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블로그'라는 이름으로 블로그를 다시 시작한지도 2년이 지났다. 블로그 이름에 영감을 주었던 잡지는 애석하게도 내가 당시 읽었던 2018년 3월호를 마지막으로 발간을 멈춘 듯 하다. 나는 그래도 꾸준히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리기는 했지만, 처음에 계획했던 대로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서, 또 학문 코어 근육을 기르기 위해서 쓴 글은 별로 없다. 그저 써야만 하는 글을 공유하거나 ('기고글 모음') 일기장 ('끄적끄적')으로 활용했다. 작년 초까지만 하더라도 연구 의욕이 넘쳤기 때문에 일부러 글 쓸 일을 만들어서 기한에 맞춰 어떻게든 써냈지만, 작년 중순부터는 꼭 연구가 아니더라도 매사에 의욕이 줄고 무기력해져서 주로 신세한탄하듯 글을 썼다.
내게 영감을 주고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았던 begray님이나, 바이커님, 해외로 눈을 돌리면 LSE impact blog, Leiden Madtrics, orgtheory.net 등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들로부터 페이스북 글 잘 보고 있다고 할 때 놀람을 넘어 두려움까지도 느꼈기 때문에 - 물론 내가 타인을 너무 의식해서다 - 좀 더 사적인 공간이 필요했다. 동시에 그저 지나가는 생각이더라도, 또 그게 순전히 나에 대한 생각이더라도 하나의 완결된 글로 쓰고 싶었다. 자의식 과잉인 상태로 신세한탄하는 글만 늘어간다면, 그건 그것대로 지금의 나를 보여주는 방식일테다.
2020년 1월부로 이직해서 한 중견 소프트웨어 기업에 다니고 있다. 이전 회사에서는 데이터 분석을 주로 했다면 여기서는 데이터 분석 툴(Business Intelligence의 준말로 BI라고 부른다; Power BI, Tableau 등 제품이 BI 툴에 해당)을 기획하고 개발하고 있다. 내 블로그 글을 챙겨보는 사람은 없겠지만 몇몇 글을 읽었다면 예상할 만한 이유로 이직했고, 지금 회사가 최소한 그 이유에 해당하는 조건은 충족시켜주고 있어 만족하며 회사생활 하고 있다.
또 작년 봄까지는 당시 회사에서 마련해 준 기숙사에서 살다가, 5월부터 성남동에 자취방을 구해서 살고 있다. 저녁 이후에 방을 보러 다녔다면 여기로 오지 않았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여태 계속 같이 사는 사람이 있었던 것과 달리 온전한 내 공간이 생겼다는 것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 방을 계약하던 시점에 회사와 급여가 조건을 충족해서 받을 수 있었던 중소기업청년전세대출 짱짱이다.
진로 고민이야 앞으로도 계속하겠지만, 연구를 업으로 삼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부쩍 커졌다. 그렇다고 회사에서 하는 일과 그 방향으로의 커리어도 역시 이렇다 할 확신이 들지 않는다. 물론 꾸역꾸역 논문과 책을 읽다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연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곤 하지만, 그저 지적 유희로 게으르게 공부를 즐기는 것과 연구자가 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기에 착각에 빠지지 않으려 조심하고 있다. 더불어 연구의 의미 - 주로 목적 - 에 대한 고민도 적지 않다. 이런 고민은 얼마 안 가 '왜 사는지, 어떻게 살 지'라는 질문들로 이어진다. 이전에도 그 질문들에 명확히 답을 할 수 있어서 열심히 산 건 아니었는데, 질문들을 붙잡고 있는다고 확신에 찬 답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대답없이 물음만 자꾸 꼬리를 물고 무는 상태가 반복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루고 또 미뤄온 프로젝트 하나는 올해 상반기 중으로 어떻게든 시작하려고 한다. 제목은 <어쩌다 연구자 뉴스레터>로, 내 관심 연구분야가 이 블로그의 부제처럼 대학과 학문, 연구와 정책인만큼 지극히 내 관심사로만 여러 소식과 연구, 의견을 채워도 많은 연구자들에게 도움 내지는 영감을 줄 수 있겠다는 희망으로 준비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한참 전부터 연구와 관련해서는 사실상 거리두기를 하고 있던 나로서는 어떻게든 다른 사람과의 교류가 필요했기에 부족했던 자기표현과 피드백, 즉 지속적인 소통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물론 구독자를 확보해야겠지만...) 또 인정욕구가 작지 않은 내 성격을 이용해서 이렇게 해서라도 무기력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단어가 마음에 들어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에도 '어쩌다'를 붙였지만, 갈수록 이제 '어쩌다'라는 단어만으로 모든 걸 합리화할 수 없는 삶의 단계에 들어섰다는 생각이 짙어진다. 물론 '어쩌다'는 단순한 변명이나 핑계가 아니라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서사가 들어있는, 다만 그것이 너무도 복잡하고 나조차도 형언하기 힘들어 함축한 표현이다. 하지만 그 '어쩌다'를 어떻게든 충분히 풀어서 설명하고 의미를 부여해야 할 때가 있다. 주로 중요한 선택 혹은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그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사실 여태껏 다른 사람이 요구해서 납득시켜야 할 때 말고는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제는 순전히 나를 위해서 '어쩌다'를 풀어헤쳐야 할 때다.
요즘은 이런 생각들을 하며 살고 있다. TMI 근황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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