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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대학원생(과학기술정책대학원)/대학원생 권리강화 방안

<대학원생 권리강화 방안 연구>를 시작하며 (2017.11.3)

작년말에 교육부 과제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쓴 일종의 '출사표'. 실제로 글을 쓰면서 머릿속으로 저 세 글자를 계속 되뇌었더랬다. 내게 연구과제란 대부분 돈을 벌기 위한 수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에 딱히 크게 말하고 다닐 일이 없어 왠만하면 연구과제와 관련된 글을 SNS에 작성하지 않았는데 이 과제만큼은 예외였다. 내가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야겠다는 생각에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작성했다. 이 이후로도 과제 일환으로 개최한 간담회와 공청회도 열심히 SNS를 통해 홍보했다.

이 글에서도 드러나지만, 교육부 과제를 두고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과 그에 따른 접근 방식은 바로 '다양성''사례 분석'이었다. 다름 아닌 '교육부' 용역으로 국내 전체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한 '대학원생 권리강화 방안' 정책연구를 하는 만큼, 나를 둘러싼 'outlier'에 해당하는 환경 - KAIST라는 대학 아닌 과학기술원에서 인문학 및 사회과학을 하는 과학기술정책대학원(STP) -에서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일전에 '지방시'를 통해 접했던 정통 인문학을 하는 곳은 어떨까. 내가 정말 아무런 연결고리도 없는 예체능계 대학원생의 삶은 어떨까. 과기원이 아닌, 특히 지방에서 이공계를 전공하는 대학원생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대학을 연구하면서 내 환경과 그에 따른 경험이 'outlier'에 해당하며 그에 따른 내 고민 역시 대학 전체를 포괄하지 못한다는 점을 깨달은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더더욱 다양성에 집착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출사표를 통해 원했던 것에 비해 결과가 그렇게 좋지만은 못했다. 공유는 무려 74회나 되었지만, 따로 연락주신 분들은 이미 내가 연락을 드리려고 했던 분들 외로 없었다. 개인적으로 지방 간담회에도 많은 기대를 걸었으나 참석자 수가 너무 적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게 생각하자면 내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뛰어다녔기에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이우창 선생님이나 유현미 선생님, 대학원생노조의 구슬아, 강태경, 신정욱 선생님 등 내가 '선생님'이라고 주저없이 부를만한 분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대화를 통해 나 역시 더 깊게 고민할 수 있었고, 단순히 보고서 작성 뿐만 아니라 보다 직접 정책을 개선하는 실천에 관여할 수 있었다. 한국대학신문이나 교수신문에 칼럼을 썼고, 이런 저런 포럼에 토론자로 참석했으며, 지금 당장은 조금 뜸해졌지만 대학원생노조 정책위원회에 외부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물론 남은 일은 너무나도 많지만, 일단 과학뒤켠에 아주 짧게 소개한 이 '대학원생 권리' 이슈에 대한 학술적인 분석을 - 내가 거창하게 '이론화'라고 부르는 - 한편의 논문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번에도 예전에 SNS에 남긴 글을 블로그에 가져오면서 글을 길게 덧붙이고 말았는데, 꼭 필요했던 정리였다. 대학원을 도망치듯 나오고 별다른 시간 없이 바로 회사생활을 시작하는 바람에 이런 것도 정리하지 못했다.

p.s. 아래 글을 쓸 때만 해도 "다행히도 본 과제는 예산 소모용 연말 과제가 아니었습니다. 교육부가 문제를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것과, 또한 이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충분히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라고 쓸만큼 교육부에 큰 믿음이 있었는데, 지금은...(읍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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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지도교수님의 말을 빌리자면, 제게는 이 연구과제야말로 ‘영혼이 있는 과제’입니다.
올해 여름방학 때만 해도 이번 학기는 졸업논문에 집중해서 쓰기도 벅찬 마지막 학기이니 연구과제를 하나도 맡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여름방학이 끝날 때쯤, 저는 교수님 부탁에 못 이겨 두 개 연구과제 조교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망했구나’ 싶었는데, 거기에 더해 교수님은 가을학기가 시작하기 무섭게 이 <대학원생 권리강화 방안 연구> 제안서를 쓰게 되었다며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저를 빤히 쳐다보셨습니다. 과제 조교 일을 맡아달라는 뜻입니다. 존경하는 분이지만 너무 원망스러웠습니다.

저나 교수님이나 제안서가 떨어지기를 바랐는데 붙고 말았습니다. 제게 정말 선택의 여지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봐도 우리 학과에서 저 말고 이 연구과제를 맡을 사람이 없는 것 같아 큰 마음을 먹고 하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저보다 뛰어난 분들이지만 모두 4차 산업혁명 과제들에 휩쓸려 힘들어 하고 있기에..) 이왕 하는 것, 졸업논문은 될 대로 되라, 이 과제만큼은 제대로 해보자고 다짐했습니다. 당시 학과 콜로퀴움에서 김승섭 교수님 강연을 들은 것도 결정하는데 한 몫 했던 것 같습니다.

아예 연고가 없었던 것은 아니고, 저는 대학과 학계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사실상 대학을 굴러가게 만드는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원생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에 대해 항상 큰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제가 속해있는 대학원이 기관 내 유별난 조직이라, 다른 일반적인 대학원의 상황은 어떤지 더 잘 이해하고 싶어 올해 초부터는 대학원 총학생회 일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제게 지난 몇 년간 이슈화가 된 대학원생 인권 문제는 한편으로는 꼭 해결하고 싶은 문제이면서도 중요한 연구질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이 과제를 맡게 된 것도 운명이 아닌가 싶습니다.

두 번에 걸쳐 교육부 담당부서와 미팅을 가진 후에는 조금 더 용기를 얻었습니다. 다행히도 본 과제는 예산 소모용 연말 과제가 아니었습니다. 교육부가 문제를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것과, 또한 이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충분히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니었다면 그나마 있던 열정도 사라졌을텐데, 덕분에 동기유발이 크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하면서 저는 다시 막막함을 느낍니다.

감을 잡기 위해 주변 대학원생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보다 적극적으로 대학원생의 인권과 권리가 침해당한 사례를 찾으면서 깨달은 것은 너무나도 많은 대학원생들이 일상적으로 인권과 권리를 침해 당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굳이 기사화 된 이야기들을 옮겨 적지는 않겠습니다. 한 친구는 연구를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하고도 결과물로 나온 특허 지분의 대부분을 교수들한테 내줘야 했습니다. 그 친구는 이것도 양호한 편이라며 오히려 자신의 후배 몫을 챙겨주지 못해 아쉽다고 했습니다. 다른 한 친구는 교수의 이해하지 못할 발언과 행동에 스트레스 속에 살고 있지만 욕설과 폭행으로 볼 수 있는지 헷갈려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기사화되는 범죄행위만이 대학원생 권리 침해 사례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침해가 일상화 된 현실 속에서 대학원생의 인권과 권리를 침해하는 사람들 - 당연히도 주로 교수들 – 과 당하는 대학원생들 모두 인권 및 권리 침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명백히 인권을 침해당한 대학원생들 역시 내부고발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동료 교수들이 나서서 선처해달라고 탄원서를 작성하는[각주:1] 상황에서 해당 분야를 아예 뜰 각오를 해야하고, 각오를 하더라도 해당 교수 아래에 남아있는 동료 대학원생들이 걱정되어 차마 신고하지 못한 채 눈 감고 빨리 모두가 무사히 졸업하기를 기원할 뿐입니다. 성범죄 교수 10명 중 7명이 그대로 교수직을 유지하는 것을 보고도[각주:2] 누가 모든 것을 걸고 교수를 신고하고자 하겠습니까?

여기가 바로 “내 주변에는 그런 사람 없던데”, “엄한 사람 잡지 말고 데이터를 가져와라” 등의 발언과 주장이 무색해지는 지점입니다. 현 상황에서 그런 발언과 주장은 무의미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교수들이 얼마나 많은지, 어떻게 처벌해서 정의를 구현할지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보다 <대학원생 권리강화 방안연구>라는 이름 아래 제가 해야할 일, 그리고 제 관심사는 인권과 권리를 침해당하는 대학원생들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피해자인 그들이 참아야 하고, 견뎌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관두고 떠나야 하는 것입니까?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대학원생들의 목소리가 세상에 나오기가 힘들다 보니 <대학원생 권리강화 방안연구>를 하는 저 역시 이를 듣기가 힘들다는 점입니다. 어쩌다 보니 길어졌지만, 사실 이 때문에 SNS의 힘을 빌려 도움을 청하고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우리 학교(카이스트)의 경우 제가 이런저런 커넥션이 있습니다만, 다른 대학의 사정, 특히 이공계가 아닌 인문사회계 대학원생들이 처한 상황과 그 분들이 주로 어떻게 인권과 권리를 침해당하는지 파악하고 분석하기 위해서는 여러 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전국의 대학원 총학생회와 인권센터가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힘써온 점과, 개인적으로 상황을 바꾸기 위해 알게 모르게 노력해 오신 많은 선배님들이 계시다는 점 잘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최대한 많은 곳을 방문하고, 많은 분을 만나 뵈어 인권 및 권리 침해 사례들과 관련자들의 목소리를 모아 이를 분류하고 정리해서 대학원생의 인권 및 권리의 현 상황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대단한 정책을 제시할 자신은 없습니다. 주위에도 자주 말하고 다니지만 이게 제도 문제인지도 저는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신 이 보고서에 이 사안에 대한 state-of-the-art를 담고 싶습니다. 그것이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대학원생 권리강화 방안의 첫 단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당장 졸업이 급합니다. 학위논문 마감이 한달 남았습니다. 때문에 논문을 제출해야하는 11월 말까지 당장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대신 이렇게 미리 글을 올려 전국에 있는 대학원 총학생회, 인권센터, 연구자 네트워크 등에 협조를 구하고자 합니다. 물론 최대한 제가 먼저 연락을 드리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대학-대학원 생활 7년 내내 대전에만 있었기 때문에 소중한 인연을 놓치지는 않을까 두렵습니다. 혹시 유관기관 및 조직에 계시는 분들, 사안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와 나눌 생각이 있으신 분들이 계시면 댓글 혹은 제 메일(realjoonha@gmail.com)로 연락처를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글을 마무리 하던 도중 청와대 국민청원에 같은 주제로 글이 올라온 것을 확인했습니다.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23424) 보통 이러면 교육부에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답변이 나가고 교육부는 저희 연구팀을 쫄 것 같아 걱정이 되지만 상관 없습니다. 읽으신 김에 청원 참여도 해주시지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7.11.3.

전준하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대학원생) 드림




  1. 서울신문. “서울대 교수들 낯뜨거운 탄원서...”제자 인건비 횡령, 선처를”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17048&code=11131100&cp=nv) [본문으로]
  2. (2) 서울신문. “4년간 국립대 성범죄 교수 서울대 최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81&aid=0002861573&sid1=001 [본문으로]
  3. (1) 서울신문. “서울대 교수들 낯뜨거운 탄원서...”제자 인건비 횡령, 선처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05&aid=0001027264&sid1=001&lfrom=facebook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