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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연구자/1W1B

장류진. (2019). 일의 기쁨과 슬픔.

오랜만에 소설을 읽고 오랜만에 독후감을 쓴다.

직장생활을 한 지도 2년째다. 대학원에서도 끊임없이 일했지만 졸업 후 회사에 출근하고서야 취업자가 되었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학문'을 세 번 읽고도 아리송해 했던 나는 일과 업 사이 간극에 스트레스 받다 못해 둘을 완벽히 나누기에 이르렀다.

처음엔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창작과비평 웹사이트에 올라온 <일의 기쁨과 슬픔>을 낄낄 웃으며 읽었을 때도 별 생각 없었다. 계획대로라면 유학 준비를 마쳤어야 하는 지금, 유학 준비는 시작도 못한 채 홀린 듯 단편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을 꺼내들었다. 하고픈 일을 업으로 삼기는 어렵지만 업이 내 일을 지배하는 건 너무도 쉽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며.

소설집 속 작품들은 단편 치고도 꽤 짧은 <백한번째 이력서와 첫번째 출근길>을 제외하고는 길이가 모두 한 호흡에 읽기 좋았다. 다른 연구서를 읽다가 집중이 안 될 때나 자기 전에 한 편씩 읽다보니 아쉬울 정도로 일찍 다 읽어버렸다. 창비 홈페이지에서 표제작만 읽었을 때는 '판교 하이퍼리얼리즘' 장르를 창시했다는 평에 동의하는 정도였다면, 다른 작품과 함께 한 권의 책으로 읽고 나니 일터의 디테일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 안에 또 다른 나 내지는 내 주변 사람을 등장시켜 따뜻하게 위로해주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단편 하나하나 안에서 나를 발견한만큼 책 전반에 대한 감상을 남기기보다 작품 각각에 대해 감상을 짤막하게나마 남기고자 한다. 우리가 사회생활이라고 부르는 것에 단계가 있다면 첫번째로 올 '첫 출근'을 다룬 <백한번째 이력서와 첫번째 출근길>부터 결혼과 내 집 마련 이후 이야기 <도움의 손길>까지 하나의 글로 풀어도 어색하지 않을 6편을 먼저 다룰 것이다. 한강의 <<채식주의자>>에서도 느꼈던 여성작가만이 가질 수 있는 발칙함이 돋보인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와 <새벽의 방문자들> 감상은 잠깐 미뤘다가 조만간 추가하도록 하겠다.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은 연봉을 듣고서도 감히 협상하지 못하는 사회초년생은 출근 전부터 어떻게 돈을 아낄지, 그래서 언제까지 얼마나 모을지를 계획한다. 마이크 타이슨이 '얼굴에 한방 쳐맞기 전까진 누구나 계획이 있다'고 한 것처럼, <백한번째 이력서와 첫번째 출근길>의 주인공은 하루 11000원만 쓰기로 계획했지만 출근길에 쳐맞듯이 12500원을 쓰고만다. 아무도 겨드랑이가 축축해질 정도로 더운 날엔 커피에 '아이스'만추가해도 2500원이 더 비쌀 줄은, 첫 출근인만큼 눈치가 보여 정시도착할 버스대신 택시를 타야할 줄은, 그럼에도 설레는 마음에 계획이 어긋난 것도 잊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괜찮다. 다들 그렇게 배우기 시작하니깐.

한편 사회초년생이라고 부르기 애매한 <다소 낮음>의 주인공도 있다. 그는 장난스럽게 올린 '냉장고송' 영상 하나로 대박나서 스타가 될 뻔 했지만 그 영상 속 냉장고의 에너지 소비 효율 등급처럼 다시 다소 낮아져서 영상 이전과 다를 바 없어진 밴드 보컬이다. 28장 팔린 밴드 음반이 무색할만큼 유튜브 영상은 조회수가 곧 30만...50만...100만을 찍었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이 아니라는 이유로 기획사 제안을 거절한다. 급하게 돈이 필요한 그가 새로 업로드한 '세탁기송' 영상 조회수는 100을 넘기지 못한다. 기회를 놓친 주인공에게 여자친구가 떠나며 뱉었던 말처럼 그의 삶이 너무도 비효율적인 것도 같다. 하지만 원래 누구에게나 잡은 기회보다 놓친 기회가 많아보이지 않던가. 우리 모두가 어쩔 수 없이 다소 낮은 효율인 것처럼 보이는 건 아닐지, 또 그게 우리의 편한 제자리가 아닐까 싶다.

<탐페레 공항>의 주인공은 아티스트의 고집을 지켰던 <다소 낮음>의 주인공과 달리 피디의 꿈을 접고 회사 회계팀에 취직했다. 포기는 참으로 멋없지만 그만큼 홀가분하다. 포기하고서야 다른 길이 눈에 들어오고 또 열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 후회라는 흔적을 남기기에 실수로라도 들춰보지 못하도록 그 기억들을 꽁꽁 숨겨놓곤 한다. 한창 다큐멘터리 피디를 꿈꾸던 주인공은 어쩌다 탐페레 공항에서 만난 핀란드 할아버지 앞에서 본인의 꿈을 향한 사랑을 고백한 적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온 사진과 편지에 오랜 기간 답장하지 못한 이유도 거기에 있을테다. 마음 한켠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지는 않았을까 걱정하면서 말이다. 다행히 살아있다는 핀란드 할아버지에게 주인공이 6년만에 쓰는 답장에 뭐라고 적을지도 궁금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그가 애써 잊고 있던 기억과 꿈을 다시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합시다, 스크럼"이라는 첫 대사 문장 하나만으로도 판교의 수많은 독자들을 휘어잡은 <일의 기쁨과 슬픔>에는 사실 뚜렷한 기쁨과 슬픔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내가 기쁨과 슬픔의 기준을 너무 높게 잡는 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가 아니라도 우리가 보통 일에서 기쁨이나 슬픔을 느끼는 지 의문이 든다. 내가 그 정도로 일에 빠져있지 않아서 그런 걸까? 어쨌든, 소설에 나오는 가장 큰 기쁨이라곤 주인공과 동료 개발자가 대화하던 중에 울린 월급 입금 알림이나, 그 월급으로 '사시는 동안 적게 일하시고 많이 버세요'라는 메세지가 오고 가는 채팅방 사람들과 함께 클래식 공연 예매와 항공권 구매하는 장면뿐이다. 슬픔 역시 찾자면 그나마 우동마켓의 큰 손 거북이알이 대표에게 밉보여서 월급을 카드 포인트로만 받게 된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현실적인 이야기 정도가 있겠다. 물론 나도 월급쟁이인만큼 그 기쁨이나 슬픔을 깎아내리려는 건 아니다. 다만 이 소소하면서도 찜찜한 감정선의 상승과 하강이 정말 우리 노동자들의 일상을 잘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일로 인한 감정 기복이 그 이상이 되면 오히려 안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직장생활을 하며 겪는 당혹스러운 일이나 스트레스는 보통 업무보다 사람으로부터 오기 마련이다. 꼭 히어로 영화에 나오는 빌런 급의 사람이 아니더라도 정말 사소한 것에서부터 신경을 건드는 평범한 타인이 많다. 아니, 사실 순진한 그 사람들이 아닌 내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왜 이렇게 그들을 신경써야 하는지 억울할 정도로 인간관계에는 품이 참 많이 들어간다. <잘 살겠습니다>의 주인공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결혼을 앞둔 동료 직원의 뻔뻔함 혹은 순수함에 혼자 답답해하다가, 고민하다가, 분노하다가, 결국 두 손을 들고 만다. 복수랍시고 결혼 선물을 저렴한 핸드크림으로 준비했는데 선물을 받아든 동료 직원이 고마움에 눈물을 흘리고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까지 올린 것이다. 그렇게 업무가 아니라 사람 때문에 한바탕 롤러코스터를 탔던 주인공은 결국 그 동료 직원을 응원하게 된다. '빛나 언니는 잘 살 수 있을까. 부디 잘 살 수 있으면 좋겠는데.'

결혼 후 그 어렵다는 내 집 마련에 성공한 <도움의 손길> 주인공은 아마도 생전 처음으로 마음 속 왠지 모를 불편함을 무릅쓰고 집안일을 도와줄 사람을 '쓰기로' 한다. 남편에게 '아줌마'가 아닌 '도우미 아주머니'라고 부르라고 한소리 하고, 아주머니가 일한 돈이 아들에게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속상해 하는 등 주인공은 자매애를 갖고 아주머니를 대한다. 하지만 고용인-피고용인 관계, 세대 차이, 종교관처럼 절대 사소하지 않은 다른 요소들 때문에 둘 사이에는 균열이 일어나고 만다. <기생충>이 대저택에 사는 부자 가족과 냄새 나는 반지하에서 생활하는 가난한 가족을 대비시켜서 그 사이의 갈등을 증폭시켜 보여줬다면, 이 작품은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두 등장인물을 병치하고서 그 사이의 미세한 갈등을 딱 신경쓰일 정도로만 바늘로 찌르듯 묘사한다. 사회생활을 하며 우리가 느끼는 인간관계에서의 스트레스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돈을 한푼이라도 아끼려는 사회 초년생 이야기부터 분명 돈 받고 일하는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도우미'라 불리는 아주머니와 긴장 속 고용관계를 이어간 사회인까지. 책의 작품들은 모두 이렇다 할 분명한 기승전결은 없지만 하나 같이 깔끔하게 마무리되면서도 여운이 있다. 아마도 그 여운은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상 정답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따라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끼는 인생의 단계들을 많이 거친 사람일수록 더 크게 다가올 것이다. 작품들 모두 딱 충격적이지 않을 정도의 소소한 반전을 갖고 있기에, 그래서 이 독후감을 통해서 책을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책 읽는 재미가 반감될 수 있고 또 다시 읽을 가치를 크게 못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종종 다시 꺼내읽고 싶은 책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