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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기술한림원 “과학기술과 인권 오픈포럼” 패널 토론문 (2018.10.11)

안녕하십니까,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 전준하입니다. 사실 제 지도교수님께서 오늘 제 지정토론 대상인 과학기술인의 인권분과에 집필위원으로 계시는데, 원래도 허심탄회하게 생각을 주고받는 관계이기도 하고, 또 오늘 자리에 계시지 않기도 하니 어느 때보다 솔직한 토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서 세 분과는 한림원에서 제게 요청했던 토론 주제인 과학이 인권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내지는 과학이 인권침해에 쓰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안에 알맞은 발표를 해주셨습니다. 한편, 네번째 분과인 과학기술인의 인권은 어떻게 보면 혼자 주제가 조금 달라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홍성욱 교수님께서도 왜 젊은 과학기술인인가?”라는 질문으로 발표를 시작하셨습니다. 오늘 오픈포럼에 맞추어 질문을 좀더 명확히 하자면 왜 젊은 과학기술인의 인권인가?”가 될 텐데, 이 주제가 단순히 요즘 언론을 통해 워낙 회자되는 이슈라는 이유로 본 프로젝트에 포함된 것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왜 과학이 인권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에 젊은 과학기술인의 인권을 물어야 할까요?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인권향상에 기여하는 과학의 출발점은 바로 그 과학을 하는 과학기술인의 인권이 존중받고 보호받는 환경일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인권연구자가 아니기 때문에 자세히 살펴보지 못했습니다만, 인권을 존중받은 경험과 보호받는 환경이 그 사람의 인권의식 형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결론을 내린 선행연구가 다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과학이 인권향상에 기여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에 앞서 과학기술인의 인권은 꼭 검토해야만 하는 조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안타깝게도 오늘 발표를 통해 보셨듯 젊은 과학기술인이 몸담고 있는 연구환경은 인권친화적이지 않습니다. 발표자료에서도 언급이 된 바 있는 올해 한국연구재단에서 발표한 <청년과학자의 연구 및 학업 관련 애로요인 분석> 보고서는 청년과학자의 불편한 연구실 문화 유형을 열정페이형’, ‘워라밸파괴형’, ‘무관심/방임형’, ‘교수재량 남용(불통/독재)’, ‘인격무시/강압형’, ‘연구윤리 위반형’, ‘과도한 잡무 요구형등으로 구분한 바 있습니다. 2300여명 중 10%를 넘는 청년과학자가 이 중 하나 이상의 유형과 관련한 애로사항을 호소했고, 각 유형별 응답자 수는 전체 대비 앞의 네 유형에서 2% 정도, 뒤의 세 유형에서 1% 정도라고 합니다.

물론 인권을 논하는 이 자리에 계시는 훌륭한 교수 및 연구책임자 분들께서는 그러지 않겠지만, 제 관찰 결과, 오늘 발표자료나 제가 언급한 것과 같은 젊은 과학기술인이 처한 인권환경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와 그 사례들을 두고 일부 대학본부나 교수들이 일관되게 보인 반응이 있습니다. 바로난 아니야내지는 내 주변에 그런 경우 못 봤다고 하는 부류와 극소수 사례로 일반화하지 말라고 항변하는 부류입니다. 개인적으로 전자의 경우 남궁석 교수님께서 BRIC에 쓰신 칼럼 제목과 칼럼서 다룬 사례만으로도 별 의미도 없고 도움도 되지 않는 반응이라는 것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라는 칼럼인데, 글은 직접 물어본 결과에 따르면 나오지 말아야 할 오줌 성분이 분명 수영장 물에서 검출이 된다는 사례를 들고 있습니다.

한편 인권침해를 당한 젊은 과학기술인이 많지 않은데 이러한 일부 소수 사례를 일반화하지 말라는 반응은 보다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교수에 의한 대학원생의 인권침해 사례가 많이 알려져서인지 일부 교수들은 더 나아가 교수 전체를 잠재적 가해자 내지는 범죄자 취급하지 말라고 항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과학기술인의 인권 증진에 하등 도움이 안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현실을 소수 인권침해 사례와 다수 문제없는 나머지로 구분하여 그 소수만을 문제 삼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앞서 살펴보았듯 다양한 인권침해 유형이 상존하고 같은 유형 안에서도 사람마다 느끼고 의식하는 바가 다른 현실을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담을 수는 없습니다. 그보다 현실은 최악의 인권환경부터 (아마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있는) 최고의 인권환경까지 하나의 연속적인 스펙트럼 위에 그려진 분포도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는 이 분포도를 어떻게 좋은 쪽으로 계속해서 이동시킬 것인가에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저는 홍성욱 교수님께서 발표하신 내용 문제의식과 개선 방향 및 제언 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젊은 과학기술인의 인권에 대해 최근 부쩍 늘어난 관심이 현황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와 이에 기반한 보다 실효성 있는 정책으로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 몇가지 보완할 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번째로, 교수님께서는 왜 젊은 과학기술인(의 인권)인가?’라는 질문에 대학원생 인구 증가에 따른 신진 연구인력 공급 과잉을 지적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셨는데, 물론 구조적인 수요-공급 불균형 상태에 놓인 고급과학기술인력시장 역시 빼 놓아선 안되는 요인이겠으나 다른 요인들에 대한 분석도 추가해야 한다고 봅니다. 당장 제 머릿속에 두가지 요인이 더 떠오릅니다. 하나는 연구책임자는 과제를 수주해와 연구비를 조달하고 연구실을 관리하는 관리자가 되고 그 아래에 있는 젊은 과학기술인들은 그 과제를 수행하는데 급급해하고 가르침을 받기보다 관리되고 있는 연구실의 현실입니다. 오늘날의 교수는 중소기업 사장과 다를 바 없다라는 말을 적잖이 들으셨을 것입니다. 또다른 하나는 연구실에 팽배하고 있는 어떻게든 더 많은 논문과 특허를 내야한다는 성과주의입니다. [JJ1] 젊은 과학기술인의 인권에 대한 배경을 분석할 때 이러한 연구시스템의 문제, 물론 이것들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닙니다만, 또 이로 인한 연구실 내 문화적인 요인도 함께 그 범위에 넣어야 보다 정확한 현실 인식과 보다 구조적인 개선 방향 및 제언을 도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번째로, 오늘 발표 뿐만 아니라 많은 젊은 과학기술인 내지는 대학원생의 인권현황에 대한 분석은 누가 봐도 문제인실태조사 결과와 몇몇 눈에 띄는 사례들을 나열하는 데 그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개선방향과 제언으로 사실 모두가 아는 당연한 내용을 되풀이하곤 합니다. “정당한 정신적/물질적 보상과 인정,” “연구지원의 실질적 확대,” “연구안전 확보,” “인권거버넌스 고도화등처럼 말입니다. 물론 이것이 의미가 없다는 비판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제 이보다 한발짝 더 나아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젊은 과학기술인이 가지는 역할과 기능, 그들이 기성 과학기술인(교수 등 연구책임자 급의 시니어 과학기술인)과 맺는 관계와 그 관계에서의 상대적 지위를 살펴봄으로서 그들의 인권과 권리가 침해당하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따져보아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젊은 과학기술인과 그들의 인권 및 권리에 대한 이론화를 시도하자는 제안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미 다른 곳에서 글을 통해 이 이론화를 시도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는 짧게 결론만 말하자면, 첫째, 오늘날 젊은 과학기술인 내지는 대학원생은 대학과 학문 및 연구생태계가 유지되고 지속되도록 기능하는 메인테이너(maintainer)’라는 것, 둘째, 이들에게 있어 연구책임자 내지는 교수는 곧 의무통과점(obligatory passage point)’라는 것입니다. 특히 저는 후자가 젊은 과학기술인의 인권 개선이 요원한 이유 중 하나로 보고 있는데, 이 분석에 따르면 현재 연구책임자 및 교수에게 집중적으로 제도화된 권력을 분산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야 보다 근본적으로 젊은 과학기술인의 인권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젊은 과학기술인이라는 범주를 보다 세분화하여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발표한 자료 중 경제권 항목에서 연구재단의 설문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같은 청년과학자 사이에서도 높은 수준의 소득 불평등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소속 대학, 학과 내지는 전공, 연차 등에 따른 차이를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소득을 예로 들었지만 연구환경과 문화도 그런 요소에 따라 모두 다를 것입니다. 이들을 모두 젊은 과학기술인으로 묶어 공통점을 찾는 것도 하나의 숙제겠지만, 차차 이들간의 차이점을 분석하는 방향으로 연구를 확장해가야 할 것입니다.

이상으로 제 토론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