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줄 요약:
- 2018년 11월 뉴스타파 보도의 '다단계 학회사업' 장본인인 김태훈은 언론사 아카데믹타임즈를 중심으로 C-Index, S-Index, R-Index 등의 새로운 비즈니스를 벌이고 있음
- 이러한 Index들을 통해 국내 학회와 학술대회, 학술지를 평가하여 등급을 매기는 평가 사업에 눈독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본인이 대표이사로 있었던 학회에 적용하는 것을 시작으로 사업 확장에 힘쓰고 있음
- 대학랭킹과 각종 인용색인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학계는 자기규율체계의 핵심인 평가제도를 계속해서 아웃소싱해왔고, 그로 인해 생긴 구멍을 이용해 온 연구자들이 적지 않다는 현실을 고려할 때 아카데믹타임즈의 사업이 부실학술활동의 정당화 도구로 쓰인다면 앞으로 학계는 더 썩을 수 밖에 없음
지난 2018년 여름 뉴스타파가 <'가짜 학문' 제조공장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가짜학회' 이슈를 처음 공론화한 이후 한동안 학계 안팎으로 부실학술활동이 화제에 올랐다. 약 1년 동안 공식적인 용어조차 없었던 현상에 '부실학술활동'이라는 이름이 붙여젔고, 뉴스타파 기사에서 언급된 와셋(WASET)과 오믹스(OMICS)를 중심으로 해당 학회에 참가한 연구자들에 대한 조사와 징계가 진행되었으며, 한국연구재단과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을 중심으로 예방 가이드라인과 부실학회/학술지 검색 시스템 등이 갖춰졌다.
당시 한 대학원생은 한 교수를 중심으로 꾸려진 다단계 학회사업을 발견하여 며칠동안 조사하여 뉴스타파에 제보를 했고, 해당 내용이 보도되며 역시 학계 안팎으로 작지 않은 충격을 불러온 바 있다. (참고: '아는 사람 이야기': 뉴스타파 보도 <현직 교수, 페이퍼컴퍼니 끼고 '다단계 학회사업'> 제보) 이후 기사에서 언급된 인문사회과학기술융합학회(HSST)의 등재지 <예술인문사회 융합 멀티미디어 논문지(AJMAHS)>와 보안공학연구지원센터(SERSC)의 등재지 <보안공학연구논문지(JSE)>는 등재탈락을 면치 못했고, 두 학회들(지만 주식회사였던 곳)은 사실상 문을 닫은 것으로 보인다.
이 정도면 대충 마무리 된 것 아니냐고 물을 사람들도 있을테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문제시 된 와셋과 오믹스, HSST와 SERSC만 주목을 받고 언론에서 다루지 않은 수많은 부실학회 및 학술지, 혹은 부실의심학술활동(questionable research practices)은 거의 공론화되지 않아 매우 안타까웠다. 이전에도 지적했듯 특정 학회나 학술지를 '가짜' 혹은 '부실'이라고 규정하기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며, Beall's List나 Cabells' Predatory Reports와 같은 블랙리스트를 쓰거나 Web of Science나 Scopus와 같은 저명한 학술인용색인을 화이트리스트로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평가제도를 포함한 학계의 자기규율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 이상 더 교묘해질 뿐이다.
서론이 길었는데, 오랜만에 부실학술활동을 주제로 글을 쓰게 된 건 SNS를 통해 한 선생님께서 다단계 마케팅을 차용한 학술대회 학술위원 초청 이메일을 제보해주셔서 관련 내용을 조사하다 발견한 내용을 공유하기 위함이다.
일단 해당 이메일은 부실학회가 전형적으로 보이는 패턴에 따라 학술대회를 운영할 학술위원을 모집하고 있었다. 학술위원에게 마감일 연장혜택과 함께 논문 투고를 조건으로 내걸고, 가입비를 내고 이사회원이 되면 자신만의 세션을 구성해서 해당 세션 논문들에 등재지 게재 기회를 준다고 한다. 2편 이상 투고 시 영문논문에 한해 편당 등록비 10%를 할인해준다는 혜택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내용도 있었다.
많이 본 수법인 것에 더해 두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1) 이메일 제목에 언급된 '2021년 6월 3차': 상반기인데 이미 3차까지 학술대회를 한다는 건 1년에 6회를 한다는 뜻으로, 꽤나 큰 학회조차 계절별 학술대회를 여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흥미로운 숫자였다. 2) 학회 이름이 '미래융합기술연구학회(FuCoS)': 이름에서부터 불길한 예감이 든다. (...)
학회 홈페이지를 들어가서 간단하게 조사를 해보니 '다단계 학회사업'의 장본인 김태훈 교수가 대표이사로 있던 아태인문사회융합기술교류학회(SoCoRI)가 이름을 바꾼 것이었다. 2018년 뉴스타파 보도 당시엔 HSST와 SERSC가 등재지인 AJMAHS와 JSE를 활용하여 성행했다면, 둘 모두 등재탈락한 후에 SoCoRI가 2019년 산하학술지인 <아시아태평양융합연구교류논문지(APJCRI)>를 KCI에 새로 등재시키는데 성공하고 FuCoS로 이름을 바꿔 운영중이었던 것이다. HSST와 SERSC와 마찬가지로 학회장과 학술지 에디터는 모두 해외 학자라고 써져있지만, KCI에는 다른 국내 교수가 학회장으로 등록되어 있고, 등기사항으로도 역시 대표이사는 다른 사람이었다. 김태훈 교수는 2018년 11월 뉴스타파 보도 직후 사임했다고 나온다.
아, 말이 나왔으니 첨언하자면 김태훈(2018년 뉴스타파 보도 당시 성신여대 융합보안공학과 교수)은 더이상 교수가 아니다. 해임당했는지 자진 사임했는지 공식적인 자료는 찾기 어려웠지만, 일단 성신여대 홈페이지에서 이름을 찾을 수 없었고, 가명을 썼지만 누구를 이야기하는지 대충 다 알 수 있는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김태훈에 대한 후속 취재로 억울한 사정이 밝혀졌다고 하지만 나는 접한 바 없고, 김태훈과 HSST 회장 김행곤 대구가톨릭대 교수간의 사이가 틀어진 건 분명해보인다. 기사는 신청만 하면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는 '한국공보뉴스'에서만 찾을 수 있었는데, 흥미롭게도 기사가 작성된 성북본부의 장이 김태훈이다. 동명이인일까? 아니라는 증거를 후술하도록 하겠다.
한편, FuCoS의 학술대회 웹사이트에서 또다른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우리 학회는 부실 학술대회 예방을 위해, C-Index 평가기준(http://www.actimesnews.info/)을 준수합니다.
우리 학회는 발표 장면을 녹화하여 DMI 등록(http://www.digitalmediaid.org/)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 학회는 부실 학회 예방을 위해, S-Index 평가기준(http://www.actimesnews.co.kr/)을 준수합니다.
우리 학회는 부실 학술지 예방을 위해, R-Index 평가기준(http://www.actimesnews.kr/) 및 Trace of Reveiw 평가기준(http://actimesnews.net/)을 준수합니다."
처음 듣는 "index"들의 향연에 잠시 어지러워 숨을 골라야 했다. 각 사이트에 들어가 내용을 확인하고 난 후 김태훈의 후속사업이 어디로 향해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다름 아닌 Web of Science나 Scopus가 임팩트 팩터 등 인용지표로 학술지를 줄세우고 각종 기관이 대학랭킹을 만들어 대학에 순위 내지는 등급을 매기듯이 한국연구재단이 시행중인 한국학술지인용색인(Korea Citation Index) 등재 제도에서 더 나아가 국내 학회와 학술대회, 학술지에 점수 및 등급을 매기는 평가 비즈니스 모델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각 사이트에 적힌 index들의 설명을 자세히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다단계 학회사업의 장본인의 구상이라는 이유로 이 index들이 모두 '가짜'라거나 속임수라고 주장할 생각도 없다. 오히려 내가 이전에 '해킹'이라는 단어를 썼듯 김태훈이라는 시스템 해커는 부실학술활동을 둘러싼 학계의 문제점을 정확히 알고 있다. 그는 이를 정당하든 아니든 자신이 고안한 비즈니스 모델로 수익화를 꾀하고 있다는 게 내 해석이다. 이런 활동에 얼마나 학계를 위한 진정성이 있는지는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다. 각 사이트를 살펴본 후 '이런 좋은 일을 하려는 사람이 있구나'하며 김태훈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는 사람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일단 이 index들이 모두 김태훈의 작품임은 각 사이트에서 언급하고 있는 상위기관인 '아카데믹타임즈'를 통해 알 수 있다. 실제로 모두 actimesnews를 도메인 주소 제목으로 삼고 있고, 이들을 백링크하고 있는 아카데믹타임즈라는 곳은 다름 아닌 언론사다. 홈페이지에서 명시하고 있진 않지만 김태훈이 대표로 있다. 사무실 역시 김태훈이 일하던 성신여대 근처이기도 하다. 동명이인일 확률도 있지 않을까 싶어 각 기사 작성자 이메일을 확인했다. 대부분 taihoonn@empas.com으로 되어있다. 그가 논문을 정말 많이 쓴 생산적인 연구자였던만큼 구글링을 통해 김태훈의 이메일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아카데믹타임즈의 기사들은 대부분 보도자료를 그대로 가져다 쓴 형태인데, 반대로 다른 언론사에 기사를 작성해서 보낸 사례도 있다. 바로 C-index를 비롯한 아카데믹타임즈의 사업을 홍보하기 위한 보도자료로, 앞서 언급한 바 있는 한국공보뉴스에 실린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에는 이영경 기자를 통해 주기적으로 간접광고(PPL)라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려운 기사를 내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유명 유튜버 보겸이 사용하는 '보이루'라는 인사말을 여성혐오로 해석한 윤지선 교수의 <철학연구> 논문이 이슈화가 되자 은근슬쩍 R-Index에 따르면 <철학연구>의 평가점수가 높지 않다고 지적하는 기사를 올린 바 있다. 해당 기사를 작성한 이영경 기자의 이름 역시 익숙해서 다시 찾아보니 법인등기 상으로 FuCoS의 대표이사와 같았다. 동명이인인지 확인은 하지 못했다.
아카데믹타임즈의 Index 사업들은 만든지 얼마 되지 않은만큼 자리잡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쪽에 관심이 많은 나조차도 이번에 처음 들었을 정도라면 인지도가 높지는 않은 듯 하다. 하지만 대학랭킹과 마찬가지로 각 학회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단 순위나 등급을 매기기 시작하고 나중에 인지도가 생기기 시작하면 평가기관의 공신력이나 방법론의 엄밀성과 무관하게 모두가 신경쓰는 Index로 자리잡을 가능성도 작지 않다. 아카데믹타임즈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는 듯 일단 등급을 다 매겨놓았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는데, 깨알같이 FuCoS(이름 변경 전 SoCoRI)와 산하 학술지는 모두 가장 높은 S 혹은 A 등급이 매겨져있는 것도 흥미롭다.
다시 말하지만 아카데믹타임즈의 이러한 Index 사업들이 어떻게 학회/학술대회/학술지를 평가하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이 글에서 Index마다 나름 자세히 써져있는 설명을 하나하나 읽고 분석하지 않은 이유다. QS나 THE, 중앙일보 등의 대학랭킹도, Web of Science나 Scopus와 같은 학술인용색인도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신경쓰는 사람은 극소수다.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한 자가 벌여놓은 판에 하나둘씩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어느새 모두가 참여자가 되어 높은 순위나 등급을 차지하기 위해 애쓰는 게임이 된다.
처음으로 돌아와서 FuCoS가 개최하는 학술대회(고맙게도 아카데믹타임즈가 운영하는 것으로 보이는 "학술 발표가 정상적으로 진행된 것이라는 증거"를 관리해주는 DMI라는 서비스 덕분에 FuCoS 학술대회의 모든 발표를 유튜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와 발행하는 학술지를 살펴보자. '융합', '학제간연구'를 표방하고 있지만 정말 융합 내지는 학제간연구를 시도한 연구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다양한 학문분야 연구들이 모인 메가컨퍼런스 및 메가저널(megajournal)이다. 때문에 더더욱 학술대회나 학술지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참여자 간의 학술적 교류가 제대로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하기가 힘들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겠지만 뉴스타파가 WASET에서 했던 것처럼 아예 가짜 논문을 제출하고 걸러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지 않는 이상 FuCoS를 비롯한 다른 여러 학회들을 가짜학회 혹은 부실학회로 규정하기는 힘들다. 나 역시도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느낌상 혹은 정황상 그런 쪽에 가까워보인다고 할 수 있을 뿐이다. 김태훈이 2018년까지 운영했던 (혹은 지금도 운영중인) 다단계 학회사업 역시 이런 배경 위에서 가능했다.
김태훈이 새롭게 벌이고 있는 사업은 이러한 부실 및 부실의심 학술활동의 정당화 도구로도 쓰일 수 있다. 각종 Index 상으로 보았을 때 형식적으로 괜찮다는 곳을 학술활동의 내용을 토대로 문제삼기는 매우 힘든 일이다. 그리고 연구자들은 귀신같이 이런 구멍을 잘 찾아내어 활용할 수 있다. HSST의 등재지 AJMAHS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1년에 무려 1000편이 넘는 논문을 실었다. 우리나라에서 게재한 논문 중 6% 이상이 부실학술지임에도 불구하고 Scopus에 등재된 324개의 학술지에 실렸고, 이는 OECD 국가 중 압도적인 1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연구) 김태훈은 보다 큰 뜻이 있어 제 발로 교수직을 던지고 대학을 나온 듯 하지만 (돈이 되는 사업이 눈에 보이고 교수직이 방해만 된다면 왜 그러지 않겠는가?), HSST 회장 김행곤 교수는 작년 대구가톨릭대에서 30년 근속상을 받을 정도로 별 문제없이 학계에 머물고 있다. 부실학술활동을 통해 교수에 임용되고 승진하고 자리를 유지한 사람들은 있지만 밝혀진 후에도 처벌받은 사람들은 별로 없다. 시스템 해커들과 그들이 뚫은 백도어를 부단히 활용한 연구자들로 인해 학계는 병들어가고 있지만 겉보기엔 문제가 없어보이니 아무도 소리높여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는가? 퇴근 후나 주말 밖에 시간을 못 내고 이런 곳에 돈 쓰기 쉽지 않은 사회초년생이다보니 스모킹건을 확보하기 어려워 아쉬울 뿐이다. 이쯤되면 내가 왜 요지경 학계에 애정을 갖고 연구자가 되고 싶어하는지도 혼란스러운 지경이다.
...라고 한 대학원생이 글을 써서 보내왔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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