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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에 발을 들일지 말지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봤을 이화여대 오욱환 교수님의 글에서 영감을 얻어 <어쩌다 연구자 뉴스레터>에 4번에 걸쳐 대학원에 막 입학한 사람들을 위한 글을 썼습니다.

<어쩌다 연구자 뉴스레터>는 긴 준비 끝에 드디어 지난 4월 발송을 시작한 이메일 뉴스레터로,
연구를 연구하는 '어쩌다 연구자'가 연구자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격주로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아래 링크에서 그동안 발송된 뉴스레터를 살펴보고 구독해주시길 바랍니다.감사합니다. :)

어쩌다 연구자 뉴스레터 구독 Link: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75558
어쩌다 연구자 뉴스레터 아카이빙 페이지: https://page.stibee.com/archives/75558

대학원생의 처지를 비관하는 여러 짤을 보고서 비웃고도 대학원에 입학하신 여러분께.

대학원을 다니다보면 언젠가 한번쯤은 꼭 읽게 되는 글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이화여대 오욱환 교수님의 <학문을 직업으로 삼으려는 젊은 학자들을 위하여>인데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학자로서 가져야 할 소명의식과 함께 실용적인 조언이 담긴 글입니다.

우리 모두가 학문에 뜻이 있어 대학원에 온 건 아니지만, 그래도 다들 공부를 좀 더 해보겠다는 마음은 있으시죠. (최소한 지원서에는 그렇게 쓰셨잖아요) 그렇게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학원 생활을 해야 하나 싶어 윗 글을 읽다 보면... 지레 겁을 먹고 내가 대학원에 오는게 아니었는데... 하고 후회하게 됩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ㅠㅠ)

대학원을 졸업하고서도 학문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지 여전히 모르겠다 싶은 제 경험을 바탕삼아 훨씬 가볍고 덜 무서운 조언을 드리고자 합니다. 오욱환 교수님의 글과 마찬가지로 20개 조언을 담고 있어 똑같이 20개를 순서대로 적었으니 함께 읽어보시면 더 좋을거라 생각합니다.

  1. 일단 코스웍에 집중해서 공부하다보면, '졸업은 할 수 있다'고 확신하십시오.(왜냐하면 제가 그러지 않아서 방황했거든요)

    대학원 첫 학기에는 학과마다 정해진 전공필수 과목을 수강하기 마련입니다. 해당 과목이 분명 여러분의 관심사와 다를 수 있고, 또 당장 연구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다면 코스웍에 집중하는 것만큼이나 안전한 길이 없습니다. 코스웍을 통해 여러분이 다니는 학과가 서있는 곳을 파악할 수 있고, 코스웍에서 읽는 논문을 교수님들이 내는 (이라고 쓰고 대학원생이 쓰는 이라고 읽는) 논문과 연결짓다보면 연구주제를 어떻게 선정하는지에 대한 감을 잡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어느 시점부터 변화가 없는 실라버스도 있지만 왠만한 전공필수 과목 실라버스는 해당 분야의 고전과 트렌드를 모두 담기 마련입니다. 졸업 직전까지도 어떤 연구를 해야하는지 헤메는 분들을 많이 보곤 하는데, 코스웍을 열심히 해놓으면 그 안에서 어거지로라도 주제를 만들어서 졸업할 수 있습니다. 나쁘지 않은 학점은 덤이겠죠.


  2. 누가봐도 너무 대단한 학자나 선후배, 동기를 멀리 하십시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다리가 찢어집니다. 누구는 대학원생일 때 논문을 몇 편 썼다더라, 누구는 탑 대학에서 유학하고 벌써 임용이 되었다더라 등의 소문을 그러려니하고 넘기고 따라하려 하지 마세요. 성공한 사람에게는 운이 많이 따른 것이고, 내게도 그 운이 따르리란 법은 없습니다. 또한 특정 사람의 성공을 당신의 성공과 동일시 하다보면 오히려 자신의 길과 스타일을 잃게 됩니다. 그보다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제각각 다른 길을 다양하게 걷고 있는지 파악하세요. 누구는 기계처럼 논문을 쓰고, 누구는 졸업논문만 쓴 채 회사로 취직했고, 또 누구는 볼 때 마다 다른 일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맞고 틀린걸까요? 누구는 성공했고 누구는 실패한 걸까요? 학계든 어디든 정도(正道)란 없습니다.

  3. 졸업한 선배들 중 최악의 사례를 정하고, 반면교사 삼아 그보다는 잘하려고 하십시오.

    무탈히, 혹은 어떻게든 졸업한 선배들의 논문을 훑어보세요. 생각보다 대학원은 대단한 졸업논문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물론 어떻게든 걸작(마스터피스!)을 쓰고 졸업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졸업논문이 당신의 마지막 역작이 된다면 슬프지 않겠어요? 그건 단지 당신 앞에 놓인 계단 하나일 뿐입니다. 당신이 뜻만 있다면 앞으로도 훨씬 더 좋은 논문이나 책을 쓸 수 있습니다. 어떻게든 끝내고 완성한 경험이 당신을 다음 더 높은 계단을 넘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겁니다.

  4. 학문의 길을 당장 선택해야한다고 조급해하지 마세요.

    학문의 길은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학석박을 스트레이트로 따고 강사 뛰거나 외국 포닥 나갔다 들어와서 바로 교수가 되는 신화를 믿지 마세요. 대학원 다니다가 아니다 싶어 다른 길로 갔다가다시 돌아와도 상관없습니다. 오히려 더 환영받을 수 있습니다. 적지 않은 연구들이 창의성과 혁신은 다양성과 서로 다른 생각의 연결에서 발현됨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도저도 아닌 것처럼 보이던 경험들도 잘 잇다보면 당신만의 길을 가리키고 있을 겁니다.

  5. 읽고 쓰는 일 말고 다른 취미를 찾으세요.

    어차피 24시간 내내 읽고 쓸 수는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몸을 쓰거나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취미 추천합니다만 영화나 드라마 시청, 음악 감상이나 연주 등 뭐든 좋습니다. 글을 읽고 쓰다보면 속이 상하고 피가 말리는데, 이 때 몸과 마음을 챙기지 못하면 더 이상 읽고 쓸 수도, 또 이 일을 즐기지도 못하게 됩니다. 학자도 사람입니다.

  6. 시간은 어찌됐든 언제나 부족합니다.

    힘들때 의지할 수 있고 같이 울고 웃을 수 있는 인간관계를 유지하세요.가족이든 친구든 연인이든 함께 있는 시간이 소중하고 행복한 사람이라면 학문을 위한 시간을 줄여서라도 인간관계에 최선을 다하세요. 학문에 투입하는 시간과 다른 업무에 할당하는 시간은 영합(zero sum)관계에 있을지 몰라도, 학문과 사람이 영합관계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느껴진다면 무언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습니다. 학문도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고 그 사람에는 당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7. 학문 외적 업무에 너무 자주 동원된다면, 학문의 길을 걷더라도 그 곳에서는 벗어나는 게 좋습니다.

    물론 학문 외적 업무에서 아예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굉장한 연구 업적을 쌓고 새로 임용된 교수님들조차 학문 외적 업무에 시달립니다. 하지만 그 분들은 학문을 직업으로 삼고 있고, 당신은 (최소한 아직은) 아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괴감이 들 정도로 학문 외적 업무에 동원된다면, 당신의 학문에 대한 열정을 볼모로 누군가 당신을 이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벗어나는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분명 그 정도가 더 심해지기 전에 나오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8. 쓰는 것으로 시작하세요.

    보통 연구과정을 선행연구논문 등 자료를 찾아 읽고 → 연구질문과 가설을 정하고 → 실험을 하거나 설문조사, 인터뷰를 통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 분석하고 → 논문을 쓰는 순서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틀린 건 아니지만 대부분 수없이 많은 자료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다 진도를 못 나가곤 하죠. 그와 반대로 쓰는 것으로 시작하기를 추천합니다. 아는 게 없는데 어떻게 쓰냐고요? 내가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써보세요. X에 대해 연구를 한다면 X를 검색하기 전에 내가 X에 대해 알고 모르는 것, 내가 왜 X를 연구하고 싶은지 (혹은 연구해야 하는지) 형식에 신경쓰지 말고 한번 쭉 적어보는 겁니다. 그러고 나면 무엇을 찾아 읽어야 하는지 보다 명확해질 겁니다.


  9. 모르는 채로 연구부정을 저지르는 것만큼은 피하세요.

    위조나 표절, 연구비 부정사용과 같이 연구윤리 위반임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연구부정행위도 있지만, 생명윤리나 논문 저자 기재 및 순서, 부실학술활동 등 본인도 모른채 연구부정을 저지르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학계 안팎에서 자리를 확실히 잡았거나 옛날에 학위를 마친 사람들은 과거 자신의 실수를 바로잡거나 묻고 넘어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에게도 그런 기회가 있을 가능성은 적습니다. 학교나 지도교수가 책임져주지도 않습니다. 오로지 당신만이 고의든 실수든 연구부정으로 인해 당신의 미래가 어두워지는 상황을 방지할 수 있음을 잊지 마세요.

  10. 대학원 생활이 지속가능하도록 돈을 관리하되, 시간과 맞바꿀 때엔 주의하세요.

    공부하기 위해서는 등록금 말고도 들어가는 돈이 적지 않습니다. 시간제(파트타임) 과정이 아니라면 관심있는 분야의 연구과제에 참여해서 공부와 돈벌이를 함께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여건 상 공부와 무관한 아르바이트를 해야할 수도 있겠지만, 그 때문에 졸업이 늦춰진다면 얻고 잃는 것을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학원에 들어온 이상 회사를 다니는 친구보다 더 많이 벌 수는 없습니다. 최악은 공부를 제대로 하는 것도 아니고 돈을 버는 것도 아닌 채로 시간을 보내는 일입니다.

  11. 수많은 책과 논문을 다 읽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세요.

    오욱환 교수님의 말마따나 책과 논문을 받아들자마자 첫 장을 읽어두는 것이 좋습니다(저는 책 서문과 논문 초록 및 서론을 읽습니다). 책장에 꽂힌 모든 책을, 또는 저장하거나 인쇄한 모든 논문을 읽은 연구자는 결코 없습니다. 그럴 수도,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노트나 책과 논문 첫 장에 이 책을 왜 샀는지, 혹은 이 논문을 왜 저장하거나 인쇄했는지 적어두십시오. 이렇게 하면 끝이 없는 자료의 홍수 속에서 그나마 정말 필요한 자료를 읽고 그렇지 않은 자료를 쳐낼 수 있습니다.

  12. 학회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으세요.

    한국연구재단에 등록된 국내 학회만 해도 약 4000개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세상엔 정말 다양한 학회가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중심 학문/주제인지 알 수 없는 도떼기시장 같은 학회가 있는가 하면, 이토록 협소한 주제로도 사람이 모이는구나 싶은 학회도 있죠. 학회가 중심이 되는 학술대회와 학술지도 마찬가지입니다. 흥미로운 연구나 뜻이 맞는 연구자를 만나기가 사막에서 바늘 찾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기대를 최대한 내려놓고 자신이 진행하는 연구의 진행상황을 점검하기 위한 용도로 활용하다보면 나름 실망할 일 없이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학회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3. 지도교수와 선배를 이용해서 본인을 포지셔닝하세요.

    그저 졸업이 목표라면 지도교수 Jr.가 되어 연구주제를 하나 '받아 쓰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오히려 졸업을 위한 최고의 전략이죠. 하지만 그 이상을 꿈꾼다면 본인에게 영향을 주는 지도교수와 선배가 보지 않은 영역에 발을 들여 여러분은 무엇이 다른지 답해보세요. 하지만 지도교수의 학문분야나 관심주제와 연관성이 전혀 없는 곳에 서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두 발 중 새끼발가락이라도 지도교수 어깨에 올려놓아야 합니다. 연결점을 찾기가 힘든 지경이라면, 지도교수 논문 중 아무거나 한 편을 어떻게든 인용할 생각으로 자신의 연구와 지도교수의 연구를 이어보세요.

  14. 기한 내에 완성한 습작이 미완의 걸작이나 대작보다 낫습니다.

    연구를 하다보면 유동적이기도 하고 반드시 엄수해야하기도 하는 마감기한을 마주하게 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기한이 가까워질수록 자신의 작업물에서 부족한 부분이 보이기 마련입니다. 때문에 끝없이 기한을 미뤄야하나 고민하거나, 기한을 넘겨서 이런저런 이유를 모두 동원한 사과문과 함께 제출하기도 하죠. 고민하고 사과문을 쓸 시간에 그냥 부족한대로 끝내세요. 그 마지막 순간에 습작이 걸작이나 대작이 될 순 없습니다.

  15. 연구업적 압박에 과몰입하지 말고 지금 여러분이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세요.

    석사-박사 여부, 전공 분야나 학교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이제 막 대학원에 발을 들인 사람에게 연구업적에 대한 압박을 가하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압박이 있더라도 조금 내려놓고, 없다면 스스로 받지 말고 자유를 충분히 활용하세요. 연구보고서와 공저, 번역이 작금의 교수업적평가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므로 그보다 창작에 몰두하는 것도 전략이지만, 그건 이미 자신의 연구분야 내 경험이 충분한 교수에게 해당하는 조언입니다. 연구업적이 될지 안될지 고민하지 않고 뭐든 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며, 그게 바로 지금입니다.

  16. 장강명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써야 하는 사람은 써야 합니다."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움직인다면 연구자를 해도 좋습니다. 대학원 입학 전후로, 심지어는 졸업 전후로도 내가 앞으로 연구자로서 계속 살고 싶은지 헷갈릴 떄가 있습니다. 그럴 떄는 본인 관심분야나 연구주제에 대해 책을 한 번 써보고 싶은지를 한번 생각해보세요. 연구자는 좋든 싫든 다른 무엇보다 쓰는 사람입니다. 쓰는 일이 언제나 행복할 수는 없겠지만, 심각하게 거부감이 들어서는 안됩니다. 또한, 논문이 아닌 책을 쓰기 위해서는 작은 연구질문 한두개가 아니라 보다 광범위에 있으면서도 서로 연결된 여러 연구질문들이 필요합니다. 그것들을 장기간에 걸쳐 한번씩 건드려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면 연구자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필요조건 하나는 마련된 셈입니다.

  17. 학술지 투고 결과의 기본 설정값은 '게재불가(reject)'입니다. 

    학술지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여러분이 원하는 학술지에 투고했다면 잘 알려진 학술지들의 게재수락율(acceptance rate)이 10%를 하회하는만큼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종종 '수정 후 재심사(Major revision)'라는 희망고문을 당하기도 하고, 지지부진한 수정과정을 거치기도 합니다만 기대가 없다면 실망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여러분의 연구가 게재될 가치가 없다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논문의 학술지 게재 역시 여러모로 운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게재가 되든 안되든 여러분의 연구에는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다 쓴 것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받을 일이기도 합니다. 논문을 완성했다면 논문이 제 자리를 찾을 때까지 여유를 가지고 여기저기 투고하되, 게재 판정 여부에 크게 신경쓰지 말고 다음 연구를 하세요.

  18. 연구 주제나 질문을 찾는데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미 나와있는 연구논문들을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선행연구논문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속한 학문분과의 트렌드와 다른 연구자들이 연구를 어떻게 수행했는지를 파악하는 데에는 선행연구논문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연구 주제와 질문을 찾기 위한 여정의 출발점은 논문이 아닌 여러분 근처여야 합니다. 평소 갖고 있던 호기심과 궁금증, 직간접적 경험이나 기사에서 시작해보세요. 그래도 어렵다면 지금 속한 학문분과를 왜 택했는지부터 생각해보세요. 내가 하는 연구는 어떤 방식으로든 나와 연결되어 있어야 지속가능합니다.

  19. 되도록 마감 기한 전 충분한 퇴고 기간을 잡으세요.

    아무리 검토와 퇴고를 거듭해도 오타는 계속해서 나오기 마련이며, 100% 만족할만한 결과물이 나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퇴고를 하지 않는건 맛을 보지 않으면서 요리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퇴고할 때는 오욱환 교수님의 말슴처럼 다른 사람의 논문을 심사하듯 읽으세요. 실제로 다른 사람이 읽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글을 다 쓰자마자 다시 읽기보다 다른 일을 하고 오거나, 다음 날에 혹은 한숨 눈을 붙인 후에 퇴고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20. 연구자는 학자이기도 합니다.

    학계에 있어서가 아니라 항상 배우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슬프게도 주변에서 더 이상 배우지 않는 교수를 찾는 일이 어렵지 않은데요. 우리 모두 그런 사람을 부러워하기보다 반면교사 삼아 계속해서 배우며 배운 것을 토대로 다른 연구자에게 영감을 주는 연구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에게 적용될 일은 멀었지만 '연구업적'을 계속해서 쌓고 있다고 꼭 계속해서 배우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저 자신도 구독자 여러분도 본인의 업적이 아닌 연구공동체가 공유하는 지식을 쌓아가는 연구자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세 줄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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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년 11월 뉴스타파 보도의 '다단계 학회사업' 장본인인 김태훈은 언론사 아카데믹타임즈를 중심으로 C-Index, S-Index, R-Index 등의 새로운 비즈니스를 벌이고 있음
  • 이러한 Index들을 통해 국내 학회와 학술대회, 학술지를 평가하여 등급을 매기는 평가 사업에 눈독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본인이 대표이사로 있었던 학회에 적용하는 것을 시작으로 사업 확장에 힘쓰고 있음
  • 대학랭킹과 각종 인용색인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학계는 자기규율체계의 핵심인 평가제도를 계속해서 아웃소싱해왔고, 그로 인해 생긴 구멍을 이용해 온 연구자들이 적지 않다는 현실을 고려할 때 아카데믹타임즈의 사업이 부실학술활동의 정당화 도구로 쓰인다면 앞으로 학계는 더 썩을 수 밖에 없음

지난 2018년 여름 뉴스타파가 <'가짜 학문' 제조공장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가짜학회' 이슈를 처음 공론화한 이후 한동안 학계 안팎으로 부실학술활동이 화제에 올랐다. 약 1년 동안 공식적인 용어조차 없었던 현상에 '부실학술활동'이라는 이름이 붙여젔고, 뉴스타파 기사에서 언급된 와셋(WASET)과 오믹스(OMICS)를 중심으로 해당 학회에 참가한 연구자들에 대한 조사와 징계가 진행되었으며, 한국연구재단과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을 중심으로 예방 가이드라인과 부실학회/학술지 검색 시스템 등이 갖춰졌다.

당시 한 대학원생은 한 교수를 중심으로 꾸려진 다단계 학회사업을 발견하여 며칠동안 조사하여 뉴스타파에 제보를 했고, 해당 내용이 보도되며 역시 학계 안팎으로 작지 않은 충격을 불러온 바 있다. (참고: '아는 사람 이야기': 뉴스타파 보도 <현직 교수, 페이퍼컴퍼니 끼고 '다단계 학회사업'> 제보) 이후 기사에서 언급된 인문사회과학기술융합학회(HSST)의 등재지 <예술인문사회 융합 멀티미디어 논문지(AJMAHS)>와 보안공학연구지원센터(SERSC)의 등재지 <보안공학연구논문지(JSE)>는 등재탈락을 면치 못했고, 두 학회들(지만 주식회사였던 곳)은 사실상 문을 닫은 것으로 보인다.

이 정도면 대충 마무리 된 것 아니냐고 물을 사람들도 있을테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문제시 된 와셋과 오믹스, HSST와 SERSC만 주목을 받고 언론에서 다루지 않은 수많은 부실학회 및 학술지, 혹은 부실의심학술활동(questionable research practices)은 거의 공론화되지 않아 매우 안타까웠다. 이전에도 지적했듯 특정 학회나 학술지를 '가짜' 혹은 '부실'이라고 규정하기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며, Beall's List나 Cabells' Predatory Reports와 같은 블랙리스트를 쓰거나 Web of Science나 Scopus와 같은 저명한 학술인용색인을 화이트리스트로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평가제도를 포함한 학계의 자기규율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 이상 더 교묘해질 뿐이다.

서론이 길었는데, 오랜만에 부실학술활동을 주제로 글을 쓰게 된 건 SNS를 통해 한 선생님께서 다단계 마케팅을 차용한 학술대회 학술위원 초청 이메일을 제보해주셔서 관련 내용을 조사하다 발견한 내용을 공유하기 위함이다.

일단 해당 이메일은 부실학회가 전형적으로 보이는 패턴에 따라 학술대회를 운영할 학술위원을 모집하고 있었다. 학술위원에게 마감일 연장혜택과 함께 논문 투고를 조건으로 내걸고, 가입비를 내고 이사회원이 되면 자신만의 세션을 구성해서 해당 세션 논문들에 등재지 게재 기회를 준다고 한다. 2편 이상 투고 시 영문논문에 한해 편당 등록비 10%를 할인해준다는 혜택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내용도 있었다.

많이 본 수법인 것에 더해 두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1) 이메일 제목에 언급된 '2021년 6월 3차': 상반기인데 이미 3차까지 학술대회를 한다는 건 1년에 6회를 한다는 뜻으로, 꽤나 큰 학회조차 계절별 학술대회를 여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흥미로운 숫자였다. 2) 학회 이름이 '미래융합기술연구학회(FuCoS)': 이름에서부터 불길한 예감이 든다. (...)

학회 홈페이지를 들어가서 간단하게 조사를 해보니 '다단계 학회사업'의 장본인 김태훈 교수가 대표이사로 있던 아태인문사회융합기술교류학회(SoCoRI)가 이름을 바꾼 것이었다. 2018년 뉴스타파 보도 당시엔 HSST와 SERSC가 등재지인 AJMAHS와 JSE를 활용하여 성행했다면, 둘 모두 등재탈락한 후에 SoCoRI가 2019년 산하학술지인 <아시아태평양융합연구교류논문지(APJCRI)>를 KCI에 새로 등재시키는데 성공하고 FuCoS로 이름을 바꿔 운영중이었던 것이다. HSST와 SERSC와 마찬가지로 학회장과 학술지 에디터는 모두 해외 학자라고 써져있지만, KCI에는 다른 국내 교수가 학회장으로 등록되어 있고, 등기사항으로도 역시 대표이사는 다른 사람이었다. 김태훈 교수는 2018년 11월 뉴스타파 보도 직후 사임했다고 나온다.

아, 말이 나왔으니 첨언하자면 김태훈(2018년 뉴스타파 보도 당시 성신여대 융합보안공학과 교수)은 더이상 교수가 아니다. 해임당했는지 자진 사임했는지 공식적인 자료는 찾기 어려웠지만, 일단 성신여대 홈페이지에서 이름을 찾을 수 없었고, 가명을 썼지만 누구를 이야기하는지 대충 다 알 수 있는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김태훈에 대한 후속 취재로 억울한 사정이 밝혀졌다고 하지만 나는 접한 바 없고, 김태훈과 HSST 회장 김행곤 대구가톨릭대 교수간의 사이가 틀어진 건 분명해보인다. 기사는 신청만 하면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는 '한국공보뉴스'에서만 찾을 수 있었는데, 흥미롭게도 기사가 작성된 성북본부의 장이 김태훈이다. 동명이인일까? 아니라는 증거를 후술하도록 하겠다.

한편, FuCoS의 학술대회 웹사이트에서 또다른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우리 학회는 부실 학술대회 예방을 위해, C-Index 평가기준(http://www.actimesnews.info/)을 준수합니다.

우리 학회는 발표 장면을 녹화하여 DMI 등록(http://www.digitalmediaid.org/)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 학회는 부실 학회 예방을 위해, S-Index 평가기준(
http://www.actimesnews.co.kr/)을 준수합니다.

우리 학회는 부실 학술지 예방을 위해, R-Index 평가기준(http://www.actimesnews.kr/) 및 Trace of Reveiw 평가기준(http://actimesnews.net/)을 준수합니다."

처음 듣는 "index"들의 향연에 잠시 어지러워 숨을 골라야 했다. 각 사이트에 들어가 내용을 확인하고 난 후 김태훈의 후속사업이 어디로 향해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다름 아닌 Web of Science나 Scopus가 임팩트 팩터 등 인용지표로 학술지를 줄세우고 각종 기관이 대학랭킹을 만들어 대학에 순위 내지는 등급을 매기듯이 한국연구재단이 시행중인 한국학술지인용색인(Korea Citation Index) 등재 제도에서 더 나아가 국내 학회와 학술대회, 학술지에 점수 및 등급을 매기는 평가 비즈니스 모델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각 사이트에 적힌 index들의 설명을 자세히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다단계 학회사업의 장본인의 구상이라는 이유로 이 index들이 모두 '가짜'라거나 속임수라고 주장할 생각도 없다. 오히려 내가 이전에 '해킹'이라는 단어를 썼듯 김태훈이라는 시스템 해커는 부실학술활동을 둘러싼 학계의 문제점을 정확히 알고 있다. 그는 이를 정당하든 아니든 자신이 고안한 비즈니스 모델로 수익화를 꾀하고 있다는 게 내 해석이다. 이런 활동에 얼마나 학계를 위한 진정성이 있는지는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다. 각 사이트를 살펴본 후 '이런 좋은 일을 하려는 사람이 있구나'하며 김태훈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는 사람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일단 이 index들이 모두 김태훈의 작품임은 각 사이트에서 언급하고 있는 상위기관인 '아카데믹타임즈'를 통해 알 수 있다. 실제로 모두 actimesnews를 도메인 주소 제목으로 삼고 있고, 이들을 백링크하고 있는 아카데믹타임즈라는 곳은 다름 아닌 언론사다. 홈페이지에서 명시하고 있진 않지만 김태훈이 대표로 있다. 사무실 역시 김태훈이 일하던 성신여대 근처이기도 하다. 동명이인일 확률도 있지 않을까 싶어 각 기사 작성자 이메일을 확인했다. 대부분 taihoonn@empas.com으로 되어있다. 그가 논문을 정말 많이 쓴 생산적인 연구자였던만큼 구글링을 통해 김태훈의 이메일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아카데믹타임즈의 기사들은 대부분 보도자료를 그대로 가져다 쓴 형태인데, 반대로 다른 언론사에 기사를 작성해서 보낸 사례도 있다. 바로 C-index를 비롯한 아카데믹타임즈의 사업을 홍보하기 위한 보도자료로, 앞서 언급한 바 있는 한국공보뉴스에 실린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에는 이영경 기자를 통해 주기적으로 간접광고(PPL)라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려운 기사를 내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유명 유튜버 보겸이 사용하는 '보이루'라는 인사말을 여성혐오로 해석한 윤지선 교수의 <철학연구> 논문이 이슈화가 되자 은근슬쩍 R-Index에 따르면 <철학연구>의 평가점수가 높지 않다고 지적하는 기사를 올린 바 있다. 해당 기사를 작성한 이영경 기자의 이름 역시 익숙해서 다시 찾아보니 법인등기 상으로 FuCoS의 대표이사와 같았다. 동명이인인지 확인은 하지 못했다.

아카데믹타임즈의 Index 사업들은 만든지 얼마 되지 않은만큼 자리잡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쪽에 관심이 많은 나조차도 이번에 처음 들었을 정도라면 인지도가 높지는 않은 듯 하다. 하지만 대학랭킹과 마찬가지로 각 학회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단 순위나 등급을 매기기 시작하고 나중에 인지도가 생기기 시작하면 평가기관의 공신력이나 방법론의 엄밀성과 무관하게 모두가 신경쓰는 Index로 자리잡을 가능성도 작지 않다. 아카데믹타임즈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는 듯 일단 등급을 다 매겨놓았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는데, 깨알같이 FuCoS(이름 변경 전 SoCoRI)와 산하 학술지는 모두 가장 높은 S 혹은 A 등급이 매겨져있는 것도 흥미롭다.

다시 말하지만 아카데믹타임즈의 이러한 Index 사업들이 어떻게 학회/학술대회/학술지를 평가하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이 글에서 Index마다 나름 자세히 써져있는 설명을 하나하나 읽고 분석하지 않은 이유다. QS나 THE, 중앙일보 등의 대학랭킹도, Web of Science나 Scopus와 같은 학술인용색인도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신경쓰는 사람은 극소수다.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한 자가 벌여놓은 판에 하나둘씩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어느새 모두가 참여자가 되어 높은 순위나 등급을 차지하기 위해 애쓰는 게임이 된다.

처음으로 돌아와서 FuCoS가 개최하는 학술대회(고맙게도 아카데믹타임즈가 운영하는 것으로 보이는 "학술 발표가 정상적으로 진행된 것이라는 증거"를 관리해주는 DMI라는 서비스 덕분에 FuCoS 학술대회의 모든 발표를 유튜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와 발행하는 학술지를 살펴보자. '융합', '학제간연구'를 표방하고 있지만 정말 융합 내지는 학제간연구를 시도한 연구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다양한 학문분야 연구들이 모인 메가컨퍼런스 및 메가저널(megajournal)이다. 때문에 더더욱 학술대회나 학술지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참여자 간의 학술적 교류가 제대로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하기가 힘들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겠지만 뉴스타파가 WASET에서 했던 것처럼 아예 가짜 논문을 제출하고 걸러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지 않는 이상 FuCoS를 비롯한 다른 여러 학회들을 가짜학회 혹은 부실학회로 규정하기는 힘들다. 나 역시도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느낌상 혹은 정황상 그런 쪽에 가까워보인다고 할 수 있을 뿐이다. 김태훈이 2018년까지 운영했던 (혹은 지금도 운영중인) 다단계 학회사업 역시 이런 배경 위에서 가능했다.

김태훈이 새롭게 벌이고 있는 사업은 이러한 부실 및 부실의심 학술활동의 정당화 도구로도 쓰일 수 있다. 각종 Index 상으로 보았을 때 형식적으로 괜찮다는 곳을 학술활동의 내용을 토대로 문제삼기는 매우 힘든 일이다. 그리고 연구자들은 귀신같이 이런 구멍을 잘 찾아내어 활용할 수 있다. HSST의 등재지 AJMAHS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1년에 무려 1000편이 넘는 논문을 실었다. 우리나라에서 게재한 논문 중 6% 이상이 부실학술지임에도 불구하고 Scopus에 등재된 324개의 학술지에 실렸고, 이는 OECD 국가 중 압도적인 1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연구) 김태훈은 보다 큰 뜻이 있어 제 발로 교수직을 던지고 대학을 나온 듯 하지만 (돈이 되는 사업이 눈에 보이고 교수직이 방해만 된다면 왜 그러지 않겠는가?), HSST 회장 김행곤 교수는 작년 대구가톨릭대에서 30년 근속상을 받을 정도로 별 문제없이 학계에 머물고 있다. 부실학술활동을 통해 교수에 임용되고 승진하고 자리를 유지한 사람들은 있지만 밝혀진 후에도 처벌받은 사람들은 별로 없다. 시스템 해커들과 그들이 뚫은 백도어를 부단히 활용한 연구자들로 인해 학계는 병들어가고 있지만 겉보기엔 문제가 없어보이니 아무도 소리높여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는가? 퇴근 후나 주말 밖에 시간을 못 내고 이런 곳에 돈 쓰기 쉽지 않은 사회초년생이다보니 스모킹건을 확보하기 어려워 아쉬울 뿐이다. 이쯤되면 내가 왜 요지경 학계에 애정을 갖고 연구자가 되고 싶어하는지도 혼란스러운 지경이다.


...라고 한 대학원생이 글을 써서 보내왔다. 화이팅.

우리는 모두 자신이 슬퍼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있었다.

갑작스럽기보다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각자 다 다른 인연으로 간직하고 있겠지만, 대부분 1년 남짓 함께 지낸 후 경조사 외로는 따로 만나지 않던 사이. 그러다보니 건강이 안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도 가끔씩 발을 동동 굴렀을 뿐 실질적인 도움이 된 적 없었다.

유일한 지잡대 출신이라며 자신을 한없이 낮추던 그에게 그렇게 치면 나도 지방대 출신이라고 그러지 좀 말라며 말대답을 하곤 했다. 항상 내 얼굴을 살피며 기분을 물어봐주던 그였다. 사실 항상 걱정없이 웃는 얼굴이던 모습 외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2년 전 이맘 때즈음 DC에서 만난 친구가 온다는 소식을 전하자 엉뚱하게도 베이징에서 인턴생활을 한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크게 변한 것 없이 강남역에 나타난 그는 나를 보자마자 웃는 얼굴로 반갑다며 나를 얼싸안았다. 원체 표현을 잘 안하는 나는 억지로 웃으며 받아주었다. 항상 바쁘다는 그의 회사 이야기를 좀 듣다가 워싱턴에서 온 친구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 함께 수다를 떨었다. 

아, 그 전에도 한번 뜬금없이 그와 마주친 적이 있다. 대전역이었으니 아마도 연구과제 일로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는 날이었거나, 여행을 다녀오는 길이었던 것 같다. 별 생각없이 걷다가 갑자기 앞에서 내 이름을 크게 부르고 너무도 반갑게 인사하길래 되려 얼떨떨했던 기억이 난다. 출장 차 들른 거라 금방 가봐야한다면서도 세상 좁다며 근황을 물어봐주던 그는 그 때도 웃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웃는 얼굴만이 떠오를 정도로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긍정적이었다.

그런 그가 아프다는 소식을 뒤늦게서야 접했다. 그놈의 인스타를 안한 탓이었다. 물론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리였던만큼 슬픈 기색을 보이기 어려웠겠지만, 다들 그렇다더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길래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페이스북에서도 그의 글을 접할 수 있게되자 그가 그냥 아픈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에게 바로 연락을 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집어들고 인사말을 적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계획해 둔 가을방학 때 하루 정도 시간을 내어 병문안을 가야겠다고 생각한 채 연락을 미뤘다. 

추석이 되어서야 용기내어 (이게 정말 용기까지 필요한 일이었을까, 왜 좀 더 빨리 연락하지 않았을까 후회된다) 어디서 치료를 받고 있는지, 그리고 나름대로 그를 위해 준비한 일을 하기 위해 만날 수 있는지 물었다.

아마도 내가 연락을 자꾸 미뤘던 이유는 '그를 위해' 준비했다는 그 일이 정말 그를 위한 것인지 끊임없이 되물었기 때문일테다. 워싱턴 DC에서 인턴 생활을 한 사람들끼리 했던 인터뷰를 하고 싶었다. 작년부터 죽음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왔던 내 눈에는 '브레이크포인트 대화'가 그의 치료보다도 더 중요해보였기에, 다른 사람들이 치료비 모금이나 치료제 급여화 청원을 이야기할 때 나는 DC에서 서로 주고 받은 인터뷰 질문들과 대답을 다시 읽어보며 그를 위한 질문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에게 연락과 동시에 인터뷰 제안을 했을 때, 그는 씁쓸한 말투로 면회불가라 볼 수 없다고 전했다. 인터뷰에 대해서 그가 뭐라고 생각했을지는 모르겠다. 컨디션을 보며 병상을 옮기는데 매번 안 좋아지고 있다며 앞으로도 볼 수 있을지 모른다고 했다. 텍스트만 오고 갔을 뿐이지만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보이지 않았다. 너무도 당연하게 웃는 그의 얼굴을 떠올렸던 나는 당황스러웠고, 이내 부끄러워져서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렇게 간단하게 연락이 끊긴 이후 그는 두세번 정도 치료 진행상황을 SNS에 공유했다. 그 때마다 나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로 화상통화로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지만, 웃음기 없는 그의 얼굴을 좀처럼 보기가 힘들 것 같아 그가 나아지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마지막 소식을 전해들었을 때 나는 장기하 산문집 <상관없는 거 아닌가?>를 읽고 있었다. 전날 같은 시간을 공유했던 또 다른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서 충동적으로 구매한 책이었다. 

나는 내게 슬퍼할 자격이 있는지 물었다. 몇시간 단위로 갑작스럽게 눈물이 차올랐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그에게 묻고 싶은게 많았는데, 이제는 답을 들을 수 없다. 

후회와 미안함, 슬픔과 허망함 사이 어디에선가 그의 웃는 얼굴을 기억한다. 나는 이렇게 그를 애도한다. 내가 떠난 당신을 닮아 조금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살 수 있길 바라며.

대학원생노조로부터 요청을 받아 오마이뉴스에 이런 글을 기고했다.(링크) 원래 잘 모르는 영역에 대해서는 기고를 꺼리는데 어찌저찌 공부하면서 쓰고나니 또 나름의 보람이 있는 듯. 그래도 부족한 부분이 많은 만큼 혹 해당 이슈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 글 말고도 김래영 님의 글이나 다른 분들의 글도 함께 읽으면 좋겠다. 편집과정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지워진 부분이 있어 원고를 여기에 공유한다.


대학원생이 짊어진 실험실 현장의 위험

 

전준하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 정책위원회 자문위원)


실험실 사고가 드러낸 문제

 

실험을 하지 않는 비이공계 전공으로 대학원을 진학하여 오랜 기간 실험실 생활을 해본 건 아니나 학부 시절 자발적으로, 또 졸업논문 작성을 위해 실험실을 드나들며 연구한 적이 있다. 다니기로 한 연구실에서 대학원생 선배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실험실에 들어선 순간 멈칫했던 기억이 난다. 흔히 실험실이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는데 현실은 너무 달랐던 것이다. 눈부실 만큼 순백색의 배경에 최신 장비와 깨끗한 기자재 대신 익숙해지지 않는 유기용매 냄새, 기존에 있던 낡은 것을 개조해 손이 많이 가는 장비, 여기저기 그을음 자국이 있는 기자재들이 나를 반겼다. 당시 사수 선배가 교수님의 은퇴가 얼마 안 남은 만큼 오래된 실험실이라며 머쓱해 했다.

 

모두 아무렇지 않게 자기 실험에 집중하고 있어 내색하기는 어려웠지만, 실험실에 출근할 때마다 약간의 불안감을 안고 다녀야 했다. 뭐 하나만 잘못되어도 큰 사고로 이어지겠구나 싶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게 까딱하면 터진다, 잘못하면 다친다는 둥 무서운 소리를 곁들이며 화학물질이나 실험장비를 다루는 법을 알려주는 사수 옆에서 얼어붙은 채 그가 하는 말을 하나하나 노트에 적었다. 다행히 별일 없이 내 실험실 생활은 끝났지만, 이후 크고 작은 실험실 사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저 운이 좋았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운이 있고 없는 문제로 환원해서는 안 된다. 안전이란 이상적으로는 위험이 전혀 없어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그러나 현실적인 의미는 위험을 줄여 사고가 일어날 확률을 최소화하려는 노력과 과정에 더 가깝다. 안전한 사회라면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위험 요인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예방 대책을 세워야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발생한 사고에 대해 그 과정을 반복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사고로 인해 피해를 본 사회 구성원은 단순히 운이 나쁘게 사고를 당한 사람이 아니라 사회가 놓친 피해자며, 따라서 사회로부터 재해보상을 받아야 마땅하다. 산업안전보건법이나 연구실안전법 등 안전을 다루는 법률이 보상제도인 보험을 명시하는 이유다.

 

지난 10월 초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이하 대학원생노조)은 작년 말 경북대학교 화학실험실에서 발생한 폭발사고로 큰 화상을 입은 피해 대학원생의 아버지가 쓴 편지를 대독하며 국회 앞 농성을 시작했다. 해당 사고로 인해 총 4명의 학생연구원이 다친 한편, 중화상을 입은 학생은 현재(2020년 11월) 기준으로 여전히 힘겨운 치료를 버텨내고 있다. 사고는 무릇 화학물질을 다루는 실험실이라면 기업에서 일하는 연구원이든 대학에서 연구하는 대학원생이든 장소나 신분에 무관하게 수행하는 오래된 시료 폐기 업무 도중 발생했다. 회사연구원이었다면 산업재해보상보험(이하 산재보험)을 통해 돈 걱정 없이 치료를 받았겠지만, 피해자와 그 가족은 대학원생이라는 이유로 연구활동종사자 상해보험(이하 연구자보험)의 보상한도를 넘는 치료비를 두고 오랜 기간 경북대학교와 씨름을 이어가야 했다. 피해자 가족과 대학원생노조 등의 연대와 투쟁을 통해 대학으로부터 치료비 지급 약속을 받은 상태나, 피해 대학원생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려는 대학을 쉽게 믿을 수 없다. 또한 이 사고가 드러낸 제도상 허점과 함께 여전히 많은 대학원생이 안전 사각지대에 남아있다. 대학원생들이 국회로 간 첫 번째 이유다.

 

제도상 허점의 기원

 

"비슷한 실험을 하더라도 연구소에서 하면 산업재해보상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이공계 대학원생은 노동자가 아니라 학생이라는 이유로 관련 법의 적용을 받을 수 없다"

 

경북대 화학실험실 폭발사고가 드러낸 제도상 허점은 사실 굉장히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위 문장은 2004년 5월 KAIST 대학원총학생회(이하 원총) 산하 안전쟁취특별위원회가 그로부터 1년 전 있었던 풍동실험실 폭발사고로 대학원생 두 명이 각각 숨지고 두 다리를 잃은 후에도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기는커녕 학교 측이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자 내놓은 입장이다. 같은 시기 KAIST 원총은 실험실 안전 관련 법안 마련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진행, 대학이 속한 지역구 의원에게 전달하여 연구실안전법이 제정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연구실안전법을 통해 아무런 보상체계가 없던 과거보다 진일보할 수 있었으나, 위 인용문이 말하는 똑같은 연구를 함에도 대학원생만 산재보험이 아니라 보다 낮은 보상한도를 가진 연구자보험에 가입하고 있는 문제는 여전하다.

 

당시 연구실안전법 제정 과정을 더욱 자세히 살펴보면 지금의 문제가 어디서 기원했는지 작은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연구실안전법을 연구한 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3년 과학기술부는 풍동실험실 폭발사고 직후 연구안전환경진흥법(가칭)을 준비했다. 현재 연구실안전법과 겹치는 내용이 많은 이 법안은 국회에 제출되기 전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 등과 중복되기 때문에 일부 기존 법령의 개정으로 입법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이유로 입법 추진이 중단되었다. (박정임 외. 2012, p.26) 이후 앞서 언급한 대로 국회의원을 통해 현 연구실안전법이 발의되었는데, 이때 역시 기존 법령과의 중복 문제로 제정이 1년여 늦춰졌다. 흥미로운 것은 오히려 당시 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을 보완하여 연구자들에 대한 안전조치와 보상을 하자고 주장한 한편 교육부와 과학기술부는 보험료 부담을 두고 실랑이를 벌였다는 사실이다. 결국 법률 적용 범위 중복을 피하고자 부처 간 합의를 거쳐 연구실안전법과 연구자보험은 사실상 대학원생들에게만 적용되었다. 더불어 대학원생노조 신정욱 지부장이 지적했듯 연구실안전법은 현재 기준으로[각주:1] 적용대상인 대학원생을 연구자원으로 보고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법이 되었다. 

 

연구실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연구실안전법을 따로 제정한 것은 이해하더라도, 재해보상 체계를 이원화하여 대학원생만 산재보험이 아닌 별도 연구자보험에 가입하도록 한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넷을 통해 접할 수 있는 자료만으로는 분명히 드러나지 않지만, 대학원생들은 이미 그간 수많은 경험을 통해 그 뒤에는 결국 대학원생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대학원생이 각종 국가장학금을 받기 위해서는 4대 보험 가입자가 아니라고 증명해야 하는 것만 보더라도 분명히 인지할 수 있는 사실이다. 경북대 화학실험실 폭발사고의 피해자가 오래된 시료를 폐기했던 것처럼 실험실 및 연구실이, 더 나아가 대학이 제대로 굴러가는데 필요한 모든 곳에 대학원생이 있는데, 사회는 이들의 일을 노동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제도상 허점은 바로 여기에 기인한다.

 

반복되는 사후약방문을 벗어나려면

 

다행히 대학원생노조가 농성을 시작한 날 학생연구원에 대한 특례로 연구실안전법에서 정의하는 연구활동종사자도 산재보험을 통해 재해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산재법 개정안이 접수되었다. 여당 주도로 발의된 법안이지만 국정감사에서 여야가 모두 개정안 취지에 공감한 만큼 조속히 처리되기를 기원한다. 대학원생노조 역시 법안이 통과되기까지 계속해서 목소리를 낼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언제까지 이렇게 사후약방문식 제도 개선을 반복하게 될지 씁쓸하기도 하다. 연구실안전법이 있기 전 앞서 언급한 KAIST 풍동실험실 폭발사고 말고도 1999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에서 세 명의 대학원생이 목숨을 잃은 폭발사고가 있었다. 2016년에는 한국화학연구원에서 학생연구생[각주:2] 한 명이 실험 중 손가락이 절단당하는 사고를 당했지만, 산재보험 가입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고, 소식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서야 뒤늦게 연구자보험 보장이 확대되고 학생연구생에 한해 근로계약이 이뤄졌다. 요컨대 지금의 연구실안전법을 비롯한 실험실 안전을 다루는 제도는 누군가의 부상과 죽음 위에 세워진 것이다.

 

우리는 '김용균법'을 둘러싼 논의를 통해 산업 현장에서 위험이 외주화되어 가장 취약한 하청 또는 계약직 노동자에게 떠넘겨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목격한 바 있다. 그렇다면 연구 현장에서 위험은 누가 짊어지고 있는가. 2018년 연구실 사고 중 80% 이상(발생 건수 기준)이 대학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과기정통부 외. 2019, p.145) 대학원생이 처한 현실에 주목하고 대학원생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이유다. 




참고문헌

 

박정임 외. 2012. “연구실 안전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 해설집 및 고시 정비 방안 연구”, 한국연구재단 연구보고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외. 2019. "2019 연구실 안전관리 실태조사"

 

  1. 연구실안전법 제1조에 해당하는 목적은 2020년 6월 "연구실사고로 인한 피해를 적절하게 보상하여 연구활동종사자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한다는 문구로 개정되었다. 법의 제정 취지를 고려하면 환영할 일이나, 제정 후 15년이나 걸릴 일이었는지는 의문이 든다. [본문으로]
  2. 학생연구생은 정부출연연구소에서 연구하며 학위 과정을 밟는 대학원생을 의미한다. [본문으로]

강릉에 온 지 나흘만에 일출을 보면서 느낀 점.

  1. 일찍 자야 일찍 일어날 수 있다. 10시쯤 자니 겨우 6시에 일어났다. 중간에 잠깐 깼다 잠든 탓도 있겠지만, 내 몸이 7~8시간은 자야 하나보다.

  2. 내가 일출을 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동쪽 바닷가에 와서 일출 시간에 맞추어 일어난다고 해도, 내가 바라던 일출을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애국가 영상에나 나올법한 멋드러진 일출을 상상하며 바닷가로 달려나갔는데, 지평선 부근에 짙게 깔린 구름 때문에 해는 전혀 보이지 않고 부분부분 얕은 구름 사이로 빛만 내비칠 뿐이었다.

  3. 구름 뒤에 가려졌지만, 그래도 구름과 함께 있으니 또 새롭고, 어쩌면 오늘만 볼 수 있는 유일한 일출이었다. 구름 한 점 없었다면 오히려 다른 날의 구름 한 점 없는 일출과 비슷한 일출이지 않았을까. 최우식이 말한대로, "같은 하늘은 두 번 다시 볼 수 없다."

  4. 해변을 서성이다보니 지평선 위로 자리잡은 구름층을 뚫고 해가 나왔다.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를 외치려 했지만, 해가 너무 밝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겠더라. 겨우 카메라 밝기를 조정해서 사진을 찍긴 했지만 눈부시기만 할 뿐 처음에 봤던 구름 뒤 가려진 광경보다 감흥이 없었다.

  5. 어쨌든 바다는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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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와 둘째 날을 생각해보면 있었던 일들,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하나하나 묘사하며 쓰려다보니 일기가 너무 오래걸렸다. 사실 그렇게 자세히 쓸 필요는 없는데, 나중에 일기를 읽으며 그 땐 그랬지 하면서 미소 짓고 싶은 마음 때문일까.

오늘도 아침 일찍 일어나기 실패했다. 아니 바꿔말하면 어제 일찍 자기를 실패했다. 이런저런 감정이 요동치며 불필요한 생각들을 불러일으키는 바람에 얼른 머리를 비우고 자보겠다고 유튜브로 예능 영상들을 보다가 겨우 잤다. 일어나보니 10시가 지나있었다.

어제 좌식의자가 생각보다 오래 앉아있기 불편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터라, 아침부터 앉아있기 싫어 산책을 나갔다. 나름 밤에 조명이 예쁘게 켜지는 강문솟대다리를 건너다 두루미가 작은 바위에 고고하게 자리잡아 쉬고 있길래 한참을 쳐다보았다. 미동없이 수평선을 쳐다보고 있는 걸 보니 나처럼 별 생각없이 멍때리나 싶었다.

아마도 해수욕장이 있어 강문해변보다 유명한(?) 경포해변을 따라 설치된 데크 위를 걸었다. 육지쪽엔 씨마크호텔부터 스카이베이호텔까지 끊임없이 횟집과 중소형 숙박업소가 번갈아 나타났다. 바다쪽엔 종종 사람이 보였고 어제와 크게 다를 바 없이 불규칙한 파도가 쳤다. 

걷다보니 경포호 방향으로 보도가 있나없나 애매한 길이 나있었다. 오고가는 차를 경계하며 길을 건너니 경포호가 보였다. 지도로만 보다보니 크기가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실제로 서보니 굉장히 컸다. 한바퀴가 딱 5km라는 글을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평소에 5km를 뛰던 걸 생각해보면 훨씬 더 길 것 같았다. 자전거도로와 산책로가 잘 구분되어 있지 않고 생각보다 폭이 좁아 뛰기 불편할 것 같았다. 어차피 못 뛰었겠다며 또다시 자기합리화를 했다.

다시 돌아오는 길에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 봐둔 돈가스집 앞에 줄을 길게 섰길래 그냥 편의점에서 라면과 달걀을 샀다. 어차피 숙소에 부엌이 있으니 한번쯤은 요리(?)를 할 심산이었다. 숙소에 돌아와 평소에 잘 먹지 않는 국물라면 한봉지를 끓여먹었다. 비빔면만 먹다가 국물라면을 먹으니 뭔가 새로웠다.

<질베르 시몽동>을 마저 읽고 스타벅스에 갔다. 카페인 섭취를 안한지 꽤 되다보니 별 고민없이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게 된다. 처음엔 해변 쪽 자리가 나지 않아 다른 곳에 앉아 있다가 나중에서야 자리를 옮겨 해변을 보며 앉았다. 해가 질 때까지 책을 읽다 바다를 보다를 번갈아가며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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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6시쯤 일어나 일출을 보고 경포호를 한바퀴 뛰려고 했는데, 어젯밤에 생각보다 일찍 못 자고, 또 아침에 침대가 너무 포근해서 일어나지 못했다. 에어비엔비에 마약침대라며 자기만 했다는 리뷰가 다시금 생각났다.

일어나기로 한 시간보다 3시간이나 늦게 일어나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스트레칭을 한 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 제목은 <자동화 사회>. 두달 전부터 대학원생노조를 통해 알게 된 선생님이 운영하시는 독서모임('사과나무')에 참여하며 읽고 있는 책이다. 워낙 내 관심분야와 맞닿아 있어 작지 않은 기대를 품고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내가 철학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저자인 베르나르 스티글러가 글을 어렵게 써서인지, 번역이 안 좋아서인지, 일주일에 한 장을 읽기가 그렇게 힘들었다. (물론 내가 매우 게을러서이기도 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모임도 빠지고, 책도 못 읽는 주가 쌓이다보니 마지막 모임만을 남겨두고도 나 혼자 책 절반을 못 읽은 상태에 다다랐다. 때문에 이번 연휴를 틈타 책을 완독하고 모임에서 이야기가 나왔던 서평도 써볼까 했다. 사실 모두 강릉에 와서가 아니라 추석 연휴 때 집에서 하려던 것들이다. 결국 이 두꺼운 책을 강릉까지 들고 온 건 추석 연휴 때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금 내 게으름이 놀라울 뿐이다.

흐름을 탔을 때 일주일에 한 장 씩 꾸준히 읽었다면 모르겠지만, 어렵다보니 너무 읽기가 싫어져서 조금 문턱을 낮추고자 스티글러가 독자들이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 가정하는 시몽동의 철학을 공부하고 읽기로 했다. 마침 리디북스에 찾아보니 <질베르 시몽동>이 있어 다운받아 읽기 시작했다. 워낙 오랫동안 시몽동을 연구하고 적지 않은 논문과 책을 쓴 저자가 정리한 책이라서 그런지 매우 친절했고, 또 그동안 감이 전혀 오지 않았던 개념을 익힐 수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갔다. 해변 가까이에 숙소를 잡고 나니 주변엔 온통 횟집과 카페 뿐이어서 혼자 밥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나마 수제버거 집이 몇 개 있었는데, 어제 매우 실망스러웠던 폴앤메리버거를 제외하고는 문을 닫아 무난해보이는 떡갈비 집에 들어갔다. 부부 둘이서만 운영하는 집 치고는 꽤 규모가 큰 식당이었다. 대학가 햄버그 스테이크 집처럼 알루미늄 접시에 깔끔하게 나와서 나름 만족하며 먹을 수 있었다.

식사를 다하고 나와보니 바람이 좀 불긴 해도 날씨가 참 좋았다. 해변 뒤쪽으로 나있는 산책로를 좀 걷기로 한다. 예전에 왔을 때도 바닷가만 떡하니 있지 않고 뒤쪽으로 소나무가 듬성듬성 심어진 산책로가 있어서 참 좋았던 기억이 난다. 분명 의도적으로 만든 산책로인 듯 하여 만든 사람을 칭찬하며 걸었다. 중간에는 세인트존스호텔에서 놓은 듯한 사진 찍기 좋은 조각들도 많았다. 계단, 말, 액자 등. 바다가 보이는 그네도 있어 타볼까 하다 커플이 한창 사진을 찍고 있어 가까이 가보지도 못했다. 군에서 설치한듯한 엄호물과 군시설도 군데군데 있었다.

끝이 없어 보이는 산책로 사이로 바다 쪽으로 난 샛길이 있길래 걸어나왔다. 주차장에서 가까운 강문해변에서 거리가 좀 있는 곳이라 사람이 한 두명 말고는 없었다. 바다를 보며, 파도소리를 들으며 돌아오기로 한다.

예전에 기사로 보았던 해안침식 흔적이 군데군데 보였다. 우리가 흔히 아는 바닷가처럼 모래사장이 완만한 경사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작은 절벽 형태를 보이곤 했다. 정확히 왜 그러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쨌든 좋지 않은 징조임은 분명했다.

파도는 굉장히 불규칙적으로, 또 단순히 땅과의 경계에 수직방향으로 들어왔다 나갔다하는 것이 아닌 사선 방향으로 쳤다. 발만 조금 담글 생각으로 아슬아슬하게 걷다보니 파도가 세게 칠 때는 허벅지까지 물이 올라왔다. 소리가 참 시원해서 주워담겠다고 폰을 꺼내 영상으로 여러 번 담았다.

원래는 바로 카페에 들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려 했는데 바지가 생각보다 많이 젖어 숙소에 들러 옷을 갈아입기로 한다. 숙소에 가까워지니 사람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나처럼 혼자 걷는 사람은 없었다. 친구나 커플, 아이를 동반한 가족이거나. 참 모순적이게도 일부러 혼자 온 여행이건만 이럴 때는 꼭 옆에 누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숙소에 들어와 바지를 널어놓고 발을 씻었다. 다른 외출복으로 갈아입어야 하는데, 어쩐지 카페에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 그냥 숙소에서 일을 볼까 싶어 편한 옷을 입었다. 예전에 사놓고 읽지 못한 <지성사란 무엇인가>를 들고 침대로 향한다. 베개 두개를 벽에다 세워놓고 기대어 앉아 읽기 시작했다.

분명 잠을 충분히 많이 잔 데다가 햇빛도 꽤나 세게 들어와서 졸릴 틈이 없다 생각했는데, 눈이 스르르 감긴다. 책의 서론에 해당하는 첫번째 장만 읽어놓고선 하품을 하고 잠을 청했다.

일어나보니 오후 5시쯤. 얼마 안 있으면 또 저녁을 먹어야 할 시간이다. 근처 가장 기대되는 수제버거 집을 가기로 정해놓고 7시 정도까지 책을 읽기로 한다. 책을 마저 읽고 버거집이 있는 초당 순두부마을로 향했다.

먼 길은 아니었지만 어둡고 걷기 편하기만 한 거리가 아니다보니 조금 긴장한 채로 걸었다. 어딜 가나 수도권이나 광역시가 아니면 뚜벅이가 다니기엔 불편함이 꽤 크다. 지도에서 눈여겨봤던 순두부집과 순두부젤라또 집을 지나고 나니 버거집이 보이긴했는데, 왜 또... 문을 닫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운영시간에는 10시부터 오후 8시라고 적어놨지만 오후 2~3시 즈음이면 패티가 다 팔려 문을 닫는 가게였다.

찾아놓은 다른 수제버거 집을 가기로 한다. 역시나 가는 길이 어둡고 심지어 보도도 없어 자전거 도로로 걸어야만 하기도 했다. 애초에 가게가 걸어오는 사람을 위한 곳이 아니었다. 널찍한 주차장 뒤로 나름 최근에 지은 듯한 건물에는 일하는 사람말고 손님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체온이 너무 낮게 나온다며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던 주인은 이내 높은 게 아니니 명부를 작성하고 주문하라고 일렀다. 단품과 세트 가격 차이가 꽤 되어 단품을 시킬까 하다가, 갑자기 음료가 땡겨 베이컨치즈버거 세트를 주문했다. 얼마 안 있어 나온 버거는 패티보다 베이컨과 버섯 맛이 강했다. 그래도 어제 먹은 것보다는 훨씬 괜찮아서 나름 만족했다. 또다시 집 근처 비비비의 수제버거가 생각났다. 그 곳이 너무 수준급이라 눈이 높아진건지 좀처럼 수제버거집에서 만족하는 법이 없다.

다 먹고 천천히 식당을 나와 다시 숙소로 향했다. 걸어오며 카페를 가볼까 고민하며 책읽기 적당한 분위기의 카페를 검색했다. 아니나 다를까 1순위로 꼽았던 카페는 문을 닫았고, 그냥 숙소 바로 앞에 있는 카페가 무난해보여 차를 한 잔 시켰다. 단편 하나씩 매우 천천히 읽고 있는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 <관내분실>을 읽고, 사회학 스터디에서 공유할 글을 쓰기 위해 Annual Review of Sociology 저널에 실린 Michele Lamont이 쓴 SVE (Sociology of Valuation and Evaluation) 리뷰 논문을 읽었다.

카페 운영시간에 맞추어 10시쯤 숙소로 다시 돌아왔다. 내일은 꼭 일출을 보고 경포호를 한바퀴 뛰리라. 근데 챙겨온 반팔 반바지를 입고 뛰기엔 좀 춥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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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강릉으로 가는 기차 안이다. 작년 가을 제주도 자전거여행(이라고 쓰고 운동이라고 읽는...)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올해도 언젠가 여행을 가리라 생각하며 어디를 갈지 생각을 하곤 했다. 코로나19가 한창 극성일 때는 당연히 어쩔 수 없다 생각하고 미뤄왔지만 너무 길어지다보니 어차피 혼자 조용히 다녀오는 휴가니 큰 걱정 없이 떠나기로 했다.

예전부터 느꼈던 사실이지만 운전을 하지 않으면 운전을 할 수 있을 때에 비해 갈 수 있는 여행지가 매우 제한적이다. 특히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휴식형 여행지 - 숲속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깰 수 있되 쾌적한 숙소가 있는 곳 - 는 차가 없으면 사실상 갈 수가 없다. 때문에 항상 택했던 건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수 있는 바닷가인데 (해변 도시는 있어도 숲속 도시는 없지 않나!), 그 때마다 바다도 참 좋았기에 이번에도 바닷가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그 중 기차가 다녀서 오고가기가 편한 강릉 해변에 좋은 에어비엔비 숙소가 있길래 고민 없이 예약했다.

제주도 자전거일주 때는 고민을 떨쳐내고 생각을 지우려고 했다면, 강릉은 혼자 고민하고 생각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라 가는 것이다. 바닷가를 보며 생각을 하다보면 번뜩이는 해결책이 떠오르지는 않더라도 다른 것들에 방해받지 않고 정말 내가 하고자 하는 고민과 생각만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환경에서 내리는 결정이 가장 최선이 아닐까.

해야하는 고민 중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전문연 이후의 내 진로다. 훈련소에서 한 달 동안 고민해서 내린 결론은 유학이었지만, 지난 1년 반 사이 학계에 대한 내 회의감은 전보다 더 커졌고, 그 회의감으로 내 게으름을 합리화하곤 했다. 여전히 내가 하고 싶은 공부와 찜해둔 연구주제는 매력적이고, 관련해서 책과 논문을 읽으며 통찰을 얻을 땐 그 어느 때보다 기쁘지만, 이토록 주저하는 것은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밥벌이를 놓아서는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전혀 다른 두 업을 함께하기는 또 힘들다. 무엇보다도 동료가 없이는 집중이 어렵다. 동시에 외롭다고 인간관계를 위한 인간관계는 괴롭다. 자연스럽게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쪽을 향해 걷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과 함께 생각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대학원이 그토록 힘든 곳이면서도 자꾸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이유다. (물론 그 때는 그 때 나름대로의 외로움이 있었다.)

아무튼 그런 고민들과 더불어 밀린 일을 하러 강릉에 간다. 추석 연휴 내내 이 가을방학의 기대감을 키워준 예능 <여름방학> 유튜브 영상을 챙겨보았다. 그만큼 길지도 않고, 정유미와 최우식처럼 잘 먹고 이것저것 많이 해볼 수는 없을테지만, 그래도 방학은 방학이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짐을 싸면서도 괜스레 신이 났다. 그렇게 생각없이 싼 짐을 너무 무거워 낑낑대며 들고 다녀야 했다.

11시쯤 집을 나와 KTX를 타기 위해 청량리역에 도착했다. 점심을 안 먹어서 간단하게 때울까 싶어 도넛 집과 햄버거 집 앞을 잠깐 서성였다. 그러다 다시 배가 아파오길래 고민을 관두고 빈 속으로 열차를 기다리기로 한다. 추석 연휴가 다 끝나가는 만큼 강원도로 향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또 명절 특수(?) 사회적 거리두기 제도가 시행중이라 기차도 같이 있는 두자리 중 한자리씩만 탈 수 있다. 때문에 여러 명씩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라도 기차에서는 모두가 혼자인 것 처럼 보인다. 너무 조용해서 사진 한 장 찍기도 눈치가 보이는 열차다.

방금 막 열차가 북한강을 건넜다. 강은 참으로 넓고 한적했다. 날씨는 엄청 맑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마냥 흐린 것도 아닌 적당한 날씨다. 어두운 빛의 강을 건너고 나니 열차는 터널과 산길을 짧게 반복하며 통과한다. 앞이 밝아져오며 통과하는 산 틈 사이로 난 철길에서 보이는 산등성이가 참 빼곡하다. 철도를 강릉까지 깔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산을 깎고 뚫었을까.

기차를 타거나 버스를 타면서 풍경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 중 하나는 우리나라에서는 땅을 놀리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친한 형과 누나가 운전을 해준 덕분에 동부 해안따라 로드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역시 땅 넓은 대륙이라 그런지 참 노는 땅이 많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땅이 꽤나 자주 보였다. 반면 우리나라는 왠만하면 다 산이다보니 여기저기를 깎아 묘소를 마련한 선산이 아니면 쓸 수 없어 산이 아닌 곳은 어떻게든 그 쓸모를 찾는다. 산등성이 사이사이 조그마한 땅에도 모두 건물이나 논밭이 자리잡고 있다.

* * *

금세 한시간 반이 지나 강릉에 도착했다. 왕복 세시간이면 동해 바닷가를 거닐 수 있다니, 바다가 너무 보고플 땐 당일치기로 다녀와도 되겠다 싶다. 숙소를 잡은 강문해변까지 대중교통으로 다니기는 쉽지 않아 택시를 타야 한다. 짐은 무거운데 체크인 시간이 조금 남아 역 근처에서 식사를 하려고 했다. 한 군데 봐놓은 막국수집을 애써 찾아갔지만 장사를 하지 않아 그냥 역에 있는 토스트집에서 요기를 했다. 그러고나니 시간이 얼추 맞아 숙소로 이동했다.

숙소는 에어비엔비 사이트에서 본 사진 그대로였다. 이름('숨어있는 집')답게 들어가는 길을 미리 알아놓지 않으면 입구를 찾기 어려운 곳이다. 펜션이지만 내 방은 원룸에 가까웠다. 책상이 있는 숙소가 거의 없어 좌식책상이라도 있는 곳을 택했다. 건물 옥상에서는 앞 건물 때문에 약간 시야가 가리는 것을 제외하면 강문 해변이 한 눈에 들어왔다. 에메랄드빛 바다는 끝으로 갈수록 어두워지다 옅은 안개와 경계를 만들었다. 한껏 기대하며 듣고 싶었던 파도소리가 들려왔다.

짐을 풀고 얇은 외투를 챙겨 해변을 구경하러 나갔다. 주차장을 건너가면 곧바로 모래사장이 나타난다. 사진찍기 좋게 만든 조형물이 군데군데 있어 사람들이 종종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오늘만큼은 아무 생각하지 않고 바다를 느껴도 되겠지. 정말 머리를 비운 채로 바다를 보며 하염없이 걷기만 했다. 생각해보니 사진도 몇 장 못 찍었다. 그러다 갑자기 피곤해져서 내일도 모레도 있으니 여유롭게 낮잠을 자기로 한다. 방에 들어와 간단히 씻고 옷을 갈아입으니 잠이 쏟아져서 해가 지는 것도 모르고 푹 잤다.

일어나니 벌써 저녁식사를 할 시간이다. 아마도 강문해변에서 가장 유명한 폴앤메리버거를 먹어보기로 한다. 오후에 슬쩍 보았을 때 사람이 너무 많길래 저녁 늦게는 별로 없을 줄 알았더니 줄을 설 정도는 아니지만 사람이 적지 않았다. 혼자 먹을 자리가 마땅치 않아보여 포장 주문을 했다. 가장 유명한 모짜렐라버거는 포장을 추천하지 않길래 기본 메뉴를 시켰다. 맛있으면 또 오면 되니까라고 생각하며 숙소에 돌아와 먹은 버거는 정말 최악이었다. 소스만 치덕대고 다른 재료, 심지어 패티까지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워낙 유명해서 그래도 조금은 기대했건만, 배신감이 작지 않다. 물론 집 근처 수제버거집 덕분에 햄버거 기준이 쓸데없이 높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을 정도였다.

사이드로 시킨 감자튀김은 같이 사온 캔맥주와 함께 이따가 있을 축구경기를 보며 먹을 생각이다. 강릉까지 와서 보는 경기인데 설마 이기겠지. (다행히 이겼다.) 오늘은 아무것도 안하는 날이다. 생각도 일도 여태 그토록 미뤘는데 오늘 하루쯤은 더 미뤄도 되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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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 있지'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었던가. 습관처럼 '그럴 수 있지'라고 내뱉던 말은 어느새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내가 갖추는 기본 태도가 되었다. 나는 그것을 진리로 여겼기에 나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이 '그럴 수 있지'라고 말하고 '그럴 수 있지' 마음가짐을 갖추기를 바랐다. 몇몇 지인이 좋은 습관이라며 칭찬을 하거나 더 나아가 효과를 봤다고 좋아해주면 역시 내가 옳았다며 더 자주 사용하곤 했다.

'그럴 수 있지'는 기본적으로 이해와 공감을 나누는 일이다. 도저히 '그럴 수 없는' 말이나 행동을 한 사람에게도, 대체 왜 그러는지 모를 집단에도, 받아들이기 힘든 이런저런 상황에도 모두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가정하고 그 이유를 찾아 이해하고자 한다. 다만 공감할 필요는 없다. '그럴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옳은 것도 아니고, 나 역시 그래야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도저히 '그럴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그럴 수 있다'고 넘어가자는 것이다.

책 <<당신이 옳다>>를 처음 접했을 땐 저자가 내가 여태껏 '그럴 수 있지'에 가져왔던 믿음을 확인해주리라 기대했다. 통하는 구석이 없지는 않았으나 다 읽고 나서는 내가 정말 여태껏 잘못 살았구나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조차 기계적으로 '그럴 수 있지'로 일관해왔던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라거나,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집단이나 조직, 사건이나 상황 등에서는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고 그냥 머리나 마음 속에서 제쳐두고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나와 직접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에게도 그래서는 안 되었다. 한 발 짝 더 들어가 존재에 관심을 비추고 이해를 넘어 공감을 해야했다. 그나마 늦지 않게 틀렸다는 사실을 알아 다행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당신이 옳다>>는 전에 읽은 책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와 정반대에 놓여있는 책이다. 저자는 서두부터 현대 정신의학을 비판하며 '적정심리학'을 주창한다. 그에게 진료실은 애초에 "의사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관계, 의사 중심의 [환자-의사] 관계"가 형성되는 공간이다. 이 때 유리하다는 것은 단순히 환자가 의사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넘어 환자를 이해하는 방식과 틀이 순전히 의사에게만 있다는 뜻이다. 환자가 누구인지보다 어떤 증상을 보이는지, 그 증상에 따르면 어떤 병인지, 그 병에는 어떤 처방이 효과적인지에 초점을 맞춘다. 70만명에 달하는 모두 다른 사람들은 진료실을 찾는 순간 우울증이라는 진단명 아래 비슷한 처방을 받는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에 등장하는 선생님은 독자들로부터 극찬을 받을만큼 좋은 의사이고, 그가 환자를 대하는 방식은 <<당신이 옳다>>에서 강조하는 공감과 닿아있긴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목적은 결국 진단과 처방이다.

반면 정혜신이 진료실 바깥에서, 특히 트라우마 현장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 도움'에 지친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가며 그려낸 '적정심리학'에서는 진단과 처방이 있던 자리를 공감이 차지한다. 공감은 의사라고 더 잘하리라는 보장이 없으며 의사와 같은 전문가가 아니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배우는 CPR처럼 사람을 살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책은 여느 심리 내지는 우울증을 다루는 책과 달리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걸거나 위로하기보다 독자가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는 '다정한 전사'가 되도록 이끈다. 따라서 CPR 교범과 같은 이 책을 가장 인상깊게 읽을 사람은 아마도 우울증 환자의 가족이나 지인일테다. 하지만 당장 본인이 우울함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 읽어도 충분히 공감받고 위로받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당신이 옳다>>의 진짜 힘은 내가 나 자신과 공감하도록 만드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에게도 공감하고 있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나 자신에게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은 내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거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내가 그랬다. 무엇인지도 모를 '어른스러움'을 절대적인 가치로 추구했고, 그에 맞지 않는 감정은 옳지 않다고 여겼다. 화내지 않고 슬퍼하지 않았다. 내 감정을 인정하고 들여다보기보다 부정하고 의심했다. 또 모순적인 감정이 들 때면 어떻게든 그 모순을 해결하려 들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타인을 대하다보니 대화가 항상 논쟁이나 설득으로 이어졌다. 상대방도 나처럼 자신의 감정에 비판적이고, 모순적인 감정이 들면 풀려고 노력할 것이며, 결국 (내가 생각하기에) 옳은 것을 따를 것이라는 가정을 한 채 소통에 임했다. 나는 종종 판사가 되어 나만 있고 상대방은 없는 대화를 이끌었고, 상대방이 (내가 보기에)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인정하면 '이겼다'며 속으로 기뻐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거나 타인에게 져주더라도 공감을 받고 싶어한다. 그 기쁨의 순간 나는 공감할 기회를 놓쳤다. 여태껏 나는 그렇게 이상적인 자아상을 만들고 거기에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끼워맞춰왔다. 떄문에 나와의 대화는 다른 사람들에게 벽을 보고 말하는 것 혹은 목을 조이는 것과 같았으리라. 책을 읽었다고 한순간에 바뀔 수는 없겠지만, 감정을 무시하는 비현실적 이상 세계가 아닌 '리얼월드'에서 살아가고자 노력해야만 한다.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감정들을 모두 인정해야 한다.

책은 나 자신과 내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고민거리와 꺠달음을 주었지만, 더 나아가 사회를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점도 주었다. 내 존재가 더더욱 중요하게 주목받았으면 하는 인정욕구에 기인한 것이겠지만, 어릴 때부터 내 인생 목표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벽돌 한 장을 쌓고 가는 것이었고 (누군가의 명언이었는데 이제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정책에 관심을 갖고 전공으로 삼아 공부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정책이라는 도구로 사회를 바꾸려고 하다보면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고 또 정책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즉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이 지워지곤 한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일이 전혀 진행이 안되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큰 고민 없이 책에서 비판하는 '존재의 개별성'을 지우고 '집단적 정체성'만을 부여하는 일이 당연하게 이뤄질 때가 많다.

때문에 저자가 비판하는 현대정신의학의 자리에 사회과학이나 정책학을 대입해도 큰 무리가 없었다. 사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다는 것도 결국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을 위한 것인데, 우리는 종종 효과성과 효율성을 이유로 미시적인 관점을 놓치곤 한다. 어떤 사회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서의 정책은 해당 문제나 사회에 대해 겉으로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더라도 어쨌든 모델링을 하게 된다. 그 모델링은 필연적으로 거시적인 사회 체계 뿐만 아니라 정책의 이해관계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즉 정책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정책이 상정하는 모습의 개인만이 보이는 것이다. 이 모델링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지만, 한편 너무 매몰되어 놓치는 것들이 생기기도 한다. 더 심각하게는 다양한 문제해결방법이 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방식의 문제해결방법만이 적용되게 된다. 당장 사례가 여럿 생각나지만, 책 리뷰이니 나중으로 미루겠다.

어러모로 책을 통해 인간관계에서나 사회정책에서나 존재 자체에 주목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 마음 속 깊이 느낄 수 있었다. 타인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존재와 감정에도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다시금 다짐을 했다. 이전에 부모님께 선물로 책을 드렸을 때 하나도 읽지 않으시는 것 같아 실망하고 다시는 책을 드리지 말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다시금 희망을 갖고 부모님께 책을 선물드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 책을 선물하는 의미는 단순히 책이 좋아서 한 번 읽어보시라가 아니라, 나는 당신께, 또 당신은 내게 서로 힘들 때 응급처치를 해줄 수 있는 든든한 우군임을 알리는 것이다. 이 응급처치 교본이 널리 읽히기를 바란다.


에버노트나 노션을 거쳐서가 아닌 바로 블로그 에디터에 글을 써본 게 얼마만인지. 이리저리 웹서핑을 하다보니 단상을 글로 남기고 싶어졌다. 석사 때부터 참 많은 시간을 웹서핑에 쏟았고, 그 때마다 느낀 건 연구자를 꿈꾸었던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 또 연구자가 아니더라도 내게 연구서와 다름 없는 책을 정말 취미로 읽는 사람 역시 많다는 것이었다.

어쩌다 사회학 스터디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김경만의 <글로벌 지식장과 상징폭력>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다시 책 제목을 검색해서 이전에 이미 한번 다 살펴본 적이 있는 글과 블로그들을 다시 헤집고 다녔다. 책이 본격 국내 사회(과)학계 비판서인만큼 선택편향은 있겠지만 대부분 연구자 혹은 연구자를 꿈꾸었던 사람들이었다. 현재 연구자인지 아닌지는 그 포스팅 말고 최근에는 어떤 글을 썼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글들을 보며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한 분은 농부가 되어 농장에서 기르는 작물에 대한 글을 쓰고 있고, 한 분은 유학을 가서 학업을 지속하며 유학생활에 대한 글을 쓰는가 하면, 또 한 분은 가정주부가 되어 육아일기를 적고 있다. 김경만의 책에 대해서만 언급했지만, 다른 때에 다른 주제로 웹서핑을 할 때도 비슷한 경험을 하곤 했다. 한 때는 본인의 연구주제, 공부한 내용, 더 넓게는 학계에서의 생활에 대해 글을 쓰던 사람들이, 물론 그걸 끝으로 블로그 포스팅이 멈춘 경우도 적지 않지만, 정말 다양한 주제로 포스팅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다보면 나 역시도 내 관심분야와 연구주제가 영원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종종 스마트폰을 구매한 이후로 계속해서 구글 포토에 백업되고 있는 사진들을 굳이 찾아보곤 한다. 2014년부터 폰으로 찍은 사진들은 대부분 남아있는데, 가끔 넋놓고 몇몇 장면을 쳐다보게 된다. 물론 벌써 그로부터 6년이 지났다는 것도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지만 그것 말고도 당시 내가 했던 고민들, 또 지금과 비교했을 때 두드러지는 차이점들은 정말 저 사진 속의 내가 내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 '맞아, 그 때 내가 그랬지'가 아니라 '봐봐, 저 때 너는 저랬다니깐'에 가까운 느낌.

이 글도 언젠가 다시 읽게 된다면 내게 그런 기분을 안겨주겠지. 모란역 근처 원룸에서 자취하던 시절에 다음 날 출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새벽에 잠들지 못한 채로 캔맥주 한 캔 까면서 시덥잖은 글이나 쓰던 시절이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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