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STP(과학기술정책대학원)에 지원할 떄도 썼듯이, KAIST에 진학할 때부터 이공계 위기라거나 연구개발정책 등 이공계와 관련한 사회적 이슈에 나름 관심을 갖고 해결에 힘쓰는 과학자(or 공학자)가 되고 싶었다. 과학기술정책학 부전공을 선택한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니깐, 나는 처음부터 이렇게 될 생각이 없었단 말이다!!!
그랬던 내가 방향을 틀어 과학기술정책을 본격적으로, 공식적으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한 건....음 그 때부터 계속 할까 말까 할까 말까했던 것 같긴하다. 정확히 언제 어떻게 확정을 지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이게 내가 처음 과학자(공학자)가 되어야겠다고 결정(?)을 할 때도 그랬듯이 조그마한 관성으로부터 시작해서 멈추기 힘든 지점에 다다르면 내 자신이 "내 갈 길은 이거구나"라고 수긍하는 그런 프로세스를 따르는 것 같다.
그놈의 관성!!
어쨌든! 그렇게 과학기술정책을 공부해야겠다고 결심(!)을 했는데, 이상하게도 워싱턴에 갈때까지 당장 학부 졸업 후 어떻게 할지 생각을 안했다. 한편으로 그냥 KAIST STP 진학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진짜 생각을 안했다. KAIST STP의 단점 등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광화문에 있었을 때는 정신이 없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그래서 워싱턴에 가서 잠깐 내 미래를 생각했을 떄 정말 깜짝 놀랐다. 당장 서원 졸업하면 한 학기가 남고, 바로 대학원에 진학하려면 귀국하자마자 원서 쓰고 영어 점수 만들고 해야하는 게 아닌가! 내가 왜 이때까지 그 생각을 못했을까 하고 나 자신을 많이 원망하면서 고민을 되게 많이 했다. 근데 그 고민은 사실 나와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 포스팅을 하려고 한다.
즉, "과학기술정책을 공부하려면 어느 대학원을 가야하나?"
1.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2000년대 초부터 한국과학기술학회 창립, STS 서적 및 논문 발표 등 과학기술정책의 상위 학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STS의 중심인(혹은 이었던) 서울대 과사철이 있다. 21세기 들어 우리나라에 STS를 들여오고 꼭 과학교육에서의 STS가 아니라 그 학문으로서, 교양과 상식으로써 STS가 자리잡도록 한 데에는 과사철이 큰 공헌을 했음에 틀림없다. 대표적으로 홍성욱 교수님이 있고, 과사철 졸업 후 STEPI와 KISTEP에 간 분들도 꽤 있고, 또 STS 대중서적 및 교과서를 집필한 사람들 중 과사철 졸업생이 굉장히 많다.
이것 자체가 하나의 큰 장점인게, 그만큼 동문이 많이 사회에 자리를 잡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또 나름 역사가 깊기 때문에 커리큘럼도 안정되어 있을 것이고, 인지도도 높을 것이다. (이런 평가는 사실 내 주관적인 평가라 확신하지는 못하겠다. 내가 다녀본 것도 아니고 직접적으로 아는 사람도 없어서...)
반면 여전히 협동과정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과 다른 학교에서 비슷한 과정이 신설되면서 입지가 좁아졌다는 지적 역시 유효하다. 홍성욱 교수님도 따로 과사철 소속이 아니라 정식으로는 생명과학부 교수라는 사실도 그것 때문이다. 협동과정이 확실히 따로 전임교수들로 구성된 대학원보다 부족한 점이 있다고 들었다. 내가 직접 체험해보진 않았지만 글쎄, 정부 구성에 있어 특정 부서가 '부'로 격상되거나 '처'로 격하되었을 때 이해관계자들이 큰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원리지 않을까.
또한 과사철을 졸업하신 분들이 공부를 했을 때는 우리나라에 관련 학과가 별로 없기도 해서 과사철로 모여든 효과가 있었겠지만 뒤에서 더 설명할 여러 대학원 과정들이 나름 겹치거나 특화된 분야를 다루면서 과사철이 예전만큼은 못하다라고 하기도 한다.
2. 서울대학교 TEMEP(기술경영경제정책과정)
이 과정을 소개받은 건 워싱턴에서 STGlobal이라는 STS 분야 석박사 학생 컨퍼런스에서 만난 KAIST STP 선배를 통해서였다. 그 전에는 듣도보도 못했는데, 막상 그 선배를 통해서 듣고 조금 찾아보니 많이 끌렸더랬지...
과학기술정책을 한다고 했을 때 그것이 항상 어느 정도 "기술경영(MOT)"와 겹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더더욱 말이다. Management=경영이라고 봤을 때, 국가'경영'이라는 말을 써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고, 실제로 쓰기도 하는 것처럼, 정책과 경영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무언가가 있다. 나는 그 다른 무언가를 "공공성"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고 본다. 주로 정책은 Private sector보다 Public-Government Sector에 쓰고, 반대로 경영은 Private Sector(대표적으로 기업)에 쓰기 마련이다. 물론 바꿔서 써도 아주 이상하지는 않지만(국가경영, 기업의 정책-기업정책이라고 하면 국가의 기업에 대한 정책으로 읽히긴 한다.) 말이다.
어쨌든, 내가 TEMEP에 끌렸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국가의 (특히 우리나라의) "기술혁신정책"은 기업의 "기술혁신경영"과 크게 다르지 않다!(내 사견으로는.....)
보통 정책과 경영의 차이를 공공성이 있느냐 없느냐 혹은 이익 중시 위주 여부로 나눈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술혁신정책 및 경영에 있어서는 둘이 큰 차이가 없다. 국가나 기업이나 기술을 통해 "이익을 뽑아내려는 건"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특정 기술분야, 예를 들어 IoT라던가 무인자동차라던가에 국가가 얼마를 투자하겠다라는 정책을 세우는 건 삼성이나 현대차가 R&D에 투자를 늘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왜 내가 계속 '특히 우리나라는'이라고 붙이냐면,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정책이라는게 역사적으로 이런 종류의 기술혁신정책이 주를 이루고, 더 중요하게 다뤄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기 때문에 TEMEP 졸업 후에 과학기술정책을 다루는 연구원 등에 들어간 사람들도 꽤 있다고 한다. 흔히 "우리나라는 과학기술을 경제발전의 도구로 생각한다"라고 하는 비판이 유효하지만서도 우리나라가 역사적으로 그런 방식의 정책을 통해 나름 성공했기 때문에 쉽게 그 관성을 버리지 못한다.
물론 나는 그런 거-과학기술을 경제발전의 도구로 삼는 것-에 대해 반감이 있으면서도 우리나라에서 과학기술정책을 연구할 것이라면, 또 해당 분야에서 일자리를 잡으려면 TEMEP이 가장 무난하지 않을까 하는 현실적인 생각이 있었다. 과사철 만큼이나 역사가 있고, 따라서 인지도가 높고 동문이 많고 하는 장점이 있다. 또한 학위가 행정학, 경제학, 공학 이렇게 세 개 중 하나를 골라서 받을 수 있다는 장점 역시 있다. (물론 나는 군 문제로 공학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그 뜻은 나름 세 가지 분야의 커리큘럼이 짜여있다는 것이다. 과사철에서 경제학이나 행정학을 배울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꽤나 큰 장점이다.
그러나, 우리학교에서 TEMEP으로 진학한 여러 선배들의 말을 종합해봤을 때 TEMEP에 계시는 여러 교수님들이 국가과학기술정책을 연구분야로 삼는 경우가 매우 적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대학원에 진학할 때 한가지 고려해야 할 점이 지도교수와 그 지도교수의 연구분야라는 점을 생각했을 때, 내가 원하는 강의는 잘 골라들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연구를 할 수 있을지 명확하지 않았다.
다녀보지도 않고 말을 주절주절 늘어놓는 것보다 TEMEP을 다니고 있으신, 혹은 다닌 적이 있으신 선배의 이메일을 인용하는게 빠르겠다.
"기대하시는 정책설계, 정책입안, 정책연구가 어떤 느낌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잘 모르고 오면 실망할 가능성이 클 것 같습니다. 언급한 부분들은 실무적인 느낌이 강하게 나는것 같은데 실제 이곳의 연구는 실무적인 느낌이 크지 않습니다.
이미 알고 계시는 것 처럼 카이스트 STP는 academia 양성 쪽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고, 서울대 TEMEP는 산업체, 국방, 국가연구소에서 일을 할 때 학위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학위를 주고, 관련업종으로의 취업을 연결시켜주는 것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2.TEMEP에서는 KISTEP이나 STEPI등으로 취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알룸나이들이 이미 진출해 있고, 급하게 연구 인력이 필요할 때 알룸나이 연락망을 통해 연락이 오며, 사실 연구소에서는 공개채용보다 지인추천 채용을 선호하기 때문에(공개채용 공고를 올려놓고, 지인들에게 연락을 돌려 추천인을 받아 추천인 중에 선발하고, 공개채용으로 들어온 원서는 reject) 훨씬 더 기회가 많다고 볼 수 있습니다.
3.KAIST와 TEMEP은 문화적 차이가 많습니다.
학문을 공부하는 분위기라기 보다는 networking을 형성하는데 더 목적을 가지고 계신다면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공부와 연구는 교수님 및 선배들에게 도움을 받을 생각보다는 스스로 할 생각을 하셔야 합니다. 교과목 운영도 카이스트 STP에서 수업을 들으셨다면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커리큘럼의 구성이 체계적이지 않고, 과목과 과목사이의 연관이 크지 않으며, 제 경험으로는 실무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저는 STEPI에서 위촉연구원으로 근무했습니다)
4. TEMEP에서는 국가연구소와 함께하는 연구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학과 내의 커리큘럼이나 수업, 연구활동이랑은 "상관없이" "별개로", 가끔 여러 정부출연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연구소에서 파트타임 등으로 연구에 참여할 학생들을 모집합니다.
전준하학생 같은 경우에는 이쪽 프로젝트에 참여하여서 연구 경험을 쌓는다면 바라는 공부가 되겠네요.
이것은 학교 내 커리큘럼과는 상관 없이 networking측면에서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5. KAIST로 돌아온 이유
TEMEP에서는 학과내에서 추진하고 있는 연구분야 외의 분야에 대해 연구해나가기 힘듭니다. 알룸나이 네트워킹이 TEMEP의 최대 장점인데, 이 최대장점을 살릴 수 없는 분야의 연구를 원하면, 커리큘럼도 교수진도 학과제도도 여러가지로 학생이 힘들 수 있는 구조입니다. 제가 연구하고 싶은 분야를 TEMEP에서 연구하기가 힘든 환경적 여건과,저는 카이스트의 자유로운 문화를 좋아하기때문에 카이스트로 돌아왔고,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선배들의 메일을 받고 한편으로는 더 TEMEP에 끌리면서도(결국 일자리를 잡기는 TEMEP이 좋을 것 같다는게 결정적인 이유였다.), 한편으로는 KAIST STP의 분위기를 알기에 조금 꺼려지기도 했다. 여전히 KAIST STP를 떨어지면 TEMEP이 좋은 차선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글쎄. 가더라도 석사만 하고(강의 위주로 많이 듣고 배우고) 다른 곳을 알아보지 않을까 싶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한 타임 쉬고, 다음 편에는 KAIST STP와 행정대학원, 여러 대학의 과학기술정책학과(UST, 한양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다들 건승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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