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끄적끄적

여수 기행문 1일(/3일)차 (190607)

끄적끄적 게시판 글만 늘어가는구나...

몇 없는 친한 친구와 여수를 다녀왔다. 

훈련소에 있으면서 친한 친구와 여행을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혼자서 생각을 정리하다보니 그것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졌다. 맞다. 나는 수다쟁이다. 가끔씩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하지만 그게 정말 그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을 '내 이야기'라면 아무 곳에서나 하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애매하게 친분이 있는 사람보다 초면에 하기가 더 쉽긴 하겠지만, 아무래도 친한 친구가 편하다. 거꾸로 친한 친구 이야기도 궁금하기도 하니까.

그렇게 수다를 떨며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었다. 우선 여행을 가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장소는 다소 익숙한 여수로 결정했지만, 그래도 여행지로서 여수를 가보니 색달랐다. 흔히 말하는 휴양지 풍경이었는데, 그 익숙함 때문에 가기가 꺼려지기도 하고, 다시 찾고 싶기도 한 분위기를 다시 맛볼 수 있었다.

금요일에 휴가를 내고 아침 기차를 탔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이른 아침 일정은 엄마의 잔소리로 시작한다. 별다른 일정이 없어도 꼭 내가 일어나기 전에 아침을 차려주시고는 내가 나가기 전까지 길찾기 앱을 보며 얼른 나가라고 등을 떠민다. 그 속에서도 여유롭게 엄마 잔소리를 더 듣고 나가야 딱 5~10분 전에 약속장소에 도착한다. 그 날도 다름없이 그렇게 친구를 만나서 기차에 몸을 실었다. 오랜만에 꽤나 오랫동안 타는 기차라서 (해봐야 3~4시간이긴 하지만) 여유롭게 책 읽고 음악 듣고 친구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경기도를 벗어나기 전에 둘 다 곯아떨어져 잤다.

사실 첫 날은 태풍급 비바람이 예보된 날이었다. 그래서 먹을 거나 먹으러 다니자고 했는데 도착해보니 적당히 흐린 날씨였다. 우리는 만성리 검은모래해변에서 일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해변은 해변이었고, 모래는 검었다. 친구 말마따나 맑고 탁 트인 바다 모습이 아니라서 약간 아쉬웠다. 하지만 파도소리와 물이 밀려나며 나는 자갈 소리는 신기하고도 편안했다. 가끔씩 빗소리, 파도소리 등 자연에서 가져온 소리를 듣곤 하는데, 이 소리도 목록에 추가하려고 냉큼 영상으로 찍었다. 

수산시장 쪽을 걷다가 '구백식당'에서 서대회와 금풍생이 구이를 먹었다. 서대회는 원래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친구한테도 기대하지 말라고 말했는데 역시나였다. 서대회와 서대회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원성을 사겠지만, 양념맛으로 먹는 서대회보다는 발라먹기 힘들고 살이 별로 없지만 나름 특유의 맛이 있는 금풍생이 구이가 나았다.

점심을 먹고 한 사우나에 딸린 옥상카페를 갔다. 식당과 마찬가지로 계획에 없던 일이었는데, 생각보다 경치가 무척 좋았다. 커피도 비싸지 않은데 양은 많아서 사진 수십장을 찍는 내내 홀짝일 수 있었다. 정면에 돌산대교, 오른쪽에 거북선대교가 보이는 경치는 검색해도 잘 나오지 않는 장소치고 꽤나 아름다웠다. 친구가 사진에 욕심이 많아서 20대 초반으로 되돌아간 듯 각종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어댔다.

또 정처없이 걷다보니 벽화마을을 걷고 있었다. 가기 전에는 도시마다 있는 벽화마을을 뭣하러 가나하는 생각이었는데, 딱히 할 것도 없어 1004m를 걸었다. 벽화마을을 중심으로 '인스타 예쁜 카페'라고 부를 법한 카페들이 최근 여럿 문을 연 듯 했다. 대충 둘러보고 숙소에 들어와서 쉬었다.

오후 8시부터 게스트하우스 파티가 있어 일부러 저녁을 먹지 않았다. 회와 족발을 준다고 해서 약간 기대를 했는데, 음식은 일단 큰 실망을 안겼다. 둘다 어디선가 배달해서 그 자리에 몇 시간동안 놓여있었던 맛이랄까. 싸구려 뷔페에서 먹을 법한 메뉴였다. 파티에 크게 기대를 한 건 아니었고, 비가 온다 해서 저녁에 할 것도 없겠거니 신청했는데 역시나였다. 다들 술을 엄청 마셔대더니, 결국 몇몇은 볼썽사나운 꼴을 보이고 말았다. 그래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사실에 약간 설렜는데, 얼마 안 가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나'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방에 일찍 들어와서 책 읽다가 잤다.

 

'끄적끄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복  (2) 2019.07.27
여수 기행문 2~3일차(190608~09)  (0) 2019.06.15
<기생충> 지극히 사적인 후기  (0) 2019.06.07
상징적인 것들로 가득찬 하루  (0) 2019.06.02
몸값  (3) 2019.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