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생활도 마무리가 다 되어간다.

OBX 여행 직전에 감기에 걸렸는데 무시하고 달려서인지 아직까지도 머리가 띵하다. 한국에 있을 땐 바다를 1년에 한두번 갈까말까 했는데, 특히 해수욕은 더더욱 안했는데 여기와서는 마이애미, 힐튼 헤드, 버지니아 비치, OBX 까지 네번이나 해수욕을 했다. 초등학교 때 수영을 그만 둔 이후 다시금 내가 물을 참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 5개월동안 정들어서 떠나기가 아쉽기도 해야 하는데, 내가 일하던 기관인 AAAS도, 살던 곳인 WISH도 모두 그렇게 아쉽지만은 않다. 물론 기관에서 하도 일을 안 주고 정말 말그대로 나를 방치한 탓도 있지만, 이제는 왠만해선 뒤로 다시 돌아나오지 못할 길들을 앞둔 내 상황 때문일 것이다.

일에서는 무언가 내 이름을 달고 나온 글, 보고서 등을 출판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일 외로는 다양한 주제로 글을 써서 글에 대한 자신감 늘리기, 하프 마라톤을 목표로 해서 꾸준히 달리기 및 근력 운동, 영어 공부, 서원 사람들과 더욱 친해지기, 진로 결정하기, 책 읽기, 서원 논문 제대로 쓰기 등 여러 목표가 있었다.

물론 항상 이렇게 목표를 세워만 봤지 많은 것을 성취했던 적은 별로 없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인데, 어느 하나 제대로 했다고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AAAS에서는 일을 주지 않았을 뿐더러, 물론 내가 나중에는 포기하다시피 했지만, 일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내가 돕고 싶다고 찾아갈 때마다 사람들은 "전혀 없다"며 그래도 관심이 있다면 읽을 거리는 주겠다고 메일 포워딩을 한 게 전부였다. 그런 면에서는 참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들지만서도, 덕분에 STP Forum을 포함한 정말 많은 컨퍼런스에 참여하고 나름 시야를 넓힐 수 있었던 것 같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무언가라도 해보겠다고 발악한 결과가 EPIK Conference Essay Competition 1차 탈락, 사이언스온 투고, 이 정도?

글도 항상 머리속으로는 이걸로 써볼까 저걸로 써볼까 생각만 하다가 끝이 났다. 나름 #전인턴_블로그 로 배설을 몇 번 하기는 했지만 일주일에 한두번은 써야지했던 예전에 비하면 최근에는 거의 쓰지도 않았다. #전인턴_블로그 가 굉장히 개인적인 글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블로그"보다는 일기에 가까웠는데, 그래서 나한테는 나름 의미가 있는 것 같지만 글쎄 이 글을 읽는 내 페이스북 친구들한테는 그저 긴 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 같아 아쉽긴하다.

하프 마라톤...하아...꾸준히 달리기를 해오긴 했는데 막판에 5월부터는 거의 안 뛴 것 같다. 덥고 습해서 그런거야...라고 자기합리화를 해봤자...너 진짜 하프 마라톤 뛰긴 뛸거니? ㅋㅋㅋㅋ 근력 운동도 나름 꾸준히 했다. 해수욕이 나름 동기부여가 된 것 같기도 하다. 만족할만한 사진(!)들을 얻었고(ㅋㅋㅋㅋ) 최소한 이 몸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야겠다. 목표는 늙어서 꽃중년, 아니 꽃노년 소리 듣기!

영어 공부...저번주가 되서야 내가 귀국하자마자 텝스던 토익이던 빨리 봐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대학원 입시 때문에...) 미리 알았더라면 그래도 영어 시험을 봐야한다는 목표의식에 의지해서 준비를 했을텐데, 그게 아니라 그냥 영어기사나 그 날 읽은 영어로 된 글에서 모르는 단어들 외우기-이런 식으로 방법론부터 불분명해서 결국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영어... 대학원 진학 뿐만 아니라 앞으로 정말 중요한 부분인데 왜 난 아직도 가만히 있는 걸까. 당장 다시 시작해야겠다.

서원 사람들. 서원에서 가장 크게 얻어가는 게 다름 아닌 사람이라고 많이도 들었다. 그 말에 공감을 많이 한 터라 워싱턴에서는 더더욱 서원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었다. 나는 동갑내기 둘 뿐인 막내였고, 과학기술정책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없어서 항상 아쉬웠고, 또 외로웠다. 하지만 거꾸로 나보다 나이 많고 배울 점이 많은 형, 누나들과 친해질 수 있고, 내 관심사 외 다양한 주제들을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들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었고, 또 그래서 이 좋은 사람들을 얻어가고 싶었다. 10개월동안 나와 함께 지냈던 이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떤 말이나 평가를 한다면 그게 정말 내 모습이라고 해도 될 것 같은데, 글쎄, 물론 나도 아차 싶을 때가 많았고, 최대한 솔직해지자는 마음으로 접근했는데, 결과가 그렇게 좋은 것 같지만은 않다. 아마 내 본 모습 자체가 그저 못 났기 때문이겠지. 10개월동안 형성된 내 이미지나 나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들을 바꾸기는 불가능할 것 같다. 아쉽지만, 반성의 기회로 삼고 더 나은 사람이 되야지.

진로...이야기는 해도해도 끝이 안난다. 아마도 이 글 외로 "부탁"형식의 글로 따로 써야할 듯...

내가 그래도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한국에서 출국할 때 책을 별로 안 챙긴 점이다. "경제기사 300문 300답", "빅 픽처", "이공계 학생을 위한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 이렇게 3개만 챙겼는데, 경제기사 책은 한 반 정도 읽었고, 나머지는 다 읽었고, 나중에 민진이 누나한테 받은 알랭 드 보통의 불안도 거의 다 읽었고, 법륜 스님의 인생 수업, 여기서 득템한 책 Beyond the Sputnik까지 별로 안 되는 양이지만 쓸데없이 가져온 책은 없었다. 생각해보니 그래도 한 달에 한 권 꼴은 읽었구나. 내가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일 중 하나가 책읽기에 소홀했던 점이다. 다음 학기에는 보다 많이 읽고, 또 많이 써야겠다.

서원의 마지막 assignment 였던 thesis writing은 정말 용두사미의 끝을 보여준 것 같다. 진심 제출할 때 가명을 쓰고 싶을 정도로 별 볼일 없는 논문이 되고 말았다. 연구계획서는 써봤어도 논문을 직접 써본 적은 거의 없는데-특히 이공계열 외 분야로는-좋은 경험이었고, 대학원 생활을 미리 경험한 것 같은 기분이다. 어떻냐고? 참담하고 막막하다. 그냥 신소재공학과 대학원 진학할까 생각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래도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으니 이번에 저지른 실수들을 대학원 가서 또 저지르면 안되겠지.

흠.. 이 정도로 마무리할 수 있겠구나.
.
재작년 뮌헨으로 교환학생을 가면서 "내가 노는 거는 이게 마지막이다"라고 다짐한 거에 비해 여기서도 정말 많이 놀았고, 나름 그 때보다 이것 저것 고민도 많이 하고 생각도 많이 하긴 했지만 결과물로 봤을 때는 그 때와 별 다를 게 없는 것 같다. 역시 나란 인간은 현실적인 압박이 있어야 제대로 돌아가는 건가.

길게 개인적인 글을 끄적여놓은거라 여기까지 읽은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모두들 씨유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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