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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인턴(워싱턴 DC AAAS)

[한겨레 사이언스온 투고]원제: "밑 빠진 독"인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가"

‘러닝머신 달리는 새우’ ‘오리의 성기’ 연구는 왜 필요한가?

사이언스온 2015. 0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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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고     

‘부당한 비판에 맞서 과학연구비 지키기’: 

미국과학진흥협회(AAAS) 과학기술정책 포럼을 보며



00AAASForum.jpg» '러닝머신 장치 위에서 달리는 새우'의 실험 동영상이 널리 퍼지면서 연구비 낭비 논란에 휩싸여 비판의 대상이 됐던 과학자 데이비드 숄닉이 AAAS 정책포럼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하고 있다. 그는 '바다 환경 변화가 해양 생물의 감염 저항 능력에 끼치는 영향'을 연구하면서 왜 새우의 활동량을 측정하는 게 중요한지, 왜 러닝머신 장치가 필요했는지를 적극 설명하면서 정치인과 미디어의 부당한 연구예산 낭비 비판에 맞섰다. 출처/ AAAS
 


난 4월 30일과 5월 1일, 나는 미국 워싱턴 디시(DC)에서 열린 미국과학진흥협회(AAAS)가 주최하는 제40회 과학기술정책 연례포럼에 참석했다.  AAAS 회원이 아니면 나와 같은 대학생에게도 참가비를 325달러나 받는, 규모가 매우 큰 행사였는데 운좋게도 나는 AAAS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던 터라 무료로 이 포럼에 참석할 수 있었다.


포럼은 이틀에 걸쳐 과학기술정책에 관한 큰 담론을 거의 모두 다뤘고, 존 홀드렌(John Holdren)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장처럼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과학기술정책 전문가들도 많이 참가했다. 하지만 포럼의 백미는 바로 두 명의 생물학자가 발표자로 나섰던 “부당한 공격에 맞서 과학연구비 지키기”라는 흥미로운 제목이 붙은 둘쨋날의 마지막 세션이었다.[1] 이날 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많은 갈채를 받았다. 어찌된 영문일까.


사실 앞서 언급한 두 명의 생물학자는 미국 보수 언론들한테서 많은 ‘공격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경험을 지닌 분들이다. 그들이 진행한 연구 주제와 연구비의 출처가 문제가 되었다. 데이비드 숄닉(David Scholnick) 교수와  패트리셔 브레넌(Patricia Brennan) 교수는 미국립과학재단(NSF)에서 각각 300만 달러, 40만 달러의 연구비를 받아 각각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새우” 연구와 “오리의 성기 모양” 연구를 수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새우 실험 https://youtu.be/cMO8Pyi3UpY ]


 

 

 

 

 

[ 오리 성기 연구 https://youtu.be/qwjEeI2SmiU ]


 

이에 대해 한 주지사는 텔레비전 뉴스 프로그램에 나와 “나는 내 새우가 체육관이 아니라 그릴이나 오븐으로 가길 바란다”고 비판하기까지 했고, 한 동안 두 연구는 과학재단의 세금 낭비 사례로 회자되었다. 정치인들은 러닝머신을 뛰는 새우 영상과 오리 수컷 성기가 발기하는 영상을 보고 화난 납세자들을 등에 업은 채 퇴직자 의료보험 예산, 국방비 예산 등이 이런 “쓸데없는 연구”에 투자되는 비용 때문에 부족해졌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연구 의미와 맥락은 빼버린, 정치인과 미디어의 부당한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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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거센 비난 속에서 두 생물학자는 자신들의 연구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또 연구비가 어떻게 쓰였는지 직접 설명함으로써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실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새우”는 바다 환경 변화가 해양 생물의 감염 저항 능력에 끼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새우의 면역 능력을 그 활동량을 통해 측정하기 위한 실험 설계였다. 실제 해당 실험에 미국과학재단이 지급한 연구비는 300만 달러가 아니라 약 43만 달러였고, 심지어 새우가 달리는 ‘미니 러닝머신’에는 50 달러밖에 들지 않았으며, 이마저도 숄닉 교수가 자비로 지출한 것이었다.[2]


“오리의 성기 모양” 연구도 조류마다 다른 성기 모양이 어떤 원인에서 기인하는 것인지에 대한 진화생물학 연구의 연장선에 있던 것이었다. 조류의 97%를 차지하는 약 1만 종의 수컷이 사실상 돌출된 성기를 지니지 않은데, 오리나 타조는 잘 발달한 성기를 갖고 있다는 점이 진화생물학에서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 중 하나인 것을 고려하면 이 연구가 세금 낭비라거나 쓸데없는, 또는 의미없는 연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이 두 과학자의 대응은 여러 언론매체의 재조명을 받으면서 나름의 효과를 볼 수 있었다.[3]

00AAASForum2.jpg» 과학기술정책 포럼에서. 왼쪽에서 세번째와 네번째가 데이비드 숄닉 교수, 패트리셔 브레넌 교수. 출처/ AAAS/Carla Schaffer 

두 생물학자는 포럼 연설에서 모든 기초과학 연구가 자신들이 경험했던 것처럼 이런 미디어와 정치인들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서 과학자들이 이런 공격에 대응하지 않기보다는 적극 해명하거나 자신의 연구를 설명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다.  무대응 원칙은 오히려 대중이 기초과학 연구의 의미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잃게 한다는 것이다. 같은 세션에 패널로서 참석한 짐 쿠퍼 하원 의원도 두 과학자의 대응 방식에 동의하면서 과학이 불필요한 정치적 논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는 오히려 과학자들이 스스로 좋은 스토리텔러가 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감히 이 포럼의 주제를 요약하자면, 그것은 미국 과학기술계가 대부분의 미국인이 지닌 믿음, 즉 과학기술 연구는 “밑 빠진 독”이 아니라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믿음을 앞으로 어떻게 지켜나갈지에 관한 것이었다.


는 정치인과 대중이 과학기술계를 얼마나 신뢰하는지와 굉장히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과학기술계로서는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주제다. 게다가 최근 미국에서는 의회를 주도하는 공화당이 기후변화에 대한 의심(정확히는 인간 활동이 기후 변화에 영향을 끼쳤는지, 또 끼치고 있는지 그 여부에 대한 논란)을 표한 것을 필두로 연구개발(R&D) 예산과 여러 과학기술정책을 두고서 오바마 행정부 및 민주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기 때문에 포럼의 주제는 매우 적절했다.


첫째날 2016년 연구개발 예산 분석으로 시작한 포럼은 미국 과학기술계가 정치권에서 나오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냈다. 미국의 연구개발 예산은 2010년부터 꾸준히 하향세를 보이며 15%나 감소했고, 특히 바이오 및 환경 분야와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지구과학 분야, 재생에너지 분야 연구개발 예산은 의회에 의해 급격히 줄어들 위기에 처했다.


예산 분석에 이어서 연설을 시작한 존 홀드렌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장은 연구개발(R&D) 예산과 여러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의회의 비협조적인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런 위기의식을 가지고 출발한 포럼은 ‘과학기술정책의 과학화’나 ‘과학과 대중’을 주제로 한 세션들을 통해서 과학기술계가 어떻게 신뢰를 회복할 것인지에 대한 폭넓은 논의를 진행했고, 결국 앞에서 소개한 마지막 세션에 이른 것이었다.



‘밑 빠진 독’인가, ‘황금알 낳는 거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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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을 들으면서 나는 우리나라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 과학기술계도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와 비슷한 걱정과 고민을 하고 있다는 데에 위안을 삼으면서도, 그보다 과학기술 연구에 대한 사람들의 기본 인식이 우리와 너무 다르다는 점에서 부러움과 동시에 아쉬움이 들었다.


난 1월 미래창조과학부가 발표한 2015년 업무추진계획 중 연구개발(R&D)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바로 “사업화”였다. 과학이라는 단어조차 별로 보이지 않는다. 기술 개발이나 산업화, 실용화 등에 힘이 잔뜩 실려 있다. 그렇다. 우리나라 정부는 과학기술 연구에 대한 투자, 특히 기초과학 연구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인식이 그동안 과학기술계가 연구를 효율적으로 진행하지 못해 신뢰를 잃은 데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인식에 머무른다면 앞에서 소개한 두 생물학자의 훌륭한 연구가 우리나라에서도 나올 수 있을까?


과학자들에게 “그 연구, 돈 되나?”라고 물어볼 때 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연구가 ‘묻지마 연구’라면, 그래서 유능한 과학자들의 사업화 가능성이 없는 과학 연구에는 이제 지원하지 않겠다면, 그것이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는 셈이 아닌가. 과학기술 연구에 대한 기존 인식을 지키려는 미국, 그리고 이제 낡은 인식을 새롭게 바꿔야 하는 우리나라. 지키기와 바꾸기, 둘 중 어느 것이 더 어려운 일일지 너무도 명백하기에 우리나라 이공계 대학생인 내 어깨는 무거워져만 간다.


[주]


[1] http://www.aaas.org/topics/st-policy-forum 포럼 세션들에서 진행된 논의들에 대한 기사들이 이곳에 천천히 업로드 됩니다.

[2] 데이비드 숄닉 교수가 직접 쓴 자신의 연구 의미와 연구비 사용과 관련한 해명 기고문

http://chronicle.com/blogs/conversation/2014/11/13/how-a-47-shrimp-treadmill-became-a-3-million-political-plaything/ 

[3] 패트리셔 브레넌 교수가 직접 쓴 자신의 연구의 의미 설명 기고문

http://www.slate.com/articles/health_and_science/science/2013/04/duck_penis_controversy_nsf_is_right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