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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연구자/사회학스터디

[현대사회학] 비판이론 (Critical theory)

(이미 거의 2주 가까이 지나긴 했지만) 이번 스터디에서는 다섯 번째 단원 <Contemporary Grand Theories 2>를 다뤘다. 해당 단원은 네오맑시즘으로 묶인 Herbert Marcuse가 대표하는 비판이론과 Henri Lefebvre의 공간사회학을 시작으로 Norbert Elias의 문명화 과정(Civilizing process), Juergen Habermas의 식민지화되는 생활세계 (Colonization of the lifeworld), 그리고 21세기 초반 스터디를 하고 있는 우리와 가장 가까운 Anthony Giddens와 Ulrich Beck의 근대성에 대한 여러 논의(근대성 수레(Juggernaut of modernity), 성찰적 근대화(Reflexive modernization), 위험사회(Risk society))들을 공부했다.

책을 읽을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이렇게 한 문단으로 정리하고 나니 도대체 어떻게 한 단원에, 또 한 번의 스터디에 여러 명의 사회학 거장들과 그 논의를 다뤘는지 의아할 정도다. 스터디에서도 나왔던 이야기지만, 그만큼 책이 적지 않은 내용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윗 문단에 쓴 것처럼 학자 이름과 주요 이론이나 논의를 하나씩 짚는 방식이었다면 모두 다른 이야기로 들렸겠지만, 처음 비판이론을 설명할 때도 이들이 왜 Neo-marxian에 해당하는 지에서 출발했고, 그리고 이들이 놓치던 부분을 Elias가 어떻게 보완하려 했으며, 더 나아가 Habermas와 Giddens, Beck이 비판이론 학자들이 가지던 비슷한 문제의식을 어떻게 20세기 후반 이후 지금의 현대사회로 끌고 왔는지 그 맥락이 충분히 살아있었다.

책의 저자(George Ritzer, Jeffrey Stepnisky)는 Marxist가 경제체제, 특히 자본주의 비판에 초점을 맞춘 반면, Neo-Marxist는 그보다 문화산업에 주목했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문화가 사회의 가장 중요한 측면이었던 경제를 대체했다'고 보았다. 물론 경제의 중요성을 경시하진 않았지만, Marxist의 경제결정론(문화나 정치 등의 상부구조가 전적으로 경제라는 하부구조에 전적으로 의존한다고 보는 시각)을 거부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하지만 이를 다르게 이해하면 Neo-Marxist가 보기에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너무도 견고하게 자리잡아 이를 직접 비판한다고 해서 바뀌리라 기대하기 어려웠고, 그보다 그것을 유지시키는데 기여하는 문화산업을 비판함으로서 우회 전략을 썼다고 볼 수도 있다.

스터디에 북한학을 전공한 분이 계셔서 그 분이 북한이탈주민들을 만나며 느낀 경제와 문화의 상호연관성이 드러나는 사례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분들에게서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살고 있는 우리 - 특히 청년 - 가 느끼는 불안정이나 위기의식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분명히 일상생활에서의 사고방식과 삶을 경험하는 방식을 아우르는 문화가 일정 부분 경제에 의존하긴 하나, 단순한 일방적인 관계라기보다 자기계발이 살아남기 위한 노력을 넘어 미덕이 된 것과 같이 반대로 문화가 경제를 지탱하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즉 Neo-Marxist의 비판이론은 경제결정론 거부를 넘어 경제와 문화의 관계 재설정을 향한 것이다.

비판이론을 두고 대안보다 비판에만 치중했다는 비판이 가장 유명하다고 하나, 내게는 단순히 대안을 제시하지 못해서라기 보다 논의가 결국 자본주의 비판으로 회귀한다는 문제가 커 보였다. 경제결정론을 거부하고 문화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지만 문화가 자리잡게 된 원인과 그 문화를 유지하는 힘, 그리고 그 대안 모두에서 다시 자본주의를 끌고 들어오다보니 경제결정론을 정말 거부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물론 결국 경제체제에 계속 초점을 맞추고 사회주의를 대안으로 여겼기 때문에 Neo-Marxist인 거겠지만 말이다.

더 나아가 비판이론에서 technocracy를 너무 가볍게 비판하는 것 역시 마음에 걸렸다. 책에 따르면 비판이론은 technocracy에서 의사결정 기준으로 자리잡은 합리성(rationality)에는 이성(reason)이 부재하다며 합리성의 비합리성(irrationality of rationality)을 꼬집었다.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을 다양한 방법으로 학살한 데에는 그들 나름의 합리성이 작용했지만 결코 이성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돌아보면 얼마나 비합리적이었는지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거꾸로 '비합리성의 합리성(rationality of irrationality)'이라고도 할 수 있다. 비판이론 연구자들에게는 홀로코스트가 합리성의 탈을 쓴 비합리성의 상징이겠으나, 당시 현장에서 그 끔찍한 아이디어를 낸 독일의 군인은 분명 합리적이라고 여겼을테니 말이다.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맥락에 따라, 더 나아가 그 사람 혹은 조직,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이냐에 따라 무엇이 합리적이고 비합리적인지 뿐만 아니라 이성과 비이성 역시도 결정된다. 홀로코스트는 현대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너무도 당연히 틀렸다고 판단을 할 수 있는 사안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 무엇이 합리적이고 무엇이 비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나? 무엇이 이성적이고 무엇이 비이성적이라고 할 수 있나? 각자 가치관에 따라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는 이슈에 대해 비판이론은 어떤 비판을 할 수 있나? 이 질문들을 통해 결국 비판이론이 같은 가치체계를 공유하는 사람들만의 것은 아닌지, 또 그 가치체계가 흔들리면 비판 역시 무효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분명 일상생활에서 자본주의, 이에 더해 자유주의에 기반한 문화산업에서 불편함을 느끼곤 한다. 한 스터디원은 최근 <그것이 알고싶다>가 드러낸 '벗방'의 산업화를 보며 그것이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이 예능에 나와서 감정노동을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단지 춤과 노래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결국 돈이 되기 위해서, 또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원치 않아도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자극적인 컨텐츠에 자기 자신을 계속 노출하고 또 감정노동을 해야만 한다. 돈으로 누군가의 말과 행동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발전해서 몸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결국에는 'N번방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누군가를 노예라고까지 부르며 피해자가 원했다는 식으로 자기합리화를 할 수 있게 된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사실 대중문화산업 뿐만 아니라 지식산업이라고 부를 수 있는 학계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대학원에 진학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가 하고 싶은 연구'와 '연구비를 주는 연구' 사이에 발생하는 긴장 혹은 갈등을 경험할 수 있다. 물론 운이 좋으면 그 둘이 잘 맞아 간극이 발생하지 않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자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연구를 하게 된다. 이를 두고 단순히 연구비 지원 정책을 비판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연구비를 지원하는 데에는 이처럼 누구든지 비판이론 연구자가 말하는 '문화산업 (culture industry)'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본인의 욕구는 어느 정도 왜곡 혹은 굴절시켜야만 한다.

한편 나는 이것이 정말 자본주의 때문인가하는 질문을 던졌다. 경제체제가 다르다고 해서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대중문화인의 감정노동이 사라질 지, 또 연구자들이 느끼는 '하고 싶은 연구'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연구' 사이 갈등이 사라질 지 의문이 들었다. 다른 스터디원은 문화산업에 편입되는 것이 다른 사람들의 요구에 맞춰준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경제체제와 무관한 사회화 과정과도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주의라고 해서 그런 것들이 아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사람들에게 선택지가 줄어들 수도 있겠지만, 재화와 서비스가 거래를 통해 소비와 동시에 사라지는 자본주의에서는 생존을 위해 그 결정들을 당장 내려야 하는 상황이 잦지만 사회주의에서는 조금 더 긴 호흡을 두고 생각할 수 있을 거라는 예상을 내놓았다.

책을 읽고 스터디를 하며 느꼈던 것 중 하나는 앞에서 내가 지적했던 것처럼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너무도 공고히 자리잡았고 또 그 영향력이 결코 작지 않아 거기서 벗어나는 상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워졌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다른 스터디원이 북한학을 전공하면서 실제 사회주의의 모습은 어떻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정확히는 살았던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생활했는지를 들려줘서 어렴풋이 다른 경제체제를 그려볼 수 있었다. 동시에 경제체제를 바꾸지 않고서는 비판이론 연구자들이 비판한 대상, 문화산업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인지, 정책을 전공하며 배운 'muddling through' 전략이 통할 길은 없는지 계속 고민하게 된다. 당장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닐테니 질문들을 안고 공부를 이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