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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 ‘가짜학문 제조공장의 비밀’ 시민 초청 시사회 발언문 (2018.7.23)

실제 행사에서는 보도영상을 다시 보면서, 또 나보다 앞서 교수노조위원장이 '성명서를 발표해서 교육부나 연구재단에 책임을 묻겠다'는 식의 발언을 하는 것을 듣고 생각이 많아져 좀 다른 소리를 했다. 그래서 아마 내 기억에 꽤나 횡설수설했던 것 같은데, 같은 자리에 계셨던 분들께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 어쩌다보니 뉴스타파가 7월 중순 보도한 WASET 등 '가짜학회' (뉴스타파가 사용한 단어. 이후 정부는 '부실학회'라는 단어를 쓰는 것으로 방침을 정한 듯 하다) 이슈에 끼어들어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하게 되었다. 학술정책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었으니 predatory journal/publisher 주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언젠가 한번 꼭 연구를 해보고는 싶었는데 그 전에 이렇게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줄은 몰랐다. 

그 전까지 같은 주제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생각을 말한적도, 어떤 결과물을 낸 적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뉴스타파 시민 초청 시사회에 초청된 것은 다름 아닌 인맥 덕분이었다. 전에 이우창 선생님과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이 주제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잠깐 언급했던 것을 선생님께서 기억해주셨고, 이후에 뉴스타파에서 코멘터리를 부탁하기 위해 대학원생노조에 연락했을 때 신정욱 선생님이 적절한 사람을 찾다가 이우창 선생님한테서 나를 추천받아 이어준 것이다. 

그 결과 아래 영상에서 볼 수 있듯 행사에 참석하여 한마디 하게 되었다. 영상 링크(https://youtu.be/uqWfJlxUxEI, 관련 기사는 https://newstapa.org/43821)에 당시 했던 말과 함께 준비했던 발언문을 공유한다. 원래 발언문을 그대로 거의 읽으려고 했으나, 실제 행사에서는 보도영상을 다시 보면서, 또 나보다 앞서 교수노조위원장이 '성명서를 발표해서 교육부나 연구재단에 책임을 묻겠다'는 식의 발언을 하는 것을 듣고 생각이 많아져 좀 다른 소리를 했다. 그래서 아마 내 기억에 꽤나 횡설수설했던 것 같은데, 같은 자리에 계셨던 분들께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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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 전준하입니다.

우선 언젠가는 한번 꼭 짚고 넘어가야 했을 학계의 문제를 이렇게 공들여 탐사보도를 통해 밝혀주신 뉴스타파 기자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의 소개를 통해 발언 기회를 얻었기에 저를 초청해주신 대학원생노조에도 감사말씀 드립니다.

뉴스타파 보도는 주로 학술대회에 초점을 맞췄지만, 저는 '가짜' 학술지도 주제로 포함하여 좀더 포괄적인 문제를 지적하고자 합니다. 가짜 학술대회와 가짜 학술지 문제는 사실 2010년대 초반부터 그 시장이 성장하기 시작해 이제는 연구자라면 누구나 접해봤을 문제로 커졌습니다. 제프리 비알이라는 한 전문사서가 2009년 10개 저널을 가짜로 규정하고 블랙리스트로 만든지 10년도 안되어 리스트에는 1000여개가 넘는 저널이름이 올랐습니다. '발각된' 케이스만 1000여종이니 실제로는 훨씬 더 클 것입니다. 또한, 기사에서 다룬 OMICS라는 업체 하나만 해도 2016년 기준 700개가 넘는 학술지를 발간하여 5만여개의 논문을 실었고, 25개국에서 3000여개의 학술대회를 개최했다고 합니다. 해당 업체는 거꾸로 기존 학술지 업체를 사들일 정도로 커졌습니다.

오히려 학회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우리가 '학빙여'라고 줄여부르는 '학회를 빙자한 여행'을 다니는 연구자들의 비윤리적 행위 문제와 이들에게 들어가는 (주로 국가 세금으로 지원하는) 연구비 낭비 문제로 사안이 국한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해당 학회를 개최하는 WASET이나 OMICS 같은 업체들은 더 나아가 '가짜' 학술지를 발간하고 있으며, 여기에 검증되지 않은 논문들이 실리는 것까지 하나의 사이클로 본다면 이는 학문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원래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은 동료심사라는 과정을 거쳐 우리 사회의 지식체계를 구성하는 단위로서 그 자체로 어느 정도의 권위와 신뢰를 가지고 있는데, 그 권위와 신뢰를 보장하는 제도를 거치지 않은, 심하게 말하자면 보기 좋게 쓰인 막말이 - 뉴스타파가 SciGen으로 쓴 논문을 발표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이 - 지식체계에 마구잡이로 침투해 물을 흐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우리가 다뤄야 할 질문은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대학원생 입장에서 이런 가짜 학술지와 가짜 학술대회가 가지는 매력을 분석함으로서 이 질문들에 대답하기 위한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관련 문제에 대해 연구한 여러 논문들이 가짜 학술지 및 학술대회에 논문을 제출한 저자들 중 다수가 개발도상국 출신의 포닥이나 박사과정이라는 점을 지적한 바 있기 때문에 실마리를 찾기 좋은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뉴스타파 보도에서도 잠깐 언급이 되지만 대학원생들에게 있어 이런 학술대회 및 학술지는 까다롭지 않으면서 - 즉 발표를 거부당하거나 심하게 비판받지 않으면서 - 해외 학회 내지는 학술지의 경험을 할 수 있고 동시에 이른바 '꽁돈'으로 학빙여를 하거나 개인 연구 성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매력적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연구평가체계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경우 연구내용보다 연구를 통해 나온 결과물, 즉 해외학회 발표 몇 건, 해외학술지 게재 몇 건 등이 성과의 주요 요소로 여겨지기 때문에, 이러한 연구평가체계 하에서 성과압박이 점점 커지고 있는 환경에 놓인 포닥이나 대학원생에게 이런 학회 및 학술지는 쉽게 졸업하고 쉽게 임용될 수 있는 길로 보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론 제도 탓만 할수는 없겠지만 이는 가짜 학술지 및 학술대회 문제가 얼마나 연구생태계 전반과 깊게 상호연관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또한, 해결방안을 도출하기 위해서 저는 비양심적인 연구자 개개인을 탓하는 정부 및 연구비 관리조직과 반대로 이들과 함께 관 주도의 학술정책을 탓하는 개개인 연구자로 양분된 두 시각 사이에 공백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공백을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증빙가능한 연구비 집행과 가시적인 성과를 원하는 정부나 연구재단, 대학 산단과 더 많은 연구비를 따고 더 많은 논문을 내는 데에 급급한 연구자는 가짜 학술지 및 학술대회와 그 곳에 참석하고 논문을 게재하는 연구자처럼 공모 관계에 있고, 그 사이에 학문과 연구생태계는 점점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생산하는 것이 가짜든 진짜든 더 많이 더 빨리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 '공장'이 되어갈 뿐입니다.

연구를 하는 사람으로서 뉴스타파 보도를 계기삼아 연구자들이 먼저 나서 함께 반성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오늘과 같은 자리를 계속 만들어 논의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뉴스타파와 같은 언론이 계속 감시하고 문제의식을 가진 연구자들이 모여 목소리를 낸다면 '공장'과 다를 바 없는 지금의 연구생태계에서 벗어나 정말 사회에 기여하고 지식을 창출하는 연구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