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보니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이라 어떤 카테고리에 둬야 할지 고민했는데, 그래도 내 지금의 연구질문들을 떠올리게 만든 경험들이니 연구자 탭에 배치했다. 첫번째 글에 1학년 때 경험 - 주로 실망 - 을, 두번째 글에 2학년 때 경험 - 그래도 희망 - 을 쓴다.
학과의 지원 덕에 석사 2년동안 여러 학회를 다니며 연구를 발표할 기회를 가졌다.
1학년 때 국제학회 1번, 국내학회 1번을 다녀왔고, 2학년 때는 국제학회에 2번, 국내학회에 1번 참석했다.
학과에서 여비 지원을 받기 위한 조건이 해당 학회에서 발표를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모두 연구 발표를 해야했다. 원래 해외학회는 1년에 1번까지 갈 수 있었는데, 2학년 때 Atlanta Conference는 학과 차원에서 조지아텍 공공정책대학과 합동세미나를 개최하는 겸해서 갔기 때문에 따로 발표하지 않고 참석만 했다.
우선 내가 일찍이 학회 발표에 집착하다시피 한 이유가 두가지 있다.
첫번째는 실적 압박이었다. 학회 발표 자체가 실적이 되리라 생각한 적은 없다. 내 연구분야는 CS를 비롯한 일부 분야에서처럼 학회에서 발표했다는 것만으로 실적이 되는 분야가 아니었고, 그런 학회도 따로 없었다. 또 대부분 학회에 제출한 초록이나 소논문, 혹은 논문 전문을 미리 받긴 했지만 피어리뷰를 해주거나 그 결과를 토대로 참석 여부가 결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러니 학회에 참석했다고 누가 인정해주고 그럴 일은 없었다. 다만 학회에서 발표를 잘하면 출판 기회로 이어지기도 하고, 꼭 그렇지 않더라도 내가 스케줄 관리를 하기가 좋았다. 남들 앞에서, 그것도 다른 학자들 앞에서 발표를 해야하니 그 때까지 뭐라도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만큼 정신차리고 진도를 뺄 수 있었다. 그래야 뭐라도 결과를 내서 나중에 출판을 할테니깐.
두번째는 슬프게도 어떻게든 동료평가를 제대로 받고 싶어서였다. 연구분야와 주제를 정하고 나서 나는 지금 다니는 대학원에서 내 연구에 대해 제대로 평가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기대고 있는 이론이나 선행 문헌을 내가 잘못 이해하거나 적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데이터를 잘못 분석하지는 않았는지 등. 물론 지금와서 보면 중요한 지적 - 주로 논리적 비약이나 근거 부족,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지점이나 다른 이론과의 연결 등 - 은 사실 정말 딱 나와 연구분야가 겹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어쨌든 그 때는 그런 불안감에 휩싸여서 내 연구를 같은 분야에서 연구하고 있는 연구자들한테서 제대로 평가받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우리 학과에는 없으니 다른 곳에서 찾아야했고, 가장 좋은 건 내가 인용하는 논문을 쓴 학자들이 오는 학회에서 그 학자들로부터 받는 거였다.
그렇게 1학년 때 처음 갔던 학회는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열린 Triple Helix Conference라는 학회였다. 사실 Triple Helix 개념도 학회도 뚜렷한 하강세를 보이고 있는 곳이긴 하다. 하지만 그 때야 그런 걸 알턱이 없었고 수업 때 관련 논문을 몇 개 읽은데다가 무엇보다 개념을 주창한 Henry Etzkowitz와 Loet Leydesdorff가 인용을 쓸어담다시피 했기 때문에 저기가 내가 붙어야 할 곳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가있는 내내 독한 감기에 걸려서 정신이 헤롱헤롱한 상태로 다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지루했던 학회였다. Triple Helix라는 이론 내지는 개념이 사실상 무한정으로 확대가능하고 4차산업혁명처럼 정책관련자들한테도 fancy하게 먹히는 단어이다보니 연구자들 외로도 공무원 등도 많이들 와서 발표했다. 물론 다 사실상 홍보에 가까워서 흥미로운 점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간간이 재밌는 연구발표가 있었고 그들과 논의를 한다는 것에 감격스럽긴 했다. 처음으로 연구자 대 연구자로 명함도 주고 받고 말이다.
공통 세션을 제외한 대부분의 세션이 그랬지만 내 세션 역시 매우 소규모로 진행되었다. 15명이 안되는 사람들이 같은 방에서 발표를 했는데, 15명 중 10명이 좌장 및 발표자, 그리고 그 발표자와 같이 다니는 사람들(예를 들어 내 교수님, 같이 학회 간 형, 그리고 그 학회에 온 유일한 다른 한국인 분들 2명. 다른 발표자한테도 그런 동료들.)이었으니 사실상 굳이 학회에서 만나야 했나 싶기도. 또한 세션도 기존에 모집한 세션들 중 충분한 초록이 없어 합쳐진 세션이었기 때문에 발표 내용도 일관적이지 않았다. 그래도 Triple Helix 개념을 정립해서 학회장으로 계속 활동해온 Henry Etzkowitz가 (다른 발표의 공저자였기 때문에 들어온 듯) 나름 의미있는 코멘트를 해주긴 했으나, 내가 바랐던 제대로 된 평가는 아니었기 때문에 약간 실망하기도 했다.
때문에 국제학회 별 거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음, 다시 생각해보니 꽤나 허무해했던 것 같다. 때문에 다른 학회도 이런 걸까, 내가 애초에 학회를 잘못 선택한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Triple Helix 개념이 이론적이든 실천적이든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는 의문이 학회에서 느낀 실망감과 함께 '아 여긴 아니구나'라는 생각으로 귀결된 것 같기도 하다.
이 학회에서 우리나라에 몇 없는 나름 triple helix 개념으로 논문을 꾸준히 써온 교수님을 한 분 만났다. 사실 한국 사례로 (사실상 해외 학회 발표나 학술지 게재를 목표로 하는) 영어 논문을 쓸 때 가장 필요한 자료 종류 중 하나가 같은 분야 내에서 한국 사례로 해외 학술지에 실린 논문이다. 생각보다 정말 몇 없다. 내 경우 손에 꼽았는데 그 중 한 분을 하이델베르크에서 처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감사하게도 교수님이 학회장으로 있는 국내 학회에서도 발표해보는 것이 어떻냐고 제안해주셨고, 해외였다면 힘들었겠지만 아니었기 때문에 why not?이라는 생각에 국내 학회에서도 발표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참석하게 된 학회가 DISC다. 정확히 말하면 학술대회 이름이 DISC였고, 학술단체로서 학회 이름은 WATEF였다. 여러모로 학회장을 하고 계시는 교수님의 개인 역량이 만들어낸 학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DISC의 D가 대구에서 따온만큼 (지금은 Data로 바뀐 듯 하지만) 지역 학회였지만 학회 자체도 국제 학회를 표방했고 그만큼 해외 학자들도 많이 왔다. 나름 WATEF 이름에 Triple Helix가 있어서 하이델베르크와 큰 차이가 없지 않을까 싶었지만 학회에 참석하고 나서야 엄청나게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 무슨 주제였는지 기억은 안나는데 고등학생 R&E로 수행한 과제 결과를 한 교수가 학생들이 찍은 발표영상을 틀어놓는 것도 볼 수 있었다. 다시금 학술대회 자체에 대한 실망이 커졌다.
두 학회를 모두 참석하고보니 일전에 워싱턴에서 인턴십할 때 참석했던 학생학회 생각이 떠올랐다. ST Global이라는 미 동부 STS학과 대학원생들이 주축이 되어 여는 학회다. 그 때는 다른 의미에서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오히려 무식해서 그렇게 생각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째 학생들 수준이 높지 않다는 생각이 든 거다. 발표 내용이나 질의응답에 다들 열심히 참여해서 뭔가 학회다웠지만, 뭔가 아마추어 느낌이 났었다. 물론 내가 학회에서 발표한 내용도 그랬지만.
진짜는 허상이었다. 내가 바랐던 학문의 전당으로서의 학회. 각자하는 연구가 서로 크게 연관되어 있어 조그만 것부터 주제 선정과 같이 큰 질문까지 치열하게 토론하는 그런 장은 있을 수 없는 거였다. 다들 자기 발표하기 바쁘고 남이 하는 발표는 대충 기웃거리다가 아주 가끔 운좋게 관련성이 큰 연구나 연구자를 만나면 질문 한두개 정도 하고. 그런 실망감이 컸다.
일찍이 원래 학회란 그런 곳이구나라고 깨닫고 인정하고 큰 의미를 두지 말아야 했는데 되려 나는 내가 제대로 된 학회, 그러니까 주류/메이저 학회를 가지 않아서 그런 거구나 싶어서 주류 학회를 찾아 헤멨다. DRUID와 같은 학회는 참석하기도 어려운데 (full paper 제출 + peer review로 참석자 수 제한하고 걸러냄), full paper를 쓸 자신은 없으니 적당히 어려우면서 정말 나와 비슷한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 학회를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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