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랜만에 뉴스타파가 다시 '가짜학회' 보도를 내놓았다.
<현직 교수, 페이퍼컴퍼니 끼고 '다단계 학회사업'>이라는 제목이다.
시청과 일독을 권한다.

https://youtu.be/Bah1Ow8W8x8

한편, 7월 중순 뉴스타파가 첫 '가짜학회' 보도를 내놓은지 얼마 안된 8월 초.

비슷한 주제에 깊은 관심이 있던 한 대학원생은 뉴스타파 보도에 깊은 감명을 받고 전부터 의심스러웠던 학회를 다시 파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WASET이 학계와 무관한 사람이 가족비즈니스를 한 사례였다면, 우리나라에는 교수가 직접 비슷한 사업을 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상 내부에서 해킹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해당 사업에 참여하거나 사업을 '써먹은' 교수 규모를 고려했을 때 일개 대학원생이 터뜨리기엔 위험하겠다는 두려움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봤을 땐 그 대학원생이 무척이나 소심했던 것 같다. 지금도 신분은 밝히고 싶지 않다면서 제보했다는 사실은 알리고 싶어한다니 참으로 찌질한 친구인 듯 하다. 어쨌든 그는 직접 그 학회와 연루자를 파는 대신 뉴스타파에 아래와 같은 제보를 했다고 한다.

두 달이 지나도록 연락도 오지 않고 관련 보도가 되지 않아 실망해하던 그 대학원생은 오늘 영상을 보고 희열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꽤나 오래 비슷한 주제에 관심을 가져온 사람으로서 제보 내용 이상으로 한걸음 더 들어간 뉴스타파에 너무나도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고마운 것은 고마운 거고, 나는 이제 더이상 대학 교수와 출연연 연구원을 포함한 학계 구성원, 연구재단 직원, 교육부나 과기정통부 공무원 모두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이 문제를 덮고 넘어가려는 태도를 보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 손놓고 있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누차 말하지만 논의의 시작은 학회와 대학에서부터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가장 치열하게 이 문제를 고민해야 할 학회와 대학이 너무 조용하다. 이 침묵을 누가 깰 것인가? 학계가 정말 이 소심하고 찌질한 대학원생보다 못한 사람으로 들어찼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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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뉴스타파 기자님, 
xxxxxxxxxxxxxxxxxxxxxxx입니다.

저번 WASET 관련 보도 상영회 때 참석한 적이 있고, 신우열 연구원님께서 해당 행사 때 제 발언 인용을 위해서 연락을 나눈 바 있습니다.

이렇게 연락드리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한국형 WASET에 대한 제보를 하기 위함입니다.
관련 주제로 연구를 하면서 투고 요청을 받은 것도 있고 해서 주제를 파다보니 알게 되어 지난 일주일동안 나름 틈틈이 추적하긴 했는데,
제 힘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 혹시 뉴스타파에서 관심이 있다면 취재를 하는 것이 어떨까 하여 말씀드립니다.

개요부터 간단히 말씀드린다면,

우리나라를 기반으로 한 (정황상) predatory publisher가 성행하고 있습니다.
SERSC(Science & Engineering Research Support soCiety)와 Global Vision School Publication은 conference convenor이자 publisher이며, APAIS(Asia - Pacific Academic and Industrial Services)라는 별도 Convenor를 두고 있기도 합니다.

해당 convenor가 여는 conference는 두 학회 HSST(인문사회과학기술융합학회, the convergent research society among Humanities, Sociology, Science, and Technology)와 SoCoRI(아태인문사회융합기술교류학회, Asia-pacific Society of Convergent Research Interchange)를 중심으로 회원을 포섭하여 돌아가는 것으로 보이며, 두 학회가 함께 발간하는 국내 저널이 하나 있고(APJCRI, Asia-pacific Journal of Convergent Research Interchange, 아태융합연구교류논문지), HSST가 발간하는 국내저널이 하나 또 있습니다(예술인문사회융합멀티미디어논문지). 후자는 KCI 등재지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두 저널 모두 SERSC가 publisher 역할을 하고 있구요.
HSST, SoCoRI, APAIS, SERSC 한국 지부(?)는 대전에, SERSC 본부와 GV School Pub는 오스트레일리아 태즈매니아 지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주요 인물과 함께 설명하겠습니다.

SERSC는 이미 2013년 Science지에서 진행한 연구에 가까운 탐사보도(Who's afraid of peer review? http://science.sciencemag.org/content/342/6154/60)에서 가짜 논문을 해당 publisher가 발간하는 Open access journal 중 하나에 실으려 한 바 있습니다. 자료를 보면 국내에 SERSC 말고도 Editor가 한국으로 잡힌 경우와 함꼐 몇 개 더 있으나 지금은 확인되지 않고있고, SERSC는 건재합니다. 오히려 앞서 말씀드렸듯이 APAIS, GV School Pub. 등으로 확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사해보시면 어렵지 않게 다 같은 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SERSC에서 GV School Pub으로 넘어간 저널이 몇개 있습니다)

SERSC는 Scopus 등재지를 몇 개 갖고 있고, 이는 HSST와 SoCoRI 등을 통해 국내 연구자들이 SERSC, APAIS에서 여는 predatory conference에 참석하게 되는 주요 이유로 보입니다. 꼭 같은 뿌리에 있는 publisher에서 나온 저널이 아니더라도 연루된 주요 인물들을 통해서 각종 SCI(E) 급 저널의 Special Issue에 논문을 실을 수 있는 기회가 적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HSST 홈페이지 게시판 참조) HSST는 굉장히 흥미로운 - 다른 학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 등급 체계를 가지고 운영되는데, SS급, S급으로 등록된 학회 회원 연구자들은 심사 없이 빠르게 SCI(E)내지는 Scopus 저널에 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도 합니다.
(여기서 제가 막힌 지점은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입니다. 추측은 가나 밝히기가 매우 힘듭니다.)

앞서 잠깐 언급한 주요 인물은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 김태훈(성신여대 교수)와 김행곤(대구가톨릭대 교수)입니다. 두 사람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모르겠으나 김태훈 교수는 오스트레일리아 태즈매니아 대학에서 강병호 교수 밑에서 비교적 최근 두번째 박사 학위를 받았고(첫번째 박사는 영국 브리스톨대), 해당 대학의 위치가 우연하게도(!) GV School Pub과 SERSC 주소와 가깝네요. 실제로 김태훈 교수는 태즈매니아 대학 시절 GVSA(Global Vision School Australia) 소속도 함께 기재한 바 있습니다. GVSA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분히 종교적인 이름이긴 하나...

김행곤 교수의 경우 SERSC와 같은 약자를 가진 보안공학연구지원센터의 장을 역임한 바 있고, 역시 비교적 최근 영국 브리스톨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바 있습니다. 그런데 해당 센터와 앞서 말씀드린 SERSC는 단순히 약자만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홈페이지도 공유하고 있을 뿐더러,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듯 컨퍼런스 회비 입금을 '보안공학연구지원센터'로 받고 있습니다. http://www.conferen.org/UNESST2018/reg.php SERSC가 Society로 끝나는데 굳이 C를 약자로 쓴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참고로 해당 센터는 (주)를 앞에 달고 있습니다. 회사라는 이야기지요. 보안공학연구지원센터 홈페이지는 해당 센터가 발간하던 저널(보안공학연구논문지 - 역시 등재지입니다) 이름을 딴 홈페이지로 돌려놓았는데(http://jse.or.kr/insiter.php?design_file=home.php), 연혁은 김행곤 교수 회장으로 끝나있지만 회장 인사말은 Sebah Mohammed로 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이 사람은 다른 약어의 처음 언급한 SERSC의 회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www.sersc.org) 마지막으로 김행곤 교수는 현재 HSST의 회장입니다.

여기까지 밝히는 건 시간만 좀 걸렸지 어렵지 않았으나, 문제는 SERSC와 GV School Pub에서 발간한 저널에 여전히 한국사람들이 논문을 게재하고 있고, 국내와 해외(주로 가까운 아시아)를 번갈아가면서 열리는 학회에 참석하고 있다는 점과 그 수가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름에 해당 문자가 들어간 사람이 있어 전부는 아니겠지만 NTIS에 검색해보면 SERSC가 발간하는 저널에 논문을 게재한 것을 성과로 등록한 건이 300건이 넘습니다. 알려드린 약어들로 구글링해서 사이트를 들어가서 조금만 찾아보셔도 WASET과 크게 다를바 없다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본 글에서는 추측에 가까운 제 사견은 최대한 배제하고, 제가 확인한 사실들만 기재했습니다. 본 사안이 중요한 이유는 학계에 있는 연구자들이 해외 몇몇 predatory publisher나 convenor에 속거나 이용하거나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아예 만드는 전략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 학회/집단 말고도 의심이 가는 학회/집단이 몇몇 더 있으나, 증거를 확보하려면 사실상 직접 접근하는 수밖에 없어 더 말씀드리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SERSC는 인터넷으로 찾는 것만으로도 비교적 확실한 정황 및 증거가 적지 않아 제보하게 되었습니다.

혹시 본 사안이 뉴스타파의 WASET 관련 후속 보도 방향과 비슷하거나 관심이 있으실 경우 제게 연락주시면 되겠습니다. 처음에는 개인적으로 SciGen 등을 활용해서 Science지나 뉴스타파가 했던 것처럼 준비해서 터뜨릴까 했는데 파다보니 그러기에는 너무 크고 적지않은 교수들이 연루된만큼 저도 두려움이 적잖이 생겨서 제보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후속보도 계획이 없거나 방향이 맞지 않은 경우 알림 연락 하나만 주시구요.

그럼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드림.

p.s. 증거가 되는 자료는 모두 인터넷으로 접할 수 있어 링크만 남깁니다.

HSST 홈페이지: http://hsst.or.kr/default/
SERSC 홈페이지: http://www.sersc.org/
GV School Pub 홈페이지: http://gvschoolpub.org/
APAIS 홈페이지: http://www.apais.org/
보안공학연구지원센터(또다른 SERSC) 홈페이지: http://jse.or.kr/

Key arguments: "the rate of retractions is higher as the division of labor increases (net of team size)" (p.1)


과학연구 - 주로 생명과학 분야 - 를 조직사회학적 시각으로 연구하는 조지아텍 J. P. Walsh 교수의 논문은 언제나 흥미롭다. 물론 해당 저널 편집위원으로 있다는 것을 무시해선 안되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내 연구 분야에서 가장 저명한 저널이라고 할 수 있는 Research Policy에 정말 꾸준히 논문을 발표하고 있고, 그 때마다 읽어보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최근에 발표한 <Pathogenic organization in science: Division of labor and retractions>라는 논문은 alert 이메일이 오자마자 제목만 보고 흥분하여 쭉쭉 읽어나갔다. 읽은 지 꽤 되었는데 미루고 미루다보니 리뷰가 늦어졌다.

이 논문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연구실 내 분업 정도가 증가함에 따라 그 결과로 나온 논문이 철회되는 비율이 높았다'는 것이다. 초록으로부터 이 같은 연구결과를 접하고 (누구라도 했을만한) 세가지 생각이 연이어서 떠올랐다. 1) 역시, 그러면 그렇지. 당연한 것 아닌가? (물론 직감 내지는 직관에 따라 당연하게 보이는 추론을 연구를 통해 보이는 것 역시 어렵고 중요한 일이다) 2) 잠깐,  분업 정도는 어떻게 측정했지?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다양한 control variables가 있을 것 같은데 충분히 고려는 했나? 3) retraction rate는 얼마나 "scientific pathologies"(과학병리학이라고 번역해야할까?)에 대한 엄밀한 척도인가? 논문에서는 이를 분업정도와 어떻게 이어서 설명했나? 이 세가지 생각을 바탕으로 논문을 리뷰했다.

논문은 내가 던진 첫번째 질문에 대답을 충분히 하고 있다. 사실 저렇게 결론부터 써놓고 보니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는 보통 연구부정행위, 연구윤리위반행위 등을 (논문에서 말하는 'scientific pathologies') 쉽게 개인(individual) 혹은 문화 내지는 제도(institutional) 문제로 환원하는 경향이 있다. 논문에서 지적하듯 관련한 조사 결과나 교육 방법, 정책 등이 모두 그 쪽으로 초점이 맞춰져있기도 하다. 하지만 논문은 서론을 통해  학계 내에서 일어난 대표적인 부정행위 내지는 연구윤리 위반행위 사건들을 언급하며 (e.g. Baltimore & Imanishi-Kari case @ Cell), 해당 사례 모두 연구실 내 개인 간 혹은 연구실 간 '분업'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음을 지적하고, 과학병리학을 조직 이론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같은 관점의 연구가 부족한 실정에서 '분업'이라는 기초적인 조직 요소부터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내가 두번째로 떠올린 의문은 논문이 RP에 실린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해소가 되긴 할텐데(RP 리뷰어가 나보다 더 깐깐할테니...) 그래도 조직사회학에서 정량 연구를 할 때 어느 정도로 엄밀하게 연구설계를 하는지 배운다는 차원에서 한번 뜯어보았다. 하지만 이 글을 읽을 사람들은 그게 궁금하기보다 얼마나 유효한 데이터를 갖고 연구했는지 궁금할 것 같다. 

저자는 우선 PubMed Central과 WoS에서 1975~2016년 사이에 철회된 논문(review or article) 1081편을 모두 읽고 contribution information을 담고 있는 약 30%를 걸러 실험군 삼고,  해당 논문이 실린 저널의 앞뒤 논문 중 마찬가지로 contribution info를 담고 있는 논문(검색 범위 +/- 3) 두 편을 대조군으로 삼았다. 결과적으로 총 544편(195편의 철회 논문과 349편의 대조 논문)이 분석 대상이었다. 

그리고 핵심 데이터인 '분업 정도'는 '1-(2명 이상 참여한 task 개수/전체 task 개수)'로 계산했는데, 이는 곧 논문이 세운 이론 내지는 가설과 일맥상통하는 task redundancy를 측정한 것이다. 같은 종류의 업무를 연구자 한명이 단독으로 담당했는지, 복수의 연구자가 담당하여 서로 검토를 할 수 있었는지를 살펴본 것이다. 그리고 이 task는 PLOS에서 제시하고 있는 CRediT Taxonomy를 바탕으로 한 선행연구 논문을 따라 6가지 종류로 구분했다:  Conceive; Perform; Material, data, sw, etc., Analyze; Write; Other. 누가 직접 읽고 분류했을지는 모르겠지만 2명이서 각자 구분하고 교차검증했다고 한다.

Logit regression 결과, 여러 제도적 요소(부패인식지수/국가청렴도, 논문 게재에 따른 현금 인센티브 여부 등)와 논문 특성(저자 수, interdisciplinarity, 저널 순위, 게재 연도 등) 등 여러 통제 변수를 고려해도 '분업 정도'는 항상 retraction rate과  유의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이 이상의 의문은 왠만하면 논문에 다 적혀있으니 한번 읽어보시길...

사실 마지막 질문이 핵심인데, 논문을 읽고나서 저자가 이론을 연구결과에 끼워맞추지 않았나하는 의문이 여전히 남아있다. 저자가 이를 의식한 듯 literature review 부분에서 공들여 설명한 부분이 바로 scientific pathologies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라는 문제다. 이른바 과학병리학을 정량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고를 수 있는 종속 변수로 retraction rate가 거의 유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저자는 이를 하워드 베커의 낙인 이론(labeling theory)으로 정당화하고자 한다. 즉, 어떻게 해서 - 단순 실수인지, 의도적인지, 데이터 또는 분석 상 문제인지, 저자간 갈등 또는 윤리 문제인지 등 - 논문이 철회되었는지 볼 필요 없이 어쨌든 논문 철회는 결과적으로 논문을 무효로 하는 것(nullified)인데, '분업 정도'가 이와 어느 정도 상관관계를 가지는지 살펴보자는 것이다.

이는 저자가 세운 가설('서로 검토하지 않은 업무가 많은 (분업 정도가 높은)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이 철회되는 비율이 높을 것')과 일부 통하기도 한다. 철회 사유가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여러 명이 업무에 관여해서 검토했다면 논문 게재 전 제동을 걸었을 확률이 높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labeling theory는 초점을 labelled deviance(낙인된 일탈)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labelling power에 맞추는 것이다. 저자는 분명 '분업'이라는 조직 요소 내지는 조직 상 문제로 인해 '논문 철회'라는 결과가 발생한다는 가설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labeling theory에 입각한 논문 철회란 해당 조직에 문제가 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그 조직의 결과물을 평가하는 일종의 제도적 현상이다. 가설을 접근하는 층위와 사용하는 이론의 층위가 다른 것이다. 단순히 부정행위나 윤리위반행위가 있었으나 철회가 되지 않은 데이터를 잃은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보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이는 흔히 알려진 범죄율(내지는 검거율)이라는 지표가 지닌 문제와도 비슷하다. 경찰력이 증가하면 범죄율은 어떻게 될 것인가? 감시하는 눈이 많아져 치안이 개선되는 효과로 범죄율이 감소할 것인가? 반대로 경찰이 더 많이 잡아내서 높아질 것인가? 수사기관이 화이트칼라 범죄를 과소 적발하지는 않는가?

즉, 저자는 과학병리학(scientific pathologies)을 labeling theory를 통해 정의하는 것이 실증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이유로 상정하고 있는 가설과 함께 성립하기 어려운 종속변수 조작을 (operationalize) 꾀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들이 (어쩔 수 없이) 비판하는 과학병리학에 대한 absolutist view가 오히려 해당 연구에 어울리지 않았나 하면서도, 아니면 그냥 실증 연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 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 retraction rate를 썼다고 고백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어쩌다보니 논문에 꽤나 큰 비판을 가했지만, 조직사회학 관점에서 과학연구를 연구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고, 이 논문 역시 앞서 언급한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함의를 지니고 있다. Walsh 교수는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연구자로, 아마 앞으로도 계속 내 눈에 밟히는 연구를 할 것 같고 여태까지 쓴 논문 역시 하나도 빠짐없이 다 흥미로웠다. Scientific pathologies 역시 (특히 우리나라에서) 더 활발히 이루어져야 하는 연구주제이기도 하다. 현재로선 retraction에 대한 연구만 종종 이뤄지는 것 같지만 더 창의적인 데이터와 이를 이용한 연구방법도 나왔으면 한다.  



서울대 학보사인 대학신문에서 WASET 사태를 다루고자 한다면서 내게 인터뷰 요청이 왔었다. 
이메일을 통해 나름 기자의 깊은 고민이 엿보이는 질의문을 보내왔길래, 나 역시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 답변서를 보내드렸다.

(아마 분량 문제로) 기사에는 거의 모두 실리지 않았는데, 과총 <과학과 기술>지 에 기고한 글과 함께 '와셋 사태'에 대한 내 생각을 가장 잘 정리한 글이기에 여기에도 올려놓는다. 기사 링크는 다음과 같다. (링크: 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8511

기사 작성하느라 수고 많으신 박재우 기자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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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번 와셋 사태와 관련하여, ‘가짜 학회’라는 이름과 함께 와셋/오믹스 등의 학회에 참석한 대학원생/교수들을 비난하는 여론이 일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가짜 학회라 부르기에는 제출된 논문의 질이 그리 나쁘다고 보기 어렵다는 일부 반론도 존재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와셋과 같은 학술대회나 학술지를 두고 가짜 학회 뿐만 아니라 부실 학회, 해적 학회 등 여러 다양한 의미의 수식어가 함께 쓰이고 있습니다. 한편 이 주제와 관련해서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전문사서 Jeffrey Beall은 이를 두고 Predatory Journal/conference (혹은 conference라는 단어 역시 아깝다며 meeting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단어들은 해당 현상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보다 혼란을 일으키기 쉬워 보입니다. 첫번째 이유는 단어들이 학술대회와 학회지, 퍼블리셔를 문제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며, 두번째는 그 학술대회와 학회지, 퍼블리셔에 대해 이분법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차라리 ‘와셋 사태’라고 부르는 것을 선호합니다. 여전히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할지는 계속 고민중입니다.)

와셋 사태를 보다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학술대회나 학회지, 퍼블리셔보다 그들과 거기에 동조하는 연구자들의 행위에 초점을 맞춰야하며, 이런 행위들의 총합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이분법적이 아닌 보다 복합적인 스펙트럼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몇가지만 살펴보죠. 첫번째는 학술대회나 학회지, 퍼블리셔가 허위 정보(내지는 의도적으로 학자를 속이기 위한 정보)를 기재하는 일입니다. 저명한 학자가 참석 내지는 편집진에 있다거나, 학술지 서지정보가 어디에 등록되어 인용지수가 어느 정도 된다던가, 피어리뷰를 하지 않는데 한다고 써놓는다거나 하는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이는 분명 가짜/허위 정보를 바탕으로 한 사기 행위이며, 이 때문에 OMICS가 미국 FTC로부터 경고를 받은 바 있죠.

두번째는 암묵적으로 학술대회나 학술지도, 연구자도 (사실상) 피어리뷰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서로 이용하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 피어리뷰의 ‘질(quality)’ 문제하고도 연결이 됩니다. 피어리뷰가 있어도 가짜 논문을 못 걸러내는 문제가 있으며, 이런 잘 알려진 사례가 아니더라도 피어리뷰에 대해 불만이 있는 사람은 차고 넘칩니다.

즉, 우리가 ‘가짜 학회’라고 지칭하는 문제는 사실 해당 ‘학회’의 문제가 아니라 그 학회가 저지르는 ‘부정 행위’ 내지는 ‘부실 행위’의 문제이며, 이는 다시 와셋이나 오믹스와 같은 특정 학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진짜’라고 여기는 SCI, Scopus, KCI 등에 등록된 학술지 내지는 해당 학술지를 발간하는 퍼블리셔나 학회에서도 얼마든지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학술대회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아래에서 별도로 논의하지요.) 저는 같은 이유로 블랙리스트/화이트리스트 류의 해결방안은 전혀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2. 학자들로 하여금 논란이 된 학회들에 참여하게 된 주요한 동기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동기야 말로 가장 복합적인 부분이며, 따라서 주요 동기가 어떻다고 딱 잘라 말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한번만 참가하고 만 학자들 대부분은 말그대로 ‘완벽히 속은’ 사람들이 많겠지요. 와셋과 같은 학술대회의 홍보 이메일이나 지인을 통해 알게 되었다거나, 큰 주의없이 구글 등을 통해 학술대회를 검색해서 참석한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이렇게 참석한 대부분의 학자들은 해당 학회가 본인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혹은 조금 더 알아봤다면 이런 학회에 참석했다는 사실이 차후에 본인 커리어에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더 이상 참석하지 않을 것입니다. 일부는 이를 써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본인 CV 분량을 늘리기 위해, 교수 업적이나 연구과제 평가에서 점수를 더 따기 위해, 남은 과제비를 소진하기 위해, 학빙여(학회를 빙자한 여행)를 가기 위해 등 여러 요소가 있고, 이런 요소들이 합쳐지면 학문적으로 의미 없는 학술대회 참석을 합리화하기 쉬워집니다. 오히려 Why not?이라는 질문이 들 겁니다.

문제는 위에 언급한 다양한 동기에도 불구하고 제동을 걸 요소가 없다는 것입니다. 뉴스타파 기사 등 여러 언론에서 지적했듯 BK21이나 각 대학 여비 규정은 이런 학술대회 참석을 막지 못했지요. (오히려 연구자들이 해당 규정을 보고 문제 없다고 판단하고 합리화하는 데에 기여를 하겠지요. 하지만 저는 이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학계의 자가 통제(self-governance)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여태 이 문제가 대학이 아닌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는 것은, 같은 대학 내지는 학과의 교수, 혹은 주변 선후배 등 동료 연구자가 다른 연구자가 와셋이나 오믹스와 같은 학술대회에 다녀오고 아무 말이나 실어주는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해도 잘못되었다고 지적하거나 문제삼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히려 서로 이 ‘어둠의 경로’를 알려주며 같이 이용한 경우가 드러나고 있지요. 연구 과정에서 저지르는 부정 행위를 가장 효과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동료 연구자입니다.

와셋과 같은 학술대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학계의 자가 통제가 무너진 상황에서 여러 동기 요소들을 통해 본인의 행위를 합리화하며 그에 따른 이득을 취한 사람들입니다. 동기는 워낙 다양해서 하나하나 짚어가며 제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예를 들어, 사업비 정산을 위해 참석하는 경우는 분명 연구비 관리 제도를 적절히 손봐서 줄일 수 있겠지요) 여러 동기들로 와셋 참석을 합리화한 참석자가 실제로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기 전에 본인 스스로 혹은 주변에서 제동을 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3. 해적 학회 참석을 홍보하는 스펨 메일 등을 받은 적이 많다는 학자들의 증언이 많습니다. 전준하님 역시 이러한 경험을 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제 기억에 남는 것만 세면 2번 있습니다. 와셋과 BIT congress라는 곳에서 연락이 왔었습니다. 전자는 와셋과 무관한 다른 컨퍼런스(Triple Helix Conference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에 제출해 발표한 내용을 와셋에서 발간하는 저널에 실어달라는 내용이었고, 후자는 제가 저널에 게재한 논문이 자기네가 개최하는 컨퍼런스 주제에 어울리니 발표해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전자의 경우 저는 그 전부터 와셋에 대해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학원생인 나한테도 이런 게 오는구나’하고 삭제했습니다. 그런데 후자의 경우 이상한 것을 파악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습니다. 우선 해당 논문의 교신저자인 지도교수님께서 연락을 받으신 후 저한테 메일을 포워드해주시면서 시간이 괜찮으면 경비를 지원해줄 테니 다녀오라고 하셨습니다. 저 역시 제 논문 제목을 직접 언급해가면서 발표자 초청을 하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해당 컨퍼런스 홈페이지도 워낙 그럴 듯 했고, 노벨상 수상자 참석, 유네스코 후원 등 여러 요소에서 굉장히 혼란스러웠는데 (웹사이트가 http://www.worldeduday.org 이니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주최/주관하는 BIT Congress라는 회사에 대해서 찾아보고 나서 불참을 결정했습니다.

홈페이지에 나온 정보가 전부 허위가 아니라면 이 컨퍼런스 역시 아예 가짜라고 하기는 어렵겠지요. 다만 제 경우 같은 돈이 있다면 이런 거대 학술대회(내지는 그냥 큰 행사)를 참석하는 것보다 제 분야 사람들이 많이 가는 학술대회에 참석해서 의미있는 피드백을 받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4. 이번 사태에서 실질적으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BK21 사업입니다. 학계에 몸담지 않는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BK21 사업의 중요성을 몸소 체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준하님께서 바라본 입장에서 BK21사업이 갖는 중요성을 무엇이라 설명할 수 있겠는지요?

이 질문은 마치 언론에서 문제삼고 있는 BK21 사업을 옹호해달라는 것처럼 들리네요. 물론 BK21은 대학원 레벨에서 몇 없는 인력양성 사업이라는 점에서 당연히 중요하며, 와셋 사태의 원인으로 BK21 사업 자체를 지목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대학원생들이야말로 실질적인 연구인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것은 단순히 인력양성 측면만이 아니라 연구시스템을 지속시키는 효과도 가져오기 때문에 더더욱 중요합니다. 따라서 큰 틀에서 대학원 레벨의 재정지원사업은 분명 필요하고 이의 시초 격인 BK21사업의 역사적 중요성은 아무도 무시하지 못할 것입니다.

다만, 그 방식이 지금과 같은 사업단 선정 및 지원 형태로 이루어져야 하는지는 재고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는 또다른 차원의 이야기니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만, 우리나라가 BK21 사업이 처음 시작했던 시점과 달리 어느 정도 연구 역량을 갖춘 만큼 이제는 fellowship과 같은 형태가 대학원 레벨의 인력양성 목적에 보다 적합한 방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학술대회 참석 지원에 한해서는 travel grant 방식이 더 적합하다고 다른 언론에 의견을 전달한 바 있습니다. 링크 참고: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42521)

5. 2016년부터 약 2년간의 법정 공방을 거친 뒤에야, 오믹스(OMICS)가 '허위 사실 기재' 등을 이유로 미국 법원에 의해 시정 조치를 받은 바 있습니다.(https://retractionwatch.com/…/us-court-issues-injunction-o…/ ) 이와 같이 본질적으로는 진짜와 가짜 학회를 가리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한편 과학기술정통부는 금번 사태에 대해 전수조사 결과 등을 통해 9월께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에 준하는 가이드라인 등을 통해 증빙강화 등의 규제책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대책 마련을 하고 있습니다. 과기부의 이런 움직임에 대한 전준하님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앞서 말했듯이 진짜와 가짜는 지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학술지나 학술대회, 퍼블리셔 레벨로 판단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KCI에 준하는 가이드라인이 화이트리스트 내지는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작업이라면 둘다 분명한 한계가 있고 그에 따른 부작용이 오히려 심각하므로 반대합니다. 또한 저는 개인적으로 연구재단이 도입한 KCI 제도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해서 그것을 벤치마킹한다는 발언 역시 우려될 따름입니다. (가이드라인의 내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한 자료가 없어 뭐라하기는 어렵네요) 다만 이런 학술대회 및 학술지, 퍼블리셔의 존재와 이들이 이용하는 전략 내지는 연구윤리를 벗어나는 행위에 대해서는 충분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모르고 그랬다라고 잡아떼는 연구자들을 위해서라도 말이죠. 지금은 경비를 받아놓고 학회에 참석하지 않은 명백한 불법행위를 제외하고 와셋/오믹스 등에 참석했다고 처벌하기는 굉장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저는 함께 첨부해드리는 칼럼에서 지적했듯 ‘학술대회를 연구 실적으로 삼는 제도’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보며, 이를 그대로 내버려둔 채 증빙만 강화해서는 오히려 정당한 학술활동을 저해하는 경우가 늘 것입니다. 언급했듯 ‘학빙여’를 줄이기 위해서는 travel grant 제도 도입이 효과적일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과기부를 비롯한 정부는 최근 외유와 다를 바 없는 공무원 해외 출장에 대한 기사에 더 신경을 써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6. 끝으로 이번 기사를 쓰며 제 개인적으로 느낀 점은. 한국 사회에서 계량화를 통한 객관적 평가가 가능하다는 믿음이 여전히 강력하며, '객관적인 가이드라인'을 벗어난 개인의 일탈을 비난하는 시선과 '객관적인 가이드라인'을 강화해야 한다는 '구조적 시선'이 여론의 양대축을 이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요컨대 활발한 피어리뷰 내지 정성평가를 통해 학계 내부에서 자정 능력을 제고해야 하는데 현재까지의 한국 학술생태계는 그 정도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전준하님께서는 일종의 대안이자 정석으로서 피어리뷰, 지도 교수 멘토링 등 '과학 문화의 발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관 주도의 대형 사업, 상업적 학술지의 범람, 연구 윤리의 부재 등 열악한 현실 속에서 가장 필요한 일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기자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나씩 짚자면, 말씀하신 대로 각 대학이나 연구소 레벨에서, 재단 레벨에서 sci나 scopus라는 사기업이 내놓는 인용색인이나 JIF, Citescore 등의 지표(metric)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개별 연구자들조차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내재화하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많은 연구자가 대학이나 연구재단의 ‘평가시스템’을 비판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연구자들이야말로 그 평가시스템을 만들고 지속시킨 장본인입니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논문 수에 따른 인센티브 제도를 운영하는 대학 역시 아직도 꽤 남아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개인 일탈에 대한 비판과 구조 강화에 대한 요구라는 두 축으로 정리를 하셨는데, 이 두 시선에서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지적이 바로 따로 첨부해드리는 제가 작성한 칼럼에 적은 ‘학문 공동체’의 역할입니다. 아무도 ‘학문 공동체’의 붕괴 내지는 부재를 문제의 원인으로 보고 이를 재건하는 작업을 통해 ‘와셋 사태’에 대처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지 않지만, 저는 분명히 이를 학계의 문제로 보고 해결책 역시 학계에서 내놓아야 한다고 봅니다. 말씀하신 피어리뷰를 비롯한 학계의 자정 능력(여기서 말하는 피어리뷰는 단순 논문 게재 과정에서의 그것이 아닌 전반적인 동료 평가를 의미합니다) 강화는 와셋 사태를 계기 삼아서라도 꼭 이뤄야 하는 일입니다.

물론 ‘과학 문화의 발전’내지는 ‘학문 공동체의 재건’이 굉장히 두루뭉술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과총 등에서 말하는 ‘연구 윤리 재정립’ 역시 동일 선상에서 볼 수 있겠지요. (다만 과총이나 한림원의 노력은 이미 해당 단체들이 자아 비판을 했듯 요식행위에 그칠 확률이 높습니다.) 구체적으로 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굉장히 어렵지만, 그 주체는 개별 연구자와 개별 학회 및 학과라는 점은 분명히 할 수 있습니다. 지금과 같이 대학 산학협력단이나 연구재단, 과총 및 한림원 등 단체나 정부 수준에서만 문제와 그에 대한 대책 논의가 이루어지고 개별 연구자나 학회, 학과가 계속해서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상위 기관 및 조직에 넘긴다면 지적하신 관 주도의 대형사업 등의 열악한 현실을 고치긴 힘들 겁니다. (사실 ‘관 주도’라는 단어조차 저는 부정확하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관’과 함께 손잡거나 이를 조장해 온 ‘학계’ 사람들이 분명 있고 전반적으로는 ‘관-학’ 주도라고 부르는 편이 맞다고 봅니다.)

구체적인 대책과 관련한 제언을 드리지 못해 저도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 같은 일개 대학원생이 이런 저런 대책을 내놓기에는 너무 큰 문제라 특히 이런 인터뷰 질의 답변서를 통해 드리기는 더더욱 어렵네요.

다큐 링크: https://vimeo.com/273358286?ref=fb-share&1

Worth to watch. (영어로 된 다큐멘터리다보니 시청하면서 빠르게 적은 노트 역시 영어가 많다. 양해해주시길..)

OA와 관련한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던 분들은 앞부분은 skip하고 37:30부터 Elsevier의 전략과 이에 대한 "civil disobedience" 사례(Lingua, Sci-Hub)만 보셔도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지점들을 짚자면...

1. Paywalls constrain researchers' thesis topic. 특히 세르비아의 Belgrade 대학에 있는 학생들이 모두 literature access가 가능한 implicit cognition 관련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있더라는 사례는 예상은 했지만 너무 슬픈 이야기였다.

2. And this means a lot for developing countries.
"publishing is really an insider's game!" (23:20) 개발도상국은 당연히도 subscription fee를 못 내는 기관이 수두룩할 것. (당장 우리나라 대학도서관 연합도...)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학술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글로벌 지식 축적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굉장한 착각이라는 것. 거인의 어깨에 올라설 기회는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전적으로 속한 나라나 기관에 따라 다르다.

3. OA 운동에 대한 상반된 반응과 평가
믿음에 기반한 종교적인 운동에 가깝다는 publisher (Sage) 측 의견과 이에 동의하는 한 대학 학장. (나 역시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이에 대해서는 Jana Bacevic가 쓴 "The moral economy of open access"를 읽어봄직하다. 우연의 일치로 Sage에서 나온 저널이네...) 
반면 OA 지지자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OA를 지지하나 생각보다 그 취지에 비해 시작 이후 impact는 크지 않다는 평가. 그 원인에는 잘 바뀌지 않는 academic reward structure & research assessment가 있음. JIF에 기반한 연구 평가, 즉 어디에 논문을 실었냐가 커리어 쌓는 것의 큰 부분이 되어버린 현재 학계의 문제 지적. DORA 같은 움직임도 있었지만 여전한 문제.

4. Elsevier의 전략과 civil disobedience(Lingua 저널의 성공적 Elsevier 탈퇴, Sci-hub의 성공(?))
Elsevier는 Journal subscription 범위와 가격을 개별 기관 또는 컨소시엄 별로 협상하여 계약을 체결함. 그리고 이는 거의 전부 non-disclosure contract임. 즉 같은 저널들을 구독해도 A 대학과 B 대학이 다른 돈을 지불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 (우리나라도 컨소시엄이 협상 못하고 나서 개별 기관 별로 협상 시작함) 이는 전적으로 Elsevier에게 가격 결정권이 있음을 의미하고 많은 대학/도서관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subscription할 수 밖에 없음. Librarian이 협상에 참여하지만 협상력은 전혀 없다고 함. 계약 해지하면 연구자들이 당장 들고 일어나지 않겠나.

다만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Elsevier의 비즈니스모델에 반기를 든 Lingua라는 저널의 모든 editorial board가 일시 사임하면서 Glossa라는 OA journal을 새로 만들었고, 성공적으로 저널의 명성, 구독자 등을 가져감. 한편 개인적으로 Lingua 저널은 아직 Elsevier에 남아있다는 점에서 또다른 충격을 받음. (Journal의 주인은 누구인가...??)

Sci-Hub의 창시자 등장! (55:45) 인상은 느닷없는 개구쟁이(?) 프로그래머다. 진심으로 프로젝트를 즐기는 것이 눈에 보임. 저도 항상 감사합니다. 저도 휴학하면서 모든 저널 subscription을 잃어서 애용하고 있어요...

아래는 공식 소개문:

Paywall: The Business of Scholarship, produced by Jason Schmitt, provides focus on the need for open access to research and science, questions the rationale behind the $25.2 billion a year that flows into for-profit academic publishers, examines the 35-40% profit margin associated with the top academic publisher Elsevier and looks at how that profit margin is often greater than some of the most profitable tech companies like Apple, Facebook and Google. For more information please visit: Paywallthemovie.com

<실적 부풀리기 양적평가 때문에 가짜학회 참사가 발생한 게 아니라, 학문공동체-학계의 부재 때문에 두 '현상'이 드러났다고 봐야>

독일에도 Predatory Journal 관련 기사가 보도되자 Max Planck PhDnet(MPG 박사과정 모임 정도 되는 듯)에서 약간은 뜬금없는 포스팅(링크)을 했다.

2000년부터 MPG에서는 GSP(Good Science Practice, 바람직한 과학 실천(?)) 규칙을 마련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시니어 과학자의 주니어 과학자(학부생부터 포닥까지) 지도하는 것이라고 한다. 즉 '과학 실천'에 있어 '교육'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 
특히 이 GSP 규칙은 박사과정의 경우 지도교수 외로도 지도에 참여할 두 명의 교수가 있어야 한다고 권장한다. 글은 이것이 옴부즈만 제도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한다.

또한 GSP를 교육하는 것 역시 주니어 과학자 교육 중 중요한 요소이며 때문에 모든 박사과정 신입생은 입학 한달 후 관련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Predatory Journal 이야기로 시작해서 갑자기 GSP 이야기를 꺼내고는 대학원생 지도 및 교육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것으로 끝나서 뜬금없었다고 표현한 건데, 사실 생각해보면 이들이 Predatory journal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가 그대로 드러나는 글이기도 하다.

반면 일부 우리나라 교수는 '연구재단 규정에 따랐을 뿐', '연구재단 잘못' 운운한다. 공공연구노조 역시 정부에 실태조사 및 대책 마련을 요구할 뿐이다.

어제오늘 뉴스타파 보도에서는 BK21플러스 사업을 중점적으로 들여다봤다. 물론 기사가 전적으로 사업 탓을 한 건 아니지만 난 사업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 역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경우 결국 '사업비 관리' 문제로 회귀할 뿐이다. 기사 제목이 "실적 부풀리기 양적평가가 ‘가짜학회 참사' 불렀다"인데, '실적 부풀리기 양적평가'가 정확히 어떤 의미를 내포하는 지 모르겠으나 (실적 부풀리기를 방조하는 양적평가? 실적을 부풀려서 받는 양적평가?) 그것과 '가짜학회 참사' 간에 인과관계를 설정할 것이 아니라 서로 무관하지 않은 '함께 드러난 현상'으로 봐야 한다. 그리고 두 현상 모두의 원인은 바로 '학문 공동체/학계의 부재'다.


한국대학랭킹포럼이라는 곳이 있는 모양이다. 

아래 한경기사(그래도 대학 관련해서 참고할 만한 기사를 쓰는 몇 안되는 언론사다)를 통해서 접했는데, 얼마 안 있어 6월 말에 8회 포럼을 개최한다니 참고하시길. 해당 포럼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에서의 대학랭킹 현상을 연구하면 재밌을 것 같다. 물론 지금도 늦지 않았다. 국내로 한정지어 눈여겨볼만한 대학랭킹 현상에 대한 연구논문으로는 경희대 석사학위논문 <대학랭킹문화: 문화기술지적 탐구> (전현식, 2014)가 있다. 책 <지배받는 지배자>를 통해 알게되어 (책 저자 김종영 교수의 제자다) 읽어보았는데 대학본부가 연구에 잘 협조해줬다는 것이 너무 신기해서 기억에 남는다. (물론 지도교수가 도와주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한때 석사학위논문 주제로 대학랭킹을 잡은 적이 있었는데 안(못)하길 잘한(된) 것 같다라고 생각했다.

위에 언급한 한경기사는 http://news.hankyung.com/article/201510256683g ("연고대 제친 성대·한양대…'어떤' 대학평가를 믿습니까?", 2016.1.17), http://news.hankyung.com/article/201510291719g ("세계대학평가 비즈니스 '봉' 한국대학", 2016.1.17). 무슨 일이 있었길래 처음 기사 나온지 3개월만에 수정을 했을까?

한국대학랭킹포럼은 https://sites.google.com/site/urfkreg/ 에서 신청할 수 있는 것 같다. 다음 카페도 있긴 한데 관리자 승인이 나야 가입할 수 있다. 신청은 했는데 받아줄라나? 모르겠다.


원제는 Writing for Social Scientists (1986). 

나는 논문을 포함해서 어떤 글쓰기에 대해서도 체계적으로 배운 적이 없었다. 때문에 석사 학위논문을 쓰면서 극심한 불안감에 빠질 수 밖에 없었는데, 절판되어 구하기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중고로 구매한 하워드 베커의 <사회과학자의 글쓰기>가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책을 처음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글쓰기나 방법론에 관한 책을 읽었고, 석사학위논문을 제 때 마칠 수 있었다.

현재 같은 책이 2018년 2월 <학자의 글쓰기>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되었다. 

이 책을 통해서 하워드 베커라는 사회학자를 알게 되었고, 애초에 시리즈로 기획한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어쨌든 <학계의 술책>, <사회에 대해 말하기>로 이어지는 사회과학자를 위한 글쓰기 가이드 3부작을 모두 구매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8년 90세의 나이로 그가 새로 낸 책 <Evidence>는 느낌상 이 3부작을 아우르는 저작으로 예상된다. (물론 이 책도 샀다.) 쭉 읽고 리뷰할 생각.

아래에 내게 특히 인상깊었던 구절들을 옮겨본다.


1-1. "만약 당신이 연구 초기부터 - 예를 들어 모든 자료들을 모으기 전부터 - 글을 쓰기 시작했다면, 조만간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할 수 있다. 자료없이 초고를 쓰면, 자신이 논의하고자 하는 것이 더 명료해지며, 그래서 앞으로 수집해야 할 자료들이 무엇인지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즉 글쓰기를 통해서 연구설계 방법을 구체화시킬 수 있다. 바로 이것이 먼저 연구를 하고 나서 "연구결과를 쓰라"는 좀더 일반적인 생각과 구별되는 것이다." (p.43)


1-2. "개요는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개요를 가지고 글을 시작하면 도움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개요에 의존하여 시작하는 대신에, 모든 것을 적어가면서, 가능한 한 빨리 아이디어를 토해내는 방식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면, 첫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 - 당신이 작업해야만 하는 미완의 부분은 당신이 방금 적어놓은 다양한 것들이다 - 을 발견할 것이다." (p.102)


 2-1. "해결 불가능한 것을 해결하려고 시도하는 대신에, 그것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다. 당신은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를, 당신이 생각하는 해결 방식은 무엇인지를, 왜 덜 완벽한 해결책을 선택했는지를,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독자에게 설명할 수 있다...(중략)...연구에서 흥미로운 딜레마를 구체화시키지 않았다면, 해결 불가능한 문제가 제기되지도 않았을 것." (p.107)

2-2.
 "해결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에 대해 글을 써라. 그리고 그것을 당신의 분석의 초점으로 삼아라...(중략)...당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독자에게 털어놓으려면, 당신도 해결하기 힘든 문제가 있었으며, 항상 올바른 방법을 알고 결함 없이 문제를 해결하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p.111-112)


3-1. "만약 혼자 힘으로 과학적 또는 학문적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정상과학은 다른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훌륭한 작품을 씀으로써 이해와 지식을 향상시키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연구와 글에서 이런 성과를 이루어낼 수 있는데도, 불가능한 것을 목표로 삼음으로써 스스로 실패를 자초해서는 안 된다." (p.213)

3-2.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를 인식하고, 지배적
인 이데올로기의 이데올로기적 구성요소를 찾아내고, 그 문제에 대한 좀더 중립적이고 과학적인 입장을 찾아 내려고 노력하는 일이다...(중략)...진지한 학자라면 동일한 주제를 논의하는 경쟁적인 방식들을 일상적으로 점검해야만 한다. 지금 사용하는 언어로는 자신의 의도를 전달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문헌이 우리의 머리를 꽉 채우고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는 것이다...(중략)...문헌을 이용하라. 그러나 문헌이 당신을 이용하게 하지는 말라."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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