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과정을 그만두고 취직을 하겠다고 한 교수님께 말씀드렸을 때, 교수님께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3년 동안 일하면서 박사학위논문 하나 써서 복학하자마자 졸업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사람 일이 어떻게 될 지 모르니 지금도 학적은 유지해놓고 있지만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웃어넘겼다. 하지만 교수님 말씀대로 회사 생활을 하며 마주하는 여러 문제를 대학원에서 배운 과학기술학(STS) 관점으로 바라보고 계속해서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고자 했다. 그렇게 2년 여가 지났지만 논문은 커녕 짧은 글 하나 쓰지 못했다. 머릿속으로만, 혹은 여기저기 짧게 노트만 해놓은 생각들 뿐인데, 그래도 한번쯤 정리를 하다보면 정말로 연구를 이어갈만한 주제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키보드를 두들기기 시작해본다.
내 첫 회사는 게임을 재활에 접목한 의료기기를 만들어 판다. 뇌졸중 환자를 대상으로 손과 상지 재활을 돕는 제품들이 주를 이룬다. 대부분 재활치료는 보호자 도움을 받아 힘들게 병원에 가거나 (외래) 병원에 머물며 (입원) 의료진 감독 하에 재활운동을 하거나 도수치료를 받는 식이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특히 뇌졸중과 같이 만성질환에 있어 재활치료는 꾸준히 오랫동안 하는 것이 중요한데 (만성질환에 있어 '치료'라는 단어가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을 정도다), 앞서 언급한 재활치료 과정에서는 그게 쉽지 않다. 환자들이 집에서 스스로 재밌게 재활운동을 할 수 있게 만들면 환자들이 보다 만족스러운 재활 경험을 할 수 있고 또 그 효과 역시 커질 것이라는 생각 끝에 제품들이 탄생했다. 결국 금전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사기업이지만 그래도 회사가 풀고자 하는 문제가 충분히 의미있다고 공감했기에 입사를 결정했다. 재활의학 혹은 재활공학에 아무런 연고도 없던 나였지만 그렇게 의료기기 제조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기술전략&재활리서치팀'. 회사에서 처음으로 받은 명함에 쓰여있던 내 소속이다. 이름만 보면 속된 말로 '간지'가 나지만, 결국 내 업무는 연구개발과제 기획과 관리였다. 대학원에서 질리도록 하던 일이라 회사에서 해당 직무로 제의가 왔을 때 바로 거절하려했지만, 적당한 시간이 지나면 내가 원하는 데이터 분석 직무로 변경시켜주겠다는 약속을 받고서 1년 정도만 참자 생각으로 입사를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 과제 기획을 위해서는 회사가 다루는 뇌졸중 등 뇌신경질환과 재활의학 지식이 필요했기에 일 때문이 아니었다면 공부하지 않았을 내용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이후에 데이터 분석 업무를 맡았을 때도 이 때 공부해 놓은 지식이 도움이 많이 되었고, 고령화라는 앞으로 어느 나라든 피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고민도 전보다 깊게 해보았다.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읽고 남긴 감상도 그 고민의 연장선에서 썼다.
다른 한편으로 석사 때 연구했던 연구개발정책과 산학협력정책을 연구자나 정책입안가 관점이 아닌 실제 산업계 현장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내가 과제를 담당하는 부서에 있었기 때문에 편향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정말 끊임없이 새로운 과제에 지원하는 건 물론이고 동시에 여러 과제를 수행했다. 회사 특성상 어떤 산업군에 속한다고 딱 집어 말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정말 다양한 분야의 연구개발과제에 지원할 수 있기도 했고, 창업을 주도한 CTO가 대학교수로 있다보니 대학이 주도하는 연구과제에도 회사가 주도하는 연구과제에도 산학협력을 내세우며 자유자재로 끼워맞출 수 있었다. 또 워낙 항상 급하게 기획서류를 작성하고 제출했기 때문에 과제 수주 성공률이 높진 않았지만, 회사와 대학 외로도 각종 병원이나 국립재활원과 같은 공공기관과의 협업이 잦았던 것을 떠올려보면 최소한 서류상으로는 정책에서 그리는 이상적인 부문 간 협력 사례라 할 수 있었다.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개발자(HW) 분들은 우리 팀을 두고 진담반 농담반 사실상 재원조달 부서라고 칭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원 중 적지 않은 숫자가 과제 인건비로 월급을 받고 있었고, 과제를 하다가 남거나 부족한 연구개발비를 적절히 재분배해서 활용하는 지혜(?)도 필요했다. 한 임원은 1억짜리 과제를 따는 것이 매출 1억보다 효과가 크다고도 했다. 과제비로 쓰는 인건비나 연구개발비 등은 모두 과제가 아니였다면 회사가 그만큼 수익을 내야만 투자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설명이었다. 물론 과제비에 비례하게 일정 비율을 회사가 부담해야 하므로 1억 과제가 영업이익 1억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실제로 회사가 어렵던 창업 초기 시절 지금의 주력제품 개발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연구개발과제 덕분이라 했다. 그렇게 수업과 논문에서만 접했던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의의를 피부로 경험할 수 있었다.
더불어 기사를 통해서 들었던 'R&D 좀비기업' 이슈 역시 보다 가까운 곳에서 들여다볼 수 있었다. 공기업이 아닌 다음에야 결국 기업은 자체 사업을 통해 수익을 내서 존속하는 것이 순리이다. 반면 지속가능한 사업을 꾸리는 대신 정부 연구개발사업으로 연명하는 한계기업을 R&D 좀비기업이라 부른다. 연구개발정책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주제인데, 주로 높은 성공률 대비 낮은 사업화율과 같이 자금의 비효율성을 문제로 지적한다.
하지만 비효율성이라는 단순한 단어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 때문에 문제는 복잡하다. 효율을 투입 대비 성과로 계산한다고 할 때, 국가연구개발사업에 있어 투입은 단순히 정부가 기업에 지원하는 연구개발비 예산만으로 계산할 수 없다. 한 연구개발사업이 탄생하기 위해 들어가는 정부 부처와 각종 연구개발 관리전문기관, 그리고 산업계를 포함한 이해관계자들의 노동력은 물론이고, 사업이 만들어져 수행주체를 선정하는 단계에서부터 끝날 때까지 혹은 그 이후까지 들어가는 각종 관리비용이 적지 않다. 내가 속했던 기술전략팀이 수많은 기획서를 작성하며 들인 노력을 생각하면, 또 그 중 대다수 과제에서 떨어진 기억을 떠올려보면 투입을 따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복잡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과는 더 계산하기 어렵다. 한 기업이 과제 수주에는 성공했지만 사업화에는 실패했다면, 단순히 이를 손실로 볼 것인가? 이것이 이른바 '성실 실패'라면? 해당 기업이 실패를 경험삼아 자체 기술개발을 통해 성공한다면? 조금 더 현실적이면서 까다로운 문제를 들어보자. 한 업체가 사업 취지에 맞춰 울며 겨자먹기로 계획서에 인공지능도 껴넣고, 사물인터넷도 껴넣고, 5G도 껴넣었지만 막상 실제 사업할 때는 이런 4차산업혁명을 이끄는 기술들 없이 사업화에 성공했다면 이것을 성과로 쳐야 하나? 과제비 절반을 써서 계획서에 쓴 대로 구색만 맞춰서 제출하고 다른 절반은 빼돌려 다른 기술을 개발해서 성공한 경우는 어떤가? 성과 여부를 판단하기 이전에 잘잘못을 판단하기도 어렵다.
단지 회사원으로서만 접했다면 그저 순응하거나 꼼수를 부려 피했을 제도들을 정책연구자 입장에서 다시 해석하며 수많은 딜레마에 부딪혔다. 아무리 단단한 이론과 실증 연구에 근거한 정책이더라도 현실에서는 정책이 상정했던 이상적인 상황에서 벗어나기 일쑤다. 이를 머튼이 얘기한 '의도하지 않은 결과(unintended consequence)'로 분류해서 어떻게 줄이고 다시 '의도에 맞게' 조정할 지 논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책이 시행됨과 동시에 이해관계자가 모두 그 정책에 맞게 행위를 바꾼다면 정책의 의도 역시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
그렇게 정책대학원에서 정책을 공부하고 연구하다 회사로 나와 그 대상이 되고서야 첫번째 깨달음을 얻었다.
정책은 사회가 가지는 역동성을 제어하기보다 그 움직임을 추적하며 끊임없이 의미를 발굴하고 가치를 부여하며 진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