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기행문 2~3일차(190608~09)

분류없음 2019.06.15 23:05 Posted by 어쩌다 schneider

회사에서 맡은 업무가 너무 새롭다보니 퇴근하고 무언가 손에 잡기가 힘들다. (물론 핑계다. 그 전에도 그랬다.) 결국 지난주에 다녀온 여행 기행문을 이제서야 마무리한다.

차가 없다보니 2박 3일 내에 여수에서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제한이 있었다. 숙소를 이순신광장 근처에 잡았기 때문에 북쪽으로는 첫 날 들른 만성리검은모래해변, 동쪽으로는 오동도, 남쪽으로는 돌산도, 서쪽으로는 여수시청 부근 소호요트마리나 이상으로 가기가 어려웠다. 

아침에 느지막히 일어나 소호요트마리나로 향했다. 친구와 여행을 계획하면서 기왕에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통해 해양레저스포츠를 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여수시에서 지원하는 몇 군데에서 무료로 윈드서핑, 카약, 딩기보트 등을 체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전날 강한 비바람 예보가 있었기 때문에 다른 곳은 해양레저스포츠 예약을 받지 않았는데, 우리가 간 곳은 오면 할 수 있다고 답을 줘서 구두로 예약 후 방문했다. 

다른 건 기구가 많지 않아 탈 수 없었고, 2인승 싯인 카약을 타볼 수 있었다. 딱히 배울 것도 없이 바로 노를 저어 바다로 나아갔다. 파도가 없다시피 해서 출렁이거나 뒤집어지는 재미는 없었지만, 생각보다 힘을 주는대로 속도가 나서 이리저리 항해를 맘껏 할 수 있었다. 예전에 조정 체험을 했었을 때는 힘이 더 들었던 것 같은데 하며 카약에서 내리고 보니 엄지손가락 안쪽에 물집이 잡혀있었다.

씻고 옷을 갈아입고 나와보니 날씨가 부쩍 더워졌다. 버스를 타고 숙소 쪽으로 돌아오며 어느 게장집을 갈까 고민했다. 워낙 게장집이 많아서 거기가 거기일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막상 이번 여행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게장일거라는 생각을 하니 신중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문득 쌍봉동에 살던 사촌누나가 떠올라 누나가 추천할 법한(..) 여진식당이라는 게장집을 가기로 했다. 전날 구백식당과 마찬가지로 순전히 감에 따른 결정이었다. 

지도를 보고 식당을 찾았는데, 이미 줄을 꽤나 섰다. 생각보다 줄이 금방 줄어들어 줄을 서며 감이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내 게장을 맛보는 순간 나쁘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정말 좋았다고 감탄을 했다. 사실 게장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게장전문점을 간 적은 없고 한정식 집에서 반찬으로 나오면 먹는 정도였다. 매번 게장 매니아는 게장을 왜 좋아할까하는 의문을 가졌다. 그런데 인과관계가 거꾸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게장 맛은 전문점에서 맛있는 게장을 먹어봐야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여느 TV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크고 통통한 게가 아니라 밥을 못 비벼먹을 정도로 작은 게였지만, 맛이 전혀 비릿하지 않고 식감이 살아있었다. 특히 힘들게 집게발을 깨서 조그마한 살을 건져 먹으면 다른 부위보다 훨씬 밀도있는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이래서 게장게장하는구나. 매일이나 매주는 아니더라도 매달 먹으면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만족스럽게 식사를 한 후 짐을 숙소에 놔두고 오동도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생각보다 버스가 자주 다녀서 (혹은 우리가 운이 좋아서) 대중교통을 잘 이용했다. 오동도 초입 방파제서부터 사람이 정말 많았다. 그래도 7, 8월 휴가철 때보다는 적지 않았을까 싶다. 친구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방파제를 건넜다. 햇빛이 강해 선크림을 바르길 잘했다 여겼다.

오동도는 어릴 적 몇 번 와본적이 있어서 그랬는지 너무 익숙한 장소였다. 입이 떡 벌어지는 절경이기보다 편안하고 잔잔한 풍경이었다. 동네 뒷산을 등산하다 샛길로 빠질 때마다 넓은 바다가 보이기를 반복하는 여정이야말로 기대가 높지 않았던만큼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친구와 함께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참 많이 찍었다. 잡생각이 사라지고 온전히 여행할 수 있었다. 꽤나 자주 모터보트를 탄 사람들 비명소리가 들려 고요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오후 내내 걷고나니 발목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마지막 동백열차는 자리가 꽉차 타지 못했다. 꾸역꾸역 다시 방파제를 걸어나와 케이블카 줄에 섰다. 해질녘에 타라는 글을 꽤 많이 보아 일부러 적당한 시간에 탔는데 초여름이어도 해는 너무 늦게 졌다. 시간대 때문이었는지 케이블카에서 본 여수는 그렇게 예쁘지 않았다. 생각보다 무섭다며 아래가 유리로 되어있는 케이블카 안 타길 잘했다는 친구를 놀리며 돌산공원에 내렸다.

해가 질 때가 되니 부쩍 날씨가 추워졌다. 친구와 몸을 떨며 전망대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가 하늘이 어두워지자 '여수 밤바다'를 보러 돌산공원 끝자락으로 향했다. 분명 여러 번 왔을텐데 처음 본 것만 같은 경치가 눈에 들어왔다. 등 뒤로 통기타 동호회 공연에서 '여수 밤바다' 노래가 들려왔다. 그렇게 화려하지만은 않은 은은한 조명이 돌산대교와 여수 연안, 장군도를 둘러싸고 있었다. 문득 장범준이 이 경치를 보며 곡을 쓰지는 않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 위에서 아래를 내려보는 게 아닌 바다 옆을 직접 걸으며 쓰지 않았을까. 노래를 부르며 저녁을 먹을 겸 공원 아래로 내려왔다.

여수 밤바다 MV에서 한가인이 쓸쓸히 소주를 마시던 포장마차는 없었다. 시끌벅적 왁자지껄 주황빛 가득한 포장마차들만 많았다. 자리도 없었거니와 음식도 별로일 것 같아 좀더 안쪽에 있는 선어삼치횟집을 찾았다. 유튜브에서 훑어보다 눈에 걸린 집이었는데, 1층에 자리가 없어 다락방처럼 생긴 2층에 친구와 단 둘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소맥과 소주가 꿀떡꿀떡 넘어가는 저녁이었다. 친구는 그렇게 인상깊지는 않았다고 하나, 나는 제대로 된 선어회를 먹은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보통 많이 먹는 광어나 우럭 활어회(특히 전날 게스트하우스에서 먹은 걸 생각해보면)는 쫄깃탱글한 식감 외로는 딱히 특이할 게 없었다면, 훨씬 도톰하게 잘린 삼치 선어회는 그 재료 본연의 맛을 더 음미하기 좋았다. 적당히 기름지고 적당히 비릿하고. 게장처럼 눈이 번쩍 뜨이는 맛은 아니었지만, 가끔 생각이 날 법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사람 많은 포장마차 거리를 걸었다. 딱새우를 못 먹어서 못내 아쉬워하던 친구는 계속 포장마차도 가자고 하다가 결국 포기했다. 회 배달 앱으로 한 번 먹어본 나는 딱새우 별거 없다고 말리긴 했는데 이제와서 밝히자면 딱새우 맛있다. 그냥 포장마차 분위기가 별로인데다가 왠지 음식 질도 별로일 것 같아 가지 말자고 했다.

숙소에 돌아오니 거나하게 취한 다른 게스트하우스 손님들이 몇 명 있었다. 파티에서 만난 여자들이랑 2차를 가고 싶었는데 화장실 간 사이에 자기들끼리 가버렸다며 신경질을 냈다. 못내 아쉬워하더니 술을 더 마시러 나간다. 중간에 잠에서 깨기 싫어 귀마개를 하고 잤다. 다행히 푹 잤다.

첫번째 날과 두번째 날 부지런히 돌아다녀서 마지막 날은 딱히 할 게 없었다. 전날보다 더 느지막히 일어나서 좌수영바게뜨버거와 여수당바게뜨버거를 둘다 먹어보고 기차를 탔다. 혹시 글을 읽고 여수 가시는 분들이 있다면 좌수영바게뜨버거를 드시라. 여수당에서는 쑥 아이스크림만 먹고.

종종 이렇게 여행을 다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