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 블로그에 글을 직접 쓰기보다 여기저기 써놓은 글을 옮겨다놓는 아카이브로만 활용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지만... 


이번에도 한겨레 기사에 짧게 코멘트가 실려 기사를 공유한다. 

기사 원문은 여기로.


저번과 마찬가지로 짧은 코멘트 뒤에는 짧지만은 않은 이메일 답신이 있었다. 또한 역시 predatory journal & conference에 대한 내 생각을 담고 있기에 아래 기자님께 드린 이메일 답신을 가져온다. 따로 허락 받은 건 아닌데, 뭐... 내가 쓴 거니깐...ㅋㅋㅋ

기사를 쓰신 오철우 기자님과는 오랜만에 연락을 주고 받았다.

3년반 정도 전에는 내가 워싱턴dc에서 참석한 포럼 후기를 한겨레 사이언스온에 기고하려고 다소 뜬금없이 연락을 드렸었다. 이제 사이언스온은 미래&과학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고 있고, 오철우 기자님은 한겨레 토요판에서 기사를 쓰고 계신다. 와셋 사태에 대한 서면 인터뷰를 위한 연락이 왔을 때 감회가 새로웠다.


-----


안녕하십니까 오철우 기자님, 이렇게 다시 연락을 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이전에 미국에서 인턴을 하던 시절 사이언스온에 아래 글을 기고해서 자랑스러워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링크:  http://scienceon.hani.co.kr/275582)

벌써 3년이 넘게 흘렀네요. 그 글을 기점으로 보다 활발하게 글을 쓰게 되어 기억에 크게 남는데, 당시 오철우 기자님께서 잘 다듬어주셔서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우선 과총 <과학과기술>에 기고한 글과 토론회에서 발표한 토론문만을 접하셨다고 가정하고, 아래 와셋 사태와 관련하여 작성한 몇 개 글을 더 첨부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일부는 물어보신 질문과도 겹치는 부분이 있는데, 대부분 제 SNS나 블로그에만 올렸던 글이기 때문에 그대로 인용하셔도 무방하겠습니다.

1. http://stpforerbody.tistory.com/36 (뉴스타파 ‘가짜학문 제조공장의 비밀’ 시민 초청 시사회 발언문 (2018.7.23))

2. http://stpforerbody.tistory.com/40 (대학신문 기사 "이상한 학회의 한국인 학자들" 인터뷰 질의서 (2018.9.11))

3. http://stpforerbody.tistory.com/49 ('아는 사람 이야기': 뉴스타파 보도 <현직 교수, 페이퍼컴퍼니 끼고 '다단계 학회사업'> 제보)


특히 주신 2번째 질문("실제로 와셋과 같은 학회, 저널의 ‘판촉’ 메일을 받아보신 경험이 있으신지요?")은 위 2번 글에서 답한 것 이상으로 드릴 말씀이 딱히 없는데요, 혹시 읽고나서 불분명한 부분이 있으면 다시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래에는 2번째 질문을 제외하고 답변을 드릴텐데, 질문을 읽고 고민을 하다가 거꾸로 답변하는 것이 제가 생각하기에도 기자님께서 읽으시기에도 편할 것 같아 그렇게 적었습니다.

 

답변드린 내용에 추가 질문이 있거나 할 경우 또 연락주십시오.

기사 나오면 공유부탁드리구요.

감사합니다!


전준하 드림.


---

 

-우리나라 학문 생태계와 관련한 전공분야를 연구하고 계신지요? 토론회와 기고문에서 전문적 식견을 펼치셔서, 현재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나 이전 연구의 전공경험이 궁금합니다. 이번 사태와 관련있는 연구를 해오셨는지요?

 

저는 단지 두루뭉술하게 대학과 학문이라는 제도, 연구라는 행위와 연구자 집단, 이들과 상호작용하는 정책을 연구하고자 공부하는, 연구의 전공경험(?)은 일천한 학생입니다. LINC 사업에 대한 사례연구로 석사학위논문을 썼고, 대외적으로(?) 알려진 연구결과물로는 교육부에서 발주한 <대학원생 권리강화 방안연구> 정책연구보고서가 있긴 합니다만...

 

말이 나온 김에 간단하게 제 근황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저는 현재 한 중소기업에서 전문연구요원으로 복무중입니다. 다만 회사와 무관한 일로 기고하거나 행사에 참석할 때는 대학원생이라고 소개하곤 합니다. 전문연구요원 편입 직전 휴학해서 풀타임으로 연구를 하고 있진 않고, 퇴근 후에 시간내서 감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수준입니다.  박사과정에 입학하자마자 휴학했으니 박사학위 논문 주제를 정했을리 없고, 연구경험이 많지도 않아 앞서 언급한 것 외로는 소개할 것이 따로 없네요.

 

그래서 '전문적 식견'이라고 하기에는 부끄러운 수준이고, 다만 저 자신을 같은 연구자이면서도 연구자를 연구하는 연구자라고 여기며 모두들 바쁘게 달려 각자 연구에 여념이 없을 때 천천히 걸으면서 제3자 아닌 제3자의 생각을 말과 글로 옮겼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연구자라면 누구나 잠깐 멈추어 이 경기장을 관망한다면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라 봅니다. 물론 관심분야가 관심분야이다보니 와셋과 같은 predatory conference나 journal, publisher 등에 대한 논문이나 에세이를 이전부터 많이 읽어왔고, 그러다보니 뉴스타파 기사 상영회 때도 그렇고 이런저런 발언 기회가 온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고민투성이인 제 진로를 묻는 질문이라 굉장히 모호한 답변이 된 점 죄송합니다.)

 

-현장연구자이자 젊은 학문세대들이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대체적인 시각을 대변해주실 수 있을런지요.


사태가 뉴스타파를 통해 알려졌을 때 저는 이미 휴학하고 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기 때문에 잘 대변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질문에 문자 그대로 답하자면... 아니오, 못하겠습니다.


다만, 제가 직접 경험한 바와 더불어 접한 일부 사례들을 통해 몇가지 추측은 해볼 수 있겠습니다.


우선 꼭 뉴스타파를 필두로 한 언론 보도를 통해서 접하지 않았더라도 부실학실활동에 대한 초기경력연구자들이 처음 보이는 반응은 실망과 환멸일 것입니다.


자신을 연구자 혹은 '젊은 학문세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교수와 같이 연구와 학문을 업으로 삼는 삶을 상상할텐데요.

보통 그렇게 처음 학계에 발을 들일 때는 상당히 이상적인 학계 모습을 기대하게 됩니다. 일정기간 연구한 결과를 학술대회에 발표하고 같은 분야 연구자들과 함께 격의 없는 토론을 나누고, 그 결과를 다시 연구에 반영해서 학술지에 제출하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한 세부전공에서 대가가 되는 것을 꿈꾸기 마련이죠. 하지만 그런 기대를 가진 초기경력연구자가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것과 같은 부실학술활동*을 처음으로 경험하게 되면 일단 혼란스럽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이내 그것이 만연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초기경력연구자는 무기력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존경할만한 연구자들도 부실학술활동을 보고도 묵인하거나 되려 동조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지만서도 자신이 있는 위치상 선택지는 회피 아니면 적응 두가지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연구재단을 필두로 '부실'이라는 수식어가 자리를 잡아가는 듯합니다. 저 역시 뉴스타파가 사용한 '가짜'나 Beall이 사용한 단어를 직역한 '약탈적' 보다 '부실'이 가장 낫다고 생각하기에 이 수식어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이중 회피를 선택한 사람들은 우리나라 학계는 속된 말로 '노답'이니 (답이 없으니) 제대로 된 학술활동을 경험하기 위해 유학을 가거나 아예 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접을 것입니다. '제도권'을 벗어난 독립연구자를 자처하기도 합니다. 적응을 선택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이런 부실학술활동이 만연한 것을 용인하되 신경쓰지 않고 '나는 내 할 것 하겠다'라는 태도를 가지기도 하고, 또는 필요할 때 적극적으로 부실학술활동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초기경력연구자 입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앞서 언급한 실망과 환멸로 시작해서 회피와 적응으로 끝나고, 이것이 대를 이어 반복되는 현상이 제도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종의 성인식 마냥 누구나 경험하는 과정이 되었다는 뜻이지요.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연구윤리, 내지는 해외에서 부르는 Good research (science) practice는 규정과 가이드라인을 통해서 배우고 익히기보다 실제로 연구활동을 하면서 경험하고 지키게 되는 것인데 초기경력연구자가 보고 배워야 할 기성세대(?) 연구자들이 부실학술행위를 직접 하고 있거나 용인하고 있다면 그 역시 연구윤리를 매뉴얼로만 여기고 선배들이 하는 대로 하게 될 것입니다. 구구절절 길게 말씀드렸지만 결국 초기경력연구자가 적절한 교육을 받고 있지 못하다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교육은 단순히 지도교수가 대학원생에게 말로 지도하는 것이 아닌 작금의 학계에서 어떻게 연구를 하고 어떻게 우리나라에서 연구자가 되는지에 대한 넓은 범위의 교육입니다. 더 나아가 회피를 선택한 사람들은 떠나가고 적응을 선택한 사람들이 남는 우리나라 학계가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 것인지 매우 부정적인 상상도 해볼 수 있겠습니다.


-이번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시는지요? 기고한 글을 보면, 학빙여이건 학겸여이건 이런 사태가 누구의 책임이기 이전에 연구자들 자신의 책임이라고 지적하신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그 주장을 말씀해주실 수 있는지요?

 

이건 어느 직업군에서나 마찬가지일 듯 합니다만 (특히 전문직에서), 특정 직업군에 만연한 비리나 부정행위에 대한 글을 쓸 때 독자를 해당 직업군 종사자로 상정한다면 누구나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라고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를 들어, 기분이 나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기자님께서 기자들을 대상으로 기자가 '기레기'로 불리는 세태에 대해 글을 쓰신다면 우선 반성을 요구하지 않을지요? '연구자 책임'을 강조한 데에는 첫번째로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글에도 언급했지만 적지 않은 연구자 내지는 연구자단체가 이른바 '유체이탈화법'을 구사하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와 같은 지적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연구자들 자신의 책임이라고 한 또다른 이유는 이것이 단지 '일부 연구자의 일탈 행위'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부실학술활동과 거기에 연루된 연구자들을 문제삼기 전에 이 사태 - 이는 그것이 학회나 대학, 연구재단 등을 통해서 드러나기 전 언론에 의해 드러났다는 사실도 포함합니다 - 를 하나의 현상으로 보고 어떻게 이 현상이 일어났는지를 살펴봐야한다고 보았고, 학계의 주체인 연구자 개개인 모두 이 현상에 일정부분 기여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진정으로 흔히 말하는 '구조적 문제', '조직적 문제', '제도적 문제'를 드러내고 해결방안을 논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학자, 연구자들이 입을 모아 '학문 자율성'이나 '연구 자율성' 보장을 외치면서 왜 이런 반학술적 활동은 자율적으로 걸러내지 못했나라는 질문을 던지고자 했습니다. 학문 분야를 막론하고 부실학회를 비롯한 부실학술활동이 만연한 상황에서 이를 여태 몰랐던 연구자는 자기자신에게 왜 몰랐는지를 물어야 하며, 모른 척했던 연구자는 왜 모른 척했는지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두 질문은 모두 같은 대답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나라 학계에서 자기규율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기고한 글에서 학문공동체의 부재 내지는 붕괴라고 언급하기도 했지요.


제 주장은 이번 사태에 대해 분명한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문제를 가지기도 합니다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부라도 연구자 개개인 혹은 일부 학회나 연구자 단체가 직접 움직이지 않는 이상 상황 개선이 요원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과총이 아무리 가이드라인을 내놓고, 연구재단이 아무리 지표를 설정하여 인증제를 실시한다고 한들, 연구자 개개인이 같은 연구실이나 같은 학과의 다른 연구자가 부실학술활동을 한지 모르거나 모른 척 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또한, 많이들 이번 사태의 '근본적 원인'으로 지적하는 '평가 제도'에 있어서도 연구자들은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물론 신공공관리론에 입각한 정부 내지는 관료로부터 오는 압력이 아예 없지는 않겠으나, 평가 제도의 중심에는 여전히 연구자가 있습니다. 신규 교수나 연구원 임용 평가는 누가 하나요? 대학 업적 평가 제도는 누가 만드나요? 과제 평가는 누가 합니까? 학회나 학과 단위로라도 함께 노력하면 충분히 연구윤리도 확립할 수 있고 부당하다 생각하는 연구평가제도도 바꿀 수 있는 분들이 구조 탓, 시스템 탓만 하는 것을 보는 초기경력연구자들의 마음은 안타깝기만 합니다.  


조금 과격하게 말하자면 제대로 된 학술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학문공동체가 없는 학문, 연구공동체가 없는 연구를 하는 학자 내지는 연구자는 무의미한 점수만 쌓는 셈입니다. 이미 그런 분위기가 만연한 것 같아 안타깝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연구자들이 '어쩔 수 없다'며 자조하는 분위기가 아닌 '뭔가 해보자', 즉 학문공동체가 부재했으니 한번 만들어보자는 움직임이 나오길 바라는 마음에 연구자 책임을 묻는 주장을 했습니다.

어쩌다 과총에서 개최한 "연구윤리 '대'토론회"(1회)에 참석해서 몇마디 했다. 
4명의 발제는 나쁘지 않았으나, 패널 토론은 언제나 그렇듯 급하게 각자 자기 할 말만 하고 끝났다.

2회차 때에는 패널이 더 많았던 것으로 아는데 발표자 포함 16명의 패널을 1시간 남짓 안에 토론을 하라고 하니 제대로 토론이 될 수 있겠는가...

(행사 기사 링크: 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861748.html)

어쨌든 나는 과총에 계신 분들이 좋아하는 단어인 '젊은' 내지는 '청년'에 해당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는데 (기사에서 말하는 것과 달리 학생대표로 참석한 것은 아니다. 토론문에도 언급하겠지만 과총 관계자가 과총에서 발간하는 <과학과기술>지의 '젊은이의 광장'에 실은 기고문을 보고 뒤늦게 연락을 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를 초청한 건 구색맞추기가 아니었나 싶다.

또한 아래 가져온 토론문은 사실 일침에 가까운 발언(자리에 앉아있는 시니어급 연구자들에 대한)이었는데 끝나고 점심시간에 '젊은 친구그 기특하군' 류의 칭찬만 들었다... 높으신 분들부터 제대로 된 반성을 해야할텐데...

그래도 페이를 나쁘지 않게 받았으니 용돈은 감사합니다 과총.

아래는 내가 준비해 갔던 토론문.

---

어떻게 저리도 대단한 분들 사이에 듣도 보도 못한 대학원생이 끼게 되었나 의아해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저는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 전준하라고 합니다. 과총에서 발간하는 과학과기술지 9월호에 와셋 사태 관련해서 기고를 한 것이 과총 관계자분 눈에 들어 뒤늦게 토론 패널로 초청해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 토론회 부제가 ‘연구윤리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조금 괘씸하게 들릴 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나름대로 질문에 답을 하자면 문제는 당연하게도 많이들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고, 왜 많이들 지키지 않느냐하면 왜 지켜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며, 왜 지켜야 하는지 모르냐하면, 윤리란 본디 ‘공동체’의 유지와 존속을 위해 있는 것인데, 아무도 ‘연구공동체’의 유지와 존속에 관심이 없고 연구자 개개인은 살아남기에 급급해 자신의 실적 쌓는데에만 관심을 가지니 연구윤리를 지킬 이유를 못 느끼는 것이지요. 그렇게 ‘과학기술인’이라고 지칭할 만한 연구공동체는 서서히 붕괴되는 것입니다.

단순히 연구자 개개인이 문제라고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연구윤리,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지키지 않는 다른 사람’이 문제라고 하는 연구자, ‘규정에 없으니 문제될 것 없다’고 하는 연구자 등과 같이 문제를 타자화하기만 해서는 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연구 자율성을 그토록 외치던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연구윤리를 위반한 연구자들을 걸러내지 못한 채 정부 탓, 연구재단 탓, 대학이나 연구원 본부 탓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자율적으로 돌아갈 연구공동체가 없다고 고백하는 꼴이지요.

연구공동체가 없다는 말은 곧 연구자들이 서로 ‘동료 연구자’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연구자가 논문을 표절했는지, 연구 저자에 누군가를 끼워 넣었는지, 연구비를 빼돌렸는지, 이른바 가짜 학회에 다녀오거나 가짜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했는지 등 연구 윤리 위반 여부를 가장 잘 아는 사람도, 한 연구자의 역량과 그가 쓴 논문의 질, 의미와 가치, 성과를 가장 잘 아는 사람도 동료 연구자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과학기술계에서는 누군가 연구윤리 위반을 해도 모르거나 모른 척할 따름이며,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연구엔 평소 별 관심이 없다가 평가 요청이 오면 그제서야 해당 연구자가 논문을 몇 편 썼는지, 게재한 학술지의 인용 지수(Impact Factor)는 몇인지, 피인용수는 몇이고 H-index는 몇이며 타간 연구비는 얼마인지 살펴볼 뿐입니다.

제가 본 토론문을 통해 제안, 아니 부탁드리고자 하는 것은 대단한 아이디어나 거대한 정책이 아닙니다. 오늘 토론회에 참석해주신 연구자분들께서 바쁘더라도 조금만 더 시간을 내어 동료 연구자들에게 동료 연구자가 되어 달라는 것입니다. 옆방 교수님이 최근 해외 학회를 다녀왔는데 조금 미심쩍다 싶다면 넌지시 ‘실수로 모른 채 갔겠지만 그 학회 말이 많더라’고 한마디를 건네고, 맞은 편 방 교수님이 새로 쓴 논문에 대해 뭐든 좋으니 질문 한두개만 던져보십시오. 후배 연구자나 대학원생에게 성과를 재촉하기 전에 그가 쓴 논문 초고를 읽어보고 간단하게나마 평과 함께 조언을 해주십시오. 서로 동료 연구자가 되어주고, 그로써 연구공동체가 형성되면 자연스레 연구윤리도 지켜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

참고로 위 토론문 주제는 최근 BRIC에서 발간한 <유사학회 와셋 사태 인식과 대응방안 의견조사 보고서>를 읽으면서 작성했다. 
설문조사에서 연구자들은 사태의 원인을 주로 양적 연구사업 평가 지표에 대한 문제와 연구자 개인의 학문적 부도덕성으로 보고 있었다. 각각 33~34%. 반면 '학계 내부 무관심, 방관, 건전 견제 상실'을 지적한 사람은 절반도 안되는 14%였다. 책임지고 나서야 할 기관 역시 연구사업 관리기관과 정부 부처가 34%, 24%로 가장 높았고, 연구공동체, 학문공동체의 기초단위라고 할 수 있는 개별학회라고 답한 사람은 8%밖에 안되었다.


실제 행사에서는 보도영상을 다시 보면서, 또 나보다 앞서 교수노조위원장이 '성명서를 발표해서 교육부나 연구재단에 책임을 묻겠다'는 식의 발언을 하는 것을 듣고 생각이 많아져 좀 다른 소리를 했다. 그래서 아마 내 기억에 꽤나 횡설수설했던 것 같은데, 같은 자리에 계셨던 분들께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 어쩌다보니 뉴스타파가 7월 중순 보도한 WASET 등 '가짜학회' (뉴스타파가 사용한 단어. 이후 정부는 '부실학회'라는 단어를 쓰는 것으로 방침을 정한 듯 하다) 이슈에 끼어들어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하게 되었다. 학술정책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었으니 predatory journal/publisher 주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언젠가 한번 꼭 연구를 해보고는 싶었는데 그 전에 이렇게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줄은 몰랐다. 

그 전까지 같은 주제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생각을 말한적도, 어떤 결과물을 낸 적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뉴스타파 시민 초청 시사회에 초청된 것은 다름 아닌 인맥 덕분이었다. 전에 이우창 선생님과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이 주제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잠깐 언급했던 것을 선생님께서 기억해주셨고, 이후에 뉴스타파에서 코멘터리를 부탁하기 위해 대학원생노조에 연락했을 때 신정욱 선생님이 적절한 사람을 찾다가 이우창 선생님한테서 나를 추천받아 이어준 것이다. 

그 결과 아래 영상에서 볼 수 있듯 행사에 참석하여 한마디 하게 되었다. 영상 링크(https://youtu.be/uqWfJlxUxEI, 관련 기사는 https://newstapa.org/43821)에 당시 했던 말과 함께 준비했던 발언문을 공유한다. 원래 발언문을 그대로 거의 읽으려고 했으나, 실제 행사에서는 보도영상을 다시 보면서, 또 나보다 앞서 교수노조위원장이 '성명서를 발표해서 교육부나 연구재단에 책임을 묻겠다'는 식의 발언을 하는 것을 듣고 생각이 많아져 좀 다른 소리를 했다. 그래서 아마 내 기억에 꽤나 횡설수설했던 것 같은데, 같은 자리에 계셨던 분들께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 

-----

안녕하세요,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 전준하입니다.

우선 언젠가는 한번 꼭 짚고 넘어가야 했을 학계의 문제를 이렇게 공들여 탐사보도를 통해 밝혀주신 뉴스타파 기자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의 소개를 통해 발언 기회를 얻었기에 저를 초청해주신 대학원생노조에도 감사말씀 드립니다.

뉴스타파 보도는 주로 학술대회에 초점을 맞췄지만, 저는 '가짜' 학술지도 주제로 포함하여 좀더 포괄적인 문제를 지적하고자 합니다. 가짜 학술대회와 가짜 학술지 문제는 사실 2010년대 초반부터 그 시장이 성장하기 시작해 이제는 연구자라면 누구나 접해봤을 문제로 커졌습니다. 제프리 비알이라는 한 전문사서가 2009년 10개 저널을 가짜로 규정하고 블랙리스트로 만든지 10년도 안되어 리스트에는 1000여개가 넘는 저널이름이 올랐습니다. '발각된' 케이스만 1000여종이니 실제로는 훨씬 더 클 것입니다. 또한, 기사에서 다룬 OMICS라는 업체 하나만 해도 2016년 기준 700개가 넘는 학술지를 발간하여 5만여개의 논문을 실었고, 25개국에서 3000여개의 학술대회를 개최했다고 합니다. 해당 업체는 거꾸로 기존 학술지 업체를 사들일 정도로 커졌습니다.

오히려 학회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우리가 '학빙여'라고 줄여부르는 '학회를 빙자한 여행'을 다니는 연구자들의 비윤리적 행위 문제와 이들에게 들어가는 (주로 국가 세금으로 지원하는) 연구비 낭비 문제로 사안이 국한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해당 학회를 개최하는 WASET이나 OMICS 같은 업체들은 더 나아가 '가짜' 학술지를 발간하고 있으며, 여기에 검증되지 않은 논문들이 실리는 것까지 하나의 사이클로 본다면 이는 학문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원래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은 동료심사라는 과정을 거쳐 우리 사회의 지식체계를 구성하는 단위로서 그 자체로 어느 정도의 권위와 신뢰를 가지고 있는데, 그 권위와 신뢰를 보장하는 제도를 거치지 않은, 심하게 말하자면 보기 좋게 쓰인 막말이 - 뉴스타파가 SciGen으로 쓴 논문을 발표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이 - 지식체계에 마구잡이로 침투해 물을 흐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우리가 다뤄야 할 질문은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대학원생 입장에서 이런 가짜 학술지와 가짜 학술대회가 가지는 매력을 분석함으로서 이 질문들에 대답하기 위한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관련 문제에 대해 연구한 여러 논문들이 가짜 학술지 및 학술대회에 논문을 제출한 저자들 중 다수가 개발도상국 출신의 포닥이나 박사과정이라는 점을 지적한 바 있기 때문에 실마리를 찾기 좋은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뉴스타파 보도에서도 잠깐 언급이 되지만 대학원생들에게 있어 이런 학술대회 및 학술지는 까다롭지 않으면서 - 즉 발표를 거부당하거나 심하게 비판받지 않으면서 - 해외 학회 내지는 학술지의 경험을 할 수 있고 동시에 이른바 '꽁돈'으로 학빙여를 하거나 개인 연구 성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매력적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연구평가체계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경우 연구내용보다 연구를 통해 나온 결과물, 즉 해외학회 발표 몇 건, 해외학술지 게재 몇 건 등이 성과의 주요 요소로 여겨지기 때문에, 이러한 연구평가체계 하에서 성과압박이 점점 커지고 있는 환경에 놓인 포닥이나 대학원생에게 이런 학회 및 학술지는 쉽게 졸업하고 쉽게 임용될 수 있는 길로 보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론 제도 탓만 할수는 없겠지만 이는 가짜 학술지 및 학술대회 문제가 얼마나 연구생태계 전반과 깊게 상호연관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또한, 해결방안을 도출하기 위해서 저는 비양심적인 연구자 개개인을 탓하는 정부 및 연구비 관리조직과 반대로 이들과 함께 관 주도의 학술정책을 탓하는 개개인 연구자로 양분된 두 시각 사이에 공백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공백을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증빙가능한 연구비 집행과 가시적인 성과를 원하는 정부나 연구재단, 대학 산단과 더 많은 연구비를 따고 더 많은 논문을 내는 데에 급급한 연구자는 가짜 학술지 및 학술대회와 그 곳에 참석하고 논문을 게재하는 연구자처럼 공모 관계에 있고, 그 사이에 학문과 연구생태계는 점점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생산하는 것이 가짜든 진짜든 더 많이 더 빨리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 '공장'이 되어갈 뿐입니다.

연구를 하는 사람으로서 뉴스타파 보도를 계기삼아 연구자들이 먼저 나서 함께 반성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오늘과 같은 자리를 계속 만들어 논의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뉴스타파와 같은 언론이 계속 감시하고 문제의식을 가진 연구자들이 모여 목소리를 낸다면 '공장'과 다를 바 없는 지금의 연구생태계에서 벗어나 정말 사회에 기여하고 지식을 창출하는 연구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