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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서원 원생(아산서원)

Q&A on 아산서원

이제는 기수가 워낙 많아져서 (2019년 초 기준 15기를 뽑았다고 들었다. 참고로 나는 6기다.) 연락이 오는 경우가 없긴 한데, 아산서원에 들어가고 나서부터 졸업하고 대학원에 들어갔을 때까지 SNS나 이메일을 통해서 종종 아산서원 입시(?) 조언 요청을 받곤 했다. 서원이 '인문교육'을 표방하고 있어 '도대체 그게 뭘까' 싶은 이공계열 학생들이 '너도 이공계 아니냐. 어떻게 들어갔냐?' 내지는 '이공계생도 할만 하더냐?' 정도의 질문을 가지고 내게 물어온게 아니었나 싶다.  

이제 별로 서원에 대해 물어오는 사람도 없고 서원 자체 홍보도 잘 되는 것 같아 이 글을 얼마나 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조언을 요청했던 분들과 나눈 대화를 Q&A로 정리해보았다. 아마 나 때와 달리 뽑는 사람 수도 줄어들고 해외 인턴십 기관도 달라지는 등 (내가 다녔던 AAAS는 나를 마지막으로 제휴가 끝났다. 파견 도시도 워싱턴 DC랑 베이징이 있었는데 워싱턴 DC로 통일되었다는 카더라가...) 변화가 꽤 있을텐데 감안해서 걸러 읽기를.

아, 그리고 다 쓰고보니 인턴십 생활에 대한 내용은 별로 없다. (내가 한 게 별로 없기도 하고...) 기관마다 워낙 다를텐데 위에 썼듯이 서원에서 자체적으로 워낙 홍보용으로 남기고 있는 기록이 많아 참고하면 될 것 같다. 

Q. 어쩌다 아산서원에 들어갔나? 인문학에 원래 관심 많았나? (이공계생이 뭔 인문학이냐)

과학고에서 카이스트로 이어지는 typical한 '과학영재' 루트를 탔으니 인문학에 관심을 가졌을리가. 그런데 대학 들어와서부터 과학기술정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어쩌다보니(...) 아예 전공을 그 쪽으로 바꿀 고민도 하다보니 인문학이든 사회과학이든 너무 공부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원을 하게 되었다. 몇 번 썼듯이 워싱턴 인턴보다 인문교육 기간을 보고 지원을 했다.

Q. 뭘 배웠나? 만족하나?

구체적인 커리큘럼이야 매 기수마다 달라지기 때문에 아산서원 홈페이지를 참고하는 게 나을 것 같다. 내가 배운 거라고는 '아 내가 무지하구나. 많이 부족하구나.'라는 깨달음...?

근데 일단 내가 아산서원을 '인문학 부트캠프' 쯤으로 여겼던 것부터 심각한 오류였다. 5개월 빡세게 공부하면 대충 석사 과학기술정책으로 틀어도 될 정도로 지식을 쌓을 수 있겠지라는... 지나친 망상에 빠져있었고, 그 망상에서 빠져나오는 데에는 확실히 도움이 된 것 같다.

얻은 것과 만족도는 여느 교육 프로그램과 마찬가지로 자기 하기 따름. 아니 좀더 나아가서 같이 뽑힌 사람들 하기 나름. 그런데 개인적으로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을 전공한 학생보다는 (물론 학부생이면 큰 차이 없겠지만) 이공계 전공 학생이 좀더 프로그램에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서원에서 하는 '인문 교육'이 정말 수박겉핥기 -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의미 아님) 이공계 전공인 내게는 그 쪽으로 눈을 뜨게 된 계기가 되었지만 원래 비슷한 공부했던 분들은 별 감흥이 없었을 것 같아서다. 특히 카이스트와 같이 이공계중점대학 출신에게는 서원 같은 기회를 통해 다양한 강의를 듣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의미도 크다. 

2~30개 정도의 강의를 몰아치지만, 한 강의당 강의시간이 10시간인데다가 많은 범위를 몰아서 듣다보니 대학 강의보다 훨씬 얕고, 머리에 남는게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냥 나중에 읽었던 내용이 나오면 아 그 때 읽었던 거! 하는 정도? (하지만 읽었다는 사실 외로는 기억이 안난다는 문제가...) 그나마 다같이 열심히 할 때는 (입소하고 처음 몇 주..?) 다들 열정도 있고 토론도 활발히 하다보니 배우는 느낌이 들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덜했던 것 같다. (물론 다시 말하지만 이건 서원에 같이 있는 사람들에 따라서 달라질 듯) 아, 글쓰기 과제가 매우 많아서(거의 90%이상) 글쓰기 실력은 확실히 는 것도 같다. 

그래서 혹시 서원에 지원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교육 내용에 대해서 기대를 크게 하지 않았으면 한다. 다시 말하지만 공부는 어딜가나 자기 하기 나름 아니겠는가? 붙어도 떨어져도 큰 상관 없는 이유다(...)

Q. 아산서원 이후의 진로?

워낙 Case by Case가 심하긴 한데, 우리 기수는 기자 된 사람들이 꽤 많고(about quarter..?), 로스쿨 간 사람도 꽤 많다(another quarter..?). 워낙 학벌 좋은 사람들로 뽑아놔서인지 (...아, 근데 이것도 우리 기수 특징이었다. 학벌 보는지 안보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기수는 대학 분포가 다양한 편) 다 부러우리만치 잘 살고 있다. 의외로 로스쿨 같은 전문대학원 외로 대학원 진학한 사람이 별로 없다. 나름 원생 선발에서 다양성을 염두에 두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꽤나 몰려있는게 신기하기도 하다. 

Q. 입시가 궁금하다. 합격하기 위한 자기소개서나 면접, 추천서 꿀팁을 달라.

팁 당 4달라.

...는 장난이고...

어차피 읽을 사람도 없을테니 꼰대 같은 소리좀 해보자면 (얼씨구) 서원도 대학원도 들어가서 하게 될 경험보다 입시 과정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니 물론 나도 대한민국 사람이니 입시에 강박 관념을 느끼긴 하지만, '들어가면 무엇을 배우나요?'와 같은 질문 전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이 먼저 나오면 뭐라 조언을 해줘야 할 지 난감하다. 그러니 조언을 구하고자 한다면 질문 순서를 바꾸거나, 꼭 입시를 통과해서 선발되어야 하는 이유를 말한 후에 물어보라. (절씨구)

특히 서원의 경우는 30명을 뽑는다고 했을 때 어떤 기준을 토대로 1~30등을 뽑는게 아니다. 실제로 면접 보면 '뭘 보고 여기서 사람을 골라낼까' 싶다. 30명의 조화 및 구성도 생각하고, 각 기수를 거치면서 기준을 바꾼다는 소리도 있고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6기를 SKY 위주로 뽑아놨더니 별로였는지 7기 선발할 때 출신대학이 다양하도록 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내가 조언할 수 있는 건 - 함재봉 원장님이 강조하기도 했고 - 본인이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점을 어필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매력인지는 알아서 (... 똑똑, 솔직, 등...?) ... 자소서와 면접 모두 나는 이런 사람인데 아산서원 과정을 통해 뭘 경험하고 뭘 이루고 싶은지, 과정이 내게 왜 필요한지를 위주로 적으면 될 것 같다. (합격자 증언ㅋㅋㅋ)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입시 준비를 얼마나 어떻게 하는지는 당락에 큰 영향을 안 미친다. 서원 뿐만 아니라 다른 입시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 '붙기 위한' 자기소개서와 면접 준비 과정이 아니라 입시 준비 과정을 통해 본인 삶의 경로를 되돌아보고 목표를 다시 설정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정말 아산서원 과정이 자신한테 필요한 것인지, 붙게된다면 무엇을 할 것이고, 떨어진다면 또 어떻게 할 것인지, 자기 자신에 대한 고민과 진로 고민을 최대한 많이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고 합격자가 말합니다)

그나마 당락에 큰 영향을 줄만한 요소를 꼽자면 추천서가 있다. 아산서원을 산하기관으로 두고 있는 아산정책연구원이 나름 대학교수들과의 커넥션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합격생 추천서 써준 교수들에게 편지를 보낸다고도 들었다. (다 인맥 관리 아니겠나..ㅋㅋ) 그런데 그렇다고 유명한 교수한테 받으라는 뜻은 아니다. 되도록 자신을 잘 아는 분께 부탁드리는 게 좋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