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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윤리 대토론회Ⅰ] 연구윤리 무엇이 문제인가 패널 토론문

어쩌다 과총에서 개최한 "연구윤리 '대'토론회"(1회)에 참석해서 몇마디 했다. 
4명의 발제는 나쁘지 않았으나, 패널 토론은 언제나 그렇듯 급하게 각자 자기 할 말만 하고 끝났다.

2회차 때에는 패널이 더 많았던 것으로 아는데 발표자 포함 16명의 패널을 1시간 남짓 안에 토론을 하라고 하니 제대로 토론이 될 수 있겠는가...

(행사 기사 링크: 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861748.html)

어쨌든 나는 과총에 계신 분들이 좋아하는 단어인 '젊은' 내지는 '청년'에 해당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는데 (기사에서 말하는 것과 달리 학생대표로 참석한 것은 아니다. 토론문에도 언급하겠지만 과총 관계자가 과총에서 발간하는 <과학과기술>지의 '젊은이의 광장'에 실은 기고문을 보고 뒤늦게 연락을 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를 초청한 건 구색맞추기가 아니었나 싶다.

또한 아래 가져온 토론문은 사실 일침에 가까운 발언(자리에 앉아있는 시니어급 연구자들에 대한)이었는데 끝나고 점심시간에 '젊은 친구그 기특하군' 류의 칭찬만 들었다... 높으신 분들부터 제대로 된 반성을 해야할텐데...

그래도 페이를 나쁘지 않게 받았으니 용돈은 감사합니다 과총.

아래는 내가 준비해 갔던 토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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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저리도 대단한 분들 사이에 듣도 보도 못한 대학원생이 끼게 되었나 의아해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저는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 전준하라고 합니다. 과총에서 발간하는 과학과기술지 9월호에 와셋 사태 관련해서 기고를 한 것이 과총 관계자분 눈에 들어 뒤늦게 토론 패널로 초청해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 토론회 부제가 ‘연구윤리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조금 괘씸하게 들릴 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나름대로 질문에 답을 하자면 문제는 당연하게도 많이들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고, 왜 많이들 지키지 않느냐하면 왜 지켜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며, 왜 지켜야 하는지 모르냐하면, 윤리란 본디 ‘공동체’의 유지와 존속을 위해 있는 것인데, 아무도 ‘연구공동체’의 유지와 존속에 관심이 없고 연구자 개개인은 살아남기에 급급해 자신의 실적 쌓는데에만 관심을 가지니 연구윤리를 지킬 이유를 못 느끼는 것이지요. 그렇게 ‘과학기술인’이라고 지칭할 만한 연구공동체는 서서히 붕괴되는 것입니다.

단순히 연구자 개개인이 문제라고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연구윤리,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지키지 않는 다른 사람’이 문제라고 하는 연구자, ‘규정에 없으니 문제될 것 없다’고 하는 연구자 등과 같이 문제를 타자화하기만 해서는 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연구 자율성을 그토록 외치던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연구윤리를 위반한 연구자들을 걸러내지 못한 채 정부 탓, 연구재단 탓, 대학이나 연구원 본부 탓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자율적으로 돌아갈 연구공동체가 없다고 고백하는 꼴이지요.

연구공동체가 없다는 말은 곧 연구자들이 서로 ‘동료 연구자’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연구자가 논문을 표절했는지, 연구 저자에 누군가를 끼워 넣었는지, 연구비를 빼돌렸는지, 이른바 가짜 학회에 다녀오거나 가짜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했는지 등 연구 윤리 위반 여부를 가장 잘 아는 사람도, 한 연구자의 역량과 그가 쓴 논문의 질, 의미와 가치, 성과를 가장 잘 아는 사람도 동료 연구자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과학기술계에서는 누군가 연구윤리 위반을 해도 모르거나 모른 척할 따름이며,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연구엔 평소 별 관심이 없다가 평가 요청이 오면 그제서야 해당 연구자가 논문을 몇 편 썼는지, 게재한 학술지의 인용 지수(Impact Factor)는 몇인지, 피인용수는 몇이고 H-index는 몇이며 타간 연구비는 얼마인지 살펴볼 뿐입니다.

제가 본 토론문을 통해 제안, 아니 부탁드리고자 하는 것은 대단한 아이디어나 거대한 정책이 아닙니다. 오늘 토론회에 참석해주신 연구자분들께서 바쁘더라도 조금만 더 시간을 내어 동료 연구자들에게 동료 연구자가 되어 달라는 것입니다. 옆방 교수님이 최근 해외 학회를 다녀왔는데 조금 미심쩍다 싶다면 넌지시 ‘실수로 모른 채 갔겠지만 그 학회 말이 많더라’고 한마디를 건네고, 맞은 편 방 교수님이 새로 쓴 논문에 대해 뭐든 좋으니 질문 한두개만 던져보십시오. 후배 연구자나 대학원생에게 성과를 재촉하기 전에 그가 쓴 논문 초고를 읽어보고 간단하게나마 평과 함께 조언을 해주십시오. 서로 동료 연구자가 되어주고, 그로써 연구공동체가 형성되면 자연스레 연구윤리도 지켜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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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위 토론문 주제는 최근 BRIC에서 발간한 <유사학회 와셋 사태 인식과 대응방안 의견조사 보고서>를 읽으면서 작성했다. 
설문조사에서 연구자들은 사태의 원인을 주로 양적 연구사업 평가 지표에 대한 문제와 연구자 개인의 학문적 부도덕성으로 보고 있었다. 각각 33~34%. 반면 '학계 내부 무관심, 방관, 건전 견제 상실'을 지적한 사람은 절반도 안되는 14%였다. 책임지고 나서야 할 기관 역시 연구사업 관리기관과 정부 부처가 34%, 24%로 가장 높았고, 연구공동체, 학문공동체의 기초단위라고 할 수 있는 개별학회라고 답한 사람은 8%밖에 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