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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2019

최근 읽은 Aeon 글(https://aeon.co/ideas/to-boost-your-self-esteem-write-about-chapters-of-your-life)에 따르면 1950년대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아래와 같이 말했다고 한다.

"To be adult means among other things to see one’s own life in continuous perspective, both in retrospect and in prospect … to selectively reconstruct his past in such a way that, step for step, it seems to have planned him, or better, he seems to have planned it."

여태까지의 삶을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하나의 연속되는 내러티브로 기술하는 일, 그리고 마미손 마냥, 혹은 기생충의 기우처럼 '계획대로 되고 있다'고 생각하며 재구성하는 일은 보통 자기소개서를 쓸 떄 일어난다. 하지만 사실 우리 삶은 계획하지 않은 일 투성이고, 계획했다 하더라도 사실 그 계획이 기억나지 않을 때도 많다. 기록을 생활화했다면 그런 일이 줄기는 했겠지만, 사실 기록했다 하더라도 그건 과거의 나일 뿐 지금의 내가 아니다.

노트북을 새로 사면서 원래 쓰던 노트북을 정리하고 새로운 노트북으로 옮길 파일들을 훑어보던 중 재작년에 대학원 선후배가 부탁해서 촬영한 영상을 보았다. 이제는 없어졌지만 대학원에서 이런저런 정보를 공유하고 친목을 다지는 시간인 '생생정보톡'에서 튼 셀프 인터뷰였다.

사실 이미 대학원을 나오기 전에 생생정보톡에서 발표를 한 적이 있다.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데, 당시 나는 한참 대학원에 남을 것인지 떠날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고, 결국 왜 나가기로 했는지를 나 자신과 남들에게 합리화하기 위한 발표였다. 대학원 선배는 그 발표를 '폭탄'이라고 표현하면서 폭탄을 던지고 나간 나를 5개월 만에 소환해서 '그래서 대학원을 떠난 후 삶은 어떤지'를 물었던 것이다.

영상을 찍을 땐 나름 열심히 주경야독을 하던 시절이었는데 그만큼 연구에 대한 열정이 남아있어 후회도 적지 않았던 때였다. 블로그에도 썼던 것 같지만 대학원과 대학원에 남은 사람들이 내가 나간 이후 승승장구하는 것 같아 괜히 질투하던 때기도 했다. 회사에서 하는 일은 여러모로 만족스럽지 않았고, 월급마저 적었다. 그 때는 또 그 때 나름대로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살았는데, 다시 돌아보면 또 그 때만큼 열심히 산 적도 없다. 아침에 운동하고 회사 다녀오는 대로 바로 스터디카페 가서 공부하다 새벽에 들어오기를 반복했다. 그 루틴을 잃은지도 1년이 다 되어간다.

영상에서 나는 후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게 꼭 결정을 물리고 싶다는 뜻은 아니었다. 학교에 남아 박사과정을 밟았다면 졸업과 함께 병역복무도 해결될 일이었지만, 4급을 받겠다고 대구까지 내려가고, 어학병, 의경, 의무소방까지 알아볼 정도로 대학원을 나오겠다는 결심에 가득 찬 때가 있었다. 그 때는 그 떄 나름대로의 고민이 있었고, 무얼 선택해도 후회할 거리는 있었을 테다.

나는 사람들이 내게 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항상 곱씹는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사는지, 결정을 후회하는지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했다. 그래서 끝내 불안하더라도 같이 불안한 게 낫다는 말과 함께 대학원에 있는 사람들끼리 많이 이야기 나누고, 위로하고, 보듬어주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사실 대학원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자세가 아닌가 싶다.

그 영상을 찍고 얼마 안 가 나는 내가 '무너지고 있다'고 느꼈다. 겨울이 찾아왔고, 일이 힘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퇴근 후 무기력증을 못 이기고 하루에 10시간 넘게 자기를 반복했다. 그런 날이 반복될수록 자책도 심해졌다. '내가 왜 이러지.' 내 자신에게 채찍질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수록 더 무기력해지기만 했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반면 회사에선 좋은 소식이 여럿 들려왔다. 코스닥 상장에 사옥 판교 이전. 기술전략팀이라고 쓰고 연구개발과제 관리라고 읽던 직무 변경 시점도 가시권에 들어왔다.

도저히 내 안에서 변화를 만들기가 힘들어서 환경을 바뀌도록 변곡점을 만들려 했다. 훈련소를 어떻게든 3월에 가려고 했던 이유다. 더불어 연봉 인상도 꿈꿨다. 블로그에 썼던 글(<돈>)이 그 때 당시 내 심정을 가장 잘 대변하는 듯 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입사 때는 너무 서둘렀고, 연봉 재협상(이라고 쓰고 통보라고 읽지만) 때엔 과감하지 못했다. 재직기간이 1년 6개월이 안 된 전문연구요원이었기 때문에 대안이 없었던 게 사실이지만, 내가 내게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직 전에 회사와 다시 이야기를 나눠봤을 때 다시금 깨달았다. 결국 더 처참하게 무너진 채로 훈련소에 갔다. 다른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훈련소를 가고 싶었다.

훈련소에선 바랐던 대로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가지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무기력한 삶을 끝낼 용기를 얻었다. 하지만 그건 한순간 끝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단순한 자각과 반성만으로는 부족했다. 행동과 회고, 환경과 상호작용이 맞물려야 가능한 변화인데, 뛰어야 하는 길과 내 몸이 그대로인 상태에서 운동화 끈만 고쳐매고 다시 뛰려고 했다. 결국 예상치 못한 변화 하나에 또다시 무너졌다. 되돌아보면 내가 훈련소에서 보냈던 시간들은 분명히 의미있었지만 사실 나는 진정으로 나 자신을 들여다보기보다 여태 그래왔듯 그저 '계획'을 세우기 바빴다.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과 함께 내가 받아왔던, 또 받고 있는 사랑을 느꼈지만 반대로 내가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에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마음보기' 필요성을 느끼기만 하고 제대로 실천하지는 못했으면서, 이제 충분히 돌아봤으니 앞으로 나아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작은 깨달음이더라도 소화하기 위해선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그 시간과 노력 없이 다시 계획에만 집중했고, 무엇이 문제인지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서 해결된 양 기분만 들떠 있었다.

그렇게 생각의 방향을 내 앞이나 뒤가 아닌 나 자신에게 두기까지 반년 넘게 걸렸던 셈이다. 시선이 밖이 아닌 안을 향하자 그동안 의미있게 생각하지 않았던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주목하게 되었다. 사실 전까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별로 신경쓰지 않았던 이유는 '사람은 변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촉각을 곤두 세우고 알려고 하기보다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을 생각하고 그렇게 되기 위한 노력에만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이제서야 '사람은 변한다'라는 믿음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필요성이 상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상적인 모습으로 변화를 꾀하되 지금 나 자신을 파악하고 점검해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어렴풋이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던 내 문제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것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첫째로, 나는 너무나 감사하게도 사랑받아왔지만 사랑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내가 받아온 사랑 중에서 나는 인정에만 매달렸고, 그 외로는 사랑이라고 자각하지 못했다. 사람마다 사랑의 언어가 다를진대 그 사실을 모른 채 감사할 일에 감사하지 못했다. 인정 역시 중요한 사랑의 언어지만 그것에만 집착하다보니 인정이 가져오는 여러 부작용들에 신경쓰느라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인정욕구는 끝이 없었고, 내 언행에 따라 쌓이거나 깎이는 점수처럼 느껴져서 그 점수의 높낮이를 가늠하고 눈치보느라 불안해했다.

사랑받는 문제는 그 영향이 어쨌든 나 자신에게만 국한되지만, 사랑하지 못하는 문제는 나 아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혹은 내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이 모두 엮여있기 때문에 더욱 심각했다. 사실 여전히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말은 아끼고 더 많이 고민해야겠으나, 관계에서 오는 인정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관계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사랑을 하지 못한다는 모순 속에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이 모순에서 벗어나기 위해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독서를 시작으로 사랑을 공부하고 있다. 게리 채프먼의 <다섯가지 사랑의 언어>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종교, 특히 기독교로 관심의 범위가 넓어지기도 했다. 물론 이 공부에 끝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실천을 더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자기중심성이 강하고 이기적인 나지만, 사실은 그토록 중요한 나 자신 역시 결국 항상 관계 속에 있음을 잊지 않아야겠다.

둘째로, 나는 너무도 쉽게 불안에 지배당했고, 그럴 때면 집착하듯 불안이 없는 과거를 파고들었다. 이 역시 해결하기는 커녕 여전히 이로 인한 강박증적 현상이 나타날 때마다 다시금 자각할 뿐이다. 사실 내 과거는 후회로 가득차서 과거에 집착한다는 게 나 자신도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한없이 부끄럽고 미안하기만한 과거를 왜 자꾸 소환할까. 물론 나도 내 자신이 싫어지는 안 좋은 과거만 불러내는 건 아니지만, 행복했던 과거 역시 그 때는 항상 심각했고 심지어는 불행하기도 했기 때문에 - 그리고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 흔히 이야기하는 과거 영광에만 매달리며 환상 속에 사는 건 아니다.

내 나름의 분석을 하자면, 이건 아마도 과거는 이미 일어났기 때문에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에 되려 안정을 느끼는 것 아닐까 싶다. 나는 매우 중요한 결정을 앞뒀을 때 종종 그냥 내 의사와 상관 없이 정해졌으면 하곤 했다. 흔히 말하는 '선택-결정 장애'와도 비슷하다. 흥미로운 건 막상 선택 후에 드는 후회에는 크게 민감하지 않으면서 미래에 있는 불안에는 크게 민감하다는 점이다. 이상하리만치 지나간 일에는 어렵지 않게 그러려니 할 수 있으면서 - 물론 이렇게 쓰는 동시에 도저히 그러려니 하지 못하는 일들이 떠올랐지만 - 앞둔 일들에는 'let it be'라고 말하기 어렵다.

앞서 언급했던 인정이 불안 요소 중 하나고, 돈과 건강 역시 빠뜨릴 수 없다. 가끔은 무엇이 불안한지도 모르는 채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떄가 있다. 하지만 과거에 파묻혀서는 불안을 해소할 수 없다. 어차피 지나갈 일이고, 후회하게 되더라도 하나 배웠다고 여기며 앞으로 나아갈 거라면 내가 무엇에 불안한지 알아채고 할 수 있는 한 대비하면 될 일이다. 또한 그 불안 요소들이 해결된다고 정말 내가 행복해지는가 역시 생각해봐야 한다. 결국 내가 집중해야 할 곳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여기 바로 지금이다. 불안에 연연해 하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지금에 충실할 때 불안에 지배당하지 않고 불안을 지배할 수 있다.

이 두가지 외로도 사소하게나마 나에 대해 느끼고 배우고 깨달은 점이 적지 않다. 전문연구요원 기간 3년의 반환점을 도는 시점인 지금의 나를 대학원을 나오면서 세운 계획과 비교하면 너무도 형편없고 오히려 퇴보한 듯 보이기도 한다. 무계획이 가장 완벽한 계획이라는 기생충에서의 기택의 대사를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지만, 계획을 지키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며 계획대로 하지 않거나 못하는 것 역시 잘못된 것만은 아닐테다.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일이 여럿 있었던 2019년이고, 분명 계획 대비로는 이루지 못한 것 투성이인 2019년이지만, 나는 이렇게 결국 나 자신에게 꼭 필요했던 1년으로 기억하고자 한다. 무너져있던 시간들 안에서 나 자신을 발견했다는 내러티브를 간직하고 감사히 여기도록 하겠다. 그럼 2020년은 별다른 계획없이도 자연스럽게 그저 나 자신만의 내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 나를 발견하고 다시 일어서기만 해도 성공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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