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 블로그에 글을 직접 쓰기보다 여기저기 써놓은 글을 옮겨다놓는 아카이브로만 활용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지만...
이번에도 한겨레 기사에 짧게 코멘트가 실려 기사를 공유한다.
기사 원문은 여기로.
저번과 마찬가지로 짧은 코멘트 뒤에는 짧지만은 않은 이메일 답신이 있었다. 또한 역시 predatory journal & conference에 대한 내 생각을 담고 있기에 아래 기자님께 드린 이메일 답신을 가져온다. 따로 허락 받은 건 아닌데, 뭐... 내가 쓴 거니깐...ㅋㅋㅋ
기사를 쓰신 오철우 기자님과는 오랜만에 연락을 주고 받았다.
3년반 정도 전에는 내가 워싱턴dc에서 참석한 포럼 후기를 한겨레 사이언스온에 기고하려고 다소 뜬금없이 연락을 드렸었다. 이제 사이언스온은 미래&과학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고 있고, 오철우 기자님은 한겨레 토요판에서 기사를 쓰고 계신다. 와셋 사태에 대한 서면 인터뷰를 위한 연락이 왔을 때 감회가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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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오철우 기자님, 이렇게 다시 연락을 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이전에 미국에서 인턴을 하던 시절 사이언스온에 아래 글을 기고해서 자랑스러워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링크: http://scienceon.hani.co.kr/275582)
벌써 3년이 넘게 흘렀네요. 그 글을 기점으로 보다 활발하게 글을 쓰게 되어 기억에 크게 남는데, 당시 오철우 기자님께서 잘 다듬어주셔서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우선 과총 <과학과기술>에 기고한 글과 토론회에서 발표한 토론문만을 접하셨다고 가정하고, 아래 와셋 사태와 관련하여 작성한 몇 개 글을 더 첨부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일부는 물어보신 질문과도 겹치는 부분이 있는데, 대부분 제 SNS나 블로그에만 올렸던 글이기 때문에 그대로 인용하셔도 무방하겠습니다.
1. http://stpforerbody.tistory.com/36 (뉴스타파 ‘가짜학문 제조공장의 비밀’ 시민 초청 시사회 발언문 (2018.7.23))
2. http://stpforerbody.tistory.com/40 (대학신문 기사 "이상한 학회의 한국인 학자들" 인터뷰 질의서 (2018.9.11))
3. http://stpforerbody.tistory.com/49 ('아는 사람 이야기': 뉴스타파 보도 <현직 교수, 페이퍼컴퍼니 끼고 '다단계 학회사업'> 제보)
특히 주신 2번째 질문("실제로 와셋과 같은 학회, 저널의 ‘판촉’ 메일을 받아보신 경험이 있으신지요?")은 위 2번 글에서 답한 것 이상으로 드릴 말씀이 딱히 없는데요, 혹시 읽고나서 불분명한 부분이 있으면 다시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래에는 2번째 질문을 제외하고 답변을 드릴텐데, 질문을 읽고 고민을 하다가 거꾸로 답변하는 것이 제가 생각하기에도 기자님께서 읽으시기에도 편할 것 같아 그렇게 적었습니다.
답변드린 내용에 추가 질문이 있거나 할 경우 또 연락주십시오.
기사 나오면 공유부탁드리구요.
감사합니다!
전준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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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학문 생태계와 관련한 전공분야를 연구하고 계신지요? 토론회와 기고문에서 전문적 식견을 펼치셔서, 현재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나 이전 연구의 전공경험이 궁금합니다. 이번 사태와 관련있는 연구를 해오셨는지요?
저는 단지 두루뭉술하게 대학과 학문이라는 제도, 연구라는 행위와 연구자 집단, 이들과 상호작용하는 정책을 연구하고자 공부하는, 연구의 전공경험(?)은 일천한 학생입니다. LINC 사업에 대한 사례연구로 석사학위논문을 썼고, 대외적으로(?) 알려진 연구결과물로는 교육부에서 발주한 <대학원생 권리강화 방안연구> 정책연구보고서가 있긴 합니다만...
말이 나온 김에 간단하게 제 근황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저는 현재 한 중소기업에서 전문연구요원으로 복무중입니다. 다만 회사와 무관한 일로 기고하거나 행사에 참석할 때는 대학원생이라고 소개하곤 합니다. 전문연구요원 편입 직전 휴학해서 풀타임으로 연구를 하고 있진 않고, 퇴근 후에 시간내서 감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수준입니다. 박사과정에 입학하자마자 휴학했으니 박사학위 논문 주제를 정했을리 없고, 연구경험이 많지도 않아 앞서 언급한 것 외로는 소개할 것이 따로 없네요.
그래서 '전문적 식견'이라고 하기에는 부끄러운 수준이고, 다만 저 자신을 같은 연구자이면서도 연구자를 연구하는 연구자라고 여기며 모두들 바쁘게 달려 각자 연구에 여념이 없을 때 천천히 걸으면서 제3자 아닌 제3자의 생각을 말과 글로 옮겼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연구자라면 누구나 잠깐 멈추어 이 경기장을 관망한다면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라 봅니다. 물론 관심분야가 관심분야이다보니 와셋과 같은 predatory conference나 journal, publisher 등에 대한 논문이나 에세이를 이전부터 많이 읽어왔고, 그러다보니 뉴스타파 기사 상영회 때도 그렇고 이런저런 발언 기회가 온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고민투성이인 제 진로를 묻는 질문이라 굉장히 모호한 답변이 된 점 죄송합니다.)
-현장연구자이자 젊은 학문세대들이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대체적인 시각을 대변해주실 수 있을런지요.
사태가 뉴스타파를 통해 알려졌을 때 저는 이미 휴학하고 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기 때문에 잘 대변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질문에 문자 그대로 답하자면... 아니오, 못하겠습니다.
다만, 제가 직접 경험한 바와 더불어 접한 일부 사례들을 통해 몇가지 추측은 해볼 수 있겠습니다.
우선 꼭 뉴스타파를 필두로 한 언론 보도를 통해서 접하지 않았더라도 부실학실활동에 대한 초기경력연구자들이 처음 보이는 반응은 실망과 환멸일 것입니다.
자신을 연구자 혹은 '젊은 학문세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교수와 같이 연구와 학문을 업으로 삼는 삶을 상상할텐데요.
보통 그렇게 처음 학계에 발을 들일 때는 상당히 이상적인 학계 모습을 기대하게 됩니다. 일정기간 연구한 결과를 학술대회에 발표하고 같은 분야 연구자들과 함께 격의 없는 토론을 나누고, 그 결과를 다시 연구에 반영해서 학술지에 제출하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한 세부전공에서 대가가 되는 것을 꿈꾸기 마련이죠. 하지만 그런 기대를 가진 초기경력연구자가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것과 같은 부실학술활동*을 처음으로 경험하게 되면 일단 혼란스럽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이내 그것이 만연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초기경력연구자는 무기력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존경할만한 연구자들도 부실학술활동을 보고도 묵인하거나 되려 동조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지만서도 자신이 있는 위치상 선택지는 회피 아니면 적응 두가지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연구재단을 필두로 '부실'이라는 수식어가 자리를 잡아가는 듯합니다. 저 역시 뉴스타파가 사용한 '가짜'나 Beall이 사용한 단어를 직역한 '약탈적' 보다 '부실'이 가장 낫다고 생각하기에 이 수식어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이중 회피를 선택한 사람들은 우리나라 학계는 속된 말로 '노답'이니 (답이 없으니) 제대로 된 학술활동을 경험하기 위해 유학을 가거나 아예 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접을 것입니다. '제도권'을 벗어난 독립연구자를 자처하기도 합니다. 적응을 선택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이런 부실학술활동이 만연한 것을 용인하되 신경쓰지 않고 '나는 내 할 것 하겠다'라는 태도를 가지기도 하고, 또는 필요할 때 적극적으로 부실학술활동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초기경력연구자 입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앞서 언급한 실망과 환멸로 시작해서 회피와 적응으로 끝나고, 이것이 대를 이어 반복되는 현상이 제도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종의 성인식 마냥 누구나 경험하는 과정이 되었다는 뜻이지요.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연구윤리, 내지는 해외에서 부르는 Good research (science) practice는 규정과 가이드라인을 통해서 배우고 익히기보다 실제로 연구활동을 하면서 경험하고 지키게 되는 것인데 초기경력연구자가 보고 배워야 할 기성세대(?) 연구자들이 부실학술행위를 직접 하고 있거나 용인하고 있다면 그 역시 연구윤리를 매뉴얼로만 여기고 선배들이 하는 대로 하게 될 것입니다. 구구절절 길게 말씀드렸지만 결국 초기경력연구자가 적절한 교육을 받고 있지 못하다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교육은 단순히 지도교수가 대학원생에게 말로 지도하는 것이 아닌 작금의 학계에서 어떻게 연구를 하고 어떻게 우리나라에서 연구자가 되는지에 대한 넓은 범위의 교육입니다. 더 나아가 회피를 선택한 사람들은 떠나가고 적응을 선택한 사람들이 남는 우리나라 학계가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 것인지 매우 부정적인 상상도 해볼 수 있겠습니다.
-이번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시는지요? 기고한 글을 보면, 학빙여이건 학겸여이건 이런 사태가 누구의 책임이기 이전에 연구자들 자신의 책임이라고 지적하신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그 주장을 말씀해주실 수 있는지요?
이건 어느 직업군에서나 마찬가지일 듯 합니다만 (특히 전문직에서), 특정 직업군에 만연한 비리나 부정행위에 대한 글을 쓸 때 독자를 해당 직업군 종사자로 상정한다면 누구나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라고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를 들어, 기분이 나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기자님께서 기자들을 대상으로 기자가 '기레기'로 불리는 세태에 대해 글을 쓰신다면 우선 반성을 요구하지 않을지요? '연구자 책임'을 강조한 데에는 첫번째로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글에도 언급했지만 적지 않은 연구자 내지는 연구자단체가 이른바 '유체이탈화법'을 구사하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와 같은 지적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연구자들 자신의 책임이라고 한 또다른 이유는 이것이 단지 '일부 연구자의 일탈 행위'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부실학술활동과 거기에 연루된 연구자들을 문제삼기 전에 이 사태 - 이는 그것이 학회나 대학, 연구재단 등을 통해서 드러나기 전 언론에 의해 드러났다는 사실도 포함합니다 - 를 하나의 현상으로 보고 어떻게 이 현상이 일어났는지를 살펴봐야한다고 보았고, 학계의 주체인 연구자 개개인 모두 이 현상에 일정부분 기여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진정으로 흔히 말하는 '구조적 문제', '조직적 문제', '제도적 문제'를 드러내고 해결방안을 논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학자, 연구자들이 입을 모아 '학문 자율성'이나 '연구 자율성' 보장을 외치면서 왜 이런 반학술적 활동은 자율적으로 걸러내지 못했나라는 질문을 던지고자 했습니다. 학문 분야를 막론하고 부실학회를 비롯한 부실학술활동이 만연한 상황에서 이를 여태 몰랐던 연구자는 자기자신에게 왜 몰랐는지를 물어야 하며, 모른 척했던 연구자는 왜 모른 척했는지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두 질문은 모두 같은 대답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나라 학계에서 자기규율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기고한 글에서 학문공동체의 부재 내지는 붕괴라고 언급하기도 했지요.
제 주장은 이번 사태에 대해 분명한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문제를 가지기도 합니다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부라도 연구자 개개인 혹은 일부 학회나 연구자 단체가 직접 움직이지 않는 이상 상황 개선이 요원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과총이 아무리 가이드라인을 내놓고, 연구재단이 아무리 지표를 설정하여 인증제를 실시한다고 한들, 연구자 개개인이 같은 연구실이나 같은 학과의 다른 연구자가 부실학술활동을 한지 모르거나 모른 척 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또한, 많이들 이번 사태의 '근본적 원인'으로 지적하는 '평가 제도'에 있어서도 연구자들은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물론 신공공관리론에 입각한 정부 내지는 관료로부터 오는 압력이 아예 없지는 않겠으나, 평가 제도의 중심에는 여전히 연구자가 있습니다. 신규 교수나 연구원 임용 평가는 누가 하나요? 대학 업적 평가 제도는 누가 만드나요? 과제 평가는 누가 합니까? 학회나 학과 단위로라도 함께 노력하면 충분히 연구윤리도 확립할 수 있고 부당하다 생각하는 연구평가제도도 바꿀 수 있는 분들이 구조 탓, 시스템 탓만 하는 것을 보는 초기경력연구자들의 마음은 안타깝기만 합니다.
조금 과격하게 말하자면 제대로 된 학술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학문공동체가 없는 학문, 연구공동체가 없는 연구를 하는 학자 내지는 연구자는 무의미한 점수만 쌓는 셈입니다. 이미 그런 분위기가 만연한 것 같아 안타깝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연구자들이 '어쩔 수 없다'며 자조하는 분위기가 아닌 '뭔가 해보자', 즉 학문공동체가 부재했으니 한번 만들어보자는 움직임이 나오길 바라는 마음에 연구자 책임을 묻는 주장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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