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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연구자/사회학스터디

[현대사회학] 구조기능주의와 사회이론

작년 초 시작했던 사회학 스터디에서 1년만에 고전사회학 책을 끝내고 현대사회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대학원 다니던 때와 비교해보면 읽는 양은 대폭 줄고 주기는 엄청 늘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하고 있다는 게 어딘가! <<Contemporary Sociological Theory and Its Classical Roots: The Basics>>라는 새로운 책과 더불어 스터디원 2명을 영입해서 5명으로 새출발을 한다. 일찍이 원격으로 진행하고 있던 스터디라 5명이 한꺼번에 모일 일은 잘 없어서 크게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새로 오시는 분들 모두 초면이라서 조금 긴장이 되기도 한다.

(아, 우리가 한 명 추가 모집 중이기 때문에 혹시 이 글을 읽고 스터디에 관심이 생긴 분이 계시다면 댓글로 연락처를 남겨주시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작년 멤버들과만 진행한 스터디에서는 현대사회학 책 네번째 단원 <Contemporary Grand Theories 1>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해당 단원은 파슨스(Talcott Parsons)와 머튼(Robert K. Merton)의 구조기능주의(Structural Functionalism), 다렌도르프(Ralf Dahrendorf)의 갈등이론, 그리고 루만(Niklas Luhmann)의 일반체계이론(General Systems Theory)을 다루었는데, 이전 책이 파슨스와 머튼의 주요 저작을 다루는 것으로 끝났기 때문에 앞부분은 복습하듯 읽을 수 있었다. 반면 다렌도르프는 처음 듣는 사람이라서, 또 루만은 하도 많이 들었지만 체계이론을 접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기대를 하며 읽었다. 여기서는 각 이론의 주요 내용을 요약하기보다 내가 책을 읽으며 가졌던 의문들과 스터디에서 논의한 내용을 다루고자 한다.

  1. 파슨스이 구조의 기능적 요건(functional imperatives)으로 제시한 AGIL scheme은 이해가 가지만, 그것이 어떻게 기능별 조직(society and subsystem)으로 이어지는지는 모호하다. (http://www.kapa21.or.kr/epadic/epadic_view.php?num=883 참고)

    예를 들어, 경제 내지는 생산조직이 사회에서 적응 기능을 담당한다는 식인데, 사실 기업과 같은 경제-생산조직은 적응 기능 말고도 통합, 목표달성, 체제유지 기능을 모두 담당하고 있으며 다른 조직 (혹은 구조) 모두 마찬가지다. 이런 점에서 생긴 의문인데, 논의를 하다보니 구조기능주의의 체계를 확립한 사람답게 파슨스가 현상을 관찰하고 그것에 맞추어 AGIL scheme을 짠 것이 아니라 '기업 등 경제-생산조직은 마땅히 사회에서 적응 기능을 담당해야만 한다 (그래야 사회가 존속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한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베버가 이념형을 연구한 것과 마찬가지로 파슨스 역시 사회가 굴러가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을 개념화한 것에 다름 아니고, 사회 하부 조직 및 구조는 그 요소를 충족시키기 위해 기능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AGIL scheme으로 정리했다고 이해해야 할 것 같다. 그런 면에서 파슨스로부터 20세기 인간 특유의 사회가 특정 기능을 온전히 수행해야만 유지되고 효율적으로 굴러갈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강박적인 성격이 보인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2. 다렌도르프는 구조기능주의가 갈등을 비정상적인 현상으로 치부하는 데에 맞서 갈등이야말로 사회 변화를 설명하는 요인이라고 주장하며 특정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quasi-group이 interest group으로, 또 다시 conflict group으로 진화함으로서 실제 사회적 갈등을 일으킨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 quasi-group이 형성되는 조건을 1) 구조적으로 결정될 때, 2) 단순히 운에 따라서로 나누어 전자에서 interest group으로 또 conflict group으로 조직화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회적 내지는 구조적으로 구성되지 않은 이해관계가 있을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이에 대해 곧 의료인이 될 스터디원은 quasi-group의 예로 의료인 집단 전체를 들며 이들은 물론 의료에 종사한다는 공통점 및 이해관계를 공유하지만 의료인이 된 이유는 제각각인만큼 꼭 interest group과 conflict group으로 발전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일단 의사와 간호사, 병원 운영진 등은 의료인 집단 안에서도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질 것이며, 직업이 같더라도 단순히 돈을 보고 의료인이 된 사람과 어떤 사명을 갖고 의료인이 된 사람 역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다는 뜻이다. 설명을 듣고 다렌도르프가 어떤 생각으로 조직을 나누었는지 이해가 어느 정도 갔지만, 여전히 어떻게 갈등이 표면에 드러나고 실제로 사회를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설명이 더 필요해보였다.

  3. 루만은 갈등이론의 구조기능주의 비판을 반영해서 구조기능주의를 체계이론으로 새롭게 치장한 듯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무엇이 달라졌는지 명확하지 않은 듯 하다.

    이에 대해서는 곧 미국으로 떠날 스터디원이 '구조 형성 과정'에 대한 언급 유무만으로도 크게 달라졌다는 점을 들며 의문을 해소시켜주었다. 즉, 구조기능주의는 구조 내지는 시스템의 질서 유지에 분명한 당위를 부여함과 동시에 그것이 영속적이라고 본 반면 체계이론은 진화론적 관점에 가까워서 사회가 어떻게 재생산하고 또 변화하는지 보다 현실적으로 그려냈다는 것이다. '구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질문에 구조기능주의는 답할 수 없고, 체계이론은 나름 준비된 답변이 있다.

  4. 마지막으로 책이 미국 정부의 '테러와의 전쟁' 정책 기조를 두고 기능적인지 (Is the "War on Terror" Functional?) 묻는 글상자를 두고도 의미있는 대화가 오고갔다. 그것이 꼭 구조기능주의의 유산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 모두는 어떤 현상을 두고 그것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따지며 'net balance of functional consequences'를 고민한다. (조금 더 찾아보니 머튼이 처음 사용한 단어라고 한다.) 결과적으로 그것이 좋았냐 나빴냐를 따지는 건데, 의사결정 차원에서 불가피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소 불편한 감이 없지 않은 이유는 실제 사회에서 순기능과 역기능은 플러스나 마이너스와 같이 부호가 정해져있지도, 또 숫자처럼 정량화되어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순기능은 누군가의 역기능이 되곤 하며, 누군가에게는 크게 순기능인 것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작은 순기능이기도 하다.

    순기능과 역기능을 따져서 결국 net balance가 어떻게 되는지 계산하듯 내리는 의사결정은 사람들로 하여금 '옳은 방향'이 분명하게 있다고 인식하게끔 만들고, 의사결정 자체가 정치적이며 또 정치적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게끔 만든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무엇이 순기능이고 무엇이 역기능인지 따질 때부터, 또 얼마나 순기능 혹은 역기능인지 계산할 때부터 이미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배제하거나 포함시키고 또 얕보거나 과장해서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다음 단원에서는 네오맑시즘, 문명화와 식민지화, 근대화를 다룬다. 다음주도 의미있는 스터디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