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줄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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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년 11월 뉴스타파 보도의 '다단계 학회사업' 장본인인 김태훈은 언론사 아카데믹타임즈를 중심으로 C-Index, S-Index, R-Index 등의 새로운 비즈니스를 벌이고 있음
  • 이러한 Index들을 통해 국내 학회와 학술대회, 학술지를 평가하여 등급을 매기는 평가 사업에 눈독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본인이 대표이사로 있었던 학회에 적용하는 것을 시작으로 사업 확장에 힘쓰고 있음
  • 대학랭킹과 각종 인용색인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학계는 자기규율체계의 핵심인 평가제도를 계속해서 아웃소싱해왔고, 그로 인해 생긴 구멍을 이용해 온 연구자들이 적지 않다는 현실을 고려할 때 아카데믹타임즈의 사업이 부실학술활동의 정당화 도구로 쓰인다면 앞으로 학계는 더 썩을 수 밖에 없음

지난 2018년 여름 뉴스타파가 <'가짜 학문' 제조공장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가짜학회' 이슈를 처음 공론화한 이후 한동안 학계 안팎으로 부실학술활동이 화제에 올랐다. 약 1년 동안 공식적인 용어조차 없었던 현상에 '부실학술활동'이라는 이름이 붙여젔고, 뉴스타파 기사에서 언급된 와셋(WASET)과 오믹스(OMICS)를 중심으로 해당 학회에 참가한 연구자들에 대한 조사와 징계가 진행되었으며, 한국연구재단과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을 중심으로 예방 가이드라인과 부실학회/학술지 검색 시스템 등이 갖춰졌다.

당시 한 대학원생은 한 교수를 중심으로 꾸려진 다단계 학회사업을 발견하여 며칠동안 조사하여 뉴스타파에 제보를 했고, 해당 내용이 보도되며 역시 학계 안팎으로 작지 않은 충격을 불러온 바 있다. (참고: '아는 사람 이야기': 뉴스타파 보도 <현직 교수, 페이퍼컴퍼니 끼고 '다단계 학회사업'> 제보) 이후 기사에서 언급된 인문사회과학기술융합학회(HSST)의 등재지 <예술인문사회 융합 멀티미디어 논문지(AJMAHS)>와 보안공학연구지원센터(SERSC)의 등재지 <보안공학연구논문지(JSE)>는 등재탈락을 면치 못했고, 두 학회들(지만 주식회사였던 곳)은 사실상 문을 닫은 것으로 보인다.

이 정도면 대충 마무리 된 것 아니냐고 물을 사람들도 있을테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문제시 된 와셋과 오믹스, HSST와 SERSC만 주목을 받고 언론에서 다루지 않은 수많은 부실학회 및 학술지, 혹은 부실의심학술활동(questionable research practices)은 거의 공론화되지 않아 매우 안타까웠다. 이전에도 지적했듯 특정 학회나 학술지를 '가짜' 혹은 '부실'이라고 규정하기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며, Beall's List나 Cabells' Predatory Reports와 같은 블랙리스트를 쓰거나 Web of Science나 Scopus와 같은 저명한 학술인용색인을 화이트리스트로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평가제도를 포함한 학계의 자기규율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 이상 더 교묘해질 뿐이다.

서론이 길었는데, 오랜만에 부실학술활동을 주제로 글을 쓰게 된 건 SNS를 통해 한 선생님께서 다단계 마케팅을 차용한 학술대회 학술위원 초청 이메일을 제보해주셔서 관련 내용을 조사하다 발견한 내용을 공유하기 위함이다.

일단 해당 이메일은 부실학회가 전형적으로 보이는 패턴에 따라 학술대회를 운영할 학술위원을 모집하고 있었다. 학술위원에게 마감일 연장혜택과 함께 논문 투고를 조건으로 내걸고, 가입비를 내고 이사회원이 되면 자신만의 세션을 구성해서 해당 세션 논문들에 등재지 게재 기회를 준다고 한다. 2편 이상 투고 시 영문논문에 한해 편당 등록비 10%를 할인해준다는 혜택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내용도 있었다.

많이 본 수법인 것에 더해 두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1) 이메일 제목에 언급된 '2021년 6월 3차': 상반기인데 이미 3차까지 학술대회를 한다는 건 1년에 6회를 한다는 뜻으로, 꽤나 큰 학회조차 계절별 학술대회를 여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흥미로운 숫자였다. 2) 학회 이름이 '미래융합기술연구학회(FuCoS)': 이름에서부터 불길한 예감이 든다. (...)

학회 홈페이지를 들어가서 간단하게 조사를 해보니 '다단계 학회사업'의 장본인 김태훈 교수가 대표이사로 있던 아태인문사회융합기술교류학회(SoCoRI)가 이름을 바꾼 것이었다. 2018년 뉴스타파 보도 당시엔 HSST와 SERSC가 등재지인 AJMAHS와 JSE를 활용하여 성행했다면, 둘 모두 등재탈락한 후에 SoCoRI가 2019년 산하학술지인 <아시아태평양융합연구교류논문지(APJCRI)>를 KCI에 새로 등재시키는데 성공하고 FuCoS로 이름을 바꿔 운영중이었던 것이다. HSST와 SERSC와 마찬가지로 학회장과 학술지 에디터는 모두 해외 학자라고 써져있지만, KCI에는 다른 국내 교수가 학회장으로 등록되어 있고, 등기사항으로도 역시 대표이사는 다른 사람이었다. 김태훈 교수는 2018년 11월 뉴스타파 보도 직후 사임했다고 나온다.

아, 말이 나왔으니 첨언하자면 김태훈(2018년 뉴스타파 보도 당시 성신여대 융합보안공학과 교수)은 더이상 교수가 아니다. 해임당했는지 자진 사임했는지 공식적인 자료는 찾기 어려웠지만, 일단 성신여대 홈페이지에서 이름을 찾을 수 없었고, 가명을 썼지만 누구를 이야기하는지 대충 다 알 수 있는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김태훈에 대한 후속 취재로 억울한 사정이 밝혀졌다고 하지만 나는 접한 바 없고, 김태훈과 HSST 회장 김행곤 대구가톨릭대 교수간의 사이가 틀어진 건 분명해보인다. 기사는 신청만 하면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는 '한국공보뉴스'에서만 찾을 수 있었는데, 흥미롭게도 기사가 작성된 성북본부의 장이 김태훈이다. 동명이인일까? 아니라는 증거를 후술하도록 하겠다.

한편, FuCoS의 학술대회 웹사이트에서 또다른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우리 학회는 부실 학술대회 예방을 위해, C-Index 평가기준(http://www.actimesnews.info/)을 준수합니다.

우리 학회는 발표 장면을 녹화하여 DMI 등록(http://www.digitalmediaid.org/)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 학회는 부실 학회 예방을 위해, S-Index 평가기준(
http://www.actimesnews.co.kr/)을 준수합니다.

우리 학회는 부실 학술지 예방을 위해, R-Index 평가기준(http://www.actimesnews.kr/) 및 Trace of Reveiw 평가기준(http://actimesnews.net/)을 준수합니다."

처음 듣는 "index"들의 향연에 잠시 어지러워 숨을 골라야 했다. 각 사이트에 들어가 내용을 확인하고 난 후 김태훈의 후속사업이 어디로 향해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다름 아닌 Web of Science나 Scopus가 임팩트 팩터 등 인용지표로 학술지를 줄세우고 각종 기관이 대학랭킹을 만들어 대학에 순위 내지는 등급을 매기듯이 한국연구재단이 시행중인 한국학술지인용색인(Korea Citation Index) 등재 제도에서 더 나아가 국내 학회와 학술대회, 학술지에 점수 및 등급을 매기는 평가 비즈니스 모델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각 사이트에 적힌 index들의 설명을 자세히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다단계 학회사업의 장본인의 구상이라는 이유로 이 index들이 모두 '가짜'라거나 속임수라고 주장할 생각도 없다. 오히려 내가 이전에 '해킹'이라는 단어를 썼듯 김태훈이라는 시스템 해커는 부실학술활동을 둘러싼 학계의 문제점을 정확히 알고 있다. 그는 이를 정당하든 아니든 자신이 고안한 비즈니스 모델로 수익화를 꾀하고 있다는 게 내 해석이다. 이런 활동에 얼마나 학계를 위한 진정성이 있는지는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다. 각 사이트를 살펴본 후 '이런 좋은 일을 하려는 사람이 있구나'하며 김태훈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는 사람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일단 이 index들이 모두 김태훈의 작품임은 각 사이트에서 언급하고 있는 상위기관인 '아카데믹타임즈'를 통해 알 수 있다. 실제로 모두 actimesnews를 도메인 주소 제목으로 삼고 있고, 이들을 백링크하고 있는 아카데믹타임즈라는 곳은 다름 아닌 언론사다. 홈페이지에서 명시하고 있진 않지만 김태훈이 대표로 있다. 사무실 역시 김태훈이 일하던 성신여대 근처이기도 하다. 동명이인일 확률도 있지 않을까 싶어 각 기사 작성자 이메일을 확인했다. 대부분 taihoonn@empas.com으로 되어있다. 그가 논문을 정말 많이 쓴 생산적인 연구자였던만큼 구글링을 통해 김태훈의 이메일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아카데믹타임즈의 기사들은 대부분 보도자료를 그대로 가져다 쓴 형태인데, 반대로 다른 언론사에 기사를 작성해서 보낸 사례도 있다. 바로 C-index를 비롯한 아카데믹타임즈의 사업을 홍보하기 위한 보도자료로, 앞서 언급한 바 있는 한국공보뉴스에 실린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에는 이영경 기자를 통해 주기적으로 간접광고(PPL)라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려운 기사를 내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유명 유튜버 보겸이 사용하는 '보이루'라는 인사말을 여성혐오로 해석한 윤지선 교수의 <철학연구> 논문이 이슈화가 되자 은근슬쩍 R-Index에 따르면 <철학연구>의 평가점수가 높지 않다고 지적하는 기사를 올린 바 있다. 해당 기사를 작성한 이영경 기자의 이름 역시 익숙해서 다시 찾아보니 법인등기 상으로 FuCoS의 대표이사와 같았다. 동명이인인지 확인은 하지 못했다.

아카데믹타임즈의 Index 사업들은 만든지 얼마 되지 않은만큼 자리잡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쪽에 관심이 많은 나조차도 이번에 처음 들었을 정도라면 인지도가 높지는 않은 듯 하다. 하지만 대학랭킹과 마찬가지로 각 학회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단 순위나 등급을 매기기 시작하고 나중에 인지도가 생기기 시작하면 평가기관의 공신력이나 방법론의 엄밀성과 무관하게 모두가 신경쓰는 Index로 자리잡을 가능성도 작지 않다. 아카데믹타임즈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는 듯 일단 등급을 다 매겨놓았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는데, 깨알같이 FuCoS(이름 변경 전 SoCoRI)와 산하 학술지는 모두 가장 높은 S 혹은 A 등급이 매겨져있는 것도 흥미롭다.

다시 말하지만 아카데믹타임즈의 이러한 Index 사업들이 어떻게 학회/학술대회/학술지를 평가하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이 글에서 Index마다 나름 자세히 써져있는 설명을 하나하나 읽고 분석하지 않은 이유다. QS나 THE, 중앙일보 등의 대학랭킹도, Web of Science나 Scopus와 같은 학술인용색인도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신경쓰는 사람은 극소수다.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한 자가 벌여놓은 판에 하나둘씩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어느새 모두가 참여자가 되어 높은 순위나 등급을 차지하기 위해 애쓰는 게임이 된다.

처음으로 돌아와서 FuCoS가 개최하는 학술대회(고맙게도 아카데믹타임즈가 운영하는 것으로 보이는 "학술 발표가 정상적으로 진행된 것이라는 증거"를 관리해주는 DMI라는 서비스 덕분에 FuCoS 학술대회의 모든 발표를 유튜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와 발행하는 학술지를 살펴보자. '융합', '학제간연구'를 표방하고 있지만 정말 융합 내지는 학제간연구를 시도한 연구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다양한 학문분야 연구들이 모인 메가컨퍼런스 및 메가저널(megajournal)이다. 때문에 더더욱 학술대회나 학술지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참여자 간의 학술적 교류가 제대로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하기가 힘들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겠지만 뉴스타파가 WASET에서 했던 것처럼 아예 가짜 논문을 제출하고 걸러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지 않는 이상 FuCoS를 비롯한 다른 여러 학회들을 가짜학회 혹은 부실학회로 규정하기는 힘들다. 나 역시도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느낌상 혹은 정황상 그런 쪽에 가까워보인다고 할 수 있을 뿐이다. 김태훈이 2018년까지 운영했던 (혹은 지금도 운영중인) 다단계 학회사업 역시 이런 배경 위에서 가능했다.

김태훈이 새롭게 벌이고 있는 사업은 이러한 부실 및 부실의심 학술활동의 정당화 도구로도 쓰일 수 있다. 각종 Index 상으로 보았을 때 형식적으로 괜찮다는 곳을 학술활동의 내용을 토대로 문제삼기는 매우 힘든 일이다. 그리고 연구자들은 귀신같이 이런 구멍을 잘 찾아내어 활용할 수 있다. HSST의 등재지 AJMAHS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1년에 무려 1000편이 넘는 논문을 실었다. 우리나라에서 게재한 논문 중 6% 이상이 부실학술지임에도 불구하고 Scopus에 등재된 324개의 학술지에 실렸고, 이는 OECD 국가 중 압도적인 1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연구) 김태훈은 보다 큰 뜻이 있어 제 발로 교수직을 던지고 대학을 나온 듯 하지만 (돈이 되는 사업이 눈에 보이고 교수직이 방해만 된다면 왜 그러지 않겠는가?), HSST 회장 김행곤 교수는 작년 대구가톨릭대에서 30년 근속상을 받을 정도로 별 문제없이 학계에 머물고 있다. 부실학술활동을 통해 교수에 임용되고 승진하고 자리를 유지한 사람들은 있지만 밝혀진 후에도 처벌받은 사람들은 별로 없다. 시스템 해커들과 그들이 뚫은 백도어를 부단히 활용한 연구자들로 인해 학계는 병들어가고 있지만 겉보기엔 문제가 없어보이니 아무도 소리높여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는가? 퇴근 후나 주말 밖에 시간을 못 내고 이런 곳에 돈 쓰기 쉽지 않은 사회초년생이다보니 스모킹건을 확보하기 어려워 아쉬울 뿐이다. 이쯤되면 내가 왜 요지경 학계에 애정을 갖고 연구자가 되고 싶어하는지도 혼란스러운 지경이다.


...라고 한 대학원생이 글을 써서 보내왔다. 화이팅.

어째 블로그에 글을 직접 쓰기보다 여기저기 써놓은 글을 옮겨다놓는 아카이브로만 활용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지만... 


이번에도 한겨레 기사에 짧게 코멘트가 실려 기사를 공유한다. 

기사 원문은 여기로.


저번과 마찬가지로 짧은 코멘트 뒤에는 짧지만은 않은 이메일 답신이 있었다. 또한 역시 predatory journal & conference에 대한 내 생각을 담고 있기에 아래 기자님께 드린 이메일 답신을 가져온다. 따로 허락 받은 건 아닌데, 뭐... 내가 쓴 거니깐...ㅋㅋㅋ

기사를 쓰신 오철우 기자님과는 오랜만에 연락을 주고 받았다.

3년반 정도 전에는 내가 워싱턴dc에서 참석한 포럼 후기를 한겨레 사이언스온에 기고하려고 다소 뜬금없이 연락을 드렸었다. 이제 사이언스온은 미래&과학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고 있고, 오철우 기자님은 한겨레 토요판에서 기사를 쓰고 계신다. 와셋 사태에 대한 서면 인터뷰를 위한 연락이 왔을 때 감회가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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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오철우 기자님, 이렇게 다시 연락을 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이전에 미국에서 인턴을 하던 시절 사이언스온에 아래 글을 기고해서 자랑스러워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링크:  http://scienceon.hani.co.kr/275582)

벌써 3년이 넘게 흘렀네요. 그 글을 기점으로 보다 활발하게 글을 쓰게 되어 기억에 크게 남는데, 당시 오철우 기자님께서 잘 다듬어주셔서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우선 과총 <과학과기술>에 기고한 글과 토론회에서 발표한 토론문만을 접하셨다고 가정하고, 아래 와셋 사태와 관련하여 작성한 몇 개 글을 더 첨부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일부는 물어보신 질문과도 겹치는 부분이 있는데, 대부분 제 SNS나 블로그에만 올렸던 글이기 때문에 그대로 인용하셔도 무방하겠습니다.

1. http://stpforerbody.tistory.com/36 (뉴스타파 ‘가짜학문 제조공장의 비밀’ 시민 초청 시사회 발언문 (2018.7.23))

2. http://stpforerbody.tistory.com/40 (대학신문 기사 "이상한 학회의 한국인 학자들" 인터뷰 질의서 (2018.9.11))

3. http://stpforerbody.tistory.com/49 ('아는 사람 이야기': 뉴스타파 보도 <현직 교수, 페이퍼컴퍼니 끼고 '다단계 학회사업'> 제보)


특히 주신 2번째 질문("실제로 와셋과 같은 학회, 저널의 ‘판촉’ 메일을 받아보신 경험이 있으신지요?")은 위 2번 글에서 답한 것 이상으로 드릴 말씀이 딱히 없는데요, 혹시 읽고나서 불분명한 부분이 있으면 다시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래에는 2번째 질문을 제외하고 답변을 드릴텐데, 질문을 읽고 고민을 하다가 거꾸로 답변하는 것이 제가 생각하기에도 기자님께서 읽으시기에도 편할 것 같아 그렇게 적었습니다.

 

답변드린 내용에 추가 질문이 있거나 할 경우 또 연락주십시오.

기사 나오면 공유부탁드리구요.

감사합니다!


전준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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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학문 생태계와 관련한 전공분야를 연구하고 계신지요? 토론회와 기고문에서 전문적 식견을 펼치셔서, 현재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나 이전 연구의 전공경험이 궁금합니다. 이번 사태와 관련있는 연구를 해오셨는지요?

 

저는 단지 두루뭉술하게 대학과 학문이라는 제도, 연구라는 행위와 연구자 집단, 이들과 상호작용하는 정책을 연구하고자 공부하는, 연구의 전공경험(?)은 일천한 학생입니다. LINC 사업에 대한 사례연구로 석사학위논문을 썼고, 대외적으로(?) 알려진 연구결과물로는 교육부에서 발주한 <대학원생 권리강화 방안연구> 정책연구보고서가 있긴 합니다만...

 

말이 나온 김에 간단하게 제 근황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저는 현재 한 중소기업에서 전문연구요원으로 복무중입니다. 다만 회사와 무관한 일로 기고하거나 행사에 참석할 때는 대학원생이라고 소개하곤 합니다. 전문연구요원 편입 직전 휴학해서 풀타임으로 연구를 하고 있진 않고, 퇴근 후에 시간내서 감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수준입니다.  박사과정에 입학하자마자 휴학했으니 박사학위 논문 주제를 정했을리 없고, 연구경험이 많지도 않아 앞서 언급한 것 외로는 소개할 것이 따로 없네요.

 

그래서 '전문적 식견'이라고 하기에는 부끄러운 수준이고, 다만 저 자신을 같은 연구자이면서도 연구자를 연구하는 연구자라고 여기며 모두들 바쁘게 달려 각자 연구에 여념이 없을 때 천천히 걸으면서 제3자 아닌 제3자의 생각을 말과 글로 옮겼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연구자라면 누구나 잠깐 멈추어 이 경기장을 관망한다면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라 봅니다. 물론 관심분야가 관심분야이다보니 와셋과 같은 predatory conference나 journal, publisher 등에 대한 논문이나 에세이를 이전부터 많이 읽어왔고, 그러다보니 뉴스타파 기사 상영회 때도 그렇고 이런저런 발언 기회가 온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고민투성이인 제 진로를 묻는 질문이라 굉장히 모호한 답변이 된 점 죄송합니다.)

 

-현장연구자이자 젊은 학문세대들이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대체적인 시각을 대변해주실 수 있을런지요.


사태가 뉴스타파를 통해 알려졌을 때 저는 이미 휴학하고 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기 때문에 잘 대변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질문에 문자 그대로 답하자면... 아니오, 못하겠습니다.


다만, 제가 직접 경험한 바와 더불어 접한 일부 사례들을 통해 몇가지 추측은 해볼 수 있겠습니다.


우선 꼭 뉴스타파를 필두로 한 언론 보도를 통해서 접하지 않았더라도 부실학실활동에 대한 초기경력연구자들이 처음 보이는 반응은 실망과 환멸일 것입니다.


자신을 연구자 혹은 '젊은 학문세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교수와 같이 연구와 학문을 업으로 삼는 삶을 상상할텐데요.

보통 그렇게 처음 학계에 발을 들일 때는 상당히 이상적인 학계 모습을 기대하게 됩니다. 일정기간 연구한 결과를 학술대회에 발표하고 같은 분야 연구자들과 함께 격의 없는 토론을 나누고, 그 결과를 다시 연구에 반영해서 학술지에 제출하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한 세부전공에서 대가가 되는 것을 꿈꾸기 마련이죠. 하지만 그런 기대를 가진 초기경력연구자가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것과 같은 부실학술활동*을 처음으로 경험하게 되면 일단 혼란스럽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이내 그것이 만연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초기경력연구자는 무기력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존경할만한 연구자들도 부실학술활동을 보고도 묵인하거나 되려 동조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지만서도 자신이 있는 위치상 선택지는 회피 아니면 적응 두가지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연구재단을 필두로 '부실'이라는 수식어가 자리를 잡아가는 듯합니다. 저 역시 뉴스타파가 사용한 '가짜'나 Beall이 사용한 단어를 직역한 '약탈적' 보다 '부실'이 가장 낫다고 생각하기에 이 수식어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이중 회피를 선택한 사람들은 우리나라 학계는 속된 말로 '노답'이니 (답이 없으니) 제대로 된 학술활동을 경험하기 위해 유학을 가거나 아예 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접을 것입니다. '제도권'을 벗어난 독립연구자를 자처하기도 합니다. 적응을 선택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이런 부실학술활동이 만연한 것을 용인하되 신경쓰지 않고 '나는 내 할 것 하겠다'라는 태도를 가지기도 하고, 또는 필요할 때 적극적으로 부실학술활동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초기경력연구자 입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앞서 언급한 실망과 환멸로 시작해서 회피와 적응으로 끝나고, 이것이 대를 이어 반복되는 현상이 제도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종의 성인식 마냥 누구나 경험하는 과정이 되었다는 뜻이지요.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연구윤리, 내지는 해외에서 부르는 Good research (science) practice는 규정과 가이드라인을 통해서 배우고 익히기보다 실제로 연구활동을 하면서 경험하고 지키게 되는 것인데 초기경력연구자가 보고 배워야 할 기성세대(?) 연구자들이 부실학술행위를 직접 하고 있거나 용인하고 있다면 그 역시 연구윤리를 매뉴얼로만 여기고 선배들이 하는 대로 하게 될 것입니다. 구구절절 길게 말씀드렸지만 결국 초기경력연구자가 적절한 교육을 받고 있지 못하다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교육은 단순히 지도교수가 대학원생에게 말로 지도하는 것이 아닌 작금의 학계에서 어떻게 연구를 하고 어떻게 우리나라에서 연구자가 되는지에 대한 넓은 범위의 교육입니다. 더 나아가 회피를 선택한 사람들은 떠나가고 적응을 선택한 사람들이 남는 우리나라 학계가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 것인지 매우 부정적인 상상도 해볼 수 있겠습니다.


-이번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시는지요? 기고한 글을 보면, 학빙여이건 학겸여이건 이런 사태가 누구의 책임이기 이전에 연구자들 자신의 책임이라고 지적하신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그 주장을 말씀해주실 수 있는지요?

 

이건 어느 직업군에서나 마찬가지일 듯 합니다만 (특히 전문직에서), 특정 직업군에 만연한 비리나 부정행위에 대한 글을 쓸 때 독자를 해당 직업군 종사자로 상정한다면 누구나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라고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를 들어, 기분이 나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기자님께서 기자들을 대상으로 기자가 '기레기'로 불리는 세태에 대해 글을 쓰신다면 우선 반성을 요구하지 않을지요? '연구자 책임'을 강조한 데에는 첫번째로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글에도 언급했지만 적지 않은 연구자 내지는 연구자단체가 이른바 '유체이탈화법'을 구사하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와 같은 지적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연구자들 자신의 책임이라고 한 또다른 이유는 이것이 단지 '일부 연구자의 일탈 행위'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부실학술활동과 거기에 연루된 연구자들을 문제삼기 전에 이 사태 - 이는 그것이 학회나 대학, 연구재단 등을 통해서 드러나기 전 언론에 의해 드러났다는 사실도 포함합니다 - 를 하나의 현상으로 보고 어떻게 이 현상이 일어났는지를 살펴봐야한다고 보았고, 학계의 주체인 연구자 개개인 모두 이 현상에 일정부분 기여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진정으로 흔히 말하는 '구조적 문제', '조직적 문제', '제도적 문제'를 드러내고 해결방안을 논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학자, 연구자들이 입을 모아 '학문 자율성'이나 '연구 자율성' 보장을 외치면서 왜 이런 반학술적 활동은 자율적으로 걸러내지 못했나라는 질문을 던지고자 했습니다. 학문 분야를 막론하고 부실학회를 비롯한 부실학술활동이 만연한 상황에서 이를 여태 몰랐던 연구자는 자기자신에게 왜 몰랐는지를 물어야 하며, 모른 척했던 연구자는 왜 모른 척했는지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두 질문은 모두 같은 대답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나라 학계에서 자기규율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기고한 글에서 학문공동체의 부재 내지는 붕괴라고 언급하기도 했지요.


제 주장은 이번 사태에 대해 분명한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문제를 가지기도 합니다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부라도 연구자 개개인 혹은 일부 학회나 연구자 단체가 직접 움직이지 않는 이상 상황 개선이 요원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과총이 아무리 가이드라인을 내놓고, 연구재단이 아무리 지표를 설정하여 인증제를 실시한다고 한들, 연구자 개개인이 같은 연구실이나 같은 학과의 다른 연구자가 부실학술활동을 한지 모르거나 모른 척 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또한, 많이들 이번 사태의 '근본적 원인'으로 지적하는 '평가 제도'에 있어서도 연구자들은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물론 신공공관리론에 입각한 정부 내지는 관료로부터 오는 압력이 아예 없지는 않겠으나, 평가 제도의 중심에는 여전히 연구자가 있습니다. 신규 교수나 연구원 임용 평가는 누가 하나요? 대학 업적 평가 제도는 누가 만드나요? 과제 평가는 누가 합니까? 학회나 학과 단위로라도 함께 노력하면 충분히 연구윤리도 확립할 수 있고 부당하다 생각하는 연구평가제도도 바꿀 수 있는 분들이 구조 탓, 시스템 탓만 하는 것을 보는 초기경력연구자들의 마음은 안타깝기만 합니다.  


조금 과격하게 말하자면 제대로 된 학술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학문공동체가 없는 학문, 연구공동체가 없는 연구를 하는 학자 내지는 연구자는 무의미한 점수만 쌓는 셈입니다. 이미 그런 분위기가 만연한 것 같아 안타깝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연구자들이 '어쩔 수 없다'며 자조하는 분위기가 아닌 '뭔가 해보자', 즉 학문공동체가 부재했으니 한번 만들어보자는 움직임이 나오길 바라는 마음에 연구자 책임을 묻는 주장을 했습니다.

오늘 오랜만에 뉴스타파가 다시 '가짜학회' 보도를 내놓았다.
<현직 교수, 페이퍼컴퍼니 끼고 '다단계 학회사업'>이라는 제목이다.
시청과 일독을 권한다.

https://youtu.be/Bah1Ow8W8x8

한편, 7월 중순 뉴스타파가 첫 '가짜학회' 보도를 내놓은지 얼마 안된 8월 초.

비슷한 주제에 깊은 관심이 있던 한 대학원생은 뉴스타파 보도에 깊은 감명을 받고 전부터 의심스러웠던 학회를 다시 파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WASET이 학계와 무관한 사람이 가족비즈니스를 한 사례였다면, 우리나라에는 교수가 직접 비슷한 사업을 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상 내부에서 해킹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해당 사업에 참여하거나 사업을 '써먹은' 교수 규모를 고려했을 때 일개 대학원생이 터뜨리기엔 위험하겠다는 두려움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봤을 땐 그 대학원생이 무척이나 소심했던 것 같다. 지금도 신분은 밝히고 싶지 않다면서 제보했다는 사실은 알리고 싶어한다니 참으로 찌질한 친구인 듯 하다. 어쨌든 그는 직접 그 학회와 연루자를 파는 대신 뉴스타파에 아래와 같은 제보를 했다고 한다.

두 달이 지나도록 연락도 오지 않고 관련 보도가 되지 않아 실망해하던 그 대학원생은 오늘 영상을 보고 희열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꽤나 오래 비슷한 주제에 관심을 가져온 사람으로서 제보 내용 이상으로 한걸음 더 들어간 뉴스타파에 너무나도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고마운 것은 고마운 거고, 나는 이제 더이상 대학 교수와 출연연 연구원을 포함한 학계 구성원, 연구재단 직원, 교육부나 과기정통부 공무원 모두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이 문제를 덮고 넘어가려는 태도를 보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 손놓고 있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누차 말하지만 논의의 시작은 학회와 대학에서부터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가장 치열하게 이 문제를 고민해야 할 학회와 대학이 너무 조용하다. 이 침묵을 누가 깰 것인가? 학계가 정말 이 소심하고 찌질한 대학원생보다 못한 사람으로 들어찼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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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뉴스타파 기자님, 
xxxxxxxxxxxxxxxxxxxxxxx입니다.

저번 WASET 관련 보도 상영회 때 참석한 적이 있고, 신우열 연구원님께서 해당 행사 때 제 발언 인용을 위해서 연락을 나눈 바 있습니다.

이렇게 연락드리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한국형 WASET에 대한 제보를 하기 위함입니다.
관련 주제로 연구를 하면서 투고 요청을 받은 것도 있고 해서 주제를 파다보니 알게 되어 지난 일주일동안 나름 틈틈이 추적하긴 했는데,
제 힘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 혹시 뉴스타파에서 관심이 있다면 취재를 하는 것이 어떨까 하여 말씀드립니다.

개요부터 간단히 말씀드린다면,

우리나라를 기반으로 한 (정황상) predatory publisher가 성행하고 있습니다.
SERSC(Science & Engineering Research Support soCiety)와 Global Vision School Publication은 conference convenor이자 publisher이며, APAIS(Asia - Pacific Academic and Industrial Services)라는 별도 Convenor를 두고 있기도 합니다.

해당 convenor가 여는 conference는 두 학회 HSST(인문사회과학기술융합학회, the convergent research society among Humanities, Sociology, Science, and Technology)와 SoCoRI(아태인문사회융합기술교류학회, Asia-pacific Society of Convergent Research Interchange)를 중심으로 회원을 포섭하여 돌아가는 것으로 보이며, 두 학회가 함께 발간하는 국내 저널이 하나 있고(APJCRI, Asia-pacific Journal of Convergent Research Interchange, 아태융합연구교류논문지), HSST가 발간하는 국내저널이 하나 또 있습니다(예술인문사회융합멀티미디어논문지). 후자는 KCI 등재지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두 저널 모두 SERSC가 publisher 역할을 하고 있구요.
HSST, SoCoRI, APAIS, SERSC 한국 지부(?)는 대전에, SERSC 본부와 GV School Pub는 오스트레일리아 태즈매니아 지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주요 인물과 함께 설명하겠습니다.

SERSC는 이미 2013년 Science지에서 진행한 연구에 가까운 탐사보도(Who's afraid of peer review? http://science.sciencemag.org/content/342/6154/60)에서 가짜 논문을 해당 publisher가 발간하는 Open access journal 중 하나에 실으려 한 바 있습니다. 자료를 보면 국내에 SERSC 말고도 Editor가 한국으로 잡힌 경우와 함꼐 몇 개 더 있으나 지금은 확인되지 않고있고, SERSC는 건재합니다. 오히려 앞서 말씀드렸듯이 APAIS, GV School Pub. 등으로 확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사해보시면 어렵지 않게 다 같은 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SERSC에서 GV School Pub으로 넘어간 저널이 몇개 있습니다)

SERSC는 Scopus 등재지를 몇 개 갖고 있고, 이는 HSST와 SoCoRI 등을 통해 국내 연구자들이 SERSC, APAIS에서 여는 predatory conference에 참석하게 되는 주요 이유로 보입니다. 꼭 같은 뿌리에 있는 publisher에서 나온 저널이 아니더라도 연루된 주요 인물들을 통해서 각종 SCI(E) 급 저널의 Special Issue에 논문을 실을 수 있는 기회가 적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HSST 홈페이지 게시판 참조) HSST는 굉장히 흥미로운 - 다른 학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 등급 체계를 가지고 운영되는데, SS급, S급으로 등록된 학회 회원 연구자들은 심사 없이 빠르게 SCI(E)내지는 Scopus 저널에 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도 합니다.
(여기서 제가 막힌 지점은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입니다. 추측은 가나 밝히기가 매우 힘듭니다.)

앞서 잠깐 언급한 주요 인물은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 김태훈(성신여대 교수)와 김행곤(대구가톨릭대 교수)입니다. 두 사람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모르겠으나 김태훈 교수는 오스트레일리아 태즈매니아 대학에서 강병호 교수 밑에서 비교적 최근 두번째 박사 학위를 받았고(첫번째 박사는 영국 브리스톨대), 해당 대학의 위치가 우연하게도(!) GV School Pub과 SERSC 주소와 가깝네요. 실제로 김태훈 교수는 태즈매니아 대학 시절 GVSA(Global Vision School Australia) 소속도 함께 기재한 바 있습니다. GVSA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분히 종교적인 이름이긴 하나...

김행곤 교수의 경우 SERSC와 같은 약자를 가진 보안공학연구지원센터의 장을 역임한 바 있고, 역시 비교적 최근 영국 브리스톨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바 있습니다. 그런데 해당 센터와 앞서 말씀드린 SERSC는 단순히 약자만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홈페이지도 공유하고 있을 뿐더러,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듯 컨퍼런스 회비 입금을 '보안공학연구지원센터'로 받고 있습니다. http://www.conferen.org/UNESST2018/reg.php SERSC가 Society로 끝나는데 굳이 C를 약자로 쓴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참고로 해당 센터는 (주)를 앞에 달고 있습니다. 회사라는 이야기지요. 보안공학연구지원센터 홈페이지는 해당 센터가 발간하던 저널(보안공학연구논문지 - 역시 등재지입니다) 이름을 딴 홈페이지로 돌려놓았는데(http://jse.or.kr/insiter.php?design_file=home.php), 연혁은 김행곤 교수 회장으로 끝나있지만 회장 인사말은 Sebah Mohammed로 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이 사람은 다른 약어의 처음 언급한 SERSC의 회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www.sersc.org) 마지막으로 김행곤 교수는 현재 HSST의 회장입니다.

여기까지 밝히는 건 시간만 좀 걸렸지 어렵지 않았으나, 문제는 SERSC와 GV School Pub에서 발간한 저널에 여전히 한국사람들이 논문을 게재하고 있고, 국내와 해외(주로 가까운 아시아)를 번갈아가면서 열리는 학회에 참석하고 있다는 점과 그 수가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름에 해당 문자가 들어간 사람이 있어 전부는 아니겠지만 NTIS에 검색해보면 SERSC가 발간하는 저널에 논문을 게재한 것을 성과로 등록한 건이 300건이 넘습니다. 알려드린 약어들로 구글링해서 사이트를 들어가서 조금만 찾아보셔도 WASET과 크게 다를바 없다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본 글에서는 추측에 가까운 제 사견은 최대한 배제하고, 제가 확인한 사실들만 기재했습니다. 본 사안이 중요한 이유는 학계에 있는 연구자들이 해외 몇몇 predatory publisher나 convenor에 속거나 이용하거나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아예 만드는 전략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 학회/집단 말고도 의심이 가는 학회/집단이 몇몇 더 있으나, 증거를 확보하려면 사실상 직접 접근하는 수밖에 없어 더 말씀드리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SERSC는 인터넷으로 찾는 것만으로도 비교적 확실한 정황 및 증거가 적지 않아 제보하게 되었습니다.

혹시 본 사안이 뉴스타파의 WASET 관련 후속 보도 방향과 비슷하거나 관심이 있으실 경우 제게 연락주시면 되겠습니다. 처음에는 개인적으로 SciGen 등을 활용해서 Science지나 뉴스타파가 했던 것처럼 준비해서 터뜨릴까 했는데 파다보니 그러기에는 너무 크고 적지않은 교수들이 연루된만큼 저도 두려움이 적잖이 생겨서 제보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후속보도 계획이 없거나 방향이 맞지 않은 경우 알림 연락 하나만 주시구요.

그럼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드림.

p.s. 증거가 되는 자료는 모두 인터넷으로 접할 수 있어 링크만 남깁니다.

HSST 홈페이지: http://hsst.or.kr/default/
SERSC 홈페이지: http://www.sersc.org/
GV School Pub 홈페이지: http://gvschoolpub.org/
APAIS 홈페이지: http://www.apais.org/
보안공학연구지원센터(또다른 SERSC) 홈페이지: http://jse.or.kr/

작년 봄부터 대학원에서 돌아가면서 기고했던 과총에서 발간하는 월간 <과학과기술> '젊은이의 광장' 섹션이 올해 12월을 마지막으로 끝날 듯 하다.

워낙 원고료를 많이 주는 곳이라 아쉽기도 하지만, 대학원 안에서도 쓸 사람 구하느라 급급한 상황이라 (당장 나 역시 대학원을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쓸 사람이 없어 7월호인가에 썼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9월호에 다시 등판한 것...) 차라리 잘 된 것도 같다. 

한창 고민하던 WASET 사태에 대한 글을 썼고, 이는 앞서 다른 포스팅에도 언급했듯 과총에서 개최한 <연구윤리 대토론회 I>에 패널 토론자로 참석하는 계기가 되었다. PDF와 이북 링크는 아래와 같으며, 아래 원문 역시 옮겨놓는다.

PDF 링크: https://www.kofst.or.kr/kofst/PDF_20160211/2018/n031s592/201809_27.pdf

ebook 링크: http://ebook.kofst.or.kr/book/201809/#page=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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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셋(WASET) 사태가 비추는 학계의 민낯

지난 7월 뉴스타파라는 한 국내 탐사보도 전문언론기관이 와셋(WASET, World Academy of Science, Engineering, and Technology)이라는 수상한 학술단체가 개최한 이른바 ‘가짜 학술대회’ 심층취재기사를 공개했다. 기사는 소속을 속인 채 SCIgen이라는 논문처럼 보이는 아무 말을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을 사용해 논문을 제출해도 등록비만 내면 발표할 수 있는 학술대회가 성행하고 있고, 여기에 적지 않은 우리나라 교수와 연구원, 대학원생이 참석한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뉴스타파와 함께 국제 공조 취재팀에 속한 독일 NDR 기자는 엉터리 논문을 발표하고도 우수 발표 상을 받았고, 학술대회에 등록해 놓고도 자리에 나타나지 않은 국내 대학 연구실 사람들도 있었다. 보도가 일으킨 파장은 결코 작지 않았다. 정부는 정부대로 개별 대학과 정부출연연구소에서 와셋과 같은 곳서 운영하는 ‘가짜 학회’에 참석하거나 ‘가짜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한 연구자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했고, 뉴스타파를 비롯한 여러 언론사는 후속보도를 계속하고 있다.

대학원생인 나조차도 와셋을 비롯해 BIT Congress 와 같은 수상한 단체의 학술대회와 학술지로부터 초청 이메일을 받은 적이 있다. 덕분에 나는 보도 전부터 기사가 문제 삼은 학술대회나 학술지가 개최되고 출판되는 행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해당 학술대회 참석 명목으로 어렵지 않게 연구비 지원을 받아 ‘학빙여’(학회를 빙자한 여행의 줄임말)를 다녀올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학계에 남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면 별 고민 없이 경비를 신청해 다녀올 수도 있었겠지만 연구자로서의 양심 떄문이었는지 보는 눈이 두려워서였는지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이런 경험 때문에 내게 ‘와셋 사태’ 그 자체는 크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는데, 다만 가만히 사태를 곱씹어보면서 마주한 학계의 민낯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가장 먼저 내가 놀랐던 것은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하는 것이 연구실적이 되고 점수가 된다는 사실이다. 일부 학문분야에서는 학술대회가 학술지를 대체하고 있기도 하나 일반적으로 학술대회 발표를 연구실적 점수로 센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완성된 초고를 제출하여 동료 평가(peer review)를 기반으로 한 심사 이후 수정을 거쳐 게재하는 과정이 공식으로 자리잡은 학술지 논문 출판과 다르게, 학술대회 발표는 그 내용이나 이뤄지는 절차가 굉장히 넓은 스펙트럼을 지닌다. 학술대회에서는 단순한 아이디어나 연구계획부터 이미 학술지에 게재된 연구결과까지 다양한 내용이 발표되며, 학술지처럼 동료 평가를 통해 발표 여부와 방식을 통보하는 학술대회가 있는가 하면 선별 과정을 거치지 않고 세부 분야별 분류를 통한 시간표만 정리해서 모두 발표시키는 학술대회도 있다. 사실 이 때문에 와셋에서 개최하는 학술대회를 아예 가짜라고 부르기도 어렵다. 참석했던 연구자들이 와셋 학술대회는 다학제적이었을 뿐이라며 여타 국내 부실한 학회보다 낫다고 항변한 것은 옹졸하긴 하나 아주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학술대회에 있어 진짜와 가짜, 고급과 저질, 건실과 부실의 경계는 ‘학빙여’와 ‘학겸여(학회를 겸한 여행)의 차이만큼이나 모호하다. 이처럼 형식에서 자유로운 학술대회 발표를 연구실적으로 올리도록 하는 제도는 잘못되었다.

이처럼 분명 제도적 문제도 있으나 다학제적이다 못해 각자 이해 못할, 그래도 무관한 ‘원맨쇼’를 하고 와서는 이를 자랑스럽게 연구실적으로 기재하는 연구자의 행태 역시 문제다. 더 나아가 사실상 동료 평가가 없는 가짜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고 이를 실적에 등록한 연구자가 적지 않다는 점은 훨씬 심각하게 바라봐야 한다. 물론 연구를 학문적으로 무의미한 학술대회에서 발표하거나 가짜 학술지에 논문으로 출판한다고 해서 그 연구가 무의미해지거나 가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두 현상이 드러내는 진짜 문제는 연구자가 더 이상 학술대회와 학술지의 본질적 의미인 학술 커뮤니케이션보다 발표나 출판을 했다는 사실 자체와 그 횟수에만 의미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연구 내용과 결과를 검토하고 그것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분석하고 논의하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아한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점수가 되는 실적과 그 증빙 뿐이다.

‘와셋 사태’ 이후 학계가 보인 반응 역시 참담할 따름이다. 뉴스타파 기사에 가장 발빠르게 반응을 보인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은 성명서를 통해 ‘와셋 사태’는 “연구과제에 대한 허술한 관리 실태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며 정부에 전반적인 실태조사와 수사, 연구개발관리시스템 점검을 요구했다. 또한 “당장에 내세울 결과만 요구하는 정부의 책임도 크다”며 비리에 연루된 연구자를 단호히 처벌하라면서도 실태파악과 대책 수립을 빌미로 연구자를 옥죄지는 말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홍종학 전국교수노동조합위원장 역시 교육부에 대책 마련을 요구하겠다며 와셋과 공모연구자들의 행태를 “(한국)연구재단이 몰랐다고 하는 건 직무유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의 논지는 와셋 학술대회 및 학술지에 10건에 가까운 논문을 발표 내지는 게재한 서울대 김동규 교수가 “학술대회 참가실적을 관리하는 건 한국연구재단이기 때문에 그건 연구재단의 문제"라고 답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연구자들의 반응을 의식한 듯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를 비롯한 3개 과학기술계 한림원은 관련 성명서에 ‘와셋 사태’를 연구윤리 문제로 적으면서도 연구관리제도를 혁신해야한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분명 세금으로 조성된 연구비가 정당한 학문 활동이 아닌 무의미한 학술대회 참석 혹은 학빙여에 낭비된 것은 크나큰 문제다. 뉴스타파가 출장 경비의 출처를 추적하고 BK21플러스 사업단과 대학 산학협력단, 연구재단을 취재했듯 연구관리시스템과 이를 운영하는 연구비 관리 및 집행기관의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학계의 일원인 연구자가 사태의 책임을 연구관리시스템에 돌리는 것은 어불성설이자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이 어린 애가 어른에게 남의 잘못을 이르듯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연구관리시스템과 교육부나 연구재단과 같은 유관기관은 연구비를 담당할 뿐 그보다 상위에 있는 전체 연구시스템의 주체는 아니다. 전체 연구시스템이 작동하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연구 내용과 활동, 그에 대한 평가는 전적으로 전문가인 연구자 집단에 위임되어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한다. 동료 교수나 연구원, 대학원생이 와셋과 같은 사이비 단체에 연루되어 있는 것을 언론이 보도할 때까지 몰랐든 모른 척 했든 ‘와셋 사태’는 전적으로 연구자 집단과 그를 구성하는 연구자 개개인, 즉 우리의 문제다. 연구관리시스템을 탓할 문제가 아니다. ‘와셋 사태’는 연구시스템의 실패를 의미하며 이는 전적으로 연구자 집단 책임이다.

연구 내용은 뒷전이고 연구활동과 학술 커뮤니케이션의 의미를 잊은 채 실적 쌓기에 급급한 연구자. 전체 연구시스템 실패에 대한 책임은 방기한 채 연구관리시스템과 유관기관에 책임을 돌리는 연구자. ‘와셋 사태’와 그에 대한 반응 속에서 나는 학문 공동체의 붕괴를 읽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그런 것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학문 공동체가 붕괴되었거나 부재한 상황에서 연구시스템과 학계가 제대로 작동할 리 없다. 따라서 ‘와셋 사태’에 놀랄 필요 없다. 이는 단지 우리 학계의 민낯을 비추는 하나의 현상일 뿐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다른 누가 아닌 우리 자신에게 있다.

실제 행사에서는 보도영상을 다시 보면서, 또 나보다 앞서 교수노조위원장이 '성명서를 발표해서 교육부나 연구재단에 책임을 묻겠다'는 식의 발언을 하는 것을 듣고 생각이 많아져 좀 다른 소리를 했다. 그래서 아마 내 기억에 꽤나 횡설수설했던 것 같은데, 같은 자리에 계셨던 분들께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 어쩌다보니 뉴스타파가 7월 중순 보도한 WASET 등 '가짜학회' (뉴스타파가 사용한 단어. 이후 정부는 '부실학회'라는 단어를 쓰는 것으로 방침을 정한 듯 하다) 이슈에 끼어들어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하게 되었다. 학술정책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었으니 predatory journal/publisher 주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언젠가 한번 꼭 연구를 해보고는 싶었는데 그 전에 이렇게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줄은 몰랐다. 

그 전까지 같은 주제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생각을 말한적도, 어떤 결과물을 낸 적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뉴스타파 시민 초청 시사회에 초청된 것은 다름 아닌 인맥 덕분이었다. 전에 이우창 선생님과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이 주제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잠깐 언급했던 것을 선생님께서 기억해주셨고, 이후에 뉴스타파에서 코멘터리를 부탁하기 위해 대학원생노조에 연락했을 때 신정욱 선생님이 적절한 사람을 찾다가 이우창 선생님한테서 나를 추천받아 이어준 것이다. 

그 결과 아래 영상에서 볼 수 있듯 행사에 참석하여 한마디 하게 되었다. 영상 링크(https://youtu.be/uqWfJlxUxEI, 관련 기사는 https://newstapa.org/43821)에 당시 했던 말과 함께 준비했던 발언문을 공유한다. 원래 발언문을 그대로 거의 읽으려고 했으나, 실제 행사에서는 보도영상을 다시 보면서, 또 나보다 앞서 교수노조위원장이 '성명서를 발표해서 교육부나 연구재단에 책임을 묻겠다'는 식의 발언을 하는 것을 듣고 생각이 많아져 좀 다른 소리를 했다. 그래서 아마 내 기억에 꽤나 횡설수설했던 것 같은데, 같은 자리에 계셨던 분들께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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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 전준하입니다.

우선 언젠가는 한번 꼭 짚고 넘어가야 했을 학계의 문제를 이렇게 공들여 탐사보도를 통해 밝혀주신 뉴스타파 기자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의 소개를 통해 발언 기회를 얻었기에 저를 초청해주신 대학원생노조에도 감사말씀 드립니다.

뉴스타파 보도는 주로 학술대회에 초점을 맞췄지만, 저는 '가짜' 학술지도 주제로 포함하여 좀더 포괄적인 문제를 지적하고자 합니다. 가짜 학술대회와 가짜 학술지 문제는 사실 2010년대 초반부터 그 시장이 성장하기 시작해 이제는 연구자라면 누구나 접해봤을 문제로 커졌습니다. 제프리 비알이라는 한 전문사서가 2009년 10개 저널을 가짜로 규정하고 블랙리스트로 만든지 10년도 안되어 리스트에는 1000여개가 넘는 저널이름이 올랐습니다. '발각된' 케이스만 1000여종이니 실제로는 훨씬 더 클 것입니다. 또한, 기사에서 다룬 OMICS라는 업체 하나만 해도 2016년 기준 700개가 넘는 학술지를 발간하여 5만여개의 논문을 실었고, 25개국에서 3000여개의 학술대회를 개최했다고 합니다. 해당 업체는 거꾸로 기존 학술지 업체를 사들일 정도로 커졌습니다.

오히려 학회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우리가 '학빙여'라고 줄여부르는 '학회를 빙자한 여행'을 다니는 연구자들의 비윤리적 행위 문제와 이들에게 들어가는 (주로 국가 세금으로 지원하는) 연구비 낭비 문제로 사안이 국한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해당 학회를 개최하는 WASET이나 OMICS 같은 업체들은 더 나아가 '가짜' 학술지를 발간하고 있으며, 여기에 검증되지 않은 논문들이 실리는 것까지 하나의 사이클로 본다면 이는 학문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원래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은 동료심사라는 과정을 거쳐 우리 사회의 지식체계를 구성하는 단위로서 그 자체로 어느 정도의 권위와 신뢰를 가지고 있는데, 그 권위와 신뢰를 보장하는 제도를 거치지 않은, 심하게 말하자면 보기 좋게 쓰인 막말이 - 뉴스타파가 SciGen으로 쓴 논문을 발표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이 - 지식체계에 마구잡이로 침투해 물을 흐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우리가 다뤄야 할 질문은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대학원생 입장에서 이런 가짜 학술지와 가짜 학술대회가 가지는 매력을 분석함으로서 이 질문들에 대답하기 위한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관련 문제에 대해 연구한 여러 논문들이 가짜 학술지 및 학술대회에 논문을 제출한 저자들 중 다수가 개발도상국 출신의 포닥이나 박사과정이라는 점을 지적한 바 있기 때문에 실마리를 찾기 좋은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뉴스타파 보도에서도 잠깐 언급이 되지만 대학원생들에게 있어 이런 학술대회 및 학술지는 까다롭지 않으면서 - 즉 발표를 거부당하거나 심하게 비판받지 않으면서 - 해외 학회 내지는 학술지의 경험을 할 수 있고 동시에 이른바 '꽁돈'으로 학빙여를 하거나 개인 연구 성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매력적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연구평가체계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경우 연구내용보다 연구를 통해 나온 결과물, 즉 해외학회 발표 몇 건, 해외학술지 게재 몇 건 등이 성과의 주요 요소로 여겨지기 때문에, 이러한 연구평가체계 하에서 성과압박이 점점 커지고 있는 환경에 놓인 포닥이나 대학원생에게 이런 학회 및 학술지는 쉽게 졸업하고 쉽게 임용될 수 있는 길로 보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론 제도 탓만 할수는 없겠지만 이는 가짜 학술지 및 학술대회 문제가 얼마나 연구생태계 전반과 깊게 상호연관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또한, 해결방안을 도출하기 위해서 저는 비양심적인 연구자 개개인을 탓하는 정부 및 연구비 관리조직과 반대로 이들과 함께 관 주도의 학술정책을 탓하는 개개인 연구자로 양분된 두 시각 사이에 공백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공백을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증빙가능한 연구비 집행과 가시적인 성과를 원하는 정부나 연구재단, 대학 산단과 더 많은 연구비를 따고 더 많은 논문을 내는 데에 급급한 연구자는 가짜 학술지 및 학술대회와 그 곳에 참석하고 논문을 게재하는 연구자처럼 공모 관계에 있고, 그 사이에 학문과 연구생태계는 점점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생산하는 것이 가짜든 진짜든 더 많이 더 빨리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 '공장'이 되어갈 뿐입니다.

연구를 하는 사람으로서 뉴스타파 보도를 계기삼아 연구자들이 먼저 나서 함께 반성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오늘과 같은 자리를 계속 만들어 논의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뉴스타파와 같은 언론이 계속 감시하고 문제의식을 가진 연구자들이 모여 목소리를 낸다면 '공장'과 다를 바 없는 지금의 연구생태계에서 벗어나 정말 사회에 기여하고 지식을 창출하는 연구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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