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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연구자/사회학스터디

[현대사회학] 현대 페미니스트 이론

스터디 논의 내용만 정리하다보니 정작 책에서 읽은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고 다시 찾아 읽으려해도 접근성이 떨어져 책의 각 단원별로 중간과 마지막에 정리된 요약과 개념을 번역해서 올려둔다. Notion 링크로 공유하니 논의 내용보다 책 내용이 궁금한 사람은 해당 문서만 보면 되겠다.

이번 단원 정리 link: https://www.notion.so/realjoonha/Chap-8-Contemporary-Feminist-Theories-Summary-Concepts-30393650b3d84916905104631ad32a4c

지난 스터디를 마무리하고 다음 일정을 잡으면서 책 8단원 주제를 살펴봤을 때 내 마음은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2년 전 <대학원생 권리강화 방안 연구>를 수행하면서 뿌리깊게 자리잡은 권력구조와 그 파급효과에 대한 관심이 커졌는데, 막상 대학 혹은 학계 안에서의 사례연구나 이론이 많지 않아 다른 분야를 살펴보니 페미니즘이야말로 정말 오랫동안, 또 광범위하게 젠더 간 권력 관계와 그로 인한 차별과 억압을 연구해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부터는 특히 관심이 깊어졌다. 하지만 나름 관심을 갖고 이런 저런 글을 찾아 읽었다고 하더라도 기사나 칼럼, 차별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연구논문이 주를 이뤘고 부끄럽게도 이론을 공부한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한편으로 기대가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스터디원 중 나만 남성이라는 점은 신경을 쓰지 않을래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책을 읽다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나오거나 내 의견에 반하는 내용이 나왔을 떄, 그것을 전처럼 천진난만하게 잘 모르겠으니 설명을 부탁하거나 의문을 표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 또 반대로 내가 남성이기 때문에 같이 스터디하는 분들이 내 눈치를 보고 솔직하지 못하는 건 아닐지 걱정했다. 피차 조심스러워하는 것은 나쁠 게 없지만, 나도 여성들과 페미니즘에 대해 깊게 대화를 나눠본 적이 거의 없고, 다른 분들도 비슷할텐데 이 기회에 보다 다양한 관점으로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했다. 다행히도 결과적으로 나도 용기를 내서 하고 싶었던 말은 다 했고, 물론 막상 속마음을 들춰보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다른 분들도 그런 것 같다.

다른 단원은 책의 주 저자인 George Ritzer와 Jefferey Stepnisky가 썼지만, 이 단원만 Patricia Madoo Lengermann, Gillian Niebrugge라는 객원 필진이 썼는데, 찾아보니 두 사람은 <<The Women Founders: Sociology and Social Theory, 1830-1930>>이라는 책을 집필한 바 있다. 이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페미니즘과 젠더학이 사회학에서 주변화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왜 사회학 전체를 검토하고 조망하는 책을 쓰는 저자들조차 이 단원만 떼내어 다른 저자들에게 맡기는가? 물론 내가 이번 스터디에 참여하기 전에 가졌던 마음과 비슷한 마음, '나는 남성이라 잘 모르는데...' 혹은 '내가 이 단원을 쓸 자격이 있나...'와 같은 조심스러움에서 비롯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렇다면 단원별로 각각 해당 분야 연구자에게 맡겼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 조심스러움과 책의 한 단원을 페미니스트 이론에 할애했다는 점은 분명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알게 모르게 여전히 페미니즘을 '여성'의 영역으로만 남겨두고 있는 저자들의 생각도 엿보였다.

젠더학의 위치와 페미니즘 연구자에 대한 편견은 본문에서도 나오며, 스터디에서도 논의가 되었다. 바로 다른 학문과 연구자가 그들의 실천주의적인 성향을 빌미삼아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 이론을 학문분야나 사회학 이론으로 인정하기보다 사회운동으로 보고 페미니즘 연구자 역시 연구자 아닌 활동가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고백하건대 나 역시 쉽게 그런 편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물론 젠더학과 페미니즘에만 해당하는 편견은 아니지만,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전공을 바꾸고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연구하게 된 내가 연구와 운동을 병행하는 사람들을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 아이러니하다. 학문적 가치가 기존 학계에서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분과 학문에 소속된 연구자들에 의해 결정된다거나 국내에서 제도적으로 젠더학을 전공할 수 있는 통로가 없다는 등 여러 원인이 논의되었지만 뚜렷한 해결책이 보이진 않았다. 다만 스터디원 모두 직업 연구자가 되고자 하는 게 아니더라도 학문을 하려는 이유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페미니즘에도 다양한 분파가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스터디를 통해 정리할 수 있었던 것도 큰 소득이었다. 안티페미니스트들이 페미니즘을 공격할 때 즐겨 노리는 점이 바로 이 다양성이다. 이번 스터디에서 읽은 단원에서 거의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해서 설명하듯 젠더 간 차이에 주목하는 문화적 페미니즘 (cultural feminism)과 본질주의적 페미니즘(essentialist feminism), 젠더 불평등에 초점을 맞추는 자유주의적 페미니즘 (liberal feminism), 합리적 선택 페미니즘(rational choice feminism), 젠더 억압 이론을 설명하려는 정신분석적 페미니즘(psychoanalytic feminism)과 래디컬 페미니즘(radical feminism), 더 나아가 구조적 억압 이론으로 확장시키려는 사회주의적 페미니즘(socialist feminism)과 교차성 이론(intersectionality theory)은 공통점만큼이나 차이점도 명확하다. 모두 여성의 경험과 관점에 중점을 두고 여성성을 비롯한 젠더는 사회적으로 구성된다 명제에는 동의하지만 여성의 범주나 여성성의 근원 등 다양한 곳에서 의견을 달리한다.

사실 이런 다양성은 어떤 학문에서나, 또 어떤 운동에서나 나타나는 특징인데 페미니스트, 더 나아가 여성 전체가 같은 입장을 갖도록 요구하는 것은 과한 일이다. 안티페미니스트들이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며 혐오가 아닌 연대, 페미니스트가 아닌 휴머니스트를 외치는 것이 겉보기엔 합리적일 지 모르겠다. 이 다양한 페미니즘 중 하나의 분파, 또 그 분파에서의 운동은 분명 어디선가 틀리거나 다른 페미니즘과 의견이 갈리는 지점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지점이 전혀 없는 학문이나 운동은 사이비 종교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숙명여대 일부 학생이 트랜스젠더 신입생이 입학하지 못하도록 거부 운동을 펼친 것에 비판적이지만 그 떄문에 페미니즘은 틀렸다거나 실패했다고 보지 않는다. 여성의 범주를 두고 페미니즘 사이에 이견이 있다고 이해할 뿐이다. 또한 나는 조직의 여성 비율을 늘려야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여성이 장점을 가지는 돌봄과 배려 문화가 조직에 필요하다고 할 때 그것이 오히려 여성의 역할과 능력에 한계를 노정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해당 주장에도 역시 저평가된 여성성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재발견하려는 목적이 있다. 다양한 페미니즘들은 틀리기도 하고 서로 충돌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서있는 공유지대를 바라보면 절대로 페미니즘이 틀렸다고 할 수 없다. 페미니즘은 옳다.

마지막으로 스터디원 한 분이 말씀하셨던 내용은 내게 큰 숙제를 남겼다. N번방 사건과 같은 심각한 성폭력 및 성착취 이슈에서라도 남성들이 문제의식을 공유해주고 함께 연대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는데 이제는 기대 자체를 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 분의 의견을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왜 남자들은 선악이 너무도 분명한 사안에서조차 숨기 바쁜가?

나는 다른 글(<N번방과 새벽의 방문자들>)로 남성으로서 N번방 사건을 접하며 느낀 점을 쓰기도 했고, 스터디에서도 비슷한 내용으로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았다. 남자들이 조용한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우선 N번방 사건과 같은 성폭력과 성착취를 페미니즘과 별개의 사안으로 분리하려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사실 이들은 숨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보통 조주빈을 비롯한 가해자 집단을 비판하는 동시에 페미니스트도 함께 비판하는 특징을 보이며, '우리를 잠재적 범죄자로 몰지 말라'는 구호 아래 뭉친다. 이런 주장이 왜 틀린데다가 의미도 없는지 이미 밝힌 바 있으니 길게 적지는 않겠다.

동성사회성(호모소셜)을 잃는 것, 즉 남성 카르텔에서 벗어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도 결코 작지 않지만, 내가 이전 글에서도, 또 스터디에서도 이해를 빌었던 것은 그간 남성문화 속에서 살고 또 기여해 온 자신을 버려야 하는 데에서 오는 장벽이다. 한명의 남성이 페미니즘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함께 연대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자신, 더 나아가 현재의 자신과도 단절이 필요하다. 나는 특히 섣불리 '난 아니야!'라고 외칠 수 없는데 공개적으로 연대하는 것이 마치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순적인 행동은 아닐지 고민을 많이 했다. 같은 남성문화에서 살아온 사람으로서 분명히 잘못이 있는데 그 장벽을 깨거나 뛰어넘지 않은 채 성폭력 및 성착취 가해자 집단을 향해 돌을 던지는 남성들은 앞서 말했듯이 결코 여성과 함께일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속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투표한 사람이 그의 탄핵을 외치는 촛불시위에 나가는 것에 비유하고 있을 때, 다른 스터디원분께서 탁월한 비유로 기독교인에게도 진정한 회개가 어렵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페미니스트 및 여성분들께 너무도 미안하지만 그 장벽을 깨거나 넘는 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는 점을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하지만 동시에 나를 비롯한 적지 않은 남성들이 페미니즘을 지지하고 있고, 연대에도 마음이 열려있으며,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을 수 있지만 반성하고 페미니즘을 공부하며 변화를 꾀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희망을 버리지 않고 함꼐 싸워나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