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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글 모음

조교로 기운 누더기 대학(교수신문, 2018.6.4.)

교수신문 편집 원칙상 원문에 거의 손을 대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도 교수들이 글을 많이 기고할텐데 자존심 강한 교수들이 손 대는 것을 원치 않겠지.... 그래서 아마 아래 내가 기자님께 보냈던 글과 링크(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41864)를 통해 볼 수 있는 글이 차이가 거의 없을 것이다. 

쓴지 얼마 안되어 인쇄본 2부가 집으로 배달되어 뜻하지 않게 부모님이 칼럼을 읽으셨다. 아버지와 동생은 대학 나왔다고(물론 휴학생 신분이긴 하짐나) 이렇게 써도 되는거냐고 물었고, 어머니는 내 칼럼 뿐만 아니라 신문 지면이 다 대학이나 고등교육정책에 대한 성토장이라는 감상을 남기셨다. 

이우창 서울대 원총 전문위원님을 통해서 <대학원생들의 一聲>이라는 교수신문의 무려 10회 기획연재에 참여하게 되었다. 노웅래 의원실, 대학원생노조, 교육부 등이 주관 및 주최하여 이화여대에서 대대적으로 열렸던 <대학 내 권력형 성희롱·성폭력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 촉구 간담회>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함께 식사를 하다가 기해당 연재를 기획한 기자님을 소개받았고, 아마 2회분이 비어 있었던 때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기자님도 조교 제도에 대해서 쓰는 것을 요청하셨고, 나 역시 그러고 싶었기 때문에 기획연재 막차에 탑승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대학원생노조와 함께 기획한 것이던데, 나는 (아직은?!) 대학원생노조 가입자는 아니고, 글에도 썼듯이 교육부 연구과제 참여자로서 느낀 점을 작성했다. 하지만 최근 올브레인이라는 대학원생 커뮤니티를 통해 연재된 대학원생노조 구슬아 위원장 인터뷰(총 3편인데, 1, 2편은 꼭 읽어보기를 추천. https://www.allbrain.kr:5004/bbs/board.php?bo_table=news&wr_id=1381)를 보고 후원을 결심했다. 교수신문에서 원고료를 얼마나 줄지 모르겠지만 입금되는대로 그대로 대학원생노조에 전달할 생각이다. 

조교 제도에 대해 할 말은 많은데 - 특히 법률과 관련하여 - 칼럼 길이가 제한되어 있다보니 현재 제도를 구체적으로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형식으로 글을 쓰기가 힘들어 결국 현실에 대한 재해석 내지는 표현 다각화를 통해 글을 작성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인상깊게 여겼던 '메인테이너'라는 개념을 차용했고, 다양한 대학 내 노동 공백을 메우는 조교들을 보고 '누더기'를 떠올렸다. 아마 처음 기자님께 제안했던 주제는 '조교 제도의 허점'이었는데 글을 작성하고 보니 '대학의 허점이 곧 조교 제도'라는 주장을 했다.

...보통 기고글에는 서론을 길게 남기지 않으려고 했는데..... 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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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교로 기운 누더기 대학

전준하(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

작년 10월부터 6개월간 교육부에서 발주한 <대학원생 권리강화 방안 연구>라는 주제의 정책연구과제를 수행했다. 조교 제도를 다루지 않을 없었다. 한편, 대학원생은 연구과제에 아무리 주도적으로 참여하더라도 연구책임자가 없다. 그렇게 나는 조교 제도를 연구하는 연구조교가 되었다. 하지만 연구조교라고 단순히 연구만 하라는 법은 없다. 영수증을 정리하며 연구비를 관리하고, 홍보 포스터를 디자인해서 붙이러 다니며 연구과제 관련 공청회와 토론회를 준비하고, 이따금씩 걸려오는 교육부 전화에 응대하며 자료를 주고받아야 했다. 그러니 나는 연구과제의 사무/행정조교이기도 했다.

앞서 김민섭 작가가 말했듯, 조교는 교수나 교육 연구 업무를 보조한다는 사전이나 법에 적힌 정의는 이제 옛말이 되었다. 오늘날 이들은 수업/강의조교, 실험/실습조교, 교육/교수조교, 연구조교, 사무/행정조교, 학과조교, 연구소조교, 산학협력조교, 기숙사조교, 상담조교 대학에서 있을 있는 모든 형태의 노동을 담당한다. 이름에 해당하는 업무 범위를 넘어 대학 존재하는 다양한 노동 공백을 메워온 역시 조교였다. 조교는 이제 명실상부한 대학의 메인테이너(maintainer) 자리잡아 대학이 지속하여 작동할 있도록 기능하고 있다.

대학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주된 인력인 만큼, 대학원생 과반수는 본인을 학생근로자 인식하기 시작했다. 학생근로자라는 단어는 나를 포함한 대학원생 조교들이 경험하는 모순을 단어로 표현한다. 우리는 대학에 남아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노동을 해야만 하고, 나아가 훌륭한 학생이자 인정받는 연구자가 되기 위해 경제적 보상과 무관하게 일을 주어진 이상으로 열심히 해야만 한다. 그렇게 대학원생 조교는 평균 일주일에 20시간에서 30시간을 조교 업무에 쏟고 있으며[1], 말그대로 학생이기 위해 근로하는 학생근로자가 되었다.

대학은 대학원생 조교의 메인테이너 역할과 그들이 학생근로자로서 처한 모순적인 상황을 누구보다 이해하고 있고, 동시에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대학은 조교 제도를 장학 제도와 뒤섞어 대학원생 조교에게 장학금 명목으로 등록금을 감면해주고 이상의 보상은 거의 주지 않는다. 심지어 조교 근무를 졸업요건으로 정해 의무화한 대학이나 학과까지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학칙이나 규정 등으로 조교 임용과 근무 조건에 대한 기본적인 사항을 정하고 있지만 대학 본부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뒤집을 있다. 성균관대 조교 대량 해고 사태에서 이미 목격한 바다. 조교 제도는 대학의 재정 효율화 전략이 되었고, 대학원생 조교는 대학 운영을 위한 가용자원이 되었다.

또한 장학 목적이 일순위여야 조교 제도는 오히려 대학이 교수에게 제공하는 혜택이 되었다. 대학은 선심 쓰듯 학과 교수별로 조교 인원을 배정해주고, 학과와 교수는 또다시 선심 쓰듯 듣는 학생 몇명을 골라 장학금을 쥐여주며 다양한 일을 시킨다. 돈이 학과 자체 계정이나 교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것도 아닌데 학과와 교수 권한을 강화하는데 쓰이고 있는 것이다. 대학원생이 학과나 교수에 종속될수록 전반적인 대학원생 권리 침해는 심각해지고 보호나 강화는 힘들어지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조교 제도 역시 여기에 기여하고 있다.   

대학원생 조교 처우 개선에 대한 목소리는 예전부터 간간이 들렸지만, 대학원생 조교 사용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혐의로 대학 총장이 검찰에 송치되고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이 결성되는 조교 제도에 대한 여러 기념비적인 사건은 최근 부쩍 늘었다. 구멍이 곳마다 천을 덧대고 기워 만든 누더기 옷과 다를 없는 지금 대학 구조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신호다. 교수신문에 주로 대학원생들의 입을 빌려 연재되고 있는 <대학원생들의 一聲>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일부 대학원생이 푸념하는 목소리가 아니다. 대학을 유지하고 지속시켜온 메인테이너들이 대학에 보내는 경고다. 조교로 기운 누더기 대학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새 옷을 구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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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육부가 2017 대학원생 조교 현황을 조사하기 위해 대학을 통해 수집한 규정상 근무시간 통계이기 때문에 실제로 대학원생들이 업무 수행에 들이는 시간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