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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연구자/1W1B

양승훈. (2019).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올해 설 명절 기간에 맞추어 사읽었으니 책을 덮은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대학원에 남아있었다면 명절에 광주와 곡성으로 내려가는 것을 정말 싫어했겠지만, 회사를 다니다보니 그래도 '일 안하는' 시간이 생긴다는 생각에 최근 지인들이 연달아 내놓은 책을 구매해 전자책에 저장해두고 읽었다. 과정남이 쓴 <과학기술의 일상사>, 김우재 교수가 쓴 <플라이룸>, 그리고 양승훈 교수의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를 샀는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에 먼저 손(가락)이 갔다.

물론 어디서 떠들 정도는 아니지만 다른 글에 썼듯 나 역시도 조선업과 거제를 연구한 적 있다. (https://stpforerbody.tistory.com/27) 석박사모험연구사업(이하 모험연구)이라고, 신문기사 몇 개를 보고서는 뭔가 느낌이 왔던 나와 한 때 운동하고 다닌 경험을 바탕으로 산업과 노동 정책에 관심있던 형 둘이서 생각이 맞아 다른 두 명을 더 불러모아 제안서를 작성했는데, 덜컥 몇 백만원 지원을 받고서 막무가내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가며 연구를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제안서를 쓰는 시점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이건 연구감이다'라고 생각한 계기가 바로 양승훈 교수의 글이었다. 대표적으로 경향신문 기고문이 있고, 이외로도 그의 블로그 글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 찾으려니깐 못 찾겠다. 여하튼 과학기술정책을 공부하면서도 산업정책에는 도저히 흥미를 붙이기가 힘들었는데,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책이 나오기 전부터 그가 조선업과 거제를 바라볼 때 중요하게 여긴 '가족'과 같은 미시적 요소들을 바라보면 재밌게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 때 한창 이정동 교수의 <축적의 시간>도 열심히 읽고 있었고, 학위논문 연구를 통해 지역 산학협력에 대한 논문이나 책도 살펴보고 있었다. 조선업이라는 한 산업과 함께 몰락하고 있다는 거제라는 도시에 내려가야만 했다. 그 곳에서 '조선업 위기'를 견뎌내고 있는 노동자들과 그 가족, 더 나아가 학생들을 만나야 했다.

우리는 '모험연구'라는 단어에 걸맞는 활동들을 했다. 전/현업 노동자들과의 인터뷰는 거진 술과 함께 진행되었고, 꼭 조선소 노동자들이 아니더라도 다들 산업에 대한 자부심만큼은 대단해서 인터뷰를 거절당하는 일은 없었다. 발주사 감독관이 주로 머문다는 아파트부터 창원의 어느 고시원까지 다양한 곳에서 머물면서 부단히 움직였다. 그렇게 수집한 자료에 비해 마무리로 작성한 보고서가 깔끔하지 못했던 것 같지만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사실 책을 읽고 나서는 보고서를 아무리 잘 썼어도 이 책의 아류밖에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결과물에 대한 아쉬움도 별로 남지 않는다.

잡설이 길었는데 본격적으로 책 내용을 살펴보자.

책은 프롤로그에서부터 '중공업 가족'이라는 중소단위의 조직을 중심으로 층위를 자유롭게 다루면서도, 흔히 조선업 산업을 다룰 때 주로 언급하는 '세계 물동량', '빅 사이클'과 같이 산업을 아우르는 큰 개념이나 3대 조선업체의 수주량이나 해양플랜트 산업 진입 전략과 같은 회사를 최소 단위로 하는 것들에는 깊이 천착하지 않는다. 대신, (아마도 저자가 대우조선해양에 다니며 직접 경험했을) 개인이 당장 마주하는 회사 안팎의 조직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필요할 때마다  TV 프로그램에서 볼 법한 가상의 재연코너가 등장하니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나 역시 연구를 하면서 꿈꿔왔던 기존 '조선업 위기' 담론의 전복이 일어난다. 기존 담론은 마치 예정된 것처럼, 너무도 거시적인 추세라 어쩔 수 없이 찾아온 불황과 그에 따른 구조조정을 이야기한다. 이른바 '말뫼의 눈물' 담론은 그 안의 노동자들과 그 가족, 거제라는 도시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저 어쩔줄 몰라하는 사람들과 침체된 분위기만 사진이나 영상으로 담을 뿐이다. 

반면 책은 거꾸로 노동자들과 그들의 가족, 그들이 사는 거제가 어떻게 모이고 만들어졌는지를 보이고 조선업 위기를 그 사이에 생겨나는 균열로 읽어낸다. 바로 중공업 가족 프로젝트의 실패다. 이것이 기존 담론을 전복한다고 해서 그와 정면으로 충돌하거나 양립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중공업 가족 프로젝트를 살펴봄으로서 우리는 기껏 자세히 들여다봐야 개별 회사의 전략과 중국 및 동남아에 비해 비싼 노동력을 고려 대상으로 삼았던 산업 정책에 조직문화, 도시, 작업장/랩실 엔지니어로서의 노동자라는 층위를 더할 수 있다. 

책의 앞부분이 조선소 울타리를 넘나들며 '중공업 가족 프로젝트'가 어떻게 착실히 진행되었고 또 어떻게 실패에 직면해있는지를 보였다면, 뒷부분은 '작업장 엔지니어'와 '랩실 엔지니어'가 공존하는 조선소 안으로 다시 들어간다. 저자는 명시하지 않았지만 조선업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해양플랜트 사업 진출 실패(라고까지 하기는 어려울 수 있겠으나...)가 이른바 '엔지니어-노동자 구성 포트폴리오' 고민 부족에 기인한다고 보는 듯 하다. 현장에 강한 '작업장 엔지니어'와 이론에 강한 '랩실 엔지니어'를 어떻게 배치하고 조화시킬 것인가? 각각 숙련도와 임금에 있어 뚜렷한 장단점을 지닌 직영과 하청 노동자를 어떤 비율로 조합할 것인가? 기업들이 "궁극적으로 엔지니어들이 익숙하게 느끼는 작업 방식 자체를 질문하고 문제 삼는 작업"으로 가득찬 해양플랜트 사업에 진출한 이상 대답해야만 하는 질문들이다. 

조선업 회사는 그 고민을 거의 하지 않은 듯 하지만, 저자는 그나마 책 <축적의 시간>이 같은 질문을 다루었다고 본다. 하지만 그 책에서 내놓은 '산학연계 강화'라는 해법은 공허한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랩실 엔지니어들의 지식이 '현장'의 노하우를 대체할 정도로 압도적이지 않았다"면서, "배우는 곳은 학교이고, 일하는 곳은 일터라는 틀에 박힌 이분법을 묵인"하는 교수 관점의 산학협력이 가진 한계를 꼬집은 것이다. 

저자가 내놓는 대답은 '산학연계'에서 한발짝 더 나아간 '산학일체'다. "일하는 엔지니어들이 끊임없는 학습을 통해 자신의 공학 능력을 발전시켜야" 한다며 "중공업 엔지니어들이 살아 있는 지식을 교류하기 위한 장은 여전히 척박"한 부산, 마창진(마산, 창원, 진해), 거제가 단순한 산업도시가 아닌 제조업의 실리콘밸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리콘밸리라는 단어에서 약간의 배신감(?)과 함께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지만, 저자가 생각하는 실리콘밸리의 모습이 무엇인지 좀 더 살펴보자. 아마도 "('현장 중심' 기풍 하에서 '쟁이 근성'에 기초하는 작업장 엔지니어와 달리) 지금의 우수한 랩실 엔지니어들은 오픈소스판에서 뛰노는 해커처럼 끊임없이 새로운 무언가를 배워 일을 해내려고" 하는데, 지금은 "조선소 현장을 제외하고 제조업의 가장 첨단 기술을 경험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곳"은 판교, 서울대나 카이스트 정도이고 이 둘 사이 거리는 너무 멀기 때문에 '산학일체'의 환경 조성이 힘들다는 것이다. 이 둘을 같은 공간에 둔다면 실리콘밸리에 걸맞는 곳이 되지 않겠나하고 묻는 듯 하다.

문제는 여기서 저자가 '작업장 엔지니어'의 대척점에 자리하던 '랩실 엔지니어'의 위치를 바꾸었다는 점이다. 독자는 암묵지와 형식지, 현장과 대학, 실전과 이론 등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대립항으로서의 '랩실 엔지니어' 개념을 받아들이고 있었고, 저자 역시 그에 기대어 두 단어를 사용해왔는데, 알고보니 그가 그리는 (우수한) '랩실 엔지니어'는 코딩하는 computer science geeks에 가까운, 흔히 실리콘밸리형 인재라 불리는 '문제해결형 엔지니어'였던 것이다. 이렇게 '랩실 엔지니어'를 새롭게 바라보면 당연하게도 두 엔지니어 개념이 가지고 있던 갈등은 쉽게 해소된다. 둘을 같은 공간에 두고 서로 자주 만나도록 '밋업' 등의 행사를 개최하면 실리콘밸리와 같이 저절로 혁신이 일어날 것처럼 보인다.

물론 저자는 앞서 내가 비판적으로 요약한 것보다는 더 상세한 '산학일체' 방안을 설명했고, (석사 수준 밖에 아니지만) 산학협력 정책을 연구해 본 나 역시 큰 방향에 있어 그의 주장에 동의하는 바다. 문제는 효과적인 산학협력이라는 뿌리깊은 난제를 '랩실 엔지니어'라는 개념의 위치를 살짝 바꿈으로서 쉬워보이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는 저자가 '엔지니어는 어떻게 성장하는가?'라는 질문을 두고  '오픈소스'와 '해커 문화'를 다소 장황하게, 하지만 끝맺음이 불분명하게 다룬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에 따르면 "오픈소스가 '현장'이라는 필드를 딱히 필요로 하지 않는 분야"인 IT 계열과 자동화된 산업에서는 유효했을지 모르지만 조선업, 특히 해양플랜트 산업에서는 결국 프로젝트를 통한 현장 경험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 역시 오픈소스나 해커 문화는 잘 모르지만) 오픈소스 역시 현장을 만나야 실제 서비스와 사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책에서 예시로 든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는 왜 논란만 가득한채 실제 서비스와 사업으로 이어지지 않는가? 오픈소스와 해커 문화에 대한 입장을 확실히 하지 않은 채 '랩실 엔지니어'를 그 속의 해커들로 바라보고 더 나아가 '산학일체' 해법에도 그 둘을 상당 부분 불러왔기에 책의 주장은 설득력을 일부 잃고 만다.

이후 책은 조선업을 둘러싼 낙관론에 대해 비판적으로 응답하며 산업을 바라보더라도 눈길을 단순히 시장을 비롯한 외부 환경에만 둘 것이 아니라 국내에서 조선업을 구성하는 지역과 조직에도 두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더 나아가 산업과 너무도 강하게 결합된 지역과 조직 체계에서 발생하는 문제 역시 다룬다. 조선업을 바라보는 기존 관점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물론 '조선업 위기'를 다룬 각종 르포를 접한 사람이라면 그 내용은 익숙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책만큼 차별화된 관점으로 깊이 들어간 경우는 드물다. 여전히 저자가 곳곳에 연구가 더 필요한 지점들을 남겨놓았기에,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그 지점을 파고들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