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파일 정리를 하다가 발견한 기고문. 나 자신이 '과학기술'을 하지 않는 '과학기술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던 시절에 쓴 글이다. 뭐 이제는 과학기술인이라는 명칭(?)에도 더이상 미련이 없다. 

AAAS에서 경험한 각종 행사와 우리나라에서의 그것을 비교하기 위해 참석했던 <대한민국 과학발전 대토론회>에서 있었던 '대한민국 과학기술인 일동' 이름으로 진행된 선언식이 다소 충격적이었다. 하하, 지금 보니 별일 아닌데. 더한 일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데. 

아, 그 '대토론회'에는 DGIST 총장 시절 미국과의 협력연구센터 설립 때 이면계약 체결한 것으로 드러나 감사받고 있는 신성철 총장도 있었다. (기사 링크) 열심히 대본 읽으시면서 대한민국 과학기술인 운운했던 것으로 기억.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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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글 링크는 여기에: http://times.kaist.ac.kr/news/articleView.html?idxno=3337

올해 초 5개월동안 난 운 좋게도 워싱턴 DC에 있는 AAAS 본사에서 인턴으로 일할 수 있었다. AAAS는 사이언스지 발행 외로도 미국 내 과학문화 및 과학 애드보커시 활동의 본산이며, 과학기술정책을 연구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이 글은 거기서 일하면서 느낀 점을 우리 학교 학우들뿐만 아니라 교수님들, 또 전 학교 구성원들과 공유하기 위해 쓰여졌다.


내가 일하던 부서는 OISA(Office of International and Security Affairs)로, 잘못 해석하면 국제안보 업무를 보는 곳으로 들리지만 그렇지 않다. 첫째로 국제과학외교 업무를 보고, 둘째로 과학과 안보의 교점을 연구를 하는 곳이다. 우리 부서 말고도 AAAS의 다른 부서들은 R&D 예산과 정책을 분석하고, 대중의 과학 참여방법을 물색하며, 정부와 의회에 과학계 이슈 및 의견을 전달하는 일 등을 맡고 있다. 물론 사이언스지 발행부서도 있다. AAAS는 “공익을 위해서 과학과 공학, 혁신을 전세계적으로 발전(진흥)”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고, 이를 이루기 위한 실천이 바로 위에 언급한 AAAS 내 여러 부서들이 하는 일인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우면서도 당연한 점을 하나 짚고 싶다. 바로 AAAS가 과학발전을 목표로 삼는데, 과학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과학을 어떻게 정의하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있긴 하지만, 흔히 우리가 쓰는 표현 내에서 AAAS가 하는 활동들을 과학이라고 할 순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AAAS에서 일하는 직원들은-대부분 이학공학 학위를 갖고 있긴 하다-앞서 언급한 AAAS의 목표를 위해 일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과학을 하지 않아도 과학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간단한 사실을 우리는 가끔, 아니 자주 잊고 사는 것 같다.


미국 과학기술정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바네바 부시는 미 국립과학재단(NSF)를 설립하는 데에 있어 지대한 공을 세웠다. 지금까지도 많은 과학자들이 그가 70년 전 작성한 <과학, 그 끝없는 프런티어> 보고서를 인용해서 연구개발투자의 필요성을 역설하곤 한다. 미 국립과학재단(NSF) 설립 후 미국의 과학기술은 크게 발전하여 기초과학, 응용과학을 막론하고 미국을 언급하지 않고는 현대과학이 어떻게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는지 설명할 수 없는 데에 이르렀다. 그의 업적 역시 과학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과학의 발전을 가져왔다는 점을 쉽게 부인할 수는 없다.


지난 10월 23일, 대한민국 과학기술인 일동은 대전에서 열린 세계과학정상회의의 부대행사였던 대한민국 과학발전 대토론회에서 <과학기술 혁신과 미래창조를 위한 우리의 다짐>이라는 선언문을 통해 “과학기술인들은 창의와 성실을 바탕으로 연구개발에 정진하여 국민행복에 이바지 할 것을 다짐”하고, “국가번영의 원동력은 강력한 리더십에 있음을 주목하고, 과학적, 합리적 국정운영을 펼치도록 적극 협조하고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그리고 그 날 나는 보았다. 그 자리에 있던 많은 과학기술인들이 사전 동의는커녕 듣도 보도 못한 선언문에 한 쪽 손을 들고 같이 다짐하는 모습을. 거부의 의미로 선언문 낭독이 끝날 때까지 앉아있으면서, 한때 녹색성장 인재의 요람이었던, 그리고 지금은 창조경제의 전진기지인 우리 학교를 생각했다. 한번 되돌아보자. 우리는 우리 자신을 과학기술인으로 규정하고, 우리의 역할을 과학기술로 규정된 범위 내에서 공부와 연구를 하는 것이 다라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정체와 역할을 너무나 비좁게 인식하고 있다. 그건 우리에게도, 과학발전에도, 심지어 우리나라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그 날 대한민국 과학기술인이 아니었다. 앞으로도 아닐 듯 하다. 그리고 감히 우리 학교 구성원들 역시 대한민국 과학기술인이 아니었으면 한다.

2016년 4월 총선 전에 각 정당별 '과학기술' 담당 후보들이 KAIST에 방문하여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한 바 있었다. 해당 토론회 후기를 겸해서 쓴 글인데 이미 총선 결과가 나온 6월호에 실려 시의성을 잃은 글이 되어버렸지만, 당시 내가 갖고 있던 '과학기술'이 국내 정치에서 소비되는 양상에 대한 비판의식을 보여주는 글이다.

해당 권호에 해당하는 POKAS ON 웹진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pokas.dna20.net/viewer/split_document.php?doc=12f0f4098a5738ec5080f38a1f817884.pdf&title=POKAS%2520ON%2520vol%252014%2520%25202016%25EB%2585%2584%25206%25EC%259B%2594%25ED%2598%25B8)

참고로 POKAS ON은 포스텍-카이스트-서울대 이공계대학원 공동 웹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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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인이 총선을 대하는 자세>

다니는 대학원의 이름 때문인지 주변 사람들로부터 심심치 않게 오해를 사곤 한다. 내가 정치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정치에 관심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사람들이 말하는정치에 관심이 많다는 것은 즉정치인이 되고자 하는 것이라, 큰 오해가 아닐 수 없다. 주변 사람들이 물어볼 때마다 길게 설명을 하고 다녀 이제는 어느 정도 그 혐의(?)를 벗었지만, 여전히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커서 정치하는 거냐고 묻곤 한다. 거기에 대고돈과 명예가 뒤따르는 자리인데 불러주면 어찌 가지 않겠느냐고 우스갯소리를 했다가 진지하게 비난을 들은 적도 있다. 부모님은 아직도 내가 정치를 할까봐 노심초사하고 계신다. 내 주위 사람들의 이러한 의심과 걱정은 얼마나 사람들이 정치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한편 몇몇 지인들은 공대 출신인 네가 정치인이 되어 제대로 된 과학기술정책을 입안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더 나은 과학기술정책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자 현재 다니는 대학원에 진학한 것은 맞지만, 정치인이 되고자 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이제 갓 대학원에 새로 들어온 내 입장에서 그런 말은 앞서 언급한 오해들만큼이나 부담스러울 뿐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부탁(?)에 지금 대통령도 공대 출신이라고 대답을 하곤 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 지인들은 그래도 정치에 희망과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나는 별 생각이 없지만) 나를 두고, 또 정치를 두고 사람들은 서로 반대되는 감정을 표하곤 한다. 흥미로운 점은 올해 치뤄진 20대 총선을 앞두고 나타난 과학기술계의 분위기에서도 두 감정이 병존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정책에 크고 작은 문제가 많다는 것은 대부분의 과학기술인들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보통 그 원인으로 많은 정책입안자들이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인문사회계, 즉 문과 출신이라는 것이 지적되곤 한다. 개인적으로 이 말을 중고등학생 시절부터 들어왔으니,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주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011 12월 발족한 대한민국과학기술대연합(이하 대과연)은 온전히 이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과연은 올해 20대 총선을 앞두고 과학기술 전문가 국회의원 후보공천을 요구하며 서명운동과 함께 각 정당에 20여명의 과학기술인 추천 명단을 전달했다. 대과연은 2012 19대 총선 때도 같은 활동을 한 바 있다.

대과연이 진행한 서명운동 성명서를 일부 인용하자면, “과학기술인은 여전히 국정의 변방에 머무르는 현실…(중략)…과학적 합리성과 풍요로움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꽃 필 수 있도록 과학기술인들도 국정의 핵심에 서야…(중략)…우리 500만 과학기술인들은 제20대 국회에 과학기술계 전문가들이 많이 진출해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각 정당이 비례대표에서 일정 수 이상, 지역구 의원에서도 우선적으로 과학기술인을 공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총선을 앞두고 과학기술인들이 취한 모습 하나는 바로 과학기술인 출신 국회의원 당선에 대한 요구 및 염원이었다.

이후 각 정당에서 비례대표 및 지역구 후보 공천이 완료된 4월 초, 과학기술인 출신 후보들을 KAIST에서 열린 <이공계 대학생과 함께하는 20대 총선 정책토론회>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에서는 당선권에 있는 비례대표 후보들(각각 19, 7, 1. 총선 결과 이중 새누리당 조명희 후보는 낙선했다.)을 내보냈고, 정의당에서는 대전 유성을 후보가 참석했다. 여러 학교의 학부 및 대학원 총학생회가 주관한 만큼, 학내 자치, 이공계 학생 노동권 및 인권을 주제로 토론이 이루어졌고, 이후 후보들이 각 정당의 이공계 공약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토론회가 끝난 후 학생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과학기술인 출신 국회의원 후보들은, 특히 비례대표 후보들은 오히려 그들이 과학기술인 출신이기 때문에 이공계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걱정과 고민거리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이 이미 과거에 겪었던 학생들의 문제의식에 공감은 표했으나, 그게 다였다. 어찌 보면 그것을 보기 좋게 이겨내어 지금의 자리에 서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각 정당이 발표한 과학기술분야 공약 역시 정당 별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놓고 말해 굳이 과학기술인 출신 후보들이 아니어도 저런 공약은 낼 수 있겠다 싶은 수준이었다. 과학기술인 출신 후보들이기 때문에 다를 것이라고 기대한 학생들은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목격한 과학기술인들이 총선을 바라본 또다른 모습은 바로 후보들이 과학기술인임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과학기술인이기 때문에 실망한 모습이었다.

사실 대과연이 진행한 서명운동 및 과학기술인 추천 과정 역시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서명운동은 2월에 진행되었고, 대과연에서 만든 추천 명단은 3월 초중순에 공개될 예정이었으나 결국 공개되지 않은 채로 각 정당에 전달되었다. 해당 서명운동의 요구가 곧대과연에서 추천한 과학기술인들을 공천하라는 목소리로 이어질 소지가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과연은 추천 명단을 공개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해당 명단을 만들기도 전에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이런 대과연의 활동 기저에는그저 과학기술인 출신 국회의원이 나오기만 하면 된다라는 생각이 깔려있음을 눈치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 많은 ‘500만 과학기술인들중 누가 국회의원이 될 것인지는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다. 우리가 왜 과학기술인 출신 국회의원을 필요로 하는지를 명확히 한 후, 그에 알맞은 과학기술인이 국회의원이 되도록 힘쓰는 것이 더 올바른 애드보커시 활동일 것이다. 누구를 과학기술인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답도 애매모호한 상태에서, 왜 필요한지에 대한 핵심 문제의식조차 명확하지 않다면 굳이 몇명의 국회의원 후보가과학기술인 출신일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물론 후보의 배경과 경력은 그 사람을 평가하고 또 그에 대해 판단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그것만 고려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후진적인 정치의식을 증명하는 꼴이다.

최근 SNS를 통해 현 캐나다 총리가 기자의 즉석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양자컴퓨터의 원리를 유창하게 설명하는 영상이 많은 관심과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 캐나다 총리는 영문학과 출신이다. 반면 어떤 나라의 공대 출신 대통령은 운동 데이터를 수집하는 센서가 내장된 신발을 보고 다음과 같이 물어봤다고 한다. “이거 인공지능이에요?” 과학기술인들이 총선을 대하는 자세가 조금이라도 달라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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