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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라이더

문득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끄럽게, 또 위험하게 달리는 라이더들을 보며 떠올린 잡생각.

라이더는 너무도 잘 보이면서 동시에 역설적으로 보이지 않는 노동자가 아닌가.
우리가 길을 다닐 때 그들은 바삐 움직이고, 또 어떨 땐 도저히 좋게 봐주기 힘들게 시끄럽게, 또 위험하게 달리고 있다. 하지만 막상 내가 집안에서 손가락을 놀리며 메뉴를 정하고 나선 보이지 않는다.

음식점에 앉아서 기다리다가 내 식사가 나왔나 싶으면 어디선가 말없이 나타나 포장된 음식물을 들고 사라져버린다. 아까만 해도 내가 줄에서 두번째 서있구나 싶었는데, 그 사이에 보이지 않는 라이더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니 답답하고 짜증난다. 요즘도 있는 지 모르겠지만 '배달의 민족 주문'이라고 끝없이 울려대던 알람은 마치 택시에서 듣는 '카카오 T' 알람과 다를 바 없이 신경 쓰인다.

음식점을 나서면 정말 10초에 한번씩은 오토바이가 부릉거리는 소리와 함께 나를 지나친다. 모두 휴대폰이나 전용 단말기를 핸들 위에 달아놓고 끝없이 확인하며 달린다. 위험천만하기 그지없다. 주택가인만큼 저렇게 달리면 분명 많은 사람들이 소음에 신경질이 날테고, 또 사고가 날 확률도 높다. 많은 주택가엔 인도가 따로 없고, 있더라도 라이더는 인도와 차도를 가리지 않고 달린다.

하지만 이렇게 너무도 잘 들리고 보이던, 그래서 짜증나고 싫던 라이더들은 막상 내가 배달을 시킬 땐 보이지 않는다.

라이더가 길가에서 달리다가 앞을 보지 않고 주문을 받는 시점부터, 벌컥 음식점 문을 열고 기다리는 손님들의 눈초리를 애써 무시한 채 포장된 음식물을 들고 나오는 장면, 타이머로 설정된 시간을 지키기 위해 신호도 인도-차도 구분도 무시해가며 달려서 내 방문 앞에 오기까지. 그저 나는 방에서 잠옷 차림으로 기다리다가, 좀 늦어지면 짜증도 내다가, 신경질 나던 흔한 오토바이 소리에 기대하다가, 라이더가 도착하면 눈 한번 마주치지 않고 배달된 음식물을 받으면 된다.

그래서 라이더는 너무도 잘 보이면서 동시에 보이지 않는 노동자다. 이 메인테이너들은 혹자가 그토록 외치는 4차 산업혁명 아래 일어나(야 하)는 혁신을 유지하고 지탱한다. 항상 그래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이들을 제대로, 또 새롭게, 또 좀더 따뜻한 눈으로 발견하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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