지 않은 무리한 인력 공급은 잘못된 관행을 고착시키는 부작용을 불러올 것[입니다.]” (소프트웨어 인력 22만 대군 양병계획에 대해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님께 드리는 공개질의서 中)

물론 소프트웨어 개발 업계 나름의 특징이 있겠으나, 위 질의서는 과학기술인력정책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단순한 공급 부족이 아니라 보다 복합적인 고려가 필요한 구조적 문제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얼마나가 아닌 어떻게를 고민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섣부른 공급 확대는 쓸만한 인재가 없다는 기업과 갈만한 일자리가 없다는 졸업생 사이 구조적 간극을 더 심화시킬 뿐입니다.

과학기술인력정책에 있어 어떻게해야 어떻게에 보다 주목하고 개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제언을 드리는 것으로 토론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첫번째로, 모두가 시도 때도 없이 위기라고 부르짖을 때 누가 어디서 어떻게 왜 그렇게 인식하고 목소리를 내는지 보다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료집에 따로 인용을 못했으나, 김태호 선생님의 주간경향 구석구석 과학사연재 글을 보면 IMF 경제위기 당시 터져나온 이공계 위기담론은 사실 교수와 학생에게 다른 의미를 가졌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교수들에게 위기란 학생이 줄어들어 연구실 운영이 어려워지는 것이었던 반면, 학생들에게는 학위를 마쳐도 좋은 일자리를 잡기 힘든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국가나 기업에게는 고급 인력이 감소하여 산업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는 것이었을 테고요. 이 모두의 서로 다른 위기인식을 각각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 앞서 언급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두번째는, 여러모로 무조건적 과학기술인력의 양적 성장은 바람직한 정책 방향이 아님을 고려할 때, 과학기술인력양성의 질적 제고, 교육의 방법과 내용을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고등교육이 일어나는 대학 현장이 정말 교육의 방법과 내용을 바꿀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대학원생을 배출하는 많은 연구중심대학은 갈수록 교육기관이 아닌 연구기관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더 심하게 말하는 사람들은 연구소도 아닌 중소기업과 다를 바 없다고 씁쓸해 합니다. 학생을 지도하는 지도교수이자 연구를 이끄는 연구책임자여야 할 교수들은 단지 연구실이라는 조직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CEO, 지도를 받으며 자유롭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것저것 시도하면서 배우는 학생이자 산학연 곳곳으로 퍼져나가 본인의 전문성을 살려 문제를 해결하는 미래 과학기술인이 될 대학원생들은 연구실에 수주한 연구과제를 수행하기 급급한 직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직접하면서 배우는 방식)learning by doing’ 역시 좋은 교육 방법이며 교육과 연구가 항상 따로 있는 것은 아니나, 이러한 연구환경 하에서 많은 대학원생들이 지도와 교육의 부족 내지는 부재를 문제삼고 있으며 더 많은 연구과제를 수주해서 더 많은 보고서를 쓰고 더 많은 논문이나 특허와 같은 성과와 실적을 내는 데에만 집중하는 대학의 연구환경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결국 대학에서 교육의 주체는 교수와 학생인데 이들이 변화할 여건을 마련해주지 않으면서 교육 혁신을 논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과학기술인력은 공익을 증대시키니 최대한 늘려야한다는 주장의 생각이 충분히 사려깊지 못한 것처럼 무작정 과학기술인력을 전적으로 그 수요처인 산업계의 요구에 맞게 양성해야한다는 주장 역시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대학이 너무 이론 교육과 학술 연구에만 치중해왔다며 이를 문제 삼고 산업계 요구에 맞추어 응용 교육 및 연구와 사업화 등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저는 그러한 문제의식이 부분적으로만 맞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은 원래 그런 곳에 특화된 교육기관이니, 실습 등 직업 교육과 제품 개발 등의 사업화는 그것을 해온 기업/산업계에 맡기는 것이 더 효율적인 방법이 아닐지요. 대학은 교육과 관련한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있는 완벽한 기관이나 제도가 아니며, 과학기술인력양성의 책임을 대학에만 지우는 것은 효과적일 수 없습니다. 대학이 가진 역량 이상의 것을 괜히 그 쪽으로는 비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대학에 산업계 요구대로 교육과 연구를 하라고 시키면서 돈을 쥐어주기보다 애초에 산업계를 비롯한 응용과 사업화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기관과 제도 등 다른 통로를 통해 그런 교육을 맡길 수는 없을까요? 물론 이 둘의 깊은 연계가 필요하겠습니다만, 지금과 같이 일방적으로 대학을 기업 쪽으로 미는 산학협력 정책 방향에는 의문을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