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노조로부터 요청을 받아 오마이뉴스에 이런 글을 기고했다.(링크) 원래 잘 모르는 영역에 대해서는 기고를 꺼리는데 어찌저찌 공부하면서 쓰고나니 또 나름의 보람이 있는 듯. 그래도 부족한 부분이 많은 만큼 혹 해당 이슈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 글 말고도 김래영 님의 글이나 다른 분들의 글도 함께 읽으면 좋겠다. 편집과정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지워진 부분이 있어 원고를 여기에 공유한다.


대학원생이 짊어진 실험실 현장의 위험

 

전준하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 정책위원회 자문위원)


실험실 사고가 드러낸 문제

 

실험을 하지 않는 비이공계 전공으로 대학원을 진학하여 오랜 기간 실험실 생활을 해본 건 아니나 학부 시절 자발적으로, 또 졸업논문 작성을 위해 실험실을 드나들며 연구한 적이 있다. 다니기로 한 연구실에서 대학원생 선배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실험실에 들어선 순간 멈칫했던 기억이 난다. 흔히 실험실이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는데 현실은 너무 달랐던 것이다. 눈부실 만큼 순백색의 배경에 최신 장비와 깨끗한 기자재 대신 익숙해지지 않는 유기용매 냄새, 기존에 있던 낡은 것을 개조해 손이 많이 가는 장비, 여기저기 그을음 자국이 있는 기자재들이 나를 반겼다. 당시 사수 선배가 교수님의 은퇴가 얼마 안 남은 만큼 오래된 실험실이라며 머쓱해 했다.

 

모두 아무렇지 않게 자기 실험에 집중하고 있어 내색하기는 어려웠지만, 실험실에 출근할 때마다 약간의 불안감을 안고 다녀야 했다. 뭐 하나만 잘못되어도 큰 사고로 이어지겠구나 싶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게 까딱하면 터진다, 잘못하면 다친다는 둥 무서운 소리를 곁들이며 화학물질이나 실험장비를 다루는 법을 알려주는 사수 옆에서 얼어붙은 채 그가 하는 말을 하나하나 노트에 적었다. 다행히 별일 없이 내 실험실 생활은 끝났지만, 이후 크고 작은 실험실 사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저 운이 좋았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운이 있고 없는 문제로 환원해서는 안 된다. 안전이란 이상적으로는 위험이 전혀 없어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그러나 현실적인 의미는 위험을 줄여 사고가 일어날 확률을 최소화하려는 노력과 과정에 더 가깝다. 안전한 사회라면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위험 요인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예방 대책을 세워야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발생한 사고에 대해 그 과정을 반복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사고로 인해 피해를 본 사회 구성원은 단순히 운이 나쁘게 사고를 당한 사람이 아니라 사회가 놓친 피해자며, 따라서 사회로부터 재해보상을 받아야 마땅하다. 산업안전보건법이나 연구실안전법 등 안전을 다루는 법률이 보상제도인 보험을 명시하는 이유다.

 

지난 10월 초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이하 대학원생노조)은 작년 말 경북대학교 화학실험실에서 발생한 폭발사고로 큰 화상을 입은 피해 대학원생의 아버지가 쓴 편지를 대독하며 국회 앞 농성을 시작했다. 해당 사고로 인해 총 4명의 학생연구원이 다친 한편, 중화상을 입은 학생은 현재(2020년 11월) 기준으로 여전히 힘겨운 치료를 버텨내고 있다. 사고는 무릇 화학물질을 다루는 실험실이라면 기업에서 일하는 연구원이든 대학에서 연구하는 대학원생이든 장소나 신분에 무관하게 수행하는 오래된 시료 폐기 업무 도중 발생했다. 회사연구원이었다면 산업재해보상보험(이하 산재보험)을 통해 돈 걱정 없이 치료를 받았겠지만, 피해자와 그 가족은 대학원생이라는 이유로 연구활동종사자 상해보험(이하 연구자보험)의 보상한도를 넘는 치료비를 두고 오랜 기간 경북대학교와 씨름을 이어가야 했다. 피해자 가족과 대학원생노조 등의 연대와 투쟁을 통해 대학으로부터 치료비 지급 약속을 받은 상태나, 피해 대학원생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려는 대학을 쉽게 믿을 수 없다. 또한 이 사고가 드러낸 제도상 허점과 함께 여전히 많은 대학원생이 안전 사각지대에 남아있다. 대학원생들이 국회로 간 첫 번째 이유다.

 

제도상 허점의 기원

 

"비슷한 실험을 하더라도 연구소에서 하면 산업재해보상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이공계 대학원생은 노동자가 아니라 학생이라는 이유로 관련 법의 적용을 받을 수 없다"

 

경북대 화학실험실 폭발사고가 드러낸 제도상 허점은 사실 굉장히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위 문장은 2004년 5월 KAIST 대학원총학생회(이하 원총) 산하 안전쟁취특별위원회가 그로부터 1년 전 있었던 풍동실험실 폭발사고로 대학원생 두 명이 각각 숨지고 두 다리를 잃은 후에도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기는커녕 학교 측이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자 내놓은 입장이다. 같은 시기 KAIST 원총은 실험실 안전 관련 법안 마련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진행, 대학이 속한 지역구 의원에게 전달하여 연구실안전법이 제정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연구실안전법을 통해 아무런 보상체계가 없던 과거보다 진일보할 수 있었으나, 위 인용문이 말하는 똑같은 연구를 함에도 대학원생만 산재보험이 아니라 보다 낮은 보상한도를 가진 연구자보험에 가입하고 있는 문제는 여전하다.

 

당시 연구실안전법 제정 과정을 더욱 자세히 살펴보면 지금의 문제가 어디서 기원했는지 작은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연구실안전법을 연구한 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3년 과학기술부는 풍동실험실 폭발사고 직후 연구안전환경진흥법(가칭)을 준비했다. 현재 연구실안전법과 겹치는 내용이 많은 이 법안은 국회에 제출되기 전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 등과 중복되기 때문에 일부 기존 법령의 개정으로 입법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이유로 입법 추진이 중단되었다. (박정임 외. 2012, p.26) 이후 앞서 언급한 대로 국회의원을 통해 현 연구실안전법이 발의되었는데, 이때 역시 기존 법령과의 중복 문제로 제정이 1년여 늦춰졌다. 흥미로운 것은 오히려 당시 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을 보완하여 연구자들에 대한 안전조치와 보상을 하자고 주장한 한편 교육부와 과학기술부는 보험료 부담을 두고 실랑이를 벌였다는 사실이다. 결국 법률 적용 범위 중복을 피하고자 부처 간 합의를 거쳐 연구실안전법과 연구자보험은 사실상 대학원생들에게만 적용되었다. 더불어 대학원생노조 신정욱 지부장이 지적했듯 연구실안전법은 현재 기준으로[각주:1] 적용대상인 대학원생을 연구자원으로 보고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법이 되었다. 

 

연구실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연구실안전법을 따로 제정한 것은 이해하더라도, 재해보상 체계를 이원화하여 대학원생만 산재보험이 아닌 별도 연구자보험에 가입하도록 한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넷을 통해 접할 수 있는 자료만으로는 분명히 드러나지 않지만, 대학원생들은 이미 그간 수많은 경험을 통해 그 뒤에는 결국 대학원생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대학원생이 각종 국가장학금을 받기 위해서는 4대 보험 가입자가 아니라고 증명해야 하는 것만 보더라도 분명히 인지할 수 있는 사실이다. 경북대 화학실험실 폭발사고의 피해자가 오래된 시료를 폐기했던 것처럼 실험실 및 연구실이, 더 나아가 대학이 제대로 굴러가는데 필요한 모든 곳에 대학원생이 있는데, 사회는 이들의 일을 노동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제도상 허점은 바로 여기에 기인한다.

 

반복되는 사후약방문을 벗어나려면

 

다행히 대학원생노조가 농성을 시작한 날 학생연구원에 대한 특례로 연구실안전법에서 정의하는 연구활동종사자도 산재보험을 통해 재해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산재법 개정안이 접수되었다. 여당 주도로 발의된 법안이지만 국정감사에서 여야가 모두 개정안 취지에 공감한 만큼 조속히 처리되기를 기원한다. 대학원생노조 역시 법안이 통과되기까지 계속해서 목소리를 낼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언제까지 이렇게 사후약방문식 제도 개선을 반복하게 될지 씁쓸하기도 하다. 연구실안전법이 있기 전 앞서 언급한 KAIST 풍동실험실 폭발사고 말고도 1999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에서 세 명의 대학원생이 목숨을 잃은 폭발사고가 있었다. 2016년에는 한국화학연구원에서 학생연구생[각주:2] 한 명이 실험 중 손가락이 절단당하는 사고를 당했지만, 산재보험 가입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고, 소식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서야 뒤늦게 연구자보험 보장이 확대되고 학생연구생에 한해 근로계약이 이뤄졌다. 요컨대 지금의 연구실안전법을 비롯한 실험실 안전을 다루는 제도는 누군가의 부상과 죽음 위에 세워진 것이다.

 

우리는 '김용균법'을 둘러싼 논의를 통해 산업 현장에서 위험이 외주화되어 가장 취약한 하청 또는 계약직 노동자에게 떠넘겨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목격한 바 있다. 그렇다면 연구 현장에서 위험은 누가 짊어지고 있는가. 2018년 연구실 사고 중 80% 이상(발생 건수 기준)이 대학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과기정통부 외. 2019, p.145) 대학원생이 처한 현실에 주목하고 대학원생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이유다. 




참고문헌

 

박정임 외. 2012. “연구실 안전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 해설집 및 고시 정비 방안 연구”, 한국연구재단 연구보고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외. 2019. "2019 연구실 안전관리 실태조사"

 

  1. 연구실안전법 제1조에 해당하는 목적은 2020년 6월 "연구실사고로 인한 피해를 적절하게 보상하여 연구활동종사자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한다는 문구로 개정되었다. 법의 제정 취지를 고려하면 환영할 일이나, 제정 후 15년이나 걸릴 일이었는지는 의문이 든다. [본문으로]
  2. 학생연구생은 정부출연연구소에서 연구하며 학위 과정을 밟는 대학원생을 의미한다. [본문으로]

교수신문 편집 원칙상 원문에 거의 손을 대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도 교수들이 글을 많이 기고할텐데 자존심 강한 교수들이 손 대는 것을 원치 않겠지.... 그래서 아마 아래 내가 기자님께 보냈던 글과 링크(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41864)를 통해 볼 수 있는 글이 차이가 거의 없을 것이다. 

쓴지 얼마 안되어 인쇄본 2부가 집으로 배달되어 뜻하지 않게 부모님이 칼럼을 읽으셨다. 아버지와 동생은 대학 나왔다고(물론 휴학생 신분이긴 하짐나) 이렇게 써도 되는거냐고 물었고, 어머니는 내 칼럼 뿐만 아니라 신문 지면이 다 대학이나 고등교육정책에 대한 성토장이라는 감상을 남기셨다. 

이우창 서울대 원총 전문위원님을 통해서 <대학원생들의 一聲>이라는 교수신문의 무려 10회 기획연재에 참여하게 되었다. 노웅래 의원실, 대학원생노조, 교육부 등이 주관 및 주최하여 이화여대에서 대대적으로 열렸던 <대학 내 권력형 성희롱·성폭력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 촉구 간담회>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함께 식사를 하다가 기해당 연재를 기획한 기자님을 소개받았고, 아마 2회분이 비어 있었던 때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기자님도 조교 제도에 대해서 쓰는 것을 요청하셨고, 나 역시 그러고 싶었기 때문에 기획연재 막차에 탑승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대학원생노조와 함께 기획한 것이던데, 나는 (아직은?!) 대학원생노조 가입자는 아니고, 글에도 썼듯이 교육부 연구과제 참여자로서 느낀 점을 작성했다. 하지만 최근 올브레인이라는 대학원생 커뮤니티를 통해 연재된 대학원생노조 구슬아 위원장 인터뷰(총 3편인데, 1, 2편은 꼭 읽어보기를 추천. https://www.allbrain.kr:5004/bbs/board.php?bo_table=news&wr_id=1381)를 보고 후원을 결심했다. 교수신문에서 원고료를 얼마나 줄지 모르겠지만 입금되는대로 그대로 대학원생노조에 전달할 생각이다. 

조교 제도에 대해 할 말은 많은데 - 특히 법률과 관련하여 - 칼럼 길이가 제한되어 있다보니 현재 제도를 구체적으로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형식으로 글을 쓰기가 힘들어 결국 현실에 대한 재해석 내지는 표현 다각화를 통해 글을 작성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인상깊게 여겼던 '메인테이너'라는 개념을 차용했고, 다양한 대학 내 노동 공백을 메우는 조교들을 보고 '누더기'를 떠올렸다. 아마 처음 기자님께 제안했던 주제는 '조교 제도의 허점'이었는데 글을 작성하고 보니 '대학의 허점이 곧 조교 제도'라는 주장을 했다.

...보통 기고글에는 서론을 길게 남기지 않으려고 했는데..... 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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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교로 기운 누더기 대학

전준하(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

작년 10월부터 6개월간 교육부에서 발주한 <대학원생 권리강화 방안 연구>라는 주제의 정책연구과제를 수행했다. 조교 제도를 다루지 않을 없었다. 한편, 대학원생은 연구과제에 아무리 주도적으로 참여하더라도 연구책임자가 없다. 그렇게 나는 조교 제도를 연구하는 연구조교가 되었다. 하지만 연구조교라고 단순히 연구만 하라는 법은 없다. 영수증을 정리하며 연구비를 관리하고, 홍보 포스터를 디자인해서 붙이러 다니며 연구과제 관련 공청회와 토론회를 준비하고, 이따금씩 걸려오는 교육부 전화에 응대하며 자료를 주고받아야 했다. 그러니 나는 연구과제의 사무/행정조교이기도 했다.

앞서 김민섭 작가가 말했듯, 조교는 교수나 교육 연구 업무를 보조한다는 사전이나 법에 적힌 정의는 이제 옛말이 되었다. 오늘날 이들은 수업/강의조교, 실험/실습조교, 교육/교수조교, 연구조교, 사무/행정조교, 학과조교, 연구소조교, 산학협력조교, 기숙사조교, 상담조교 대학에서 있을 있는 모든 형태의 노동을 담당한다. 이름에 해당하는 업무 범위를 넘어 대학 존재하는 다양한 노동 공백을 메워온 역시 조교였다. 조교는 이제 명실상부한 대학의 메인테이너(maintainer) 자리잡아 대학이 지속하여 작동할 있도록 기능하고 있다.

대학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주된 인력인 만큼, 대학원생 과반수는 본인을 학생근로자 인식하기 시작했다. 학생근로자라는 단어는 나를 포함한 대학원생 조교들이 경험하는 모순을 단어로 표현한다. 우리는 대학에 남아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노동을 해야만 하고, 나아가 훌륭한 학생이자 인정받는 연구자가 되기 위해 경제적 보상과 무관하게 일을 주어진 이상으로 열심히 해야만 한다. 그렇게 대학원생 조교는 평균 일주일에 20시간에서 30시간을 조교 업무에 쏟고 있으며[1], 말그대로 학생이기 위해 근로하는 학생근로자가 되었다.

대학은 대학원생 조교의 메인테이너 역할과 그들이 학생근로자로서 처한 모순적인 상황을 누구보다 이해하고 있고, 동시에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대학은 조교 제도를 장학 제도와 뒤섞어 대학원생 조교에게 장학금 명목으로 등록금을 감면해주고 이상의 보상은 거의 주지 않는다. 심지어 조교 근무를 졸업요건으로 정해 의무화한 대학이나 학과까지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학칙이나 규정 등으로 조교 임용과 근무 조건에 대한 기본적인 사항을 정하고 있지만 대학 본부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뒤집을 있다. 성균관대 조교 대량 해고 사태에서 이미 목격한 바다. 조교 제도는 대학의 재정 효율화 전략이 되었고, 대학원생 조교는 대학 운영을 위한 가용자원이 되었다.

또한 장학 목적이 일순위여야 조교 제도는 오히려 대학이 교수에게 제공하는 혜택이 되었다. 대학은 선심 쓰듯 학과 교수별로 조교 인원을 배정해주고, 학과와 교수는 또다시 선심 쓰듯 듣는 학생 몇명을 골라 장학금을 쥐여주며 다양한 일을 시킨다. 돈이 학과 자체 계정이나 교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것도 아닌데 학과와 교수 권한을 강화하는데 쓰이고 있는 것이다. 대학원생이 학과나 교수에 종속될수록 전반적인 대학원생 권리 침해는 심각해지고 보호나 강화는 힘들어지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조교 제도 역시 여기에 기여하고 있다.   

대학원생 조교 처우 개선에 대한 목소리는 예전부터 간간이 들렸지만, 대학원생 조교 사용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혐의로 대학 총장이 검찰에 송치되고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이 결성되는 조교 제도에 대한 여러 기념비적인 사건은 최근 부쩍 늘었다. 구멍이 곳마다 천을 덧대고 기워 만든 누더기 옷과 다를 없는 지금 대학 구조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신호다. 교수신문에 주로 대학원생들의 입을 빌려 연재되고 있는 <대학원생들의 一聲>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일부 대학원생이 푸념하는 목소리가 아니다. 대학을 유지하고 지속시켜온 메인테이너들이 대학에 보내는 경고다. 조교로 기운 누더기 대학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새 옷을 구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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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육부가 2017 대학원생 조교 현황을 조사하기 위해 대학을 통해 수집한 규정상 근무시간 통계이기 때문에 실제로 대학원생들이 업무 수행에 들이는 시간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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