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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김영민 교수의 칼럼과 그에 대한 채효정 선생의 비평에 부쳐

김영민 교수(서울대 정치외교학부)의 칼럼은 '하향평준화' 중인 일간지 칼럼/사설 면에서 여러모로 군계일학이라 부를만하다. 한국일보(아침을 열며, 김영민 칼럼), 한겨레(논어 에세이), 경향신문(사유와 성찰) 등 4년째 유수 일간지에서 그를 고정 필진으로 두고 있는 이유가 분명 있다. 최근에 그가 쓴 <"추석이란 무엇인가" 되물어라>라는 칼럼이 SNS를 통해 널리 공유되면서 그의 칼럼을 정주행 하는 사람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아예 그의 칼럼 링크를 모두 정리하여 블로그에 올린 사람도 있고, (링크: https://www.seojoohyun.com/2018/09/kim.html) 한국일보는 별도 인터뷰 시리즈에 그를 포함시켜 인터뷰를 하기까지 했다. (링크: https://hankookilbo.com/News/Read/201810041995769498)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그에 따라 주어지는 발언권을 전문가인 척 행세하고 누군가를 꾸짖는데 남용하는 필진이 난무하는 사이에 그의 칼럼은 확실히 유머가 있어 읽는 재미가 있고, 밑도끝도 없는 꾸짖음보다는 유쾌한 (혹은 찔리는) 방식으로 사례를 들며 그의 생각을 제시한다.    

무엇보다 '~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목으로 즐겨 쓰는데, 그가 가진 일종의 습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습관은 여러모로 그가 연구를 할 때와 같이 삶을 살며 어떤 문제에 대해 고민할 때 많은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습관으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내 지도교수님은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언제나 2X2 Matrix를 그리는 것으로 고민을 시작하곤 했다. 그 습관은 교수님이 지금까지 살면서 여러 문제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시도하시는 것 같다.) 칼럼을 쓸 때 역시 그 습관을 통해, 또 그의 타고난(?) 글쓰기 능력을 통해 여러 번 마주했을 마감을 무탈하게 넘겼을 것이다. 그렇게 나온 최소 4편의 칼럼은 모두 '무엇인지' 물었던 그 대상에 대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그럴듯한 설명이 되었다.

SNS를 통해 최근 연달아 '위력'이란 무엇인지 묻고, '추석'이란 무엇인지 물으라고 한(김영민 교수는 후자의 글에서 '추석이란 무엇인가'라고 직접 묻기보다 '~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의미와 그 효과에 대해 적었다) 그의 칼럼에 불편함을 호소한 채효정 선생의 글을 읽었다. 총 4편의 글을 연이어 SNS에 공유하며 내 견해 역시 짧게 남겼다. 요약하자면 김영민 교수의 '위력이란 무엇인가' 칼럼에 대한 채효정 선생의 비평은 여러모로 과하다고 생각했고, 두번째 '추석이란 무엇인가' 칼럼에 대한 채효정 선생의 비평은 나 역시 채효정 선생과 같은 이유일지도 모를 불편함을 느꼈기에 꽤나 공감했다.

다만, 이 블로그 포스팅을 올리면서 다시 천천히 4편의 글을 읽어보니 역시 글은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김영민 교수가 쓴 칼럼과 같이 짧고 직접적인 대답보다 질문을 던지는 글에서는 더더욱. 그리고 아마도 두 분 모두 어느 정도 고민했을 '칼럼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나 역시 채효정 선생과 같이 어느 정도 편협한 생각을 갖고 있었음을 - 어쩌면 지금도 갖고 있음을 - 고백해야겠다. 위트와 유머는 도구로 적당히 사용하고 비평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생각은 분명하게 드러내야하며 그 생각은 되도록 '뻔하지 않아야'한다는 것이다. 다시 읽어보니 김영민 교수의 '추석' 칼럼은 떠먹여주지 않았을 뿐 나름 '~이란 무엇인가'라는 정체성을 묻는 질문을 통해 그것이 과거의 그것과 달라졌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는 메세지를 가지는 듯 하다. 이제는 그 '무엇인가'라는 질문도, 친구를 팔아 넣은 에피소드도 나름 해당 칼럼 안에서 제 역할을 충실히 (여전히 에피소드는 과하다고 생각하지만) 하고 있다는 것이 보인다. 

에효, 이 짧은 글 4편에 대해서도 이리 생각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아래 4편의 글 링크를 공유하며, 공유할 때 당시 내가 덧붙인 문장 역시 써놓는다.

1. 김영민, 위력이란 무엇인가 (2018.8.24,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808242030005
채효정, (페이스북 글이라 제목이 따로 없음. 2018.8.27) https://www.facebook.com/measophia/posts/1660746687367064    

경향신문에 실렸던 <위력이란 무엇인가>라는 칼럼에 대한 한 페친의 지적이다. 칼럼에서 '유효'했다고 생각하는 한 문단과 함께 2~3주 후에 나올 내 글을 홍보하는 용도로 칼럼을 공유했는데, 이 글의 지적 역시 '유효'하다고 생각해서 공유한다. 내가 공유한 글에 대해서는 나 역시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나 역시 칼럼에서 내가 공유했던 문단 외로는 딱히 별 의미없다고 생각했고, 좋은 글 아닌 잘 쓴 글이라는 생각 역시 동의한다.

다만, 이 칼럼에서 말하는 '위력'에 갑자기 성폭력이라는 상황을 덧씌우고 심각하게 다루지 않았다고 비판함과 동시에 김영민 교수의 고백과 김지은 씨를 비롯한 미투운동 고발자의 고백을 비교하며 '넌 그럴 자격 없다'고 몰아세우는 것은 과하다고 생각한다. 김영민 교수도 그럴 목적은 아니었을 거라 믿는다.

또한 내 공부가 부족한 탓에 바흐찐과 루소 사이 일화를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으나, 칼럼이 "모두가 통쾌하게 웃는 해방의 웃음"을 주기보다 "부르주아적 위트"를 구사했다는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글에서 '비웃음'을 읽기보다 우리가 매일 목도하고 체감하지 못하면서 체감하는 위력의 원리와 함께 그 안에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우리 모습에 대한 '쓴웃음'을 읽었다. 일간지에 이른바 '오피니언 리더'들이 관례상 돌아가며 쓰는 짤막한 칼럼의 전형 중 그나마 괜찮은 '세상은 요지경' 류다. 이 칼럼을 공유한 사람들은 아마도 좋은 글이라서라기보다 만평을 공유하는 기분으로 했을 것이다.

이와 별개로... 일간지 사설/칼럼 지면은 큰 의미 없는 글이 실리도록 이미 제도화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모두 다 같이 하향평준화 될까 걱정이다.

2. 김영민,  "추석이란 무엇인가" 되물어라 (2018.9.21,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809211922005.
채효정, (역시 페이스북 글이라 제목이 따로 없음. 2018.9.25) https://www.facebook.com/measophia/posts/1694168380691561

- 저번과 마찬가지로 아래 공유하는 페친의 최근 김영민 교수의 칼럼에 대한 감상은 일부분 과대해석에 기반하고 있지만 나 역시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김영민 교수가 웃자고 쓴 별 의미없는 칼럼이 어쩌다 이렇게 널리 공유되었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웃자고 쓴 글이 크게 웃기지도 않았고(이건 지극히 개인 성향 문제) 명절 스트레스라는 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풍자도 아니었고, 그에 바탕한 확실한 해결책을 제시한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써먹은 사람이 있다면 제보 부탁)

비슷한 시기 김영민 교수가 대학신문에 기고한 칼럼은 이렇지 않다. 나는 그래서 이분이 칼럼 필진에 타의로 참여하게 되었거나, 일간지 칼럼'계' 전체에 대해 반항을 하고 있거나, 본인 칼럼 컨셉을 무겁고 진지한 시평 사이 가볍게 읽을 만평 정도로 설정한 것인가 싶다. 무엇이 되었든 그의 칼럼이 다른 칼럼에 비해 훨씬 공유가 많이 되고 읽히고 있으니 성공한 셈이다. 하지만 바라건대 김영민 교수가 아래 공유한 글의 마지막 문단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그 자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 단순 웃음거리 그 이상의 글을 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물론 이는 다른 일간지 칼럼 필진 모두에게 해당되지만, 그에게 분명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아니깐 (워낙 아닌 '논설위원'도 많아서...) 해보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