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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올해 들어 유독 몸이 자주 아팠다. 특히 최근 몇 주 간격으로 머리와 허리가 번갈아가며 아파서 평일이면 아침마다 출근을 할 지 급하게 연차를 쓰고 쉬어야 할 지 고민해야 했고, 주말이면 하루종일 침대에서 꼼짝없이 뒹굴거리다 밤이 되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지나간 하루를 아까워하곤 했다.

머리가 아픈 건 학창시절때부터 종종 편두통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신경쓰이는 일은 아니다. 물론 예전에는 왠만하면 한시간 이내에 통증이 가라앉았던 반면 최근에는 이틀 넘게 연속 진통제를 먹어도 계속 아파서 사흘 째 되는 날도 아프면 병원에 갈 생각이었다. 그랬더니 사흘 째 거짓말같이 또 통증이 사라졌다.

그런데 올해 초부터 새롭게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뻐근한 느낌이 들길래 자주 스트레칭하면 되겠거니하고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다 회사에서 자리를 옮기다가 한 번, 집에서 청소하다가 한 번 삐끗하는 느낌이 있었고, 그 후 부터 허리를 굽히거나 필 때마다 아파서 결국 병원을 다녀야 했다. 실손보험청구가 된다는 이유로 일반 물리치료에 더해서 충격파치료를 아낌없이 받았는데 막상 알고보니 70%만 돌려받을 수 있어서 예상치 못한 지출이 있었다. 그래도 처음 아플 때 확실히 치료받고 낫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크게 여의치 않았다.

한 번 아프고 말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저번주에 다시 허리 통증이 심해졌다. 설마설마 하면서 자주 스트레칭하고 자세에 신경쓰며 일했지만, 결국 아예 허리를 굽히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토요일에는 치료를 받기 위해 외출 준비를 하다가 허리를 살짝 굽힐 때 극심한 통증이 와서 그대로 방바닥에 쓰러져 한동안 맨몸으로 엎드려있어야만 했다. 너무 아파서 방바닥에 대고 고함을 외치고 신음소리를 낼 수 밖에 없었는데 아래 층에 소음이 울리지 않기만을 바랐다. 결국 그 날 병원은 가지 못했고 일어날 수 있게 되자마자 바로 침대에 누워 그렇게 또 하루를 보냈다.

물론 누가 아픈 걸 좋아하겠냐만은, 유독 나는 아픈 게 싫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플 때의 나 자신이 싫다. 아파서 누워있을 때 내 머릿속은 욕으로 가득 차고, 그 욕들을 나를 향해 퍼붓는다. 나도 내가 왜 그러는 지 모르겠는데, 분명 아플 땐 그런 상태가 된다. 악에 받쳐 할 수 있는 모든 신세 한탄과 부정적인 생각을 끌어모아 머릿속을 채운다.

신기하게도 그러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통증이 사라질 때가 있다. 두통이야 자주 그랬기 때문에 적응했지만 허리는 항상 아픈 게 서서히 가라앉았는데 쓰러졌던 토요일엔 그 다음 날 바로 통증이 없어졌다. 쌓아놓은 욕과 나쁜 생각 역시 무슨 일 있었냐는 듯이 사라졌다. 그렇게 극단적인 주말을 보내고 나니 나는 대체 왜 그렇게 몸이 아픈 것도 모자라 내 마음까지 아팠는지 (혹은 아프게 했는지) 궁금해졌다.

몸이라는 단어를 두고 한참을 생각하다 내가 전부터 내 몸의 건강을 넘어 fitness[각주:1]에 적잖이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몸 상태가 평소 염두에 두고 있던 fitness 범위를 벗어나는 상황을 못 견디는 것이다. 뱃살과 근육과 같은 외모가 주를 이루지만, 그 외로도 걷거나 뛸 때 몸이 가벼워야 하고 머리는 상쾌해야 하며 속은 더부룩하지 않아야 하는 등 몇몇 기준이 있다. 집착이 정확히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초등학생 때 이미 배에 왕(王)자를 만들겠다고 매일 밤 윗몸일으키기를 했던 기억이 나는 것을 보면 최소한 15년 전부터 몸에 적잖이 신경을 썼던 셈이다. 중학교를 다닐 때도 하체가 유독 두꺼운 게 콤플렉스라서 살을 빼겠다고 항상 엉덩이와 두 다리에 힘을 주면서 걸어다녔고, 또 매일 밤 집에서 자전거를 탔다. 물론 생각이 짧았다. 갈수록 살이 빠지긴 커녕 근육이 붙어 하체가 두꺼워졌으니 말이다.

내가 내 식단을 결정할 수 있게 된 대학생 때부터는 당과 나트륨, 탄수화물을 피하고 단백질 위주로 식단을 유지해왔다. 그렇다고 연예인처럼 다이어트 하듯이 식단을 조절한 건 아니었다. 음료수 대신 물을 마시고, 카페에서도 아메리카노만 마시고, 찌개 같이 국물 위주 메뉴는 배제하고 어쩌다 백반을 먹게 되면 밥 반 공기를 덜어놓고 먹는 식이었다. 단백질에 대해서는 유난히 관대(?)했다. 치킨엔 단백질이 많다고 합리화하며 친구들에게 야식으로 치킨 시켜먹자고 졸라댄 적이 많다. 대학원과 회사를 다니고서부터는 혼자 식사를 할 일이 많아지다보니 지금까지도 샌드위치와 샐러드를 번갈아가며 먹고 있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자리잡은 식습관 때문에 종종 주변 사람들로부터 너무 과하게 건강을 챙긴다는 말을 듣곤 한다.

어쩌면 이토록 내가 몸에 신경을 쓰는데도 불구하고 종종 몸이 아픈 게 억울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내 몸이 건강을 잃고 내가 생각하는 fitness 범위에서 벗어날까봐 불안한데 나름 노력해도 자꾸 아프면 나보고 어쩌라는 것인가? 정녕 꼼짝없이 가족력이 있는 병에 걸리고 마는 건가? 아니면 내가 내 마음이 몸에 크게 의존한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어서 몸이 좋지 않은 것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렇게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몸은 더 안 좋아지는, 그렇게 끝없는 부정적인 절망회로를 돌리는 것일 수도 있다.

막상 이렇게 몸이 좋을 때 돌아보면 너무도 자의식 과잉인 나 자신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물론 모델 한혜진이 말한대로 유일하게 내가 통제하고 내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건 내 몸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몸을 완벽히 내 의지대로 통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건강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되, 아프다고 자학할 필요는 없다. Fitness에 대한 집착과 강박을 내려놓고 아프면 아픈대로, 아프지 않으면 또 아프지 않은대로 내 몸과 마음을 아껴야겠다.

오늘은 아프다는 핑계로 미뤄온 집안일을 해야겠다.


  1. 건강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겠지만 fitness라는 단어 안에 담긴 의미가 모두 표현되지 않는 것 같다. 문자 그대로 'fit'에 초점을 맞추면 fitness가 단순히 건강한 상태 그 이상을 함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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