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자신이 슬퍼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있었다.

갑작스럽기보다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각자 다 다른 인연으로 간직하고 있겠지만, 대부분 1년 남짓 함께 지낸 후 경조사 외로는 따로 만나지 않던 사이. 그러다보니 건강이 안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도 가끔씩 발을 동동 굴렀을 뿐 실질적인 도움이 된 적 없었다.

유일한 지잡대 출신이라며 자신을 한없이 낮추던 그에게 그렇게 치면 나도 지방대 출신이라고 그러지 좀 말라며 말대답을 하곤 했다. 항상 내 얼굴을 살피며 기분을 물어봐주던 그였다. 사실 항상 걱정없이 웃는 얼굴이던 모습 외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2년 전 이맘 때즈음 DC에서 만난 친구가 온다는 소식을 전하자 엉뚱하게도 베이징에서 인턴생활을 한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크게 변한 것 없이 강남역에 나타난 그는 나를 보자마자 웃는 얼굴로 반갑다며 나를 얼싸안았다. 원체 표현을 잘 안하는 나는 억지로 웃으며 받아주었다. 항상 바쁘다는 그의 회사 이야기를 좀 듣다가 워싱턴에서 온 친구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 함께 수다를 떨었다. 

아, 그 전에도 한번 뜬금없이 그와 마주친 적이 있다. 대전역이었으니 아마도 연구과제 일로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는 날이었거나, 여행을 다녀오는 길이었던 것 같다. 별 생각없이 걷다가 갑자기 앞에서 내 이름을 크게 부르고 너무도 반갑게 인사하길래 되려 얼떨떨했던 기억이 난다. 출장 차 들른 거라 금방 가봐야한다면서도 세상 좁다며 근황을 물어봐주던 그는 그 때도 웃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웃는 얼굴만이 떠오를 정도로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긍정적이었다.

그런 그가 아프다는 소식을 뒤늦게서야 접했다. 그놈의 인스타를 안한 탓이었다. 물론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리였던만큼 슬픈 기색을 보이기 어려웠겠지만, 다들 그렇다더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길래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페이스북에서도 그의 글을 접할 수 있게되자 그가 그냥 아픈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에게 바로 연락을 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집어들고 인사말을 적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계획해 둔 가을방학 때 하루 정도 시간을 내어 병문안을 가야겠다고 생각한 채 연락을 미뤘다. 

추석이 되어서야 용기내어 (이게 정말 용기까지 필요한 일이었을까, 왜 좀 더 빨리 연락하지 않았을까 후회된다) 어디서 치료를 받고 있는지, 그리고 나름대로 그를 위해 준비한 일을 하기 위해 만날 수 있는지 물었다.

아마도 내가 연락을 자꾸 미뤘던 이유는 '그를 위해' 준비했다는 그 일이 정말 그를 위한 것인지 끊임없이 되물었기 때문일테다. 워싱턴 DC에서 인턴 생활을 한 사람들끼리 했던 인터뷰를 하고 싶었다. 작년부터 죽음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왔던 내 눈에는 '브레이크포인트 대화'가 그의 치료보다도 더 중요해보였기에, 다른 사람들이 치료비 모금이나 치료제 급여화 청원을 이야기할 때 나는 DC에서 서로 주고 받은 인터뷰 질문들과 대답을 다시 읽어보며 그를 위한 질문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에게 연락과 동시에 인터뷰 제안을 했을 때, 그는 씁쓸한 말투로 면회불가라 볼 수 없다고 전했다. 인터뷰에 대해서 그가 뭐라고 생각했을지는 모르겠다. 컨디션을 보며 병상을 옮기는데 매번 안 좋아지고 있다며 앞으로도 볼 수 있을지 모른다고 했다. 텍스트만 오고 갔을 뿐이지만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보이지 않았다. 너무도 당연하게 웃는 그의 얼굴을 떠올렸던 나는 당황스러웠고, 이내 부끄러워져서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렇게 간단하게 연락이 끊긴 이후 그는 두세번 정도 치료 진행상황을 SNS에 공유했다. 그 때마다 나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로 화상통화로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지만, 웃음기 없는 그의 얼굴을 좀처럼 보기가 힘들 것 같아 그가 나아지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마지막 소식을 전해들었을 때 나는 장기하 산문집 <상관없는 거 아닌가?>를 읽고 있었다. 전날 같은 시간을 공유했던 또 다른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서 충동적으로 구매한 책이었다. 

나는 내게 슬퍼할 자격이 있는지 물었다. 몇시간 단위로 갑작스럽게 눈물이 차올랐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그에게 묻고 싶은게 많았는데, 이제는 답을 들을 수 없다. 

후회와 미안함, 슬픔과 허망함 사이 어디에선가 그의 웃는 얼굴을 기억한다. 나는 이렇게 그를 애도한다. 내가 떠난 당신을 닮아 조금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살 수 있길 바라며.

강릉에 온 지 나흘만에 일출을 보면서 느낀 점.

  1. 일찍 자야 일찍 일어날 수 있다. 10시쯤 자니 겨우 6시에 일어났다. 중간에 잠깐 깼다 잠든 탓도 있겠지만, 내 몸이 7~8시간은 자야 하나보다.

  2. 내가 일출을 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동쪽 바닷가에 와서 일출 시간에 맞추어 일어난다고 해도, 내가 바라던 일출을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애국가 영상에나 나올법한 멋드러진 일출을 상상하며 바닷가로 달려나갔는데, 지평선 부근에 짙게 깔린 구름 때문에 해는 전혀 보이지 않고 부분부분 얕은 구름 사이로 빛만 내비칠 뿐이었다.

  3. 구름 뒤에 가려졌지만, 그래도 구름과 함께 있으니 또 새롭고, 어쩌면 오늘만 볼 수 있는 유일한 일출이었다. 구름 한 점 없었다면 오히려 다른 날의 구름 한 점 없는 일출과 비슷한 일출이지 않았을까. 최우식이 말한대로, "같은 하늘은 두 번 다시 볼 수 없다."

  4. 해변을 서성이다보니 지평선 위로 자리잡은 구름층을 뚫고 해가 나왔다.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를 외치려 했지만, 해가 너무 밝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겠더라. 겨우 카메라 밝기를 조정해서 사진을 찍긴 했지만 눈부시기만 할 뿐 처음에 봤던 구름 뒤 가려진 광경보다 감흥이 없었다.

  5. 어쨌든 바다는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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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와 둘째 날을 생각해보면 있었던 일들,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하나하나 묘사하며 쓰려다보니 일기가 너무 오래걸렸다. 사실 그렇게 자세히 쓸 필요는 없는데, 나중에 일기를 읽으며 그 땐 그랬지 하면서 미소 짓고 싶은 마음 때문일까.

오늘도 아침 일찍 일어나기 실패했다. 아니 바꿔말하면 어제 일찍 자기를 실패했다. 이런저런 감정이 요동치며 불필요한 생각들을 불러일으키는 바람에 얼른 머리를 비우고 자보겠다고 유튜브로 예능 영상들을 보다가 겨우 잤다. 일어나보니 10시가 지나있었다.

어제 좌식의자가 생각보다 오래 앉아있기 불편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터라, 아침부터 앉아있기 싫어 산책을 나갔다. 나름 밤에 조명이 예쁘게 켜지는 강문솟대다리를 건너다 두루미가 작은 바위에 고고하게 자리잡아 쉬고 있길래 한참을 쳐다보았다. 미동없이 수평선을 쳐다보고 있는 걸 보니 나처럼 별 생각없이 멍때리나 싶었다.

아마도 해수욕장이 있어 강문해변보다 유명한(?) 경포해변을 따라 설치된 데크 위를 걸었다. 육지쪽엔 씨마크호텔부터 스카이베이호텔까지 끊임없이 횟집과 중소형 숙박업소가 번갈아 나타났다. 바다쪽엔 종종 사람이 보였고 어제와 크게 다를 바 없이 불규칙한 파도가 쳤다. 

걷다보니 경포호 방향으로 보도가 있나없나 애매한 길이 나있었다. 오고가는 차를 경계하며 길을 건너니 경포호가 보였다. 지도로만 보다보니 크기가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실제로 서보니 굉장히 컸다. 한바퀴가 딱 5km라는 글을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평소에 5km를 뛰던 걸 생각해보면 훨씬 더 길 것 같았다. 자전거도로와 산책로가 잘 구분되어 있지 않고 생각보다 폭이 좁아 뛰기 불편할 것 같았다. 어차피 못 뛰었겠다며 또다시 자기합리화를 했다.

다시 돌아오는 길에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 봐둔 돈가스집 앞에 줄을 길게 섰길래 그냥 편의점에서 라면과 달걀을 샀다. 어차피 숙소에 부엌이 있으니 한번쯤은 요리(?)를 할 심산이었다. 숙소에 돌아와 평소에 잘 먹지 않는 국물라면 한봉지를 끓여먹었다. 비빔면만 먹다가 국물라면을 먹으니 뭔가 새로웠다.

<질베르 시몽동>을 마저 읽고 스타벅스에 갔다. 카페인 섭취를 안한지 꽤 되다보니 별 고민없이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게 된다. 처음엔 해변 쪽 자리가 나지 않아 다른 곳에 앉아 있다가 나중에서야 자리를 옮겨 해변을 보며 앉았다. 해가 질 때까지 책을 읽다 바다를 보다를 번갈아가며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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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6시쯤 일어나 일출을 보고 경포호를 한바퀴 뛰려고 했는데, 어젯밤에 생각보다 일찍 못 자고, 또 아침에 침대가 너무 포근해서 일어나지 못했다. 에어비엔비에 마약침대라며 자기만 했다는 리뷰가 다시금 생각났다.

일어나기로 한 시간보다 3시간이나 늦게 일어나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스트레칭을 한 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 제목은 <자동화 사회>. 두달 전부터 대학원생노조를 통해 알게 된 선생님이 운영하시는 독서모임('사과나무')에 참여하며 읽고 있는 책이다. 워낙 내 관심분야와 맞닿아 있어 작지 않은 기대를 품고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내가 철학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저자인 베르나르 스티글러가 글을 어렵게 써서인지, 번역이 안 좋아서인지, 일주일에 한 장을 읽기가 그렇게 힘들었다. (물론 내가 매우 게을러서이기도 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모임도 빠지고, 책도 못 읽는 주가 쌓이다보니 마지막 모임만을 남겨두고도 나 혼자 책 절반을 못 읽은 상태에 다다랐다. 때문에 이번 연휴를 틈타 책을 완독하고 모임에서 이야기가 나왔던 서평도 써볼까 했다. 사실 모두 강릉에 와서가 아니라 추석 연휴 때 집에서 하려던 것들이다. 결국 이 두꺼운 책을 강릉까지 들고 온 건 추석 연휴 때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금 내 게으름이 놀라울 뿐이다.

흐름을 탔을 때 일주일에 한 장 씩 꾸준히 읽었다면 모르겠지만, 어렵다보니 너무 읽기가 싫어져서 조금 문턱을 낮추고자 스티글러가 독자들이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 가정하는 시몽동의 철학을 공부하고 읽기로 했다. 마침 리디북스에 찾아보니 <질베르 시몽동>이 있어 다운받아 읽기 시작했다. 워낙 오랫동안 시몽동을 연구하고 적지 않은 논문과 책을 쓴 저자가 정리한 책이라서 그런지 매우 친절했고, 또 그동안 감이 전혀 오지 않았던 개념을 익힐 수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갔다. 해변 가까이에 숙소를 잡고 나니 주변엔 온통 횟집과 카페 뿐이어서 혼자 밥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나마 수제버거 집이 몇 개 있었는데, 어제 매우 실망스러웠던 폴앤메리버거를 제외하고는 문을 닫아 무난해보이는 떡갈비 집에 들어갔다. 부부 둘이서만 운영하는 집 치고는 꽤 규모가 큰 식당이었다. 대학가 햄버그 스테이크 집처럼 알루미늄 접시에 깔끔하게 나와서 나름 만족하며 먹을 수 있었다.

식사를 다하고 나와보니 바람이 좀 불긴 해도 날씨가 참 좋았다. 해변 뒤쪽으로 나있는 산책로를 좀 걷기로 한다. 예전에 왔을 때도 바닷가만 떡하니 있지 않고 뒤쪽으로 소나무가 듬성듬성 심어진 산책로가 있어서 참 좋았던 기억이 난다. 분명 의도적으로 만든 산책로인 듯 하여 만든 사람을 칭찬하며 걸었다. 중간에는 세인트존스호텔에서 놓은 듯한 사진 찍기 좋은 조각들도 많았다. 계단, 말, 액자 등. 바다가 보이는 그네도 있어 타볼까 하다 커플이 한창 사진을 찍고 있어 가까이 가보지도 못했다. 군에서 설치한듯한 엄호물과 군시설도 군데군데 있었다.

끝이 없어 보이는 산책로 사이로 바다 쪽으로 난 샛길이 있길래 걸어나왔다. 주차장에서 가까운 강문해변에서 거리가 좀 있는 곳이라 사람이 한 두명 말고는 없었다. 바다를 보며, 파도소리를 들으며 돌아오기로 한다.

예전에 기사로 보았던 해안침식 흔적이 군데군데 보였다. 우리가 흔히 아는 바닷가처럼 모래사장이 완만한 경사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작은 절벽 형태를 보이곤 했다. 정확히 왜 그러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쨌든 좋지 않은 징조임은 분명했다.

파도는 굉장히 불규칙적으로, 또 단순히 땅과의 경계에 수직방향으로 들어왔다 나갔다하는 것이 아닌 사선 방향으로 쳤다. 발만 조금 담글 생각으로 아슬아슬하게 걷다보니 파도가 세게 칠 때는 허벅지까지 물이 올라왔다. 소리가 참 시원해서 주워담겠다고 폰을 꺼내 영상으로 여러 번 담았다.

원래는 바로 카페에 들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려 했는데 바지가 생각보다 많이 젖어 숙소에 들러 옷을 갈아입기로 한다. 숙소에 가까워지니 사람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나처럼 혼자 걷는 사람은 없었다. 친구나 커플, 아이를 동반한 가족이거나. 참 모순적이게도 일부러 혼자 온 여행이건만 이럴 때는 꼭 옆에 누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숙소에 들어와 바지를 널어놓고 발을 씻었다. 다른 외출복으로 갈아입어야 하는데, 어쩐지 카페에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 그냥 숙소에서 일을 볼까 싶어 편한 옷을 입었다. 예전에 사놓고 읽지 못한 <지성사란 무엇인가>를 들고 침대로 향한다. 베개 두개를 벽에다 세워놓고 기대어 앉아 읽기 시작했다.

분명 잠을 충분히 많이 잔 데다가 햇빛도 꽤나 세게 들어와서 졸릴 틈이 없다 생각했는데, 눈이 스르르 감긴다. 책의 서론에 해당하는 첫번째 장만 읽어놓고선 하품을 하고 잠을 청했다.

일어나보니 오후 5시쯤. 얼마 안 있으면 또 저녁을 먹어야 할 시간이다. 근처 가장 기대되는 수제버거 집을 가기로 정해놓고 7시 정도까지 책을 읽기로 한다. 책을 마저 읽고 버거집이 있는 초당 순두부마을로 향했다.

먼 길은 아니었지만 어둡고 걷기 편하기만 한 거리가 아니다보니 조금 긴장한 채로 걸었다. 어딜 가나 수도권이나 광역시가 아니면 뚜벅이가 다니기엔 불편함이 꽤 크다. 지도에서 눈여겨봤던 순두부집과 순두부젤라또 집을 지나고 나니 버거집이 보이긴했는데, 왜 또... 문을 닫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운영시간에는 10시부터 오후 8시라고 적어놨지만 오후 2~3시 즈음이면 패티가 다 팔려 문을 닫는 가게였다.

찾아놓은 다른 수제버거 집을 가기로 한다. 역시나 가는 길이 어둡고 심지어 보도도 없어 자전거 도로로 걸어야만 하기도 했다. 애초에 가게가 걸어오는 사람을 위한 곳이 아니었다. 널찍한 주차장 뒤로 나름 최근에 지은 듯한 건물에는 일하는 사람말고 손님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체온이 너무 낮게 나온다며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던 주인은 이내 높은 게 아니니 명부를 작성하고 주문하라고 일렀다. 단품과 세트 가격 차이가 꽤 되어 단품을 시킬까 하다가, 갑자기 음료가 땡겨 베이컨치즈버거 세트를 주문했다. 얼마 안 있어 나온 버거는 패티보다 베이컨과 버섯 맛이 강했다. 그래도 어제 먹은 것보다는 훨씬 괜찮아서 나름 만족했다. 또다시 집 근처 비비비의 수제버거가 생각났다. 그 곳이 너무 수준급이라 눈이 높아진건지 좀처럼 수제버거집에서 만족하는 법이 없다.

다 먹고 천천히 식당을 나와 다시 숙소로 향했다. 걸어오며 카페를 가볼까 고민하며 책읽기 적당한 분위기의 카페를 검색했다. 아니나 다를까 1순위로 꼽았던 카페는 문을 닫았고, 그냥 숙소 바로 앞에 있는 카페가 무난해보여 차를 한 잔 시켰다. 단편 하나씩 매우 천천히 읽고 있는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 <관내분실>을 읽고, 사회학 스터디에서 공유할 글을 쓰기 위해 Annual Review of Sociology 저널에 실린 Michele Lamont이 쓴 SVE (Sociology of Valuation and Evaluation) 리뷰 논문을 읽었다.

카페 운영시간에 맞추어 10시쯤 숙소로 다시 돌아왔다. 내일은 꼭 일출을 보고 경포호를 한바퀴 뛰리라. 근데 챙겨온 반팔 반바지를 입고 뛰기엔 좀 춥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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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강릉으로 가는 기차 안이다. 작년 가을 제주도 자전거여행(이라고 쓰고 운동이라고 읽는...)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올해도 언젠가 여행을 가리라 생각하며 어디를 갈지 생각을 하곤 했다. 코로나19가 한창 극성일 때는 당연히 어쩔 수 없다 생각하고 미뤄왔지만 너무 길어지다보니 어차피 혼자 조용히 다녀오는 휴가니 큰 걱정 없이 떠나기로 했다.

예전부터 느꼈던 사실이지만 운전을 하지 않으면 운전을 할 수 있을 때에 비해 갈 수 있는 여행지가 매우 제한적이다. 특히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휴식형 여행지 - 숲속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깰 수 있되 쾌적한 숙소가 있는 곳 - 는 차가 없으면 사실상 갈 수가 없다. 때문에 항상 택했던 건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수 있는 바닷가인데 (해변 도시는 있어도 숲속 도시는 없지 않나!), 그 때마다 바다도 참 좋았기에 이번에도 바닷가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그 중 기차가 다녀서 오고가기가 편한 강릉 해변에 좋은 에어비엔비 숙소가 있길래 고민 없이 예약했다.

제주도 자전거일주 때는 고민을 떨쳐내고 생각을 지우려고 했다면, 강릉은 혼자 고민하고 생각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라 가는 것이다. 바닷가를 보며 생각을 하다보면 번뜩이는 해결책이 떠오르지는 않더라도 다른 것들에 방해받지 않고 정말 내가 하고자 하는 고민과 생각만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환경에서 내리는 결정이 가장 최선이 아닐까.

해야하는 고민 중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전문연 이후의 내 진로다. 훈련소에서 한 달 동안 고민해서 내린 결론은 유학이었지만, 지난 1년 반 사이 학계에 대한 내 회의감은 전보다 더 커졌고, 그 회의감으로 내 게으름을 합리화하곤 했다. 여전히 내가 하고 싶은 공부와 찜해둔 연구주제는 매력적이고, 관련해서 책과 논문을 읽으며 통찰을 얻을 땐 그 어느 때보다 기쁘지만, 이토록 주저하는 것은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밥벌이를 놓아서는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전혀 다른 두 업을 함께하기는 또 힘들다. 무엇보다도 동료가 없이는 집중이 어렵다. 동시에 외롭다고 인간관계를 위한 인간관계는 괴롭다. 자연스럽게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쪽을 향해 걷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과 함께 생각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대학원이 그토록 힘든 곳이면서도 자꾸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이유다. (물론 그 때는 그 때 나름대로의 외로움이 있었다.)

아무튼 그런 고민들과 더불어 밀린 일을 하러 강릉에 간다. 추석 연휴 내내 이 가을방학의 기대감을 키워준 예능 <여름방학> 유튜브 영상을 챙겨보았다. 그만큼 길지도 않고, 정유미와 최우식처럼 잘 먹고 이것저것 많이 해볼 수는 없을테지만, 그래도 방학은 방학이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짐을 싸면서도 괜스레 신이 났다. 그렇게 생각없이 싼 짐을 너무 무거워 낑낑대며 들고 다녀야 했다.

11시쯤 집을 나와 KTX를 타기 위해 청량리역에 도착했다. 점심을 안 먹어서 간단하게 때울까 싶어 도넛 집과 햄버거 집 앞을 잠깐 서성였다. 그러다 다시 배가 아파오길래 고민을 관두고 빈 속으로 열차를 기다리기로 한다. 추석 연휴가 다 끝나가는 만큼 강원도로 향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또 명절 특수(?) 사회적 거리두기 제도가 시행중이라 기차도 같이 있는 두자리 중 한자리씩만 탈 수 있다. 때문에 여러 명씩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라도 기차에서는 모두가 혼자인 것 처럼 보인다. 너무 조용해서 사진 한 장 찍기도 눈치가 보이는 열차다.

방금 막 열차가 북한강을 건넜다. 강은 참으로 넓고 한적했다. 날씨는 엄청 맑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마냥 흐린 것도 아닌 적당한 날씨다. 어두운 빛의 강을 건너고 나니 열차는 터널과 산길을 짧게 반복하며 통과한다. 앞이 밝아져오며 통과하는 산 틈 사이로 난 철길에서 보이는 산등성이가 참 빼곡하다. 철도를 강릉까지 깔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산을 깎고 뚫었을까.

기차를 타거나 버스를 타면서 풍경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 중 하나는 우리나라에서는 땅을 놀리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친한 형과 누나가 운전을 해준 덕분에 동부 해안따라 로드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역시 땅 넓은 대륙이라 그런지 참 노는 땅이 많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땅이 꽤나 자주 보였다. 반면 우리나라는 왠만하면 다 산이다보니 여기저기를 깎아 묘소를 마련한 선산이 아니면 쓸 수 없어 산이 아닌 곳은 어떻게든 그 쓸모를 찾는다. 산등성이 사이사이 조그마한 땅에도 모두 건물이나 논밭이 자리잡고 있다.

* * *

금세 한시간 반이 지나 강릉에 도착했다. 왕복 세시간이면 동해 바닷가를 거닐 수 있다니, 바다가 너무 보고플 땐 당일치기로 다녀와도 되겠다 싶다. 숙소를 잡은 강문해변까지 대중교통으로 다니기는 쉽지 않아 택시를 타야 한다. 짐은 무거운데 체크인 시간이 조금 남아 역 근처에서 식사를 하려고 했다. 한 군데 봐놓은 막국수집을 애써 찾아갔지만 장사를 하지 않아 그냥 역에 있는 토스트집에서 요기를 했다. 그러고나니 시간이 얼추 맞아 숙소로 이동했다.

숙소는 에어비엔비 사이트에서 본 사진 그대로였다. 이름('숨어있는 집')답게 들어가는 길을 미리 알아놓지 않으면 입구를 찾기 어려운 곳이다. 펜션이지만 내 방은 원룸에 가까웠다. 책상이 있는 숙소가 거의 없어 좌식책상이라도 있는 곳을 택했다. 건물 옥상에서는 앞 건물 때문에 약간 시야가 가리는 것을 제외하면 강문 해변이 한 눈에 들어왔다. 에메랄드빛 바다는 끝으로 갈수록 어두워지다 옅은 안개와 경계를 만들었다. 한껏 기대하며 듣고 싶었던 파도소리가 들려왔다.

짐을 풀고 얇은 외투를 챙겨 해변을 구경하러 나갔다. 주차장을 건너가면 곧바로 모래사장이 나타난다. 사진찍기 좋게 만든 조형물이 군데군데 있어 사람들이 종종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오늘만큼은 아무 생각하지 않고 바다를 느껴도 되겠지. 정말 머리를 비운 채로 바다를 보며 하염없이 걷기만 했다. 생각해보니 사진도 몇 장 못 찍었다. 그러다 갑자기 피곤해져서 내일도 모레도 있으니 여유롭게 낮잠을 자기로 한다. 방에 들어와 간단히 씻고 옷을 갈아입으니 잠이 쏟아져서 해가 지는 것도 모르고 푹 잤다.

일어나니 벌써 저녁식사를 할 시간이다. 아마도 강문해변에서 가장 유명한 폴앤메리버거를 먹어보기로 한다. 오후에 슬쩍 보았을 때 사람이 너무 많길래 저녁 늦게는 별로 없을 줄 알았더니 줄을 설 정도는 아니지만 사람이 적지 않았다. 혼자 먹을 자리가 마땅치 않아보여 포장 주문을 했다. 가장 유명한 모짜렐라버거는 포장을 추천하지 않길래 기본 메뉴를 시켰다. 맛있으면 또 오면 되니까라고 생각하며 숙소에 돌아와 먹은 버거는 정말 최악이었다. 소스만 치덕대고 다른 재료, 심지어 패티까지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워낙 유명해서 그래도 조금은 기대했건만, 배신감이 작지 않다. 물론 집 근처 수제버거집 덕분에 햄버거 기준이 쓸데없이 높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을 정도였다.

사이드로 시킨 감자튀김은 같이 사온 캔맥주와 함께 이따가 있을 축구경기를 보며 먹을 생각이다. 강릉까지 와서 보는 경기인데 설마 이기겠지. (다행히 이겼다.) 오늘은 아무것도 안하는 날이다. 생각도 일도 여태 그토록 미뤘는데 오늘 하루쯤은 더 미뤄도 되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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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노트나 노션을 거쳐서가 아닌 바로 블로그 에디터에 글을 써본 게 얼마만인지. 이리저리 웹서핑을 하다보니 단상을 글로 남기고 싶어졌다. 석사 때부터 참 많은 시간을 웹서핑에 쏟았고, 그 때마다 느낀 건 연구자를 꿈꾸었던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 또 연구자가 아니더라도 내게 연구서와 다름 없는 책을 정말 취미로 읽는 사람 역시 많다는 것이었다.

어쩌다 사회학 스터디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김경만의 <글로벌 지식장과 상징폭력>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다시 책 제목을 검색해서 이전에 이미 한번 다 살펴본 적이 있는 글과 블로그들을 다시 헤집고 다녔다. 책이 본격 국내 사회(과)학계 비판서인만큼 선택편향은 있겠지만 대부분 연구자 혹은 연구자를 꿈꾸었던 사람들이었다. 현재 연구자인지 아닌지는 그 포스팅 말고 최근에는 어떤 글을 썼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글들을 보며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한 분은 농부가 되어 농장에서 기르는 작물에 대한 글을 쓰고 있고, 한 분은 유학을 가서 학업을 지속하며 유학생활에 대한 글을 쓰는가 하면, 또 한 분은 가정주부가 되어 육아일기를 적고 있다. 김경만의 책에 대해서만 언급했지만, 다른 때에 다른 주제로 웹서핑을 할 때도 비슷한 경험을 하곤 했다. 한 때는 본인의 연구주제, 공부한 내용, 더 넓게는 학계에서의 생활에 대해 글을 쓰던 사람들이, 물론 그걸 끝으로 블로그 포스팅이 멈춘 경우도 적지 않지만, 정말 다양한 주제로 포스팅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다보면 나 역시도 내 관심분야와 연구주제가 영원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종종 스마트폰을 구매한 이후로 계속해서 구글 포토에 백업되고 있는 사진들을 굳이 찾아보곤 한다. 2014년부터 폰으로 찍은 사진들은 대부분 남아있는데, 가끔 넋놓고 몇몇 장면을 쳐다보게 된다. 물론 벌써 그로부터 6년이 지났다는 것도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지만 그것 말고도 당시 내가 했던 고민들, 또 지금과 비교했을 때 두드러지는 차이점들은 정말 저 사진 속의 내가 내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 '맞아, 그 때 내가 그랬지'가 아니라 '봐봐, 저 때 너는 저랬다니깐'에 가까운 느낌.

이 글도 언젠가 다시 읽게 된다면 내게 그런 기분을 안겨주겠지. 모란역 근처 원룸에서 자취하던 시절에 다음 날 출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새벽에 잠들지 못한 채로 캔맥주 한 캔 까면서 시덥잖은 글이나 쓰던 시절이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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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유독 몸이 자주 아팠다. 특히 최근 몇 주 간격으로 머리와 허리가 번갈아가며 아파서 평일이면 아침마다 출근을 할 지 급하게 연차를 쓰고 쉬어야 할 지 고민해야 했고, 주말이면 하루종일 침대에서 꼼짝없이 뒹굴거리다 밤이 되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지나간 하루를 아까워하곤 했다.

머리가 아픈 건 학창시절때부터 종종 편두통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신경쓰이는 일은 아니다. 물론 예전에는 왠만하면 한시간 이내에 통증이 가라앉았던 반면 최근에는 이틀 넘게 연속 진통제를 먹어도 계속 아파서 사흘 째 되는 날도 아프면 병원에 갈 생각이었다. 그랬더니 사흘 째 거짓말같이 또 통증이 사라졌다.

그런데 올해 초부터 새롭게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뻐근한 느낌이 들길래 자주 스트레칭하면 되겠거니하고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다 회사에서 자리를 옮기다가 한 번, 집에서 청소하다가 한 번 삐끗하는 느낌이 있었고, 그 후 부터 허리를 굽히거나 필 때마다 아파서 결국 병원을 다녀야 했다. 실손보험청구가 된다는 이유로 일반 물리치료에 더해서 충격파치료를 아낌없이 받았는데 막상 알고보니 70%만 돌려받을 수 있어서 예상치 못한 지출이 있었다. 그래도 처음 아플 때 확실히 치료받고 낫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크게 여의치 않았다.

한 번 아프고 말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저번주에 다시 허리 통증이 심해졌다. 설마설마 하면서 자주 스트레칭하고 자세에 신경쓰며 일했지만, 결국 아예 허리를 굽히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토요일에는 치료를 받기 위해 외출 준비를 하다가 허리를 살짝 굽힐 때 극심한 통증이 와서 그대로 방바닥에 쓰러져 한동안 맨몸으로 엎드려있어야만 했다. 너무 아파서 방바닥에 대고 고함을 외치고 신음소리를 낼 수 밖에 없었는데 아래 층에 소음이 울리지 않기만을 바랐다. 결국 그 날 병원은 가지 못했고 일어날 수 있게 되자마자 바로 침대에 누워 그렇게 또 하루를 보냈다.

물론 누가 아픈 걸 좋아하겠냐만은, 유독 나는 아픈 게 싫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플 때의 나 자신이 싫다. 아파서 누워있을 때 내 머릿속은 욕으로 가득 차고, 그 욕들을 나를 향해 퍼붓는다. 나도 내가 왜 그러는 지 모르겠는데, 분명 아플 땐 그런 상태가 된다. 악에 받쳐 할 수 있는 모든 신세 한탄과 부정적인 생각을 끌어모아 머릿속을 채운다.

신기하게도 그러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통증이 사라질 때가 있다. 두통이야 자주 그랬기 때문에 적응했지만 허리는 항상 아픈 게 서서히 가라앉았는데 쓰러졌던 토요일엔 그 다음 날 바로 통증이 없어졌다. 쌓아놓은 욕과 나쁜 생각 역시 무슨 일 있었냐는 듯이 사라졌다. 그렇게 극단적인 주말을 보내고 나니 나는 대체 왜 그렇게 몸이 아픈 것도 모자라 내 마음까지 아팠는지 (혹은 아프게 했는지) 궁금해졌다.

몸이라는 단어를 두고 한참을 생각하다 내가 전부터 내 몸의 건강을 넘어 fitness[각주:1]에 적잖이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몸 상태가 평소 염두에 두고 있던 fitness 범위를 벗어나는 상황을 못 견디는 것이다. 뱃살과 근육과 같은 외모가 주를 이루지만, 그 외로도 걷거나 뛸 때 몸이 가벼워야 하고 머리는 상쾌해야 하며 속은 더부룩하지 않아야 하는 등 몇몇 기준이 있다. 집착이 정확히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초등학생 때 이미 배에 왕(王)자를 만들겠다고 매일 밤 윗몸일으키기를 했던 기억이 나는 것을 보면 최소한 15년 전부터 몸에 적잖이 신경을 썼던 셈이다. 중학교를 다닐 때도 하체가 유독 두꺼운 게 콤플렉스라서 살을 빼겠다고 항상 엉덩이와 두 다리에 힘을 주면서 걸어다녔고, 또 매일 밤 집에서 자전거를 탔다. 물론 생각이 짧았다. 갈수록 살이 빠지긴 커녕 근육이 붙어 하체가 두꺼워졌으니 말이다.

내가 내 식단을 결정할 수 있게 된 대학생 때부터는 당과 나트륨, 탄수화물을 피하고 단백질 위주로 식단을 유지해왔다. 그렇다고 연예인처럼 다이어트 하듯이 식단을 조절한 건 아니었다. 음료수 대신 물을 마시고, 카페에서도 아메리카노만 마시고, 찌개 같이 국물 위주 메뉴는 배제하고 어쩌다 백반을 먹게 되면 밥 반 공기를 덜어놓고 먹는 식이었다. 단백질에 대해서는 유난히 관대(?)했다. 치킨엔 단백질이 많다고 합리화하며 친구들에게 야식으로 치킨 시켜먹자고 졸라댄 적이 많다. 대학원과 회사를 다니고서부터는 혼자 식사를 할 일이 많아지다보니 지금까지도 샌드위치와 샐러드를 번갈아가며 먹고 있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자리잡은 식습관 때문에 종종 주변 사람들로부터 너무 과하게 건강을 챙긴다는 말을 듣곤 한다.

어쩌면 이토록 내가 몸에 신경을 쓰는데도 불구하고 종종 몸이 아픈 게 억울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내 몸이 건강을 잃고 내가 생각하는 fitness 범위에서 벗어날까봐 불안한데 나름 노력해도 자꾸 아프면 나보고 어쩌라는 것인가? 정녕 꼼짝없이 가족력이 있는 병에 걸리고 마는 건가? 아니면 내가 내 마음이 몸에 크게 의존한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어서 몸이 좋지 않은 것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렇게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몸은 더 안 좋아지는, 그렇게 끝없는 부정적인 절망회로를 돌리는 것일 수도 있다.

막상 이렇게 몸이 좋을 때 돌아보면 너무도 자의식 과잉인 나 자신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물론 모델 한혜진이 말한대로 유일하게 내가 통제하고 내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건 내 몸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몸을 완벽히 내 의지대로 통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건강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되, 아프다고 자학할 필요는 없다. Fitness에 대한 집착과 강박을 내려놓고 아프면 아픈대로, 아프지 않으면 또 아프지 않은대로 내 몸과 마음을 아껴야겠다.

오늘은 아프다는 핑계로 미뤄온 집안일을 해야겠다.


  1. 건강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겠지만 fitness라는 단어 안에 담긴 의미가 모두 표현되지 않는 것 같다. 문자 그대로 'fit'에 초점을 맞추면 fitness가 단순히 건강한 상태 그 이상을 함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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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부턴가 습관처럼 MTS(모바일 주식 거래 어플)와 주가 지수를 챙겨본다. 자기 전과 일어난 후 미국 주가 지수를 확인하고, 출근 후나 점심시간, 오후 3시 즈음에 우리나라 주가 지수와 내가 산 주식들 가격을 확인한다. 괜찮다 싶은 주식에 매수 주문을 넣기도 하고, 적당히 올랐거나 떨어질 것 같은 주식에 매도 주문을 넣기도 한다. 아직 10시에 출근하고 있기 때문에 장 시작 후 출근을 하게 되는데, 뭔가 큰 변화가 보이면 출근길 내내 MTS만 보고 있기도 하다. 퇴근할 때는 주로 투자 관련 유튜브나 기사를 챙겨본다. 운동이나 글쓰기, 영어공부 등 마음만 먹고 습관으로 만드는 데 실패한 것이 수두룩한데, 야속하게도 내 몸과 머리는 두 달이 채 되기도 전에 주식투자를 루틴에 포함시키는데 성공했다.

이번 주에 처우면담을 다시 했다. 처음 할 때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협상했으면 될 것을, 세 달 내내 신경써서 겨우 자리 한번을 더 만들었다. 다행히 그간 신경써서 노력한 덕분에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지만, 바보같이 2년 전 에 저질렀던 첫 협상 자리에서 거절하지 못한 실수를 되풀이하고 말았다. 사실 처우면담이 끝나고 나오면서도 내가 쓸데없이 낮게 부른 건 아닌지, 확답을 받았어야 했던 건 아닌지 불안하기도 했다. 물론 2년 전과 비교하면 회사 측 첫 제안을 거절하고 보다 자신있게 내 주장을 했다는 점에서 나아지긴 했다. 하지만 끝없는 욕심 때문인지 만족스럽기 보다 찜찜하다. 일단 내 손을 벗어났으니 회사 측 답변을 받는대로 대응을 해야겠지.

너무도 빠르게 습관이 된 주식투자와 지난 세 달, 아니 이직 준비 시절까지 포함하면 거의 5개월 남짓 신경 써 온 연봉. 두가지 모두 내가 요즘 얼마나 돈에 집착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이렇게 머리 한 구석에 돈이 자리잡고 있을 때, 반대편 구석에서는 질문 하나가 계속 떠올랐다 가라앉았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어쩌다 이렇게 돈 한 푼이 아쉬워 이전엔 관심조차 주지 않았던 것들에 연연해 하게 되었나?

그러다 나는 내 안에 피해의식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역설적이게도 피해의식의 씨앗은 회사에서 돈 받고 일하기 시작하면서 마음 속에 자리잡았다. 애초에 돈을 신경쓰지 않았기에 돈이 되는 전공을 졸업하고서 돈이 되지 않는 전공으로 대학원을 진학했다. 대학원을 다닐 때도 그저 부모님께 손 안 벌리고 이런저런 연구과제로 자급자족할 수 있다는 데에 만족했다. 큰 돈을 벌지는 못하더라도 굶어죽지 않을 정도라면 나쁘지 않겠다며 (혹은 설마 굶어죽기야 하겠냐며) 공부에 뜻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기 시작한 순간, 삶의 기준이 바뀌었다. 내 '몸값'은 얼마인지 계속해서 자문했고, 머리는 '나잇값'을 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사실 기준만 바뀌었지 모든 게 그대로다. 나는 여전히 구질구질한 짠돌이고, 당장 큰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때문에 처음 회사를 알아보러 다닐 때 연봉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워라밸, 정확히 말하면 퇴근 후에 연구할 수 있는 시간과 체력이 충분히 남아있을 지만 생각하고 회사를 골랐다. (물론 애초에 구직 시기나 전공, 전문연구요원 편입가능 여부 등 제약조건이 많아 선택지가 많진 않았다.) 하지만 점차 주경야독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회사는 회사대로 다니고 연구는 연구대로 하는 독립연구자로 살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둘 모두를 한꺼번에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허황된 자신감으로 시작한 실험결과가 실패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렇다고 전업 연구자의 길을 걷자니 어찌저찌 유학을 가는 데에는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 이후가 그려지질 않았다. 몸값을 고려하면 회사원으로 지내는 것이 너무도 남는 장사였다. 나잇값을 생각하면 둘은 더더욱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돈이 기준이 되자 모든 게 바뀌었다.

'연구를 하고 싶지만 연구로 먹고 살 자신은 없다. 어쩌면 연구가 아니라 공부만 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연구를 직업으로 삼아도 되겠다고 확신할 정도로 굉장히 뛰어나거나 굳이 본인이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라면 이런 고민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렇지 못하니 돈을 벌 수 있을 때 벌어서 한 푼도 벌지 못할 미래를 대비해야겠구나.'

그렇게 피해의식은 커져만 갔고, 명확한 목표나 방향은 잃어버린 채 그저 돈을 벌어야겠다는, 최대한 빨리 더 많이 모아야겠다는 집착만 남았다. 수단일 뿐이었던 '경제적 자유'와 'FIRE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가 곧 목적이 되었다. 여러 재테크 책과 영상은 그 피해의식조차 연료삼아 돈을 모으도록, 또 모은 돈을 굴려 돈이 나를 위해 일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원을 나오며 전문연구요원 기간 동안 모아야겠다고 계획한 목표 저축액이 있었다. 지난 달 월말 정산을 하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내 자산이 생각보다 빨리 그 금액에 도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언급했듯 대학원에 있었을 때는 돈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큰 돈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 이런저런 근거를 고려해서 세운 목표였기에 터무니없이 적지도 않았다. 분명 그 때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만족했던 만큼의 돈. 제대로 계산된 게 맞는 지 몇 번을 확인하며 목표 금액을 초과달성하면 어떻게 되는 건지 고민했다.

뭐가 어떻게 되기는. 더 모으면 모을수록 좋은거지.

라고 생각한 순간, 이건 끝이 없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내가 필요한 돈. 벌어서 모아야 하는 돈. 거기엔 기준이 없다. 부자는 가구당 월 평균 천만원 넘게 소비하고 부자가 아닌 사람은 약 250만원 정도 쓴다. (하나은행 하나금융경영연구소, 2020) 이미 남들보다 네 배 넘게 더 쓰고 있지만 더 갖고 싶어하는 건 부자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대학원을 다닐 때보다 네 배 넘게 벌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여전히 심란하다. 지금보다 네 배를 더 벌어도 마찬가지 아닐까.

<할 일을 미루는 사람의 심리>라는 TED 영상으로 유명한 팀 어반(Tim Urban)이 운영하는 블로그에서 <Life is a Picture, But You Live in a Pixel>이라는 글을 읽었다. 재미있는 그림과 '오늘'을 남자주인공의 여자친구로 의인화하는 재치를 더한 글에서 팀 어반은 묻는다. '왜 사람들은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또 그것을 현실로 만들면서 동시에 오늘은 만족하지 못하는걸까? (혹은, '오늘'과는 행복하게 지내지 못하는걸까?)'

글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잘 자고, 운동하고, 잘하는 것을 하고,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또 그보다 중요한 '감사'를 마음 속에 안고 살라고 조언한다. 너무도 뻔한 결론이지만, 결론에 이르기 전에 댄 길버트(Dan Gilbert)의 TED 영상을 언급하며 설명한 '인생은 그림이지만 우리는 픽셀에 산다'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큰 그림을 떠올리며 미래를 꿈꾸고, 다른 사람들이야 나를 보며 한발짝 물러서서 내가 그린 그림을 볼 수 있겠지만, 내가 살아가는 하루는 그 그림의 아주 작은 단위인 픽셀 속이라는 것이다.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든, 그토록 바라던 직업을 구하든 우리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똑같이 아침에 피곤해하며 일어나고, 씻고 출근하거나 일하기 시작하고, 배고파지면 밥먹고, 다시 일하다가 또 밥먹고, 취미생활하다가 밤이 되면 폰 조금 보다가 잠에 들 것이다.

돈에 대한 집착과 피해의식을 자각하고 나니, 나는 오히려 내가 어떤 그림을 그려낼 지 충분히 고민해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그림은 뒤로 한 채 남의 그림만 보며 부러워하고 있었으니 그저 남과 비슷하기라도 하면 다행일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팀 어반은 그림에만 집착하다 픽셀을 놓치는 사람들을 위해 글을 썼겠지만, 그림조차 염두에 두지 않던 내게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시급하다. 내가 원하는 그림은 신사임당이나 벤자민 프랭클린의 초상화가 아니다. 돈이라는 그림을 그리기 위한 수단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고, 피해의식을 버리고 내 삶의 기준을 다잡아야 한다. 그래야만 그 그림을 이룰 픽셀 하루하루도 보다 행복하게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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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은 Aeon 글(https://aeon.co/ideas/to-boost-your-self-esteem-write-about-chapters-of-your-life)에 따르면 1950년대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아래와 같이 말했다고 한다.

"To be adult means among other things to see one’s own life in continuous perspective, both in retrospect and in prospect … to selectively reconstruct his past in such a way that, step for step, it seems to have planned him, or better, he seems to have planned it."

여태까지의 삶을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하나의 연속되는 내러티브로 기술하는 일, 그리고 마미손 마냥, 혹은 기생충의 기우처럼 '계획대로 되고 있다'고 생각하며 재구성하는 일은 보통 자기소개서를 쓸 떄 일어난다. 하지만 사실 우리 삶은 계획하지 않은 일 투성이고, 계획했다 하더라도 사실 그 계획이 기억나지 않을 때도 많다. 기록을 생활화했다면 그런 일이 줄기는 했겠지만, 사실 기록했다 하더라도 그건 과거의 나일 뿐 지금의 내가 아니다.

노트북을 새로 사면서 원래 쓰던 노트북을 정리하고 새로운 노트북으로 옮길 파일들을 훑어보던 중 재작년에 대학원 선후배가 부탁해서 촬영한 영상을 보았다. 이제는 없어졌지만 대학원에서 이런저런 정보를 공유하고 친목을 다지는 시간인 '생생정보톡'에서 튼 셀프 인터뷰였다.

사실 이미 대학원을 나오기 전에 생생정보톡에서 발표를 한 적이 있다.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데, 당시 나는 한참 대학원에 남을 것인지 떠날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고, 결국 왜 나가기로 했는지를 나 자신과 남들에게 합리화하기 위한 발표였다. 대학원 선배는 그 발표를 '폭탄'이라고 표현하면서 폭탄을 던지고 나간 나를 5개월 만에 소환해서 '그래서 대학원을 떠난 후 삶은 어떤지'를 물었던 것이다.

영상을 찍을 땐 나름 열심히 주경야독을 하던 시절이었는데 그만큼 연구에 대한 열정이 남아있어 후회도 적지 않았던 때였다. 블로그에도 썼던 것 같지만 대학원과 대학원에 남은 사람들이 내가 나간 이후 승승장구하는 것 같아 괜히 질투하던 때기도 했다. 회사에서 하는 일은 여러모로 만족스럽지 않았고, 월급마저 적었다. 그 때는 또 그 때 나름대로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살았는데, 다시 돌아보면 또 그 때만큼 열심히 산 적도 없다. 아침에 운동하고 회사 다녀오는 대로 바로 스터디카페 가서 공부하다 새벽에 들어오기를 반복했다. 그 루틴을 잃은지도 1년이 다 되어간다.

영상에서 나는 후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게 꼭 결정을 물리고 싶다는 뜻은 아니었다. 학교에 남아 박사과정을 밟았다면 졸업과 함께 병역복무도 해결될 일이었지만, 4급을 받겠다고 대구까지 내려가고, 어학병, 의경, 의무소방까지 알아볼 정도로 대학원을 나오겠다는 결심에 가득 찬 때가 있었다. 그 때는 그 떄 나름대로의 고민이 있었고, 무얼 선택해도 후회할 거리는 있었을 테다.

나는 사람들이 내게 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항상 곱씹는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사는지, 결정을 후회하는지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했다. 그래서 끝내 불안하더라도 같이 불안한 게 낫다는 말과 함께 대학원에 있는 사람들끼리 많이 이야기 나누고, 위로하고, 보듬어주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사실 대학원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자세가 아닌가 싶다.

그 영상을 찍고 얼마 안 가 나는 내가 '무너지고 있다'고 느꼈다. 겨울이 찾아왔고, 일이 힘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퇴근 후 무기력증을 못 이기고 하루에 10시간 넘게 자기를 반복했다. 그런 날이 반복될수록 자책도 심해졌다. '내가 왜 이러지.' 내 자신에게 채찍질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수록 더 무기력해지기만 했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반면 회사에선 좋은 소식이 여럿 들려왔다. 코스닥 상장에 사옥 판교 이전. 기술전략팀이라고 쓰고 연구개발과제 관리라고 읽던 직무 변경 시점도 가시권에 들어왔다.

도저히 내 안에서 변화를 만들기가 힘들어서 환경을 바뀌도록 변곡점을 만들려 했다. 훈련소를 어떻게든 3월에 가려고 했던 이유다. 더불어 연봉 인상도 꿈꿨다. 블로그에 썼던 글(<돈>)이 그 때 당시 내 심정을 가장 잘 대변하는 듯 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입사 때는 너무 서둘렀고, 연봉 재협상(이라고 쓰고 통보라고 읽지만) 때엔 과감하지 못했다. 재직기간이 1년 6개월이 안 된 전문연구요원이었기 때문에 대안이 없었던 게 사실이지만, 내가 내게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직 전에 회사와 다시 이야기를 나눠봤을 때 다시금 깨달았다. 결국 더 처참하게 무너진 채로 훈련소에 갔다. 다른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훈련소를 가고 싶었다.

훈련소에선 바랐던 대로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가지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무기력한 삶을 끝낼 용기를 얻었다. 하지만 그건 한순간 끝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단순한 자각과 반성만으로는 부족했다. 행동과 회고, 환경과 상호작용이 맞물려야 가능한 변화인데, 뛰어야 하는 길과 내 몸이 그대로인 상태에서 운동화 끈만 고쳐매고 다시 뛰려고 했다. 결국 예상치 못한 변화 하나에 또다시 무너졌다. 되돌아보면 내가 훈련소에서 보냈던 시간들은 분명히 의미있었지만 사실 나는 진정으로 나 자신을 들여다보기보다 여태 그래왔듯 그저 '계획'을 세우기 바빴다.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과 함께 내가 받아왔던, 또 받고 있는 사랑을 느꼈지만 반대로 내가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에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마음보기' 필요성을 느끼기만 하고 제대로 실천하지는 못했으면서, 이제 충분히 돌아봤으니 앞으로 나아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작은 깨달음이더라도 소화하기 위해선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그 시간과 노력 없이 다시 계획에만 집중했고, 무엇이 문제인지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서 해결된 양 기분만 들떠 있었다.

그렇게 생각의 방향을 내 앞이나 뒤가 아닌 나 자신에게 두기까지 반년 넘게 걸렸던 셈이다. 시선이 밖이 아닌 안을 향하자 그동안 의미있게 생각하지 않았던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주목하게 되었다. 사실 전까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별로 신경쓰지 않았던 이유는 '사람은 변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촉각을 곤두 세우고 알려고 하기보다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을 생각하고 그렇게 되기 위한 노력에만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이제서야 '사람은 변한다'라는 믿음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필요성이 상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상적인 모습으로 변화를 꾀하되 지금 나 자신을 파악하고 점검해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어렴풋이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던 내 문제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것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첫째로, 나는 너무나 감사하게도 사랑받아왔지만 사랑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내가 받아온 사랑 중에서 나는 인정에만 매달렸고, 그 외로는 사랑이라고 자각하지 못했다. 사람마다 사랑의 언어가 다를진대 그 사실을 모른 채 감사할 일에 감사하지 못했다. 인정 역시 중요한 사랑의 언어지만 그것에만 집착하다보니 인정이 가져오는 여러 부작용들에 신경쓰느라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인정욕구는 끝이 없었고, 내 언행에 따라 쌓이거나 깎이는 점수처럼 느껴져서 그 점수의 높낮이를 가늠하고 눈치보느라 불안해했다.

사랑받는 문제는 그 영향이 어쨌든 나 자신에게만 국한되지만, 사랑하지 못하는 문제는 나 아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혹은 내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이 모두 엮여있기 때문에 더욱 심각했다. 사실 여전히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말은 아끼고 더 많이 고민해야겠으나, 관계에서 오는 인정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관계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사랑을 하지 못한다는 모순 속에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이 모순에서 벗어나기 위해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독서를 시작으로 사랑을 공부하고 있다. 게리 채프먼의 <다섯가지 사랑의 언어>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종교, 특히 기독교로 관심의 범위가 넓어지기도 했다. 물론 이 공부에 끝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실천을 더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자기중심성이 강하고 이기적인 나지만, 사실은 그토록 중요한 나 자신 역시 결국 항상 관계 속에 있음을 잊지 않아야겠다.

둘째로, 나는 너무도 쉽게 불안에 지배당했고, 그럴 때면 집착하듯 불안이 없는 과거를 파고들었다. 이 역시 해결하기는 커녕 여전히 이로 인한 강박증적 현상이 나타날 때마다 다시금 자각할 뿐이다. 사실 내 과거는 후회로 가득차서 과거에 집착한다는 게 나 자신도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한없이 부끄럽고 미안하기만한 과거를 왜 자꾸 소환할까. 물론 나도 내 자신이 싫어지는 안 좋은 과거만 불러내는 건 아니지만, 행복했던 과거 역시 그 때는 항상 심각했고 심지어는 불행하기도 했기 때문에 - 그리고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 흔히 이야기하는 과거 영광에만 매달리며 환상 속에 사는 건 아니다.

내 나름의 분석을 하자면, 이건 아마도 과거는 이미 일어났기 때문에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에 되려 안정을 느끼는 것 아닐까 싶다. 나는 매우 중요한 결정을 앞뒀을 때 종종 그냥 내 의사와 상관 없이 정해졌으면 하곤 했다. 흔히 말하는 '선택-결정 장애'와도 비슷하다. 흥미로운 건 막상 선택 후에 드는 후회에는 크게 민감하지 않으면서 미래에 있는 불안에는 크게 민감하다는 점이다. 이상하리만치 지나간 일에는 어렵지 않게 그러려니 할 수 있으면서 - 물론 이렇게 쓰는 동시에 도저히 그러려니 하지 못하는 일들이 떠올랐지만 - 앞둔 일들에는 'let it be'라고 말하기 어렵다.

앞서 언급했던 인정이 불안 요소 중 하나고, 돈과 건강 역시 빠뜨릴 수 없다. 가끔은 무엇이 불안한지도 모르는 채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떄가 있다. 하지만 과거에 파묻혀서는 불안을 해소할 수 없다. 어차피 지나갈 일이고, 후회하게 되더라도 하나 배웠다고 여기며 앞으로 나아갈 거라면 내가 무엇에 불안한지 알아채고 할 수 있는 한 대비하면 될 일이다. 또한 그 불안 요소들이 해결된다고 정말 내가 행복해지는가 역시 생각해봐야 한다. 결국 내가 집중해야 할 곳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여기 바로 지금이다. 불안에 연연해 하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지금에 충실할 때 불안에 지배당하지 않고 불안을 지배할 수 있다.

이 두가지 외로도 사소하게나마 나에 대해 느끼고 배우고 깨달은 점이 적지 않다. 전문연구요원 기간 3년의 반환점을 도는 시점인 지금의 나를 대학원을 나오면서 세운 계획과 비교하면 너무도 형편없고 오히려 퇴보한 듯 보이기도 한다. 무계획이 가장 완벽한 계획이라는 기생충에서의 기택의 대사를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지만, 계획을 지키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며 계획대로 하지 않거나 못하는 것 역시 잘못된 것만은 아닐테다.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일이 여럿 있었던 2019년이고, 분명 계획 대비로는 이루지 못한 것 투성이인 2019년이지만, 나는 이렇게 결국 나 자신에게 꼭 필요했던 1년으로 기억하고자 한다. 무너져있던 시간들 안에서 나 자신을 발견했다는 내러티브를 간직하고 감사히 여기도록 하겠다. 그럼 2020년은 별다른 계획없이도 자연스럽게 그저 나 자신만의 내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 나를 발견하고 다시 일어서기만 해도 성공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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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끄럽게, 또 위험하게 달리는 라이더들을 보며 떠올린 잡생각.

라이더는 너무도 잘 보이면서 동시에 역설적으로 보이지 않는 노동자가 아닌가.
우리가 길을 다닐 때 그들은 바삐 움직이고, 또 어떨 땐 도저히 좋게 봐주기 힘들게 시끄럽게, 또 위험하게 달리고 있다. 하지만 막상 내가 집안에서 손가락을 놀리며 메뉴를 정하고 나선 보이지 않는다.

음식점에 앉아서 기다리다가 내 식사가 나왔나 싶으면 어디선가 말없이 나타나 포장된 음식물을 들고 사라져버린다. 아까만 해도 내가 줄에서 두번째 서있구나 싶었는데, 그 사이에 보이지 않는 라이더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니 답답하고 짜증난다. 요즘도 있는 지 모르겠지만 '배달의 민족 주문'이라고 끝없이 울려대던 알람은 마치 택시에서 듣는 '카카오 T' 알람과 다를 바 없이 신경 쓰인다.

음식점을 나서면 정말 10초에 한번씩은 오토바이가 부릉거리는 소리와 함께 나를 지나친다. 모두 휴대폰이나 전용 단말기를 핸들 위에 달아놓고 끝없이 확인하며 달린다. 위험천만하기 그지없다. 주택가인만큼 저렇게 달리면 분명 많은 사람들이 소음에 신경질이 날테고, 또 사고가 날 확률도 높다. 많은 주택가엔 인도가 따로 없고, 있더라도 라이더는 인도와 차도를 가리지 않고 달린다.

하지만 이렇게 너무도 잘 들리고 보이던, 그래서 짜증나고 싫던 라이더들은 막상 내가 배달을 시킬 땐 보이지 않는다.

라이더가 길가에서 달리다가 앞을 보지 않고 주문을 받는 시점부터, 벌컥 음식점 문을 열고 기다리는 손님들의 눈초리를 애써 무시한 채 포장된 음식물을 들고 나오는 장면, 타이머로 설정된 시간을 지키기 위해 신호도 인도-차도 구분도 무시해가며 달려서 내 방문 앞에 오기까지. 그저 나는 방에서 잠옷 차림으로 기다리다가, 좀 늦어지면 짜증도 내다가, 신경질 나던 흔한 오토바이 소리에 기대하다가, 라이더가 도착하면 눈 한번 마주치지 않고 배달된 음식물을 받으면 된다.

그래서 라이더는 너무도 잘 보이면서 동시에 보이지 않는 노동자다. 이 메인테이너들은 혹자가 그토록 외치는 4차 산업혁명 아래 일어나(야 하)는 혁신을 유지하고 지탱한다. 항상 그래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이들을 제대로, 또 새롭게, 또 좀더 따뜻한 눈으로 발견하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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