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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글 모음

연구실 현장을 떠나 조선소 현장으로 (POKAS ON 2017년 9월호, p.172-175)

본 글은 2016년 6월 12일 KBS 2TV에 방영된 다큐멘터리 <다큐 3일: 조선의 바다, 기로에 서다 – 거제, 통영 조선소 72시간>에 대한 감상이다. 

2017년 봄에 조선업 위기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진 4명의 대학원 동료들과 팀을 꾸려서 거제나 통영 같은 조선업 도시에 직접 방문해서 ethnographic study를 하는 것을 목표로 학교의 석박사모험연구지원사업에 지원했고, 말그대로 진짜 모험을 하겠다고 나선 우리 팀은 소속된 단과대학에서 가장 많은 700만원 가량의 연구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거시적인 수준에서 조선업 관련 산업을 경제학적으로 분석하는 연구가 대부분인 와중에 ethnographic study를 통해서 조선업 위기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연구를 시작했다.

그런데 선행연구를 분석하던 중 우리는 조선업 위기를 두고 ethnographic study가 진행된 적은 없지만 비슷한 접근을 시도한 시청각 자료, 특히 다큐멘터리는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본 글에서 작성한 감상문 역시 이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POKAS ON에 기고하게 된 이유는...사실 원총에서 우리 대학에 할당된 글을 모으는 것이 내 역할이었는데 채우지 못해서 내가 쓰게 되었다...

글은 아래 링크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http://pokas.gsalab.co.kr/viewer/split_document.php?doc=e6e174cb95adb5b148380b3e577ca048.pdf&title=POKAS%20ON%20vol%2019%20%202017%EB%85%84%209%EC%9B%94%ED%98%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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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에 방송된 본 다큐는 현재까지도 진행중인, 혹은 오히려 더 심각해지고 있는 조선업 불황 현장에서 촬영되었다. 1년이 넘게 지난 영상의 감상을 이제 와서 적는 것은 물론 내가 다큐를 늦게 접해 다시보기로 시청한 탓도 있지만 연구 목적으로 7월 말에 직접 거제를 다녀오면서 현실이 1년 전에 비해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본 소식지의 대상 독자인 이공계 대학원생들에게 과학기술 현장이란 곧 연구실일텐데, 또다른 과학기술 현장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산업도시를 기록해 독자들이 간접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한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조선 산업과 그 도시의 현실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국내 조선업 위기의 기원은 2000년대 후반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통영의 미륵도에 위치한 조선소 및 기업들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사실 당시 조선업만 영향을 받은 것도 아니었고, 또한 국내 조선업에만 그 여파가 밀려온 것도 아니지만, 대기업이 이끄는 3대 조선소(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는 해양플랜트 산업의 호황기를 맞아 해당 위기를 잘 버텨낸 것에 비해 업종전환 및 확장을 할 수 없었던 중소조선소들은 금융위기 이후 되살아날 방도를 찾지 못한 것이 컸다. 다큐 역시 주로 통영을 조명하며 예전에는 세계랭킹안에 꼽혔던 여러 중소조선소가 문을 닫은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제는 앞서 언급한 3대 조선소 역시 2014년 이후 해양플랜트 산업 불황의 영향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10년도 안되는 시간 사이에 세계 랭킹안에 들던 많은 국내 조선업 회사들이 모두 문을 닫거나 휘청거리고 있는 것이다.

 

전체 산업의 위기에 따른 타격이 특히 중소조선소에게 컸듯이,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그 타격 차이가 존재했다. 수익이 급격하게 줄면서 여러 조선소들은 구조조정을 하는데, 여기서 해고 0순위는 바로 물량팀이라고 불리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일용직 임시 노동자들이다. 촬영팀이 조명하는 물량팀은 현실에 순응하는 것을 넘어 무기력한 모습이다. 가진 거 없고 배운 거 없고 단지 이제 조선소에서 녹을 먹은 것 밖에 없는데 그게 생각할수록 어렵습니다. 어떻게 살아갈까...”라고 말을 줄이는 물량팀의 한 노동자의 얼굴은 비록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착잡한 표정이 눈에 보이는 듯 하다.

 

때문에 통영 고용노동지청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인다. 원래 노동지청이 주로 하는 일은 실업급여를 신청받고 지급하는 것이지만, 해당 사항이 없는, 소위 말하는 4대보험을 적용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일자리가 없나하고 찾아 오는 것이다. 하루에 6~70명 정도, 많게는 100명도 오지만, 다들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방문하는 것일 뿐 크게 희망을 가지고 기대하는 모습은 아니다. 원래 물량팀도 그 일이 고된 만큼 적지않은 시급을 받았고, 더불어 근무시간이 긴만큼 단기간에 돈을 많이 벌 수 있어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하지만 일자리 자체가 줄어들면서, 지역의 여러 기숙사 및 원룸촌 앞에 버려지는 조선소 작업복의 수는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가는 상황이다.

 

물량팀만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니다. 원청 내지는 직영이라고 불리는 조선소를 직접 운영하는 회사의 직원들과 그로부터 하청을 받아 일을 하는 협력회사 직원들 역시 큰 타격을 받은 것은 마찬가지다. 실제로 내가 현장에서 들은 바로는 대우조선해양 등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도 적잖게 급여가 삭감되고 복지혜택이 줄면서 위기를 피부로 체감하고 있었다. 직장을 자의로 타의로 그만 둔 사람들이 늘고, 남은 사람들도 회사에서 부동산학개론을 공부하는 등 자기 살 길을 찾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노동자들의 조선업과 그 도시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

 

그렇다면 누가 조선업 도시에 남아있나? 조선소에는 장비가 언제든 다시 가동될 수 있도록 상태를 유지시키기 위한 유지보수인력이 남아있다. 원래 2000명이 일했던 한 중소조선소에는 30여명만이, 그마저도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이들은 노후된 배를 수리하거나, 남은 장비들을 매각하는데 힘쓴다. 슬프게도 우리나라에 중고 장비 매물이 많아 동남아 조선업 회사들이 자주 방문하고 또 많이 사들인다고 한다. 그러는 한편 많은 노동자들은 회사가 인수합병되어 다시 제대로 된 일을 할 수 있기를 꿈꾸고 있다.

 

조선소 밖에는 한 때 조선업에 종사했던 사람들이 다른 업종으로의 전환을 꾀하기도 한다. 개업준비가 한창인 식당의 사장은 한 때 삼성중공업 협력업체서 용접을 했던 분이다. 이들은 왜 굳이 무너져가는 조선업 도시에 남아있나. 물론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위기에 당황한 모습 역시 역력하지만, 상황이 안 좋다고 금방 그동안 살던 곳을 떠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IMF때도 지나가고, 그죠? 다 힘들 때도 다 겪어가면서 살았는데 뭐... 좋은 일 많을 거예요. 그렇게 믿고 살아요. 다들 힘내시라고 전해주세요라며 울먹이는 식당 사장님은 다큐 PD가 만날 다른 거제시민들 걱정부터 한다. 그의 거제통영 지역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다. 외지 사람들은 모르니까, 유령의 도시다, 너무 많은 설들이 나오는데 아직 살 만해요 거제도, 너무 좋아요. 다녀 보시면 알잖아요. 너무 좋아요.”

 

조선업 노동자들은 지역에 대한 애착뿐만 아니라 조선 산업 자체에 대한 애착 역시 크다. 특히 어렵던 시절부터 조선소와 함께 일생을 살아온, 즉 세계 시장을 호령하는 우리나라 조선소들을 만들었다고 해도 무방한 이 노동자들의 자부심은 어마어마하다. 조선소 내부 작업장에는 특수선 세계제패/세계최강 특수선이라는 문구가 크게 써붙여져 있고, 조선소 옆 술집서 작업복 차림으로 삼삼오오 모여 약주를 걸치고 있는 5-60대 노동자들은 카메라 앞에서 연신 우리 자부심 셉니다라고 말한다. 현재 위기에 대해서도 어차피 배의 수명에 따라 산업에 주기가 있는 것이라며 곧 괜찮아진다고 항변하기도 한다.

 

이들에게 있어 배를 만들어본 경험은 그저 항상 해왔던 일 그 이상이다. 배 건조에 필요한 함석을 제조하는 한 협력업체의 사무장은 더 이상 일감이 없어 함석제조공장을 자동차업체에 재임대로 내준 이후 함석 두드리는 소리 대신 자동차 망치 때리는 소리가 나고 있다며 울음을 참는다. 한 중소형선박건조사의 직원은 힘들 때마다 이전에 자신이 건조한 배의 진수동영상을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고 한다. 다른 협력업체 사장이 표현했던 자식 같은 배라는 단어가 딱 들어맞는 것이다.

 

우리가 현장에 가야 하는 이유

 

사실 이 다큐를 소재가 아닌 구성과 연출만으로 평가하라고 한다면 나는 높은 점수를 주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업 관련 영상에 단골로 등장하는 자전거와 스쿠터로 가득 찬 출퇴근 행렬과 압도적인 크기 덕분에 상징성이 남다른 골리앗 크레인으로 시작해서, 비록 힘들지만 가족애를 버팀목 삼아 희망을 말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으로 끝나는 구성은 너무도 흔하고 뻔한 플롯 아닌가.

 

그러나 이 다큐의 힘은 다른 곳에 있다. 말그대로 위기를 겪고 있는,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남아있는 조선업 도시 현장의 모습을 충분히 담았기에 기억에 남는 장면이 많다. 연출자가 조금만 욕심을 부렸더라도 산업의 위기 상황이나 가족애 등을 과하게 표현해 감정으로 가득 찬 영상이 되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다큐는 그저 덤덤하게 관찰자의 입장에서 도시의 아슬아슬한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별 것 아닌 간간히 촬영팀이 내는 한숨소리나 현장 주민들에게 건네는 응원과 격려 인사가 편집되지 않고 영상에 나타날 때 나도 함께 한숨을 쉬거나 울컥하게 된다.

 

다큐는 내레이터가 다큐 초반에 나왔던 한 조선소 노동자가 한 말을 인용하며 끝이 난다. 세상에 바다가 있는 한, 우리는 배를 만들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배경으로는 조선소가 대청소를 하는 금요일 아침의 장면이 펼쳐진다. 새천년 체조 음악이 틀어진 채로 모두들 조선소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때를 위해 준비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다큐가 방영되고 지난 1년새 다큐에 나왔던 신아SB는 인수합병을 통한 매각에는 실패하고 개별 장비 및 부지 매각을 진행 중이다. 그나마 대기업이 운영하는 조선소와 협력업체는 어찌저찌 돌아가고 있긴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올해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가 고비라며 크게 걱정한다. 다큐의 장면을 보다 잘 묘사하기 위해 위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쓴 표현들은 사실 1년전 과거의 모습인데, 조선업 도시는 이제 더 심한 위기를 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다큐의 희망찬 마무리는 무색해진 것이다. 여전히 우리는 계속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