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끄적끄적

애도

우리는 모두 자신이 슬퍼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있었다.

갑작스럽기보다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각자 다 다른 인연으로 간직하고 있겠지만, 대부분 1년 남짓 함께 지낸 후 경조사 외로는 따로 만나지 않던 사이. 그러다보니 건강이 안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도 가끔씩 발을 동동 굴렀을 뿐 실질적인 도움이 된 적 없었다.

유일한 지잡대 출신이라며 자신을 한없이 낮추던 그에게 그렇게 치면 나도 지방대 출신이라고 그러지 좀 말라며 말대답을 하곤 했다. 항상 내 얼굴을 살피며 기분을 물어봐주던 그였다. 사실 항상 걱정없이 웃는 얼굴이던 모습 외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2년 전 이맘 때즈음 DC에서 만난 친구가 온다는 소식을 전하자 엉뚱하게도 베이징에서 인턴생활을 한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크게 변한 것 없이 강남역에 나타난 그는 나를 보자마자 웃는 얼굴로 반갑다며 나를 얼싸안았다. 원체 표현을 잘 안하는 나는 억지로 웃으며 받아주었다. 항상 바쁘다는 그의 회사 이야기를 좀 듣다가 워싱턴에서 온 친구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 함께 수다를 떨었다. 

아, 그 전에도 한번 뜬금없이 그와 마주친 적이 있다. 대전역이었으니 아마도 연구과제 일로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는 날이었거나, 여행을 다녀오는 길이었던 것 같다. 별 생각없이 걷다가 갑자기 앞에서 내 이름을 크게 부르고 너무도 반갑게 인사하길래 되려 얼떨떨했던 기억이 난다. 출장 차 들른 거라 금방 가봐야한다면서도 세상 좁다며 근황을 물어봐주던 그는 그 때도 웃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웃는 얼굴만이 떠오를 정도로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긍정적이었다.

그런 그가 아프다는 소식을 뒤늦게서야 접했다. 그놈의 인스타를 안한 탓이었다. 물론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리였던만큼 슬픈 기색을 보이기 어려웠겠지만, 다들 그렇다더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길래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페이스북에서도 그의 글을 접할 수 있게되자 그가 그냥 아픈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에게 바로 연락을 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집어들고 인사말을 적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계획해 둔 가을방학 때 하루 정도 시간을 내어 병문안을 가야겠다고 생각한 채 연락을 미뤘다. 

추석이 되어서야 용기내어 (이게 정말 용기까지 필요한 일이었을까, 왜 좀 더 빨리 연락하지 않았을까 후회된다) 어디서 치료를 받고 있는지, 그리고 나름대로 그를 위해 준비한 일을 하기 위해 만날 수 있는지 물었다.

아마도 내가 연락을 자꾸 미뤘던 이유는 '그를 위해' 준비했다는 그 일이 정말 그를 위한 것인지 끊임없이 되물었기 때문일테다. 워싱턴 DC에서 인턴 생활을 한 사람들끼리 했던 인터뷰를 하고 싶었다. 작년부터 죽음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왔던 내 눈에는 '브레이크포인트 대화'가 그의 치료보다도 더 중요해보였기에, 다른 사람들이 치료비 모금이나 치료제 급여화 청원을 이야기할 때 나는 DC에서 서로 주고 받은 인터뷰 질문들과 대답을 다시 읽어보며 그를 위한 질문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에게 연락과 동시에 인터뷰 제안을 했을 때, 그는 씁쓸한 말투로 면회불가라 볼 수 없다고 전했다. 인터뷰에 대해서 그가 뭐라고 생각했을지는 모르겠다. 컨디션을 보며 병상을 옮기는데 매번 안 좋아지고 있다며 앞으로도 볼 수 있을지 모른다고 했다. 텍스트만 오고 갔을 뿐이지만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보이지 않았다. 너무도 당연하게 웃는 그의 얼굴을 떠올렸던 나는 당황스러웠고, 이내 부끄러워져서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렇게 간단하게 연락이 끊긴 이후 그는 두세번 정도 치료 진행상황을 SNS에 공유했다. 그 때마다 나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로 화상통화로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지만, 웃음기 없는 그의 얼굴을 좀처럼 보기가 힘들 것 같아 그가 나아지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마지막 소식을 전해들었을 때 나는 장기하 산문집 <상관없는 거 아닌가?>를 읽고 있었다. 전날 같은 시간을 공유했던 또 다른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서 충동적으로 구매한 책이었다. 

나는 내게 슬퍼할 자격이 있는지 물었다. 몇시간 단위로 갑작스럽게 눈물이 차올랐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그에게 묻고 싶은게 많았는데, 이제는 답을 들을 수 없다. 

후회와 미안함, 슬픔과 허망함 사이 어디에선가 그의 웃는 얼굴을 기억한다. 나는 이렇게 그를 애도한다. 내가 떠난 당신을 닮아 조금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살 수 있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