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끄럽게, 또 위험하게 달리는 라이더들을 보며 떠올린 잡생각.

라이더는 너무도 잘 보이면서 동시에 역설적으로 보이지 않는 노동자가 아닌가.
우리가 길을 다닐 때 그들은 바삐 움직이고, 또 어떨 땐 도저히 좋게 봐주기 힘들게 시끄럽게, 또 위험하게 달리고 있다. 하지만 막상 내가 집안에서 손가락을 놀리며 메뉴를 정하고 나선 보이지 않는다.

음식점에 앉아서 기다리다가 내 식사가 나왔나 싶으면 어디선가 말없이 나타나 포장된 음식물을 들고 사라져버린다. 아까만 해도 내가 줄에서 두번째 서있구나 싶었는데, 그 사이에 보이지 않는 라이더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니 답답하고 짜증난다. 요즘도 있는 지 모르겠지만 '배달의 민족 주문'이라고 끝없이 울려대던 알람은 마치 택시에서 듣는 '카카오 T' 알람과 다를 바 없이 신경 쓰인다.

음식점을 나서면 정말 10초에 한번씩은 오토바이가 부릉거리는 소리와 함께 나를 지나친다. 모두 휴대폰이나 전용 단말기를 핸들 위에 달아놓고 끝없이 확인하며 달린다. 위험천만하기 그지없다. 주택가인만큼 저렇게 달리면 분명 많은 사람들이 소음에 신경질이 날테고, 또 사고가 날 확률도 높다. 많은 주택가엔 인도가 따로 없고, 있더라도 라이더는 인도와 차도를 가리지 않고 달린다.

하지만 이렇게 너무도 잘 들리고 보이던, 그래서 짜증나고 싫던 라이더들은 막상 내가 배달을 시킬 땐 보이지 않는다.

라이더가 길가에서 달리다가 앞을 보지 않고 주문을 받는 시점부터, 벌컥 음식점 문을 열고 기다리는 손님들의 눈초리를 애써 무시한 채 포장된 음식물을 들고 나오는 장면, 타이머로 설정된 시간을 지키기 위해 신호도 인도-차도 구분도 무시해가며 달려서 내 방문 앞에 오기까지. 그저 나는 방에서 잠옷 차림으로 기다리다가, 좀 늦어지면 짜증도 내다가, 신경질 나던 흔한 오토바이 소리에 기대하다가, 라이더가 도착하면 눈 한번 마주치지 않고 배달된 음식물을 받으면 된다.

그래서 라이더는 너무도 잘 보이면서 동시에 보이지 않는 노동자다. 이 메인테이너들은 혹자가 그토록 외치는 4차 산업혁명 아래 일어나(야 하)는 혁신을 유지하고 지탱한다. 항상 그래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이들을 제대로, 또 새롭게, 또 좀더 따뜻한 눈으로 발견하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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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 전준하입니다. 사실 제 지도교수님께서 오늘 제 지정토론 대상인 과학기술인의 인권분과에 집필위원으로 계시는데, 원래도 허심탄회하게 생각을 주고받는 관계이기도 하고, 또 오늘 자리에 계시지 않기도 하니 어느 때보다 솔직한 토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서 세 분과는 한림원에서 제게 요청했던 토론 주제인 과학이 인권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내지는 과학이 인권침해에 쓰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안에 알맞은 발표를 해주셨습니다. 한편, 네번째 분과인 과학기술인의 인권은 어떻게 보면 혼자 주제가 조금 달라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홍성욱 교수님께서도 왜 젊은 과학기술인인가?”라는 질문으로 발표를 시작하셨습니다. 오늘 오픈포럼에 맞추어 질문을 좀더 명확히 하자면 왜 젊은 과학기술인의 인권인가?”가 될 텐데, 이 주제가 단순히 요즘 언론을 통해 워낙 회자되는 이슈라는 이유로 본 프로젝트에 포함된 것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왜 과학이 인권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에 젊은 과학기술인의 인권을 물어야 할까요?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인권향상에 기여하는 과학의 출발점은 바로 그 과학을 하는 과학기술인의 인권이 존중받고 보호받는 환경일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인권연구자가 아니기 때문에 자세히 살펴보지 못했습니다만, 인권을 존중받은 경험과 보호받는 환경이 그 사람의 인권의식 형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결론을 내린 선행연구가 다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과학이 인권향상에 기여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에 앞서 과학기술인의 인권은 꼭 검토해야만 하는 조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안타깝게도 오늘 발표를 통해 보셨듯 젊은 과학기술인이 몸담고 있는 연구환경은 인권친화적이지 않습니다. 발표자료에서도 언급이 된 바 있는 올해 한국연구재단에서 발표한 <청년과학자의 연구 및 학업 관련 애로요인 분석> 보고서는 청년과학자의 불편한 연구실 문화 유형을 열정페이형’, ‘워라밸파괴형’, ‘무관심/방임형’, ‘교수재량 남용(불통/독재)’, ‘인격무시/강압형’, ‘연구윤리 위반형’, ‘과도한 잡무 요구형등으로 구분한 바 있습니다. 2300여명 중 10%를 넘는 청년과학자가 이 중 하나 이상의 유형과 관련한 애로사항을 호소했고, 각 유형별 응답자 수는 전체 대비 앞의 네 유형에서 2% 정도, 뒤의 세 유형에서 1% 정도라고 합니다.

물론 인권을 논하는 이 자리에 계시는 훌륭한 교수 및 연구책임자 분들께서는 그러지 않겠지만, 제 관찰 결과, 오늘 발표자료나 제가 언급한 것과 같은 젊은 과학기술인이 처한 인권환경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와 그 사례들을 두고 일부 대학본부나 교수들이 일관되게 보인 반응이 있습니다. 바로난 아니야내지는 내 주변에 그런 경우 못 봤다고 하는 부류와 극소수 사례로 일반화하지 말라고 항변하는 부류입니다. 개인적으로 전자의 경우 남궁석 교수님께서 BRIC에 쓰신 칼럼 제목과 칼럼서 다룬 사례만으로도 별 의미도 없고 도움도 되지 않는 반응이라는 것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라는 칼럼인데, 글은 직접 물어본 결과에 따르면 나오지 말아야 할 오줌 성분이 분명 수영장 물에서 검출이 된다는 사례를 들고 있습니다.

한편 인권침해를 당한 젊은 과학기술인이 많지 않은데 이러한 일부 소수 사례를 일반화하지 말라는 반응은 보다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교수에 의한 대학원생의 인권침해 사례가 많이 알려져서인지 일부 교수들은 더 나아가 교수 전체를 잠재적 가해자 내지는 범죄자 취급하지 말라고 항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과학기술인의 인권 증진에 하등 도움이 안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현실을 소수 인권침해 사례와 다수 문제없는 나머지로 구분하여 그 소수만을 문제 삼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앞서 살펴보았듯 다양한 인권침해 유형이 상존하고 같은 유형 안에서도 사람마다 느끼고 의식하는 바가 다른 현실을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담을 수는 없습니다. 그보다 현실은 최악의 인권환경부터 (아마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있는) 최고의 인권환경까지 하나의 연속적인 스펙트럼 위에 그려진 분포도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는 이 분포도를 어떻게 좋은 쪽으로 계속해서 이동시킬 것인가에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저는 홍성욱 교수님께서 발표하신 내용 문제의식과 개선 방향 및 제언 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젊은 과학기술인의 인권에 대해 최근 부쩍 늘어난 관심이 현황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와 이에 기반한 보다 실효성 있는 정책으로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 몇가지 보완할 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번째로, 교수님께서는 왜 젊은 과학기술인(의 인권)인가?’라는 질문에 대학원생 인구 증가에 따른 신진 연구인력 공급 과잉을 지적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셨는데, 물론 구조적인 수요-공급 불균형 상태에 놓인 고급과학기술인력시장 역시 빼 놓아선 안되는 요인이겠으나 다른 요인들에 대한 분석도 추가해야 한다고 봅니다. 당장 제 머릿속에 두가지 요인이 더 떠오릅니다. 하나는 연구책임자는 과제를 수주해와 연구비를 조달하고 연구실을 관리하는 관리자가 되고 그 아래에 있는 젊은 과학기술인들은 그 과제를 수행하는데 급급해하고 가르침을 받기보다 관리되고 있는 연구실의 현실입니다. 오늘날의 교수는 중소기업 사장과 다를 바 없다라는 말을 적잖이 들으셨을 것입니다. 또다른 하나는 연구실에 팽배하고 있는 어떻게든 더 많은 논문과 특허를 내야한다는 성과주의입니다. [JJ1] 젊은 과학기술인의 인권에 대한 배경을 분석할 때 이러한 연구시스템의 문제, 물론 이것들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닙니다만, 또 이로 인한 연구실 내 문화적인 요인도 함께 그 범위에 넣어야 보다 정확한 현실 인식과 보다 구조적인 개선 방향 및 제언을 도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번째로, 오늘 발표 뿐만 아니라 많은 젊은 과학기술인 내지는 대학원생의 인권현황에 대한 분석은 누가 봐도 문제인실태조사 결과와 몇몇 눈에 띄는 사례들을 나열하는 데 그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개선방향과 제언으로 사실 모두가 아는 당연한 내용을 되풀이하곤 합니다. “정당한 정신적/물질적 보상과 인정,” “연구지원의 실질적 확대,” “연구안전 확보,” “인권거버넌스 고도화등처럼 말입니다. 물론 이것이 의미가 없다는 비판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제 이보다 한발짝 더 나아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젊은 과학기술인이 가지는 역할과 기능, 그들이 기성 과학기술인(교수 등 연구책임자 급의 시니어 과학기술인)과 맺는 관계와 그 관계에서의 상대적 지위를 살펴봄으로서 그들의 인권과 권리가 침해당하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따져보아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젊은 과학기술인과 그들의 인권 및 권리에 대한 이론화를 시도하자는 제안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미 다른 곳에서 글을 통해 이 이론화를 시도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는 짧게 결론만 말하자면, 첫째, 오늘날 젊은 과학기술인 내지는 대학원생은 대학과 학문 및 연구생태계가 유지되고 지속되도록 기능하는 메인테이너(maintainer)’라는 것, 둘째, 이들에게 있어 연구책임자 내지는 교수는 곧 의무통과점(obligatory passage point)’라는 것입니다. 특히 저는 후자가 젊은 과학기술인의 인권 개선이 요원한 이유 중 하나로 보고 있는데, 이 분석에 따르면 현재 연구책임자 및 교수에게 집중적으로 제도화된 권력을 분산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야 보다 근본적으로 젊은 과학기술인의 인권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젊은 과학기술인이라는 범주를 보다 세분화하여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발표한 자료 중 경제권 항목에서 연구재단의 설문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같은 청년과학자 사이에서도 높은 수준의 소득 불평등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소속 대학, 학과 내지는 전공, 연차 등에 따른 차이를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소득을 예로 들었지만 연구환경과 문화도 그런 요소에 따라 모두 다를 것입니다. 이들을 모두 젊은 과학기술인으로 묶어 공통점을 찾는 것도 하나의 숙제겠지만, 차차 이들간의 차이점을 분석하는 방향으로 연구를 확장해가야 할 것입니다.

이상으로 제 토론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참 쓰기 힘들었던 과학뒤켠 기고글이다. ('글쓰기가 두렵다' 포스팅 참고)

원문은 여기에 전부 옮겨오기보다 과학뒤켠 홍보 차원으로 과학뒤켠 블로그에서 읽어주시길 부탁드린다. 

(링크: https://behindsciences.kaist.ac.kr/2018/10/07/%EB%8C%80%ED%95%99%EC%9B%90%EC%97%90-%EC%83%81%EC%8B%9D%EC%9D%84-%EB%AC%BB%EB%8B%A4/)

과학뒤켠 매 호는 PDF 파일로도 볼 수 있다. 이 글은 파일에서 꽤 뒤쪽에 있고, (링크: https://stp.kaist.ac.kr/0608/view/id/1033) 여기에는 파일이 커서 전체를 첨부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 부분만 잘라서 첨부했다. 

아래에는 개인적으로 가장 쓰기 고통스러웠지만 써놓고 보니 고민했던 것들이 풀리는 기분이라 후련했던 "교수니까 괴수다"라는 소제목을 붙인 부분에서 일부만 인용하겠다. 

차후 과학뒤켠에 실은 내용은 논문이든 책의 한 단원이든 좀더 발전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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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 인권침해 문제는 ‘극소수 괴수’만의 문제일 뿐 ‘대다수 교수’는 문제없다는 사고방식과 태도는 분명 논파할 필요가 있다. ...(중략)... 하지만 괴수와 교수를 나눠 생각하는 이분법적 사고는 문제를 일으킨 교수를 괴수라는 다른 유형의 사람으로 구분하고 이해할 수 없는 영역으로 치부한 채 괴수가 따로 있지 않다는 사실과 교수니까 괴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중략)...
교수는 때에 따라, 장소에 따라, 상대하는 사람에 따라 괴수이기도 아니기도 하다. 괴수라는 유형의 사람이 따로 있어 그가 인권 침해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교수도 인권 침해를 할 수 있으며 그 순간 바로 괴수가 되는 것이다. 이는 교수가 아니고서는 괴수가 될 수 없다는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논문지도를 모텔에서 해주겠다거나, 훈계라면서 폭언이나 폭행을 일삼거나, 인건비를 횡령하거나 연구저작물을 가져가고, 이를 지적하거나 고발한 대학원생에게 학계에 발을 못 붙이게 하겠다고 협박하는 등 교수에 의한 대학원생 인권 침해 사건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유형은 모두 그가 교수이기 때문에 저지를 수 있었던 짓이다. 운 나쁘게 괴수임이 드러나도 대부분 교수로 구성된 징계위원회로부터 휴가에 가까운 정직이라는 중징계를 받고서 다시 교단에 설 수 있는 것 역시 그가 괴수이기 이전에 교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교수라는 사람이 그럴 수 있지?’라고 물을 것이 아니라 그가 교수라서 그럴 수 있었다는 생각을 갖고 ‘괴수가 된 교수’를 이해해야한다. ...(중략)... 교수가 어떻게 괴수로 변하는지를 이해하고자 노력할 경우 우리는 교수가 대학에서, 특히 대학원생과의 관계에서 어떤 입장과 위치에 서게 되는지, 어떤 요소들이 교수라는 자리를 구성하고 그 중 어떤 것이 괴수를 만드는 데에 기여하는지를 분석할 수 있다. 즉, 괴수를 개인이 아닌 사회 현상으로 바라볼 수 있으며, 이는 제도적 해법을 도출하기 위한 첫 발걸음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교수는 어떻게 괴수가 되는가?

...(후략: 여기까지 읽을 정도로 글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원문을 읽으시는 것으로!)...


교수신문 편집 원칙상 원문에 거의 손을 대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도 교수들이 글을 많이 기고할텐데 자존심 강한 교수들이 손 대는 것을 원치 않겠지.... 그래서 아마 아래 내가 기자님께 보냈던 글과 링크(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41864)를 통해 볼 수 있는 글이 차이가 거의 없을 것이다. 

쓴지 얼마 안되어 인쇄본 2부가 집으로 배달되어 뜻하지 않게 부모님이 칼럼을 읽으셨다. 아버지와 동생은 대학 나왔다고(물론 휴학생 신분이긴 하짐나) 이렇게 써도 되는거냐고 물었고, 어머니는 내 칼럼 뿐만 아니라 신문 지면이 다 대학이나 고등교육정책에 대한 성토장이라는 감상을 남기셨다. 

이우창 서울대 원총 전문위원님을 통해서 <대학원생들의 一聲>이라는 교수신문의 무려 10회 기획연재에 참여하게 되었다. 노웅래 의원실, 대학원생노조, 교육부 등이 주관 및 주최하여 이화여대에서 대대적으로 열렸던 <대학 내 권력형 성희롱·성폭력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 촉구 간담회>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함께 식사를 하다가 기해당 연재를 기획한 기자님을 소개받았고, 아마 2회분이 비어 있었던 때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기자님도 조교 제도에 대해서 쓰는 것을 요청하셨고, 나 역시 그러고 싶었기 때문에 기획연재 막차에 탑승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대학원생노조와 함께 기획한 것이던데, 나는 (아직은?!) 대학원생노조 가입자는 아니고, 글에도 썼듯이 교육부 연구과제 참여자로서 느낀 점을 작성했다. 하지만 최근 올브레인이라는 대학원생 커뮤니티를 통해 연재된 대학원생노조 구슬아 위원장 인터뷰(총 3편인데, 1, 2편은 꼭 읽어보기를 추천. https://www.allbrain.kr:5004/bbs/board.php?bo_table=news&wr_id=1381)를 보고 후원을 결심했다. 교수신문에서 원고료를 얼마나 줄지 모르겠지만 입금되는대로 그대로 대학원생노조에 전달할 생각이다. 

조교 제도에 대해 할 말은 많은데 - 특히 법률과 관련하여 - 칼럼 길이가 제한되어 있다보니 현재 제도를 구체적으로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형식으로 글을 쓰기가 힘들어 결국 현실에 대한 재해석 내지는 표현 다각화를 통해 글을 작성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인상깊게 여겼던 '메인테이너'라는 개념을 차용했고, 다양한 대학 내 노동 공백을 메우는 조교들을 보고 '누더기'를 떠올렸다. 아마 처음 기자님께 제안했던 주제는 '조교 제도의 허점'이었는데 글을 작성하고 보니 '대학의 허점이 곧 조교 제도'라는 주장을 했다.

...보통 기고글에는 서론을 길게 남기지 않으려고 했는데..... 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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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교로 기운 누더기 대학

전준하(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

작년 10월부터 6개월간 교육부에서 발주한 <대학원생 권리강화 방안 연구>라는 주제의 정책연구과제를 수행했다. 조교 제도를 다루지 않을 없었다. 한편, 대학원생은 연구과제에 아무리 주도적으로 참여하더라도 연구책임자가 없다. 그렇게 나는 조교 제도를 연구하는 연구조교가 되었다. 하지만 연구조교라고 단순히 연구만 하라는 법은 없다. 영수증을 정리하며 연구비를 관리하고, 홍보 포스터를 디자인해서 붙이러 다니며 연구과제 관련 공청회와 토론회를 준비하고, 이따금씩 걸려오는 교육부 전화에 응대하며 자료를 주고받아야 했다. 그러니 나는 연구과제의 사무/행정조교이기도 했다.

앞서 김민섭 작가가 말했듯, 조교는 교수나 교육 연구 업무를 보조한다는 사전이나 법에 적힌 정의는 이제 옛말이 되었다. 오늘날 이들은 수업/강의조교, 실험/실습조교, 교육/교수조교, 연구조교, 사무/행정조교, 학과조교, 연구소조교, 산학협력조교, 기숙사조교, 상담조교 대학에서 있을 있는 모든 형태의 노동을 담당한다. 이름에 해당하는 업무 범위를 넘어 대학 존재하는 다양한 노동 공백을 메워온 역시 조교였다. 조교는 이제 명실상부한 대학의 메인테이너(maintainer) 자리잡아 대학이 지속하여 작동할 있도록 기능하고 있다.

대학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주된 인력인 만큼, 대학원생 과반수는 본인을 학생근로자 인식하기 시작했다. 학생근로자라는 단어는 나를 포함한 대학원생 조교들이 경험하는 모순을 단어로 표현한다. 우리는 대학에 남아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노동을 해야만 하고, 나아가 훌륭한 학생이자 인정받는 연구자가 되기 위해 경제적 보상과 무관하게 일을 주어진 이상으로 열심히 해야만 한다. 그렇게 대학원생 조교는 평균 일주일에 20시간에서 30시간을 조교 업무에 쏟고 있으며[1], 말그대로 학생이기 위해 근로하는 학생근로자가 되었다.

대학은 대학원생 조교의 메인테이너 역할과 그들이 학생근로자로서 처한 모순적인 상황을 누구보다 이해하고 있고, 동시에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대학은 조교 제도를 장학 제도와 뒤섞어 대학원생 조교에게 장학금 명목으로 등록금을 감면해주고 이상의 보상은 거의 주지 않는다. 심지어 조교 근무를 졸업요건으로 정해 의무화한 대학이나 학과까지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학칙이나 규정 등으로 조교 임용과 근무 조건에 대한 기본적인 사항을 정하고 있지만 대학 본부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뒤집을 있다. 성균관대 조교 대량 해고 사태에서 이미 목격한 바다. 조교 제도는 대학의 재정 효율화 전략이 되었고, 대학원생 조교는 대학 운영을 위한 가용자원이 되었다.

또한 장학 목적이 일순위여야 조교 제도는 오히려 대학이 교수에게 제공하는 혜택이 되었다. 대학은 선심 쓰듯 학과 교수별로 조교 인원을 배정해주고, 학과와 교수는 또다시 선심 쓰듯 듣는 학생 몇명을 골라 장학금을 쥐여주며 다양한 일을 시킨다. 돈이 학과 자체 계정이나 교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것도 아닌데 학과와 교수 권한을 강화하는데 쓰이고 있는 것이다. 대학원생이 학과나 교수에 종속될수록 전반적인 대학원생 권리 침해는 심각해지고 보호나 강화는 힘들어지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조교 제도 역시 여기에 기여하고 있다.   

대학원생 조교 처우 개선에 대한 목소리는 예전부터 간간이 들렸지만, 대학원생 조교 사용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혐의로 대학 총장이 검찰에 송치되고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이 결성되는 조교 제도에 대한 여러 기념비적인 사건은 최근 부쩍 늘었다. 구멍이 곳마다 천을 덧대고 기워 만든 누더기 옷과 다를 없는 지금 대학 구조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신호다. 교수신문에 주로 대학원생들의 입을 빌려 연재되고 있는 <대학원생들의 一聲>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일부 대학원생이 푸념하는 목소리가 아니다. 대학을 유지하고 지속시켜온 메인테이너들이 대학에 보내는 경고다. 조교로 기운 누더기 대학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새 옷을 구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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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육부가 2017 대학원생 조교 현황을 조사하기 위해 대학을 통해 수집한 규정상 근무시간 통계이기 때문에 실제로 대학원생들이 업무 수행에 들이는 시간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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