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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상징적인 것들로 가득찬 하루

영화 <기생충>을 보았다. 주인공 기우는 누가봐도 감독이 의도한 연출에 '상징적이다'라는 말을 서슴없이 감탄하듯 내뱉는다. 영화에서 금기시할 법도 한 그 대사를 집에 돌아오는 길에 끝없이 되뇌었다.

영화를 취미 이상으로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내 일상에서 마주치는 장소와 시간, 물건과 사람에 상징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영화를 찍을 때도 그 상징적인 것들에 엄청 집착했으니, 내 삶을 여러 편의 영화라고 여기고 있다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치만 오늘만큼이나 상징적인 것들로 가득찬 하루가 있을까 싶다.

기껏해야 열심히 뛰는 게 전부인,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발목이 아파 절뚝일 수 밖에 없어 매번 고민하는 축구.

한창 석사 1년차 때 관심을 가지고 팠던, 지금의 관심사로 오기까지의 길 초입에 있었던 과학기술인력정책과 대학 R&D, 그래 내가 저걸 고민했었지, 연구했었지 싶었던 한 박사님의 발표. 

어쩌다보니 내 인생의 큰 전환점 그 시기에 위치한 서원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 원생 한 명의 결혼식. 직접 보거나 듣지는 못했지만 굉장히 전통적인 결혼식과 퀴어 축제의 분위기 속 정상적인 남녀 결합을 축복하면서 동시에 무지개 색깔로 7행시를 지었다는 목사의 주례.

퀴어 축제 행진과 나란히, 하지만 보도로 걷다가 결국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거리를 가로질렀던 시간.

보고싶었던 사람과 보고싶었던 영화와 이런 대화를 나눈 게 언제였던가 싶었던 산책.

고민 끝에 택시 대신 탄, 술냄새로 가득 찬 채로 그 산책 길을 거꾸로 다시 즈려밟으며 먼 길을 돌아온 심야버스.

이렇게 연출로 가득 찬 하루가 또 있었나. 

감상이 과한 듯 하니 자면서 영화 한 편을 끝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