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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행복

고등학교 때 친하게 지낸 친구 녀석이 결혼했다. 워낙 잘 생기고 공부도 잘하고 착하기까지 해서 고등학교 때도 인기가 많았던 친구다. 그래도 같은 반 친구들한테는 연락 돌리라고 한소리 했는데 결국 계속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들만 초대한 듯 했다. 때문에 대전에서 있었던 친구 결혼식에 비해 동창회 느낌은 덜했다. 물론 워낙 인기가 많아 굳이 여기저기 알리지 않아도 찾아온 친구들이 많아 보였다. 친구 단체 사진만 세 번으로 나누어 찍었다. 

친구를 떠올리면 나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곤 했다. 대학에 진학한 지 얼마 안되어 친구 아버님께서 돌아가셨을 때다. 장례식에 간 건 처음이라서, 또 친구 마음이 어떨지 가늠하기도 어려워서 한 번 따뜻하게 안아주지도, 심지어는 눈을 제대로 맞추지도 못한 채 맞절만 하고 돌아섰다. 분향을 위해 줄서서 기다리며 머릿속으로는 고민은 많이 했지만, 막상 너무 수척하고 많이 운 듯한 친구 얼굴을 보니 말문이 막히고 몸이 굳었다. 그것도 그렇지만 밤새 자리를 함께 하지 못한 것도 참으로 미안했다. 친한 친구라면 통상 그렇게 한다는 사실도 모를 때였다. 식사만 하고 자리를 떴던 그 때를 후회하곤 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입구에서 하객들 맞이하는 친구를 말없이 안아주고는 형언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에 한숨과 함께 '가는구나'하고 말았다. 기쁜 날인데 나는 왜 그랬나. 뒤돌아서 뒤늦게 후회했다. 나중에 인사 차 친구와 신부, 양가 부모님께서 자리를 돌아다닐 때 행복하라고 여러 번 말해주었다. 행복해라. 잘 살아라. 물론 워낙 정신 없었을테니 제대로 들었을지, 기억은 할 지 모르겠다. 아무렴 어떤가. 행복해라. 잘 살아라.

요즘 나는 명상을 한다. 어쩌다 SNS를 통해 접한 기회로 '마보'라는 명상 어플 1개월 이용권을 받아서 쓰고 있다. 올해 초만 했어도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 내가 명상을 한다니. 무엇보다 최근에 잠을 잘 못 자서, 그렇다고 매일 술을 마시거나 멜라토닌을 먹는 건 꺼려져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어플을 다운 받았다. 명상 어플이라고 해서 별 게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주제별로 강사가 녹음한 명상 가이드를 틀 수 있는 어플이었다. 명상이라는 것도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별 거 아니었다. 그냥 호흡과 몸 감각에 집중하며 잡념을 떨치는 연습이었다. 신기하게도 어플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잠을 잘 자고 있다. 잠자기 전 하는 명상은 10~15분 남짓인데, 끝날 때 쯤 되면 '아, 잠들 수 있겠다' 싶고, 몇 분 후에는 잠에 든다.  

그렇게 매일 잘 때만 활용하던 어플을 결혼식 가는 길에 켜보았다. '나와 모든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기'라는 제목의 명상이 눈에 띄었다. 지하철에서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강사를 따라했다.

숨을 들이쉬며,
'내가'.

숨을 내쉬며,
'행복하기를'.

숨을 들이쉬며,
'친구가',

숨을 내쉬며,
'행복하기를'.

숨을 들이쉬며,
'우리가',

숨을 내쉬며,
'행복하기를'.

다섯 번 쯤 반복하고 나니 역에 도착했다. 

요즘 인스타그램을 엿본다. 예전 미국에 있을 때 같이 있던 사람들이 다들 하길래 잠깐 했었지만, 사진을 올려야만 하는 SNS라서 그런지 경쟁하듯 넘쳐나는 자랑 포스트를 보고 있기가 힘들어 안하고 있었다. 여전히 아예 그런 생각이 안 드는 것은 아니지만, 좀더 자주 엿보다보니 관점이 바뀌었다. '그래 너라도 행복해(보여)서 참 다행이다.' '너는 잘 살고 있구나, 잘 됐다.'

반면 페북은 인스타그램에 비해 어두운 감정이 더 많다. 위로를 구하는 글도 많다. 페북은 이제 내게 뉴스 채널 역할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그런 감정을 내보이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역시 처음에는 왜 저럴까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도 용기라 생각한다. 내겐 그 용기가 없다. 이 블로그 '끄적끄적' 카테고리 글이 늘어만 가는 이유다. 

어쩌다보니 내게 행복은 너무도 아득해져버렸다. 명상을 하면서도 '내가', '행복하기를'을 되뇌일 때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졌다. 왜 친구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건 이렇게나 쉬운데, 왜 나 자신한테는 이토록 어려울까.

하지만 명상의 핵심은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 데에 있다.

'친구가,'

'행복하기를.'

'우리 모두가,'

'행복하기를.'

'너도,'

'행복하기를.'

'내가,'

'행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