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죽을 것인가?

끄적끄적 2019.08.17 01:33 Posted by 어쩌다 schneider

내 죽음은 갑작스런 죽음뿐이었다. 

갑작스레 심장마비가 오거나, 갑작스레 사고를 당하거나, 갑작스레 살해를 당하거나. 그런 죽음만을 상상해왔다. 늙어 죽는 건 차마 두려워서 생각하지도 않았다. 추할까봐서가 아니다. 두 죽음을 상상한 맥락이 달랐다. 

무서워서 떠오르기도 전에 애써 다른 생각하느라 바빴던 건 철없던 시절 죽음이란 무엇일까, 즐겨보던 만화 데스노트에서 말하듯 무(無)일까. 그렇다면 무(無)가 된다는 건 무엇일까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 던졌을 때다. 지금 이 순간 너무도 확실히 존재하는 나로서는 없어진다는 게 너무도 까마득해서 두려웠다.

반면 갑작스런 죽음은 내가 숨고 싶을 때, 사라지고 싶을 때, 내일이 오는 게 두려울 때 문득 떠올랐다. 물론 적극적으로 죽고 싶었던 적은 없다. 단지 잠에 들면서 내일 눈이 떠지지 않았으면, 달려오는 저 차가 나를 들이받았으면, 저 수상해 보이는 사람이 숨기고 있던 무언가로 나를 찌르거나, 내리치거나, 목졸랐으면. 그게 다였다. 그런 갑작스런 죽음이 오히려 편안했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을 때, 나 역시 아무런 대비도 못했을 때, 그 때 죽음이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적잖이 했다.

물론 돌이켜보면 주로 잠을 충분히 자지 못했을 때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이제는 나도 잘 안다. 어떻게든 잘 자려고 한다. 다른 사람을 위한 내 위로 역시 거진 '일단 잠이라도 잘 자라'는 말이다.

한편 내가 비교적 가까이서 경험한 다른 사람의 죽음은 너무도 느린 죽음이었다. 할머니는 내가 중학생 때 시작한 암 투병을, 그로부터 무려 10년이 지난 후에야 끝내셨다. 모두가 예상한, 심지어 당신 역시 충분히 대비한 죽음이었다. 병원에서의 연명치료가 모두에게 고통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참으로 오래 걸렸다. 할머니는 요양원으로 자리를 옮기신 지 며칠만에 돌아가셨다. 

명절 때마다 내려가서 봬었던 할머니는 오랜만에 보는 그렇게도 아끼던 손주들 보고서 반가워 하지도 않으면서 '내가 얼릉 뒤져야 하는디'라고 했지만, 애초에 그럴 생각이 없으셨던 건지, 아니면 밤이 되어 어두워질 때마다 죽음이 두려워 생각을 바꾸신 건지, 그 힘겨운 항암 치료와 연명 치료를 그토록 길게도 견뎌내셨다. 그렇게 끝까지 버티다 고통에 못이겨 뻔한 죽음의 길을 선택하셨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책이 넌지시 어리석다고 말하는 그 죽음이었다.

우리 엄마가 맏며느리라는 이유로 병수발을 들었다. 물론 내 일은 아니었기에 자세히는 모르지만 나중에 듣자하니 최소한 할아버지나 고모들만큼, 아니 그 이상을 고생했던 것 같다. 그동안 엄마가 참 많이 힘들어했다. 할머니는 옛날부터 엄마를 참 싫어했다. 그토록 당신이 원하던 고추를 둘이나 낳았는데도 명절 때마다 엄마를 울렸다.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가끔씩 '그렇구나'하고 마는 관찰자였다.

할머니 장례식 때, 특히 염습과 입관을 지켜볼 때 엄마는 거의 쓰러지다시피하며 울었다. 나는 도대체 이 과정을 왜 모든 가족과 친척이 보는 앞에서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만큼 엄마가 왜 그렇게 우는 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여전히 나는 둘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모른다. 다만 되도록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서로에 대한 미움을 거뒀길 바랐다. 도저히 상상하기 어렵지만 꿈에서라도 할머니가 엄마한테 고맙다고 하거나 용서를 구한 건 아닐까. 끝내 그 마지막 순간에 엄마도 할머니를 용서함과 동시에 미워했다는 사실에 용서를 구한 것 아닐까. 두 불완전한 여성의 이별을 불완전 이하의 무책임한 남성은 눈물 없이 관찰하고만 있었다.

모두를 힘들게 한 그 어리석은 죽음을 긴 시간동안 내내 목격하고서도 '저렇게 죽지는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안했다면 당연히 거짓말일테다. 그렇게 책을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정말 나는 때가 되었을 때 다른 무언가를 위해 조금 더 이른 죽음을 택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겐 정말 그럴 용기가 있나?

당연히도, 지금 내 대답은 '아니오'다. 물론 며칠 혹은 몇 개월, 기적이 일어난다면 몇 년이라는 내 수명 - 물론 그게 고통 속일지라도 - 과 바꿀만한 게 지금으로선 마땅치 않다. 그래서 거꾸로 생각해보았다. 내 수명과 바꿀만한 가치를 찾는 것, 그리고 그 가치를 위해 하루하루 사는 것, 그게 죽기 전까지 해야 할 일 아닐까. 그래야 그 순간에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


'끄적끄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떻게 죽을 것인가?  (0) 2019.08.17
행복  (2) 2019.07.27
1시간 안에 글쓰기  (2) 2019.07.18
여수 기행문 2~3일차(190608~09)  (0) 2019.06.15
여수 기행문 1일(/3일)차 (190607)  (0) 2019.06.10
<기생충> 지극히 사적인 후기  (0) 2019.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