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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글 모음

탈원전 논란의 주체는 원전이 아닌 사람이다(과총 과학과기술, 2018년 2월호)

과총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과학과기술> '젊은이의 광장' 섹션에 실은 두번째 글. 

카이스트는 원자력공학과가 있는 몇 안되는 학교 중 하나고, 그중에서도 서울대와 함께 원자력계의 센터로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때문인지 다른 이슈들보다 탈원전 이슈에 대한 논쟁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물론 대부분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였고, SNS를 통해서는 원자력 기술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비판하는 환경단체나 관계자에 반박하거나 비웃는 글을 많이 봐왔다

물론 나역시 원자력 기술 문외한이다. 독일에 있었을 때 같이 교환학생으로 갔던 형 추천으로 원자력공학개론 수업을 들은 게 다다. 하지만 그래도 원전에 대해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원전 역시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사회-기술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당연히 기술적인 내용, 특히 (한국형) 원전은 안전하다(혹은 후쿠시마와는 다르다)는 수많은 과학적/공학적 연구결과와 증거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그 원전을 운영하는 원자력계, 원전이 위치하는 지역, 크게는 우리나라 전체 사회 역시 원전이라는 사회-기술시스템과 상호작용하는 중요한 요소다. 

기고문은 (당연히도) <과학과기술> 이북 링크(http://ebook.kofst.or.kr/book/201802/#page=88)를 통해서도 읽을 수 있다. 다만 이 글 역시 교열 및 편집을 거치면서 아래 내가 과총에 보냈던 버전과 조금 다를 수 있음(특히 제목이 바뀌었다)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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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문제다

전준하

불안감, 위기감, 공포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이 작년말 선정해 발표한 <2017 10대 과학기술뉴스> 중 이슈 부문 뉴스에 대한 평가다. 신고리 56호기 원전 건설 중단 여부를 두고 큰 논란이 일었고, 포항에서는 지난해 경주에 이어 지진이 발생했으며, 계란과 생리대에서 각각 살충제와 발암 물질이 검출되었다. 임기철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원장은 해당 뉴스들을 두고 국민의 불안감과 위기감 쪽에 많이 기울었다현실에 대한 공포감이 이슈에 반영됐다고 해석했다. 남은 이슈 부문 뉴스인 블록체인 가상화폐 열풍 역시 청년층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임기철 원장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김명자 과총 회장은 “밝은 미래를 원하는 국민들의 마음이 10대 뉴스에 반영되었다며 과학기술인에게 더 큰 책임감을 주문했다. 하지만 국민들이 어떤 불안감, 위기감, 공포감을 왜 느꼈는지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국민들이 원하는 밝은 미래는 요원하기만 할 것이다.

과총이 과학기술이슈 부문 뉴스 중 첫번째로 꼽은 신고리 56호기 원전 건설 중단 논란과 이를 포괄하는 탈원전 논란을 살펴보자. 탈원전 논란에서 불안감, 위기감, 그리고 공포감은 곧 원전 가지는 위험성에 대해 일반 시민들이 느끼는 두렵거나 무서운 감정을 의미한다. 한국갤럽이 작년 7월 수행한 조사에 따르면 원전 위험하다고 인식하는 사람의 비율은 26년 전에 비해 줄었으나 여전히 과반(54%)을 차지했으며, 임채영 한국원자력학회 박사 역시 신고리 원전 건설 재개 직후 논란에 대해 그간 원전 안전하다’, ‘안전하지 않다가 핵심 쟁점이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우리는 흔히 원전이라는 단어를 주어 자리에 놓고 그 안전성 또는 위험성을 논한다. 원전이라는 기술이 일반 시민들로 하여금 불안감과 위기감, 공포감을 경험하도록 만드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원자력공학자 등 전문가 집단으로 대표되는 친원전 측은 최소한 우리나라 원전만큼은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원전이라는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에게 있다고 말한다. 이관섭 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퇴임하며 직원들에게 원전에 대한 근거 없이 부풀려지고 과장된불안감을 해소하는데 힘써달라고 당부한 것 역시 이와 무관치 않다. 더불어 그들은 비전문가인 정부 관계자와 반원전 측 환경단체 등이 원전에 대한 전문 지식도 없이 일반 시민들의 두려움만 증폭시키고 있다고 비판한다. 송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이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공포화위원회가 돼서는 안된다고 지적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탈원전 논란을 단순히 비전문가가 원전이라는 기술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불안감과 공포감에 사로잡혀 부당하게 멈추려 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면, 논란을 둘러싼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 역시 매우 단순해 질 수 밖에 없다. 원자력 전문가들이 원전 안전성에 대해 과학적공학적 근거들을 토대로 비전문가 시민들에게 충분히 설명하면 될 일이다. 실제로 친원전 측은 공론화위원회가 정부에 신고리 원전 건설을 재개하도록 권고한 결정에 있어 팩트 체크가 유효했다고 평가하면서 앞으로 원자력계가 국민을 더욱 안심시킬 것을 다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앞으로 계속될 탈원전 논란 속에서 이 방법은 얼마나 유효할 것인가?

탈원전 논란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불안감, 위기감, 그리고 공포감이 원전이라는 기술뿐만 아니라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있다는 것을 파악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원전 주위 사람들에 대한 불안감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 불안감은 원전이 하나의 기술이기보다 복잡한 사회-기술시스템에 가깝다는 인식에 기인한다. 이는 원자력 발전을 단순히 여러 과학기술적 요소들의 집합이 아니라, 그 요소들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운영하고 관리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제도까지 포괄하는 체계로 이해한다는 의미다. 공론화위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중단해야 한다고 답한 시민들 중 대부분이 그 이유로 체르노빌,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같은 위험이 상존해서라고 답한 바 있다. (37.7%, 5개 선택지 중 1) 이에 대해 원자력계가 과거 원전사고를 인재(人災)로 정의하고, 원전 기술 자체는 매우 안전하기 때문에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사고였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적절한 해명이 될 수 없다. 시민들은 전문가가 보장하는 기술적 안전성 뒤에 수많은 조건들이 달려있다는 것과 그 중 하나만 어긋나더라도 작은 사고에서 큰 재난까지 일어날 수 있음을 이미 잘 알고 있다. 조건들 중 상당수가 사람 손에 달려있다는 사실도 말이다. 때문에 기술적 안전성을 강조하는 전문가 발언은 시민들의 불안감과 공포감을 해소하기 힘들다.   

두번째 불안감은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전문가가 전문가이기 때문에 생기는 두려움이다. 전문가는 본인 밥그릇이 걸린 문제에 대해 얼마나 진실된 지식을 생산하고 전달해 줄 수 있을 것인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학생회는 탈원전 정책이 독단적이고 반지성적이라면서 “(과학기술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당사자이자 전문가 집단인 과학기술계의 의견이 배제되는 데에 유감을 표했지만, 이는 정확히 탈원전 정책을 원자력전문가에게 전적으로 맡길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리 공학도들이 공익을 위한 것이 사익을 위한 것으로 여겨져 정책 결정을 위한 토론과정에서 제외되었다며 분노해도, 여전히 누가 어떻게 전문가 주장이 공익을 위한 것인지 사익을 위한 것인지 판단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 남는다. 탈원전 논란에서 원자력전문가가 아닌 환경단체나 탈원전에 찬성하는 원자력전문가가 힘을 얻는 중요한 이유는 그들의 주장이 더 과학적이어서라기보다 명확한 이해관계가 없어 더 객관적이고 중립적일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탈원전 논란 속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감을 해석하기 위한 초점을 원전에서 원전 주위 사람들로 옮기면 우리는 원전은 얼마나 과학기술적으로 안전한가 혹은 위험한가?”라는 질문 대신 원전이라는 사회-기술시스템을 어떻게 문제없이 작동시킬 것인가?”라는 질문과 전문가면서 이해관계자인 원자력전문가의 의견을 어떻게 혹은 얼마나 고려하고 반영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된다. 원전 주위 사람들에 대한 불안감과 사회-기술시스템 및 전문가-이해관계자의 위치에 대한 질문은 아무리 원전의 기술적 안전성을 보완하고 강조해도 해소하거나 답하기 힘들다. 탈원전 논란이 앞으로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우리는 그간 주목하지도 대답하지도 못한 두가지 불안감과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과학기술이슈를 두고 시민들이 가지는 불안감, 위기감, 공포감에 대한 편협한 이해는 비단 탈원전 논란에서만 관찰되는 문제가 아니다. 과총은 살충제 계란과 발암물질 생리대 뉴스를 묶어 케미포비아라는 제목을 붙였다. 일반 시민들의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감에 초점을 맞춘 명명이다. 하지만 탈원전 논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 공포감은 단순히 화학물질을 향한 것이 아니라 유해화학물질을 제대로 관리하는데 실패한 사회-기술시스템과 특정 화학물질을 둘러싼 전문가 집단의 이해관계를 향한 것이기도 하다. 오늘날 과학기술은 시민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동시에 세분화되고 전문화되어 시민들과 멀어진 것 역시 사실이다. 설명한 두 종류의 불안감과 위기감, 공포감이야말로 이러한 과학기술과 사회가 맺는 관계의 이중성과 모순성을 잘 드러내준다.       

환경운동가로서 흔치 않게 원전을 지지하는 마이클 쉘렌버거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목소리 높여 비판하면서 단숨에 국내 유명인사가 되었다. 원자력공학을 전공한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의 주장 역시 다른 원자력전문가들과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시민들이 원전에 대한 부족하고 잘못된 지식 때문에 공포에 휩싸여 있으니 더 많은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문제는 원전이 아니라 사람이다. 분명 불안감을 느끼는 시민들은 원자력전문가에 비해 관련 지식이 부족할 것이다. 하지만 쉘렌버거가 잘 모르는 사실을 시민들은 알고 있다. 왜 원전을 둘러싼 전문가들이 원자력 마피아라고 불리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내재하는 위험을 말이다. 시민들이 보기에도, 원전이 문제라기보다 사람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