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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인턴(워싱턴 DC AAAS)

‪#‎아산서원_졸업기념‬‪#‎전인턴_블로그‬ ‪#‎프리퀄‬‪

새삼스럽지만 다시금 아산서원에 왜 지원했는지 그 때 기억을 떠올려봤다. 남들처럼 대학생활이 무언가 허전하다고 느낀것도 아니었고,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 날을 되돌아보며 쉬어가는 시간을 필요로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나는 나름 내 지난 4년간의 대학생활을 알차게 보냈다고 자신했고, 쉬는 건 독일에서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그저 아산서원을 내가 보다 앞으로 빨리 나아가기 위해 이용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본격적으로 과학기술정책을 공부하기 전에 기초적인 수준에서라도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마스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무엇보다도 한학기 가량을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공부에 매진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 아산서원의 매력이었다. 워싱턴 DC로의 인턴십 역시 앞으로 정책을 공부하고 연구하며 실제로 입안이나 집행을 하고 싶은 내게 분명 좋은 기회라고는 생각했지만, 왜인지는 나도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인턴십 기회는 마트에서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우유에 딸려있는 쿨피스나 요구르트처럼 그저 덤으로만 느껴졌다.


글쎄, 인문교육기간이 한두달쯤 지났을까. 이쯤되니 내가 이루고자 했던 인문학과 사회과학 마스터(도대체 내가 무슨 정신으로 이런 생각을 했을까싶다. 그만큼 무지했던 거겠지.)는 애초에 말도 안되는 목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꼭 그 허황된 기대 때문이 아니더라도, 아산서원은 만족과는 거리가 꽤 있는 편이었다. 몇몇 강의는 내게 그다지 유의미하게 다가오지 않았던 원생발표들로만 채워지고 있었고(물론 나조차 그렇게 의미있는 발표를 했다고 자신하지 못한다), 괜찮다 싶은 강의는 시간이 너무 짧아 아쉬움을 더했으며, 그런 강의들이 일주일에 7-8개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복습은 커녕 읽기자료를 전혀 소화하지 못하고 강의에 참여하는 경우가 수두룩했다. 대체 내가 여기서 얻어갈 수 있는게 있긴 한걸까. 강의 내용 뿐 아니라 일부 교수님들과 운영진 역시 실망 릴레이에 기여하면서, 결국 그 실망을 서로 공유하는 원생들 사이만 돈독해졌다. 나 역시도 이러한데,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을 전공하고 있는 다른 원생들은 어떨까. 나는 그래도 전해 듣기만 했던 수박을 핥아보기라도 했지.


아, 내가 너무 부정적으로만 말했던가? 물론 좋은 강의도 많았고, 훌륭한 교수님도 여럿 계셨다. 운영실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었고, 강의 외로 주어진 봉사활동이나 문화기행, 팀 스포츠 등 여러 경험들은 분명 소중했다. 하지만 서원 합격통지를 받고 기뻐했던 순간을 생각해보면, 지금이야 굳이 떠올리지 않으면 사소한 불만으로 치부할 수도 있는 당시 원생들끼리 나눴던 대화를 생각해보면, MJ님께는 고마우면서도 미안하게도 아산서원은 기대 이하였다.

하지만 몇 명이 지적했던 것처럼 사실 서원 탓만 할 수는 없다. 결국 서원이 자랑했던 토론형 수업, 소모임 등 여러 활동들은 결국 그 주체가 원생들이기 때문에, 무언가 문제가 있었고,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일차적으로 우리에게 화살을 돌려야 마땅하다. 생각해보면 나조차도 소위 말하는 "생산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아 많이 아쉽고 후회가 된다, 아니 내 자신이 너무 싫다. 변명을 하려면 분위기 탓, 운영실 탓 등등 끝도 없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억울한 게 1%도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일테지만 하루에 피파를 3판은 꼭 해야 적성이 풀렸던 내가 잘한 건 하나도 없다. 따라서 아산서원이 기대 이하였다기보다는 내 자신이 기대 이하라고 하는 게 더 옳은 표현일 것이다.


그런 기분의 연장선에서 7기 원생들이 부럽기도 했다. 우리의 경우 리딩위크 이후부터는 원생들끼리 강의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토론한 기억이 아예 없는 것 같은데(물론 '우리'가 아니라 '나'의 경우겠지만), 마지막에는 그나마 좋은 기억으로 가지고 있는 국문신문 소모임 마저 흐지부지 되었는데, 인문교육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그 분들 얼굴에는 생기가 넘쳤고, 분위기 역시 활기찼으며, 밤늦게까지 소모임이나 토론 등을 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물론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그저 드는 동경심은 언제나 들기 마련이고, 지난 날에 대해 미친듯이 후회하는 것도 아니지만 내가 7기였다면 또 다른 것들을 많이 느끼고 배웠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마스터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모든 공부가 그렇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알면 알수록 내가 얼마나 부족한 지를 느끼게 되는구나. 뭐가 많긴 많았고 분명 배우고 느낀 것도 많았지만 5개월이 끝난 후 든 기분은 미드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장벽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허허허허....이런이런......."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돌려서 또 다른 경험을 가져다 줄 워싱턴 DC 인턴십에 대한 기대를 품기 시작했다. 그저 덤이라고 생각했던 인턴십 기회가 아산서원의 진짜배기구나!라고 깨달았다(고 위안을 삼았다). 그 유명하고도 위대한 Science 지를 발행하는 AAAS를 내 이력서에 써넣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흥분되었다. 그렇게 5개월 동안의 인턴십을 위해 DC로 향했다. 가기 직전까지 감기가 나를 괴롭혔는데(서원에 들어가서 걸린 세번째 감기로, 내 생애 감기를 이렇게 짧은 기간동안 많이 걸린 적이 없다..), 덕분에 비행길이 미치도록 아팠다. 특히 이착륙 과정은 소리를 지르고 싶을만큼. DC에 도착했을 때 든 생각은 "드디어 미국이다!"가 아니라 "드디어 착륙이 끝났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