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회사를 다니면서 글을 기고하는 일이 줄었다. 2020년에는 꼭 기고가 아니더라도 글을 더 많이 써야 할텐데...

대학원 졸업할 때즈음부터 계속 써야지 써야지 했던 소재와 주제를 2019년 하반기에 와서야 <철창 속 일차원적 연구자>라는 제목으로 과학뒤켠에 기고했다. 아래 과학뒤켠 공식 블로그에서 읽는 것을 추천한다. 내 마음에 가장 드는 문단 하나만 인용하자면..

"오늘날의 연구자 자아정체성은 [인정 대신] 성과 지표로 구성된다. 연구자의 이력서에는 연구 주제나 중요성 대신 끝없이 긴 논문 출판 목록이 나열되어 있다. 동시에 학계에선 제대로 된 동료평가 문화가 사라져간다. 굳이 바쁜 시간 내어 다른 연구자가 무엇을 연구했는지, 연구 과정과 결과는 타당한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따질 필요가 없다. 두 명 남짓한 익명의 평가자가 통과시켰으니 논문으로 출판되었겠지 싶다. SCI와 같은 인용색인에 등재된 학술지면 더더욱 믿을만하다. 연구자들은 평가를 아웃소싱 했고, 그 자리는 인용색인시스템과 성과지표가 채워왔다. 이것 없이 학계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즉 학계는 더 높은 성과지표가 인정을 대체한 금융시스템이자 경쟁사회가 된 것이다."

더 읽기: https://behindsciences.kaist.ac.kr/2019/12/23/%EC%B2%A0%EC%B0%BD-%EC%86%8D-%EC%9D%BC%EC%B0%A8%EC%9B%90%EC%A0%81-%EC%97%B0%EA%B5%AC%EC%9E%90/

p.s. 이름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으시는 것도 같아 SNS에는 따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만화 일부 사용을 허락해주신 신인철 교수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포닭 블루스 책도 구매해서 너무 재밌게 봤고 이후 연재 중이신 조교수 블루스 역시 너무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참 쓰기 힘들었던 과학뒤켠 기고글이다. ('글쓰기가 두렵다' 포스팅 참고)

원문은 여기에 전부 옮겨오기보다 과학뒤켠 홍보 차원으로 과학뒤켠 블로그에서 읽어주시길 부탁드린다. 

(링크: https://behindsciences.kaist.ac.kr/2018/10/07/%EB%8C%80%ED%95%99%EC%9B%90%EC%97%90-%EC%83%81%EC%8B%9D%EC%9D%84-%EB%AC%BB%EB%8B%A4/)

과학뒤켠 매 호는 PDF 파일로도 볼 수 있다. 이 글은 파일에서 꽤 뒤쪽에 있고, (링크: https://stp.kaist.ac.kr/0608/view/id/1033) 여기에는 파일이 커서 전체를 첨부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 부분만 잘라서 첨부했다. 

아래에는 개인적으로 가장 쓰기 고통스러웠지만 써놓고 보니 고민했던 것들이 풀리는 기분이라 후련했던 "교수니까 괴수다"라는 소제목을 붙인 부분에서 일부만 인용하겠다. 

차후 과학뒤켠에 실은 내용은 논문이든 책의 한 단원이든 좀더 발전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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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 인권침해 문제는 ‘극소수 괴수’만의 문제일 뿐 ‘대다수 교수’는 문제없다는 사고방식과 태도는 분명 논파할 필요가 있다. ...(중략)... 하지만 괴수와 교수를 나눠 생각하는 이분법적 사고는 문제를 일으킨 교수를 괴수라는 다른 유형의 사람으로 구분하고 이해할 수 없는 영역으로 치부한 채 괴수가 따로 있지 않다는 사실과 교수니까 괴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중략)...
교수는 때에 따라, 장소에 따라, 상대하는 사람에 따라 괴수이기도 아니기도 하다. 괴수라는 유형의 사람이 따로 있어 그가 인권 침해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교수도 인권 침해를 할 수 있으며 그 순간 바로 괴수가 되는 것이다. 이는 교수가 아니고서는 괴수가 될 수 없다는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논문지도를 모텔에서 해주겠다거나, 훈계라면서 폭언이나 폭행을 일삼거나, 인건비를 횡령하거나 연구저작물을 가져가고, 이를 지적하거나 고발한 대학원생에게 학계에 발을 못 붙이게 하겠다고 협박하는 등 교수에 의한 대학원생 인권 침해 사건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유형은 모두 그가 교수이기 때문에 저지를 수 있었던 짓이다. 운 나쁘게 괴수임이 드러나도 대부분 교수로 구성된 징계위원회로부터 휴가에 가까운 정직이라는 중징계를 받고서 다시 교단에 설 수 있는 것 역시 그가 괴수이기 이전에 교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교수라는 사람이 그럴 수 있지?’라고 물을 것이 아니라 그가 교수라서 그럴 수 있었다는 생각을 갖고 ‘괴수가 된 교수’를 이해해야한다. ...(중략)... 교수가 어떻게 괴수로 변하는지를 이해하고자 노력할 경우 우리는 교수가 대학에서, 특히 대학원생과의 관계에서 어떤 입장과 위치에 서게 되는지, 어떤 요소들이 교수라는 자리를 구성하고 그 중 어떤 것이 괴수를 만드는 데에 기여하는지를 분석할 수 있다. 즉, 괴수를 개인이 아닌 사회 현상으로 바라볼 수 있으며, 이는 제도적 해법을 도출하기 위한 첫 발걸음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교수는 어떻게 괴수가 되는가?

...(후략: 여기까지 읽을 정도로 글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원문을 읽으시는 것으로!)...


워싱턴 DC에서 싱크탱크 인턴으로 일하며 경험한 것 중 가장 인상깊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DC의 싱크탱크 생태계다. 비슷한 표현을 내 자기소개서나 대학원 sop 등 여러 군데에서 써먹기도 했는데, 적어도 수십개의 싱크탱크가 정책연구보고서를 내놓고 토론회를 열고 로비 활동을 하면서 일종의 정책 시장을 형성하는 모습을 나는 굉장히 부러워했다. 민간 싱크탱크가 전무한 우리나라에서 정부 부처나 출연연이 직접 혹은 용역을 통해 정책연구를 수행하는 모습에 비하면 미국에는 말그대로 선진형 정책연구 생태계가 조성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DC에서 내가 본 것을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항상 내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때마침 대학원 내에서 <과학뒤켠>이라는 학생잡지 발간 모임이 구성되어 작게나마 이를 통해 뭔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계획은 이랬다. <과학뒤켠(Behind Sciences)>이라는 학생잡지에 'Policy Section(정책섹션)'을 고정 섹션으로 두고 거기에 Short Policy Review라는 항목을 만들어 매 회 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과 같은 출연연이나 정부 부처 산하기관에서 발간하는 과학기술정책 연구보고서를 리뷰하는 것이다. 

그렇게 과학뒤켠 정책 섹션장을 맡게 되었고, 2호까지 발간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아래 내가 작성했던 섹션 소개글을 옮겨놓는다. 

"과학기술은 일부의 것만이 아니다. 

[정책] 섹션에서는 흔하고도 뻔한 ‘과학기술이 우리의 삶과 밀접하 게 연관되어 있다’는 명제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고자 한다. 바로 ‘과학기술의 공공성’이다. 과학기술이 정책의 목적이 되기도 하고, 동시 에 정책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과학기술의 공공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과학기술정책에 대해 중요하게 논하는 가장 큰 이유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물론 과학기술 분야만의 일은 아니겠지만,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논의를 하는 자리가 곧 관료나 정치인에 대한 성토의 장이 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관료나 정치인이 아니라 과학자나 다른 정책 전문가에게 일을 맡기면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까? 모두가 불만족스러워하는 과학기술정책,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며칠 사이에도 수많이 열리는 정책토론회, 쏟아져나오는 정책 보고서 및 연구결과… 결코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나 필요한 ‘자료’가 부족하지는 않다. 다만 그 자리들과 자료들이 충분히 피드백을 받아 선순환적 정책 발전 에 기여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깊은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뒤켠으로 사라져버리거나, 주목을 받았지만 특정한 관점에서만 논의된 여러 과학기술정책담론들을 조명하는 것, 과학뒤켠의 정책 섹션이 수행하고자 하는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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