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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어느새부턴가 습관처럼 MTS(모바일 주식 거래 어플)와 주가 지수를 챙겨본다. 자기 전과 일어난 후 미국 주가 지수를 확인하고, 출근 후나 점심시간, 오후 3시 즈음에 우리나라 주가 지수와 내가 산 주식들 가격을 확인한다. 괜찮다 싶은 주식에 매수 주문을 넣기도 하고, 적당히 올랐거나 떨어질 것 같은 주식에 매도 주문을 넣기도 한다. 아직 10시에 출근하고 있기 때문에 장 시작 후 출근을 하게 되는데, 뭔가 큰 변화가 보이면 출근길 내내 MTS만 보고 있기도 하다. 퇴근할 때는 주로 투자 관련 유튜브나 기사를 챙겨본다. 운동이나 글쓰기, 영어공부 등 마음만 먹고 습관으로 만드는 데 실패한 것이 수두룩한데, 야속하게도 내 몸과 머리는 두 달이 채 되기도 전에 주식투자를 루틴에 포함시키는데 성공했다.

이번 주에 처우면담을 다시 했다. 처음 할 때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협상했으면 될 것을, 세 달 내내 신경써서 겨우 자리 한번을 더 만들었다. 다행히 그간 신경써서 노력한 덕분에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지만, 바보같이 2년 전 에 저질렀던 첫 협상 자리에서 거절하지 못한 실수를 되풀이하고 말았다. 사실 처우면담이 끝나고 나오면서도 내가 쓸데없이 낮게 부른 건 아닌지, 확답을 받았어야 했던 건 아닌지 불안하기도 했다. 물론 2년 전과 비교하면 회사 측 첫 제안을 거절하고 보다 자신있게 내 주장을 했다는 점에서 나아지긴 했다. 하지만 끝없는 욕심 때문인지 만족스럽기 보다 찜찜하다. 일단 내 손을 벗어났으니 회사 측 답변을 받는대로 대응을 해야겠지.

너무도 빠르게 습관이 된 주식투자와 지난 세 달, 아니 이직 준비 시절까지 포함하면 거의 5개월 남짓 신경 써 온 연봉. 두가지 모두 내가 요즘 얼마나 돈에 집착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이렇게 머리 한 구석에 돈이 자리잡고 있을 때, 반대편 구석에서는 질문 하나가 계속 떠올랐다 가라앉았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어쩌다 이렇게 돈 한 푼이 아쉬워 이전엔 관심조차 주지 않았던 것들에 연연해 하게 되었나?

그러다 나는 내 안에 피해의식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역설적이게도 피해의식의 씨앗은 회사에서 돈 받고 일하기 시작하면서 마음 속에 자리잡았다. 애초에 돈을 신경쓰지 않았기에 돈이 되는 전공을 졸업하고서 돈이 되지 않는 전공으로 대학원을 진학했다. 대학원을 다닐 때도 그저 부모님께 손 안 벌리고 이런저런 연구과제로 자급자족할 수 있다는 데에 만족했다. 큰 돈을 벌지는 못하더라도 굶어죽지 않을 정도라면 나쁘지 않겠다며 (혹은 설마 굶어죽기야 하겠냐며) 공부에 뜻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기 시작한 순간, 삶의 기준이 바뀌었다. 내 '몸값'은 얼마인지 계속해서 자문했고, 머리는 '나잇값'을 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사실 기준만 바뀌었지 모든 게 그대로다. 나는 여전히 구질구질한 짠돌이고, 당장 큰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때문에 처음 회사를 알아보러 다닐 때 연봉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워라밸, 정확히 말하면 퇴근 후에 연구할 수 있는 시간과 체력이 충분히 남아있을 지만 생각하고 회사를 골랐다. (물론 애초에 구직 시기나 전공, 전문연구요원 편입가능 여부 등 제약조건이 많아 선택지가 많진 않았다.) 하지만 점차 주경야독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회사는 회사대로 다니고 연구는 연구대로 하는 독립연구자로 살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둘 모두를 한꺼번에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허황된 자신감으로 시작한 실험결과가 실패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렇다고 전업 연구자의 길을 걷자니 어찌저찌 유학을 가는 데에는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 이후가 그려지질 않았다. 몸값을 고려하면 회사원으로 지내는 것이 너무도 남는 장사였다. 나잇값을 생각하면 둘은 더더욱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돈이 기준이 되자 모든 게 바뀌었다.

'연구를 하고 싶지만 연구로 먹고 살 자신은 없다. 어쩌면 연구가 아니라 공부만 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연구를 직업으로 삼아도 되겠다고 확신할 정도로 굉장히 뛰어나거나 굳이 본인이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라면 이런 고민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렇지 못하니 돈을 벌 수 있을 때 벌어서 한 푼도 벌지 못할 미래를 대비해야겠구나.'

그렇게 피해의식은 커져만 갔고, 명확한 목표나 방향은 잃어버린 채 그저 돈을 벌어야겠다는, 최대한 빨리 더 많이 모아야겠다는 집착만 남았다. 수단일 뿐이었던 '경제적 자유'와 'FIRE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가 곧 목적이 되었다. 여러 재테크 책과 영상은 그 피해의식조차 연료삼아 돈을 모으도록, 또 모은 돈을 굴려 돈이 나를 위해 일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원을 나오며 전문연구요원 기간 동안 모아야겠다고 계획한 목표 저축액이 있었다. 지난 달 월말 정산을 하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내 자산이 생각보다 빨리 그 금액에 도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언급했듯 대학원에 있었을 때는 돈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큰 돈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 이런저런 근거를 고려해서 세운 목표였기에 터무니없이 적지도 않았다. 분명 그 때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만족했던 만큼의 돈. 제대로 계산된 게 맞는 지 몇 번을 확인하며 목표 금액을 초과달성하면 어떻게 되는 건지 고민했다.

뭐가 어떻게 되기는. 더 모으면 모을수록 좋은거지.

라고 생각한 순간, 이건 끝이 없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내가 필요한 돈. 벌어서 모아야 하는 돈. 거기엔 기준이 없다. 부자는 가구당 월 평균 천만원 넘게 소비하고 부자가 아닌 사람은 약 250만원 정도 쓴다. (하나은행 하나금융경영연구소, 2020) 이미 남들보다 네 배 넘게 더 쓰고 있지만 더 갖고 싶어하는 건 부자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대학원을 다닐 때보다 네 배 넘게 벌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여전히 심란하다. 지금보다 네 배를 더 벌어도 마찬가지 아닐까.

<할 일을 미루는 사람의 심리>라는 TED 영상으로 유명한 팀 어반(Tim Urban)이 운영하는 블로그에서 <Life is a Picture, But You Live in a Pixel>이라는 글을 읽었다. 재미있는 그림과 '오늘'을 남자주인공의 여자친구로 의인화하는 재치를 더한 글에서 팀 어반은 묻는다. '왜 사람들은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또 그것을 현실로 만들면서 동시에 오늘은 만족하지 못하는걸까? (혹은, '오늘'과는 행복하게 지내지 못하는걸까?)'

글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잘 자고, 운동하고, 잘하는 것을 하고,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또 그보다 중요한 '감사'를 마음 속에 안고 살라고 조언한다. 너무도 뻔한 결론이지만, 결론에 이르기 전에 댄 길버트(Dan Gilbert)의 TED 영상을 언급하며 설명한 '인생은 그림이지만 우리는 픽셀에 산다'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큰 그림을 떠올리며 미래를 꿈꾸고, 다른 사람들이야 나를 보며 한발짝 물러서서 내가 그린 그림을 볼 수 있겠지만, 내가 살아가는 하루는 그 그림의 아주 작은 단위인 픽셀 속이라는 것이다.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든, 그토록 바라던 직업을 구하든 우리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똑같이 아침에 피곤해하며 일어나고, 씻고 출근하거나 일하기 시작하고, 배고파지면 밥먹고, 다시 일하다가 또 밥먹고, 취미생활하다가 밤이 되면 폰 조금 보다가 잠에 들 것이다.

돈에 대한 집착과 피해의식을 자각하고 나니, 나는 오히려 내가 어떤 그림을 그려낼 지 충분히 고민해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그림은 뒤로 한 채 남의 그림만 보며 부러워하고 있었으니 그저 남과 비슷하기라도 하면 다행일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팀 어반은 그림에만 집착하다 픽셀을 놓치는 사람들을 위해 글을 썼겠지만, 그림조차 염두에 두지 않던 내게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시급하다. 내가 원하는 그림은 신사임당이나 벤자민 프랭클린의 초상화가 아니다. 돈이라는 그림을 그리기 위한 수단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고, 피해의식을 버리고 내 삶의 기준을 다잡아야 한다. 그래야만 그 그림을 이룰 픽셀 하루하루도 보다 행복하게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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