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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보니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이라 어떤 카테고리에 둬야 할지 고민했는데, 그래도 내 지금의 연구질문들을 떠올리게 만든 경험들이니 연구자 탭에 배치했다. 첫번째 글에 1학년 때 경험 - 주로 실망 - 을, 두번째 글에 2학년 때 경험 - 그래도 희망 - 을 쓴다.

학과의 지원 덕에 석사 2년동안 여러 학회를 다니며 연구를 발표할 기회를 가졌다. 

1학년 때 국제학회 1번, 국내학회 1번을 다녀왔고, 2학년 때는 국제학회에 2번, 국내학회에 1번 참석했다.

학과에서 여비 지원을 받기 위한 조건이 해당 학회에서 발표를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모두 연구 발표를 해야했다. 원래 해외학회는 1년에 1번까지 갈 수 있었는데, 2학년 때 Atlanta Conference는 학과 차원에서 조지아텍 공공정책대학과 합동세미나를 개최하는 겸해서 갔기 때문에 따로 발표하지 않고 참석만 했다. 

우선 내가 일찍이 학회 발표에 집착하다시피 한 이유가 두가지 있다.

첫번째는 실적 압박이었다. 학회 발표 자체가 실적이 되리라 생각한 적은 없다. 내 연구분야는 CS를 비롯한 일부 분야에서처럼 학회에서 발표했다는 것만으로 실적이 되는 분야가 아니었고, 그런 학회도 따로 없었다. 또 대부분 학회에 제출한 초록이나 소논문, 혹은 논문 전문을 미리 받긴 했지만 피어리뷰를 해주거나 그 결과를 토대로 참석 여부가 결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러니 학회에 참석했다고 누가 인정해주고 그럴 일은 없었다. 다만 학회에서 발표를 잘하면 출판 기회로 이어지기도 하고, 꼭 그렇지 않더라도 내가 스케줄 관리를 하기가 좋았다. 남들 앞에서, 그것도 다른 학자들 앞에서 발표를 해야하니 그 때까지 뭐라도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만큼 정신차리고 진도를 뺄 수 있었다. 그래야 뭐라도 결과를 내서 나중에 출판을 할테니깐.

두번째는 슬프게도 어떻게든 동료평가를 제대로 받고 싶어서였다. 연구분야와 주제를 정하고 나서 나는 지금 다니는 대학원에서 내 연구에 대해 제대로 평가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기대고 있는 이론이나 선행 문헌을 내가 잘못 이해하거나 적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데이터를 잘못 분석하지는 않았는지 등. 물론 지금와서 보면 중요한 지적 - 주로 논리적 비약이나 근거 부족,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지점이나 다른 이론과의 연결 등 - 은 사실 정말 딱 나와 연구분야가 겹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어쨌든 그 때는 그런 불안감에 휩싸여서 내 연구를 같은 분야에서 연구하고 있는 연구자들한테서 제대로 평가받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우리 학과에는 없으니 다른 곳에서 찾아야했고, 가장 좋은 건 내가 인용하는 논문을 쓴 학자들이 오는 학회에서 그 학자들로부터 받는 거였다. 

그렇게 1학년 때 처음 갔던 학회는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열린 Triple Helix Conference라는 학회였다. 사실 Triple Helix 개념도 학회도 뚜렷한 하강세를 보이고 있는 곳이긴 하다. 하지만 그 때야 그런 걸 알턱이 없었고 수업 때 관련 논문을 몇 개 읽은데다가 무엇보다 개념을 주창한 Henry Etzkowitz와 Loet Leydesdorff가 인용을 쓸어담다시피 했기 때문에 저기가 내가 붙어야 할 곳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가있는 내내 독한 감기에 걸려서 정신이 헤롱헤롱한 상태로 다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지루했던 학회였다. Triple Helix라는 이론 내지는 개념이 사실상 무한정으로 확대가능하고 4차산업혁명처럼 정책관련자들한테도 fancy하게 먹히는 단어이다보니 연구자들 외로도 공무원 등도 많이들 와서 발표했다. 물론 다 사실상 홍보에 가까워서 흥미로운 점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간간이 재밌는 연구발표가 있었고 그들과 논의를 한다는 것에 감격스럽긴 했다. 처음으로 연구자 대 연구자로 명함도 주고 받고 말이다.

공통 세션을 제외한 대부분의 세션이 그랬지만 내 세션 역시 매우 소규모로 진행되었다. 15명이 안되는 사람들이 같은 방에서 발표를 했는데, 15명 중 10명이 좌장 및 발표자, 그리고 그 발표자와 같이 다니는 사람들(예를 들어 내 교수님, 같이 학회 간 형, 그리고 그 학회에 온 유일한 다른 한국인 분들 2명. 다른 발표자한테도 그런 동료들.)이었으니 사실상 굳이 학회에서 만나야 했나 싶기도. 또한 세션도 기존에 모집한 세션들 중 충분한 초록이 없어 합쳐진 세션이었기 때문에 발표 내용도 일관적이지 않았다. 그래도 Triple Helix 개념을 정립해서 학회장으로 계속 활동해온 Henry Etzkowitz가 (다른 발표의 공저자였기 때문에 들어온 듯) 나름 의미있는 코멘트를 해주긴 했으나, 내가 바랐던 제대로 된 평가는 아니었기 때문에 약간 실망하기도 했다.

때문에 국제학회 별 거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음, 다시 생각해보니 꽤나 허무해했던 것 같다. 때문에 다른 학회도 이런 걸까, 내가 애초에 학회를 잘못 선택한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Triple Helix 개념이 이론적이든 실천적이든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는 의문이 학회에서 느낀 실망감과 함께 '아 여긴 아니구나'라는 생각으로 귀결된 것 같기도 하다.

이 학회에서 우리나라에 몇 없는 나름 triple helix 개념으로 논문을 꾸준히 써온 교수님을 한 분 만났다. 사실 한국 사례로 (사실상 해외 학회 발표나 학술지 게재를 목표로 하는) 영어 논문을 쓸 때 가장 필요한 자료 종류 중 하나가 같은 분야 내에서 한국 사례로 해외 학술지에 실린 논문이다. 생각보다 정말 몇 없다. 내 경우 손에 꼽았는데 그 중 한 분을 하이델베르크에서 처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감사하게도 교수님이 학회장으로 있는 국내 학회에서도 발표해보는 것이 어떻냐고 제안해주셨고, 해외였다면 힘들었겠지만 아니었기 때문에 why not?이라는 생각에 국내 학회에서도 발표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참석하게 된 학회가 DISC다. 정확히 말하면 학술대회 이름이 DISC였고, 학술단체로서 학회 이름은 WATEF였다. 여러모로 학회장을 하고 계시는 교수님의 개인 역량이 만들어낸 학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DISC의 D가 대구에서 따온만큼 (지금은 Data로 바뀐 듯 하지만) 지역 학회였지만 학회 자체도 국제 학회를 표방했고 그만큼 해외 학자들도 많이 왔다. 나름 WATEF 이름에 Triple Helix가 있어서 하이델베르크와 큰 차이가 없지 않을까 싶었지만 학회에 참석하고 나서야 엄청나게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 무슨 주제였는지 기억은 안나는데 고등학생 R&E로 수행한 과제 결과를 한 교수가 학생들이 찍은 발표영상을 틀어놓는 것도 볼 수 있었다. 다시금 학술대회 자체에 대한 실망이 커졌다.

두 학회를 모두 참석하고보니 일전에 워싱턴에서 인턴십할 때 참석했던 학생학회 생각이 떠올랐다. ST Global이라는 미 동부 STS학과 대학원생들이 주축이 되어 여는 학회다. 그 때는 다른 의미에서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오히려 무식해서 그렇게 생각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째 학생들 수준이 높지 않다는 생각이 든 거다. 발표 내용이나 질의응답에 다들 열심히 참여해서 뭔가 학회다웠지만, 뭔가 아마추어 느낌이 났었다. 물론 내가 학회에서 발표한 내용도 그랬지만.

진짜는 허상이었다. 내가 바랐던 학문의 전당으로서의 학회. 각자하는 연구가 서로 크게 연관되어 있어 조그만 것부터 주제 선정과 같이 큰 질문까지 치열하게 토론하는 그런 장은 있을 수 없는 거였다. 다들 자기 발표하기 바쁘고 남이 하는 발표는 대충 기웃거리다가 아주 가끔 운좋게 관련성이 큰 연구나 연구자를 만나면 질문 한두개 정도 하고. 그런 실망감이 컸다. 

일찍이 원래 학회란 그런 곳이구나라고 깨닫고 인정하고 큰 의미를 두지 말아야 했는데 되려 나는 내가 제대로 된 학회, 그러니까 주류/메이저 학회를 가지 않아서 그런 거구나 싶어서 주류 학회를 찾아 헤멨다. DRUID와 같은 학회는 참석하기도 어려운데 (full paper 제출 + peer review로 참석자 수 제한하고 걸러냄), full paper를 쓸 자신은 없으니 적당히 어려우면서 정말 나와 비슷한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 학회를 찾아 나섰다. 

  

 

회사에서 맡은 업무가 너무 새롭다보니 퇴근하고 무언가 손에 잡기가 힘들다. (물론 핑계다. 그 전에도 그랬다.) 결국 지난주에 다녀온 여행 기행문을 이제서야 마무리한다.

차가 없다보니 2박 3일 내에 여수에서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제한이 있었다. 숙소를 이순신광장 근처에 잡았기 때문에 북쪽으로는 첫 날 들른 만성리검은모래해변, 동쪽으로는 오동도, 남쪽으로는 돌산도, 서쪽으로는 여수시청 부근 소호요트마리나 이상으로 가기가 어려웠다. 

아침에 느지막히 일어나 소호요트마리나로 향했다. 친구와 여행을 계획하면서 기왕에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통해 해양레저스포츠를 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여수시에서 지원하는 몇 군데에서 무료로 윈드서핑, 카약, 딩기보트 등을 체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전날 강한 비바람 예보가 있었기 때문에 다른 곳은 해양레저스포츠 예약을 받지 않았는데, 우리가 간 곳은 오면 할 수 있다고 답을 줘서 구두로 예약 후 방문했다. 

다른 건 기구가 많지 않아 탈 수 없었고, 2인승 싯인 카약을 타볼 수 있었다. 딱히 배울 것도 없이 바로 노를 저어 바다로 나아갔다. 파도가 없다시피 해서 출렁이거나 뒤집어지는 재미는 없었지만, 생각보다 힘을 주는대로 속도가 나서 이리저리 항해를 맘껏 할 수 있었다. 예전에 조정 체험을 했었을 때는 힘이 더 들었던 것 같은데 하며 카약에서 내리고 보니 엄지손가락 안쪽에 물집이 잡혀있었다.

씻고 옷을 갈아입고 나와보니 날씨가 부쩍 더워졌다. 버스를 타고 숙소 쪽으로 돌아오며 어느 게장집을 갈까 고민했다. 워낙 게장집이 많아서 거기가 거기일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막상 이번 여행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게장일거라는 생각을 하니 신중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문득 쌍봉동에 살던 사촌누나가 떠올라 누나가 추천할 법한(..) 여진식당이라는 게장집을 가기로 했다. 전날 구백식당과 마찬가지로 순전히 감에 따른 결정이었다. 

지도를 보고 식당을 찾았는데, 이미 줄을 꽤나 섰다. 생각보다 줄이 금방 줄어들어 줄을 서며 감이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내 게장을 맛보는 순간 나쁘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정말 좋았다고 감탄을 했다. 사실 게장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게장전문점을 간 적은 없고 한정식 집에서 반찬으로 나오면 먹는 정도였다. 매번 게장 매니아는 게장을 왜 좋아할까하는 의문을 가졌다. 그런데 인과관계가 거꾸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게장 맛은 전문점에서 맛있는 게장을 먹어봐야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여느 TV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크고 통통한 게가 아니라 밥을 못 비벼먹을 정도로 작은 게였지만, 맛이 전혀 비릿하지 않고 식감이 살아있었다. 특히 힘들게 집게발을 깨서 조그마한 살을 건져 먹으면 다른 부위보다 훨씬 밀도있는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이래서 게장게장하는구나. 매일이나 매주는 아니더라도 매달 먹으면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만족스럽게 식사를 한 후 짐을 숙소에 놔두고 오동도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생각보다 버스가 자주 다녀서 (혹은 우리가 운이 좋아서) 대중교통을 잘 이용했다. 오동도 초입 방파제서부터 사람이 정말 많았다. 그래도 7, 8월 휴가철 때보다는 적지 않았을까 싶다. 친구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방파제를 건넜다. 햇빛이 강해 선크림을 바르길 잘했다 여겼다.

오동도는 어릴 적 몇 번 와본적이 있어서 그랬는지 너무 익숙한 장소였다. 입이 떡 벌어지는 절경이기보다 편안하고 잔잔한 풍경이었다. 동네 뒷산을 등산하다 샛길로 빠질 때마다 넓은 바다가 보이기를 반복하는 여정이야말로 기대가 높지 않았던만큼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친구와 함께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참 많이 찍었다. 잡생각이 사라지고 온전히 여행할 수 있었다. 꽤나 자주 모터보트를 탄 사람들 비명소리가 들려 고요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오후 내내 걷고나니 발목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마지막 동백열차는 자리가 꽉차 타지 못했다. 꾸역꾸역 다시 방파제를 걸어나와 케이블카 줄에 섰다. 해질녘에 타라는 글을 꽤 많이 보아 일부러 적당한 시간에 탔는데 초여름이어도 해는 너무 늦게 졌다. 시간대 때문이었는지 케이블카에서 본 여수는 그렇게 예쁘지 않았다. 생각보다 무섭다며 아래가 유리로 되어있는 케이블카 안 타길 잘했다는 친구를 놀리며 돌산공원에 내렸다.

해가 질 때가 되니 부쩍 날씨가 추워졌다. 친구와 몸을 떨며 전망대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가 하늘이 어두워지자 '여수 밤바다'를 보러 돌산공원 끝자락으로 향했다. 분명 여러 번 왔을텐데 처음 본 것만 같은 경치가 눈에 들어왔다. 등 뒤로 통기타 동호회 공연에서 '여수 밤바다' 노래가 들려왔다. 그렇게 화려하지만은 않은 은은한 조명이 돌산대교와 여수 연안, 장군도를 둘러싸고 있었다. 문득 장범준이 이 경치를 보며 곡을 쓰지는 않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 위에서 아래를 내려보는 게 아닌 바다 옆을 직접 걸으며 쓰지 않았을까. 노래를 부르며 저녁을 먹을 겸 공원 아래로 내려왔다.

여수 밤바다 MV에서 한가인이 쓸쓸히 소주를 마시던 포장마차는 없었다. 시끌벅적 왁자지껄 주황빛 가득한 포장마차들만 많았다. 자리도 없었거니와 음식도 별로일 것 같아 좀더 안쪽에 있는 선어삼치횟집을 찾았다. 유튜브에서 훑어보다 눈에 걸린 집이었는데, 1층에 자리가 없어 다락방처럼 생긴 2층에 친구와 단 둘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소맥과 소주가 꿀떡꿀떡 넘어가는 저녁이었다. 친구는 그렇게 인상깊지는 않았다고 하나, 나는 제대로 된 선어회를 먹은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보통 많이 먹는 광어나 우럭 활어회(특히 전날 게스트하우스에서 먹은 걸 생각해보면)는 쫄깃탱글한 식감 외로는 딱히 특이할 게 없었다면, 훨씬 도톰하게 잘린 삼치 선어회는 그 재료 본연의 맛을 더 음미하기 좋았다. 적당히 기름지고 적당히 비릿하고. 게장처럼 눈이 번쩍 뜨이는 맛은 아니었지만, 가끔 생각이 날 법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사람 많은 포장마차 거리를 걸었다. 딱새우를 못 먹어서 못내 아쉬워하던 친구는 계속 포장마차도 가자고 하다가 결국 포기했다. 회 배달 앱으로 한 번 먹어본 나는 딱새우 별거 없다고 말리긴 했는데 이제와서 밝히자면 딱새우 맛있다. 그냥 포장마차 분위기가 별로인데다가 왠지 음식 질도 별로일 것 같아 가지 말자고 했다.

숙소에 돌아오니 거나하게 취한 다른 게스트하우스 손님들이 몇 명 있었다. 파티에서 만난 여자들이랑 2차를 가고 싶었는데 화장실 간 사이에 자기들끼리 가버렸다며 신경질을 냈다. 못내 아쉬워하더니 술을 더 마시러 나간다. 중간에 잠에서 깨기 싫어 귀마개를 하고 잤다. 다행히 푹 잤다.

첫번째 날과 두번째 날 부지런히 돌아다녀서 마지막 날은 딱히 할 게 없었다. 전날보다 더 느지막히 일어나서 좌수영바게뜨버거와 여수당바게뜨버거를 둘다 먹어보고 기차를 탔다. 혹시 글을 읽고 여수 가시는 분들이 있다면 좌수영바게뜨버거를 드시라. 여수당에서는 쑥 아이스크림만 먹고.

종종 이렇게 여행을 다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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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게시판 글만 늘어가는구나...

몇 없는 친한 친구와 여수를 다녀왔다. 

훈련소에 있으면서 친한 친구와 여행을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혼자서 생각을 정리하다보니 그것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졌다. 맞다. 나는 수다쟁이다. 가끔씩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하지만 그게 정말 그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을 '내 이야기'라면 아무 곳에서나 하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애매하게 친분이 있는 사람보다 초면에 하기가 더 쉽긴 하겠지만, 아무래도 친한 친구가 편하다. 거꾸로 친한 친구 이야기도 궁금하기도 하니까.

그렇게 수다를 떨며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었다. 우선 여행을 가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장소는 다소 익숙한 여수로 결정했지만, 그래도 여행지로서 여수를 가보니 색달랐다. 흔히 말하는 휴양지 풍경이었는데, 그 익숙함 때문에 가기가 꺼려지기도 하고, 다시 찾고 싶기도 한 분위기를 다시 맛볼 수 있었다.

금요일에 휴가를 내고 아침 기차를 탔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이른 아침 일정은 엄마의 잔소리로 시작한다. 별다른 일정이 없어도 꼭 내가 일어나기 전에 아침을 차려주시고는 내가 나가기 전까지 길찾기 앱을 보며 얼른 나가라고 등을 떠민다. 그 속에서도 여유롭게 엄마 잔소리를 더 듣고 나가야 딱 5~10분 전에 약속장소에 도착한다. 그 날도 다름없이 그렇게 친구를 만나서 기차에 몸을 실었다. 오랜만에 꽤나 오랫동안 타는 기차라서 (해봐야 3~4시간이긴 하지만) 여유롭게 책 읽고 음악 듣고 친구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경기도를 벗어나기 전에 둘 다 곯아떨어져 잤다.

사실 첫 날은 태풍급 비바람이 예보된 날이었다. 그래서 먹을 거나 먹으러 다니자고 했는데 도착해보니 적당히 흐린 날씨였다. 우리는 만성리 검은모래해변에서 일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해변은 해변이었고, 모래는 검었다. 친구 말마따나 맑고 탁 트인 바다 모습이 아니라서 약간 아쉬웠다. 하지만 파도소리와 물이 밀려나며 나는 자갈 소리는 신기하고도 편안했다. 가끔씩 빗소리, 파도소리 등 자연에서 가져온 소리를 듣곤 하는데, 이 소리도 목록에 추가하려고 냉큼 영상으로 찍었다. 

수산시장 쪽을 걷다가 '구백식당'에서 서대회와 금풍생이 구이를 먹었다. 서대회는 원래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친구한테도 기대하지 말라고 말했는데 역시나였다. 서대회와 서대회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원성을 사겠지만, 양념맛으로 먹는 서대회보다는 발라먹기 힘들고 살이 별로 없지만 나름 특유의 맛이 있는 금풍생이 구이가 나았다.

점심을 먹고 한 사우나에 딸린 옥상카페를 갔다. 식당과 마찬가지로 계획에 없던 일이었는데, 생각보다 경치가 무척 좋았다. 커피도 비싸지 않은데 양은 많아서 사진 수십장을 찍는 내내 홀짝일 수 있었다. 정면에 돌산대교, 오른쪽에 거북선대교가 보이는 경치는 검색해도 잘 나오지 않는 장소치고 꽤나 아름다웠다. 친구가 사진에 욕심이 많아서 20대 초반으로 되돌아간 듯 각종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어댔다.

또 정처없이 걷다보니 벽화마을을 걷고 있었다. 가기 전에는 도시마다 있는 벽화마을을 뭣하러 가나하는 생각이었는데, 딱히 할 것도 없어 1004m를 걸었다. 벽화마을을 중심으로 '인스타 예쁜 카페'라고 부를 법한 카페들이 최근 여럿 문을 연 듯 했다. 대충 둘러보고 숙소에 들어와서 쉬었다.

오후 8시부터 게스트하우스 파티가 있어 일부러 저녁을 먹지 않았다. 회와 족발을 준다고 해서 약간 기대를 했는데, 음식은 일단 큰 실망을 안겼다. 둘다 어디선가 배달해서 그 자리에 몇 시간동안 놓여있었던 맛이랄까. 싸구려 뷔페에서 먹을 법한 메뉴였다. 파티에 크게 기대를 한 건 아니었고, 비가 온다 해서 저녁에 할 것도 없겠거니 신청했는데 역시나였다. 다들 술을 엄청 마셔대더니, 결국 몇몇은 볼썽사나운 꼴을 보이고 말았다. 그래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사실에 약간 설렜는데, 얼마 안 가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나'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방에 일찍 들어와서 책 읽다가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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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본 지 5일 남짓 되었는데도 자꾸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서 한 번 털고 가려고 한다. 영화가 끝난 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걸 끝까지 지켜보며 했던 생각, 함께 본 친구와 대화를 나누며 걸었던 거리에서 했던 생각, 술냄새가 진동하는 심야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며 했던 생각들이 일부러 찾아보지 않아도 접할 수 밖에 없는 지인들이 남긴 해석과 리뷰 때문에 흐릿해질까 싶어 더더욱 글로 써야겠다.

친구가 기우(최우식 분)에게 수석을 선물해주는 씬에서 처음 나왔던가. 기우가 '이거 상징적이다'라고 말할 때 나는 굉장히 이질감을 느꼈다. 대사가 뭔가 어색했다. 그리고 얼마 안가 연교네 집에서 기우가 또다시 '상징적'이라는 표현을 쓰고, 이후로도 상징적이라고 감탄사를 내뱉는 것을 보고 감독이 그 이질감과 어색함을 의도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화에서 연출은 곧 상징이다. 인물, 장소, 사건부터 소품, 대사, 구도, 색감, 소리 등. 모든 것은 무언가를 상징하며, 그렇기에 감독의 의도에 맞게 연출되어야 한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 좋은 영화에서는 그렇다. 한 영화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것, 또 봉준호 감독이 '영화를 보고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한 것 역시 영화 그 자체가 상징의 집합체고 그 상징이 가지는 의미는 무한히 확장하기 때문이다. 상징적인 것들이 너무 많고 또 상징의 방향이 일정치 않아 그 의미가 불분명할 때 영화는 난해하다는 평을 듣는다. 반대로 누가봐도 무엇의 상징인지 뻔하고 심지어 그 의미를 구구절절 설명하려 드는 영화는 단순하다 못해 망한 영화다.

때문에 나는 영화의 주인공이 어떤 대상을 두고 '상징적이다'라는 대사를 하는 걸 상상하기 어려웠다. 앞서 말했듯 망한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너무도 당연한 금기였다. 기우가 상징적이라고 한 대상들은 모두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관객 역시 상징적이라고 생각할만한 연출이었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은 기우를 통해 보기좋게 그 금기를 역이용한다. 기우가 왜 상징적이라고 생각했는지 맞춰보라는 듯 말이다.

이 영화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이유는 영화 속 몇몇 장면이나 줄거리, 흔히 리뷰에서 언급하는 계급으로 나뉜 현실 사회가 떠올라서가 아니다. 기우가 가진 사고방식이 나와 너무 비슷해서, 내가 너무 기우와 같이 생각하고 살아와서, 기우 모습 속에 나 자신이 보였기 때문이다.

기우가 상징적이라고 표현했던 대상들은 기우로 하여금 계획을 세우고 또 다른 계획을 계속해서 붙여나가도록 만든다. 다시 말해 그 상징적인 것들은 곧 기우가 세우는 계획의 원천이다. '우와, 이거 굉장히 상징적이다!'고 감탄할 때 기우는 마치 계시를 받은 신도와도 같다. 그 상징은 계획을 세워도 되겠다는 파란불임과 동시에 어떻게 세워야 할지도 알려주는 표지판인 것이다.

그렇게 기우와 기정은 상징적인 것들을 만날 때마다 확장해나간 계획 속을 살아가고, 어느새 기택과 충숙까지 함께 계획에 합류한다. 계획이 틀어지기 직전 가족이 가진 술자리에서 기우가 가지고 있던 계획을 기억하는가? 모두가 터무니없는 상상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기우만큼은 진지하게 본인의 계획을 말하고 있었다. 폭우, 그리고 문광과 함께 상황은 계획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가족은 다시 아래로 아래로 떨어진다. 

그리고 기택이 말한다. 아빠에게 다 계획이 있으니 없던 일로 하자고. 뒤에도 그가 직접 말하지만 거짓말이다. 무계획이야말로 그가 여태 인생을 버텨 온 방식이다. 하지만 기택의 고백이자 충고를 듣는 순간에도 기우는 수석을 꼭 껴안고 있다. 그렇다. 그는 여전히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는 수석이 여전히 상징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상징이 바뀌었을 뿐이다.

아마도 기우는 수석으로 시작한 본인의 계획을 수석으로 마무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듯 하다. 하지만 다시 그 계획은 무너진다. 오히려 그 수석은 자신의 머리를 들이받는다. 그렇게 기우가 정신을 차리나 싶지만... 마지막 씬에 나오듯 전혀 아니다. 이제는 집착으로까지 느껴지는 그는 또 다른 계획을 세운다.

결말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그래, 너는 그런 사람이지. 나처럼. 어쩌다 마주한 상징적인 대상들에 끝없이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에 힘입어 계획을 세우고 그 의미와 계획 속에 살아가는 너와 나는 그런 인간인거야. 상징적인 것들에 부여한 의미를 바꾸고 계획을 틀지언정 무계획으로 살지는 못하는 우리.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곳곳에 감독의 의도 아래 연출된 것들로 가득찬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나는 이게 나쁠 것 없다고 생각한다. 답답하기는 하지만. 

다시 천천히 계획을 세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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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을 보았다. 주인공 기우는 누가봐도 감독이 의도한 연출에 '상징적이다'라는 말을 서슴없이 감탄하듯 내뱉는다. 영화에서 금기시할 법도 한 그 대사를 집에 돌아오는 길에 끝없이 되뇌었다.

영화를 취미 이상으로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내 일상에서 마주치는 장소와 시간, 물건과 사람에 상징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영화를 찍을 때도 그 상징적인 것들에 엄청 집착했으니, 내 삶을 여러 편의 영화라고 여기고 있다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치만 오늘만큼이나 상징적인 것들로 가득찬 하루가 있을까 싶다.

기껏해야 열심히 뛰는 게 전부인,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발목이 아파 절뚝일 수 밖에 없어 매번 고민하는 축구.

한창 석사 1년차 때 관심을 가지고 팠던, 지금의 관심사로 오기까지의 길 초입에 있었던 과학기술인력정책과 대학 R&D, 그래 내가 저걸 고민했었지, 연구했었지 싶었던 한 박사님의 발표. 

어쩌다보니 내 인생의 큰 전환점 그 시기에 위치한 서원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 원생 한 명의 결혼식. 직접 보거나 듣지는 못했지만 굉장히 전통적인 결혼식과 퀴어 축제의 분위기 속 정상적인 남녀 결합을 축복하면서 동시에 무지개 색깔로 7행시를 지었다는 목사의 주례.

퀴어 축제 행진과 나란히, 하지만 보도로 걷다가 결국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거리를 가로질렀던 시간.

보고싶었던 사람과 보고싶었던 영화와 이런 대화를 나눈 게 언제였던가 싶었던 산책.

고민 끝에 택시 대신 탄, 술냄새로 가득 찬 채로 그 산책 길을 거꾸로 다시 즈려밟으며 먼 길을 돌아온 심야버스.

이렇게 연출로 가득 찬 하루가 또 있었나. 

감상이 과한 듯 하니 자면서 영화 한 편을 끝내야겠다. 

언제부터였을까. '돈'은 내 머리 속에서 점점 차지하는 영역을 확장해갔다. 대학원생 떄만 하더라도 돈은 먹고 살 정도만 있으면 되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조건에 해당했다. 돈은 됐으니 일 대신 내가 하고픈 연구를 할 시간이 주어지길 바랐다. 물론 원하는 대로 되지만은 않았다. 일이 쌓였고, 돈도 쌓였다. 물론 지금 세보면 어차피 다 푼돈이지만, 모아놓고보니 그렇게 적은 돈도 아니다. 이번에 계약한 원룸 전세자금 중 대출금을 제외한 20%를 부모님께 손 안 벌리고 마련했다. 

입사 직후까지도 비슷한 생각을 가졌다. 돈은 상관없으니 직무나 빨리 바꿔줬으면 좋겠다는 바람 뿐이었다. 이러려고 취직한 게 아니다.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되어야 한다. 데이터 사이언스를 업으로 삼아 나중에 그것이 사회 곳곳에 자리 잡았을 때 그 사회를 연구할 수 있어야 한다. 회사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으로 계속해서 어필했다. 난 팀을 옮기고 말 것이다. 그거면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헷갈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 시작은 대학원 직속 선배 두 명이 글로벌 박사 펠로우십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던 것 같다. 그들은 하루종일 본인이 하고픈 연구를 하고도 연 2천만원을 받는다. 자의든 타의든 연구과제 몇 개를 더 하고 추가로 돈을 더 받겠지. 그럼 하루 절반을 자괴감을 느껴가며 일하다가 퇴근 후 저녁을 먹고서야 공부를 시작하는 내가 받는 돈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사실이 너무 견디기 힘들었다.

상장하면 연봉을 크게 올려주겠다는 회사의 말에 기대를 걸기 시작했다. '그래, 돈이라도 더 줘야지.' 회사는 작년 말 상장에 성공했다. 막상 상장을 하고 연봉 통보 시점이 다가오니 걱정도 들었다. '별로 안 올려주면 어떻게 하지?' 어차피 나는 전문연구요원이라 최소 올해 말까지는 회사에 붙잡혀 있을 수 밖에 없다. '어쩌겠어. 때 되면 이직해야지.' 더불어 이상한 고민도 머리속을 맴돌았다. '그런데 나는 얼마나 더 많이 받아야 하는거지?' 

나는 그토록 싫어하는 직무에서 최고 인사고과를 받았다. 예상한 일이었다. 연봉이 적어서 회사가 내 석사학위를 경력으로 쳐준 것인지 안 쳐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신입 치고 회사와 직무에 빠르게 적응했다. 새로운 환경임에도 빠르게 지쳤다. 분명 예상했지만 아이러니한 상황. 그래도 연봉을 올릴 구실을 찾았으니 다행으로 여겼다. 하지만 여전히 질문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다. '나는 얼마나 더 받아야 하나?'

내가 날 모르겠으니 눈에 보이는 건 나 아닌 다른 사람이다. 학벌 덕분에 주변 사람 연봉은 높기만 하다. 물론 그들은 대부분 기술자다. 나는 기술이 없다. 그래도 그렇지, 너가 나 2명만큼 일을 한다고? 뒤를 돌아보면 더 아이러니하다. (물론 군대를 다녀와야 했겠지만) 석사를 안하고 학부만 졸업하고 취직했어도 역시 지금의 두 배를 벌었다. 나는 한번도 그를 부러워한 적 없었다. 지금도 후회하진 않는다. 그냥 기분이 이상하다.

그리고 이번주에 나는 연봉 통보를 받았다. 대충 마음에 두고 있던 범위가 있었는데, 그 최소값에 살짝 못 미치는 수준. 회사는 비율로 따지면 꽤 많이 오른 숫자임을 강조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갑자기 머리 속이 아득해져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나왔다. 나는 얼마를 바랐던 건가. 그 금액을 바랐던 이유는 뭔가. 지금 드는 기분은 실망감인가. 이 돈은 대체 무슨 의미인가.

퇴근 후 스터디카페에서도 고민이 이어졌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임의로 정한 그 범위의 최소값은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 금액조차 맞춰주지 않은 회사가 너무도 괘씸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회사에게 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달라고. 많이도 아니고, 조금만. 그렇게 그 범위의 최소값은 내 자존심이 되었다.

메일을 쓰면서 내 몸값에 근거를 대기가 너무도 힘들다는 것을 처절하게 느꼈다. 구글을 통해 찾은 자료는 실적을 정량화해서 준비해 가라고 한다.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조언이다. 영업직이면 모를까. 물론 흡사 자원 조달처 역할을 하긴 했지만 팀으로 같이 한 일에 내가 그 중 몇 퍼센트를 기여했다고 어떻게 주장할까? 이에 더해 회사가 먼저 통보한 연봉이 어떻게 책정된지도 모르고, 심지어 전문연이라 Plan B도 없다. 쓸 말이 없었다. 꾸역꾸역 이유를 만들어서 조금만 더 달라고 썼다. 

그래도 나는 돈만 보는 사람은 아니다. 아니, 그런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연봉을 못 올려준다면 자기계발비 지원을 해달라고 덧붙였다. 바뀔 직무 역량 향상에만 쓰겠노라 약속했다. 

그 다음날 나는 내게 연봉을 통보했던 부문장과 대면했다. '그래서 얼마를 더 달라는 건가?' 우물쭈물. 메일에 썼던 대로, 그 조금이요. '얼마 안 되네?' 그리고 연봉은 오르지 않았다. 메일에 덧붙였던 자기계발비 사용 허락만 받았다. 지금 그 조금 올리느니 나중에 인사 고과를 잘 받아서 크게 한 번에 올려라. 어차피 월급 받아서 돈 벌기 힘들다. 회사 주식을 사라. 회사에서 성장해서 나중에 창업을 하는 건 어떻느냐. 회사가 정말 필요로 하는 인재에 대해서는 수시로 연봉 계약을 다시 체결할테고, 사이닝 보너스를 줄거다. ……

그 얼마 안되는 돈을 못 올려서, 회사가 올려주지 않아서, 내 자존심이 상했다. 아, 내 몸값이 이거구나. 나는 x원짜리 인간. 이 x원 모은다고 뭘 할 수 있나. 역시 주식이나 해야하나. 그래서 주변 회사 동료들이 시간 날 때마다 정보를 주고 받는 거였나. 아니 이직을 준비해야 하나. 어디로? 얼마를 보고?

고백하건대 앞서 토하듯이 쓴 글이 최근 내 머리속을 가득 채운 생각들이다. 나도 이런 잡념에 빠져있는 내가 한심하다. 잡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떨쳐내지 못해 더 한심하다. 회사가 그 조금을 올려줬더라면 고민이 사라졌을까? 모르겠다. 1년이 채 안되어 돈이 내 머리 속 영역을 가득채웠다는 사실이 소름끼치도록 놀랍다. 

어서 이 늪과 다를 바 없는 곳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이 구토물을 변기물과 함께 치워버려야 한다. 

그 x원짜리 인간은 내가 아니다. 

내 몸값을 매기지 말라. 

    


올해 설 명절 기간에 맞추어 사읽었으니 책을 덮은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대학원에 남아있었다면 명절에 광주와 곡성으로 내려가는 것을 정말 싫어했겠지만, 회사를 다니다보니 그래도 '일 안하는' 시간이 생긴다는 생각에 최근 지인들이 연달아 내놓은 책을 구매해 전자책에 저장해두고 읽었다. 과정남이 쓴 <과학기술의 일상사>, 김우재 교수가 쓴 <플라이룸>, 그리고 양승훈 교수의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를 샀는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에 먼저 손(가락)이 갔다.

물론 어디서 떠들 정도는 아니지만 다른 글에 썼듯 나 역시도 조선업과 거제를 연구한 적 있다. (https://stpforerbody.tistory.com/27) 석박사모험연구사업(이하 모험연구)이라고, 신문기사 몇 개를 보고서는 뭔가 느낌이 왔던 나와 한 때 운동하고 다닌 경험을 바탕으로 산업과 노동 정책에 관심있던 형 둘이서 생각이 맞아 다른 두 명을 더 불러모아 제안서를 작성했는데, 덜컥 몇 백만원 지원을 받고서 막무가내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가며 연구를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제안서를 쓰는 시점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이건 연구감이다'라고 생각한 계기가 바로 양승훈 교수의 글이었다. 대표적으로 경향신문 기고문이 있고, 이외로도 그의 블로그 글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 찾으려니깐 못 찾겠다. 여하튼 과학기술정책을 공부하면서도 산업정책에는 도저히 흥미를 붙이기가 힘들었는데,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책이 나오기 전부터 그가 조선업과 거제를 바라볼 때 중요하게 여긴 '가족'과 같은 미시적 요소들을 바라보면 재밌게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 때 한창 이정동 교수의 <축적의 시간>도 열심히 읽고 있었고, 학위논문 연구를 통해 지역 산학협력에 대한 논문이나 책도 살펴보고 있었다. 조선업이라는 한 산업과 함께 몰락하고 있다는 거제라는 도시에 내려가야만 했다. 그 곳에서 '조선업 위기'를 견뎌내고 있는 노동자들과 그 가족, 더 나아가 학생들을 만나야 했다.

우리는 '모험연구'라는 단어에 걸맞는 활동들을 했다. 전/현업 노동자들과의 인터뷰는 거진 술과 함께 진행되었고, 꼭 조선소 노동자들이 아니더라도 다들 산업에 대한 자부심만큼은 대단해서 인터뷰를 거절당하는 일은 없었다. 발주사 감독관이 주로 머문다는 아파트부터 창원의 어느 고시원까지 다양한 곳에서 머물면서 부단히 움직였다. 그렇게 수집한 자료에 비해 마무리로 작성한 보고서가 깔끔하지 못했던 것 같지만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사실 책을 읽고 나서는 보고서를 아무리 잘 썼어도 이 책의 아류밖에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결과물에 대한 아쉬움도 별로 남지 않는다.

잡설이 길었는데 본격적으로 책 내용을 살펴보자.

책은 프롤로그에서부터 '중공업 가족'이라는 중소단위의 조직을 중심으로 층위를 자유롭게 다루면서도, 흔히 조선업 산업을 다룰 때 주로 언급하는 '세계 물동량', '빅 사이클'과 같이 산업을 아우르는 큰 개념이나 3대 조선업체의 수주량이나 해양플랜트 산업 진입 전략과 같은 회사를 최소 단위로 하는 것들에는 깊이 천착하지 않는다. 대신, (아마도 저자가 대우조선해양에 다니며 직접 경험했을) 개인이 당장 마주하는 회사 안팎의 조직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필요할 때마다  TV 프로그램에서 볼 법한 가상의 재연코너가 등장하니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나 역시 연구를 하면서 꿈꿔왔던 기존 '조선업 위기' 담론의 전복이 일어난다. 기존 담론은 마치 예정된 것처럼, 너무도 거시적인 추세라 어쩔 수 없이 찾아온 불황과 그에 따른 구조조정을 이야기한다. 이른바 '말뫼의 눈물' 담론은 그 안의 노동자들과 그 가족, 거제라는 도시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저 어쩔줄 몰라하는 사람들과 침체된 분위기만 사진이나 영상으로 담을 뿐이다. 

반면 책은 거꾸로 노동자들과 그들의 가족, 그들이 사는 거제가 어떻게 모이고 만들어졌는지를 보이고 조선업 위기를 그 사이에 생겨나는 균열로 읽어낸다. 바로 중공업 가족 프로젝트의 실패다. 이것이 기존 담론을 전복한다고 해서 그와 정면으로 충돌하거나 양립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중공업 가족 프로젝트를 살펴봄으로서 우리는 기껏 자세히 들여다봐야 개별 회사의 전략과 중국 및 동남아에 비해 비싼 노동력을 고려 대상으로 삼았던 산업 정책에 조직문화, 도시, 작업장/랩실 엔지니어로서의 노동자라는 층위를 더할 수 있다. 

책의 앞부분이 조선소 울타리를 넘나들며 '중공업 가족 프로젝트'가 어떻게 착실히 진행되었고 또 어떻게 실패에 직면해있는지를 보였다면, 뒷부분은 '작업장 엔지니어'와 '랩실 엔지니어'가 공존하는 조선소 안으로 다시 들어간다. 저자는 명시하지 않았지만 조선업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해양플랜트 사업 진출 실패(라고까지 하기는 어려울 수 있겠으나...)가 이른바 '엔지니어-노동자 구성 포트폴리오' 고민 부족에 기인한다고 보는 듯 하다. 현장에 강한 '작업장 엔지니어'와 이론에 강한 '랩실 엔지니어'를 어떻게 배치하고 조화시킬 것인가? 각각 숙련도와 임금에 있어 뚜렷한 장단점을 지닌 직영과 하청 노동자를 어떤 비율로 조합할 것인가? 기업들이 "궁극적으로 엔지니어들이 익숙하게 느끼는 작업 방식 자체를 질문하고 문제 삼는 작업"으로 가득찬 해양플랜트 사업에 진출한 이상 대답해야만 하는 질문들이다. 

조선업 회사는 그 고민을 거의 하지 않은 듯 하지만, 저자는 그나마 책 <축적의 시간>이 같은 질문을 다루었다고 본다. 하지만 그 책에서 내놓은 '산학연계 강화'라는 해법은 공허한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랩실 엔지니어들의 지식이 '현장'의 노하우를 대체할 정도로 압도적이지 않았다"면서, "배우는 곳은 학교이고, 일하는 곳은 일터라는 틀에 박힌 이분법을 묵인"하는 교수 관점의 산학협력이 가진 한계를 꼬집은 것이다. 

저자가 내놓는 대답은 '산학연계'에서 한발짝 더 나아간 '산학일체'다. "일하는 엔지니어들이 끊임없는 학습을 통해 자신의 공학 능력을 발전시켜야" 한다며 "중공업 엔지니어들이 살아 있는 지식을 교류하기 위한 장은 여전히 척박"한 부산, 마창진(마산, 창원, 진해), 거제가 단순한 산업도시가 아닌 제조업의 실리콘밸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리콘밸리라는 단어에서 약간의 배신감(?)과 함께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지만, 저자가 생각하는 실리콘밸리의 모습이 무엇인지 좀 더 살펴보자. 아마도 "('현장 중심' 기풍 하에서 '쟁이 근성'에 기초하는 작업장 엔지니어와 달리) 지금의 우수한 랩실 엔지니어들은 오픈소스판에서 뛰노는 해커처럼 끊임없이 새로운 무언가를 배워 일을 해내려고" 하는데, 지금은 "조선소 현장을 제외하고 제조업의 가장 첨단 기술을 경험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곳"은 판교, 서울대나 카이스트 정도이고 이 둘 사이 거리는 너무 멀기 때문에 '산학일체'의 환경 조성이 힘들다는 것이다. 이 둘을 같은 공간에 둔다면 실리콘밸리에 걸맞는 곳이 되지 않겠나하고 묻는 듯 하다.

문제는 여기서 저자가 '작업장 엔지니어'의 대척점에 자리하던 '랩실 엔지니어'의 위치를 바꾸었다는 점이다. 독자는 암묵지와 형식지, 현장과 대학, 실전과 이론 등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대립항으로서의 '랩실 엔지니어' 개념을 받아들이고 있었고, 저자 역시 그에 기대어 두 단어를 사용해왔는데, 알고보니 그가 그리는 (우수한) '랩실 엔지니어'는 코딩하는 computer science geeks에 가까운, 흔히 실리콘밸리형 인재라 불리는 '문제해결형 엔지니어'였던 것이다. 이렇게 '랩실 엔지니어'를 새롭게 바라보면 당연하게도 두 엔지니어 개념이 가지고 있던 갈등은 쉽게 해소된다. 둘을 같은 공간에 두고 서로 자주 만나도록 '밋업' 등의 행사를 개최하면 실리콘밸리와 같이 저절로 혁신이 일어날 것처럼 보인다.

물론 저자는 앞서 내가 비판적으로 요약한 것보다는 더 상세한 '산학일체' 방안을 설명했고, (석사 수준 밖에 아니지만) 산학협력 정책을 연구해 본 나 역시 큰 방향에 있어 그의 주장에 동의하는 바다. 문제는 효과적인 산학협력이라는 뿌리깊은 난제를 '랩실 엔지니어'라는 개념의 위치를 살짝 바꿈으로서 쉬워보이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는 저자가 '엔지니어는 어떻게 성장하는가?'라는 질문을 두고  '오픈소스'와 '해커 문화'를 다소 장황하게, 하지만 끝맺음이 불분명하게 다룬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에 따르면 "오픈소스가 '현장'이라는 필드를 딱히 필요로 하지 않는 분야"인 IT 계열과 자동화된 산업에서는 유효했을지 모르지만 조선업, 특히 해양플랜트 산업에서는 결국 프로젝트를 통한 현장 경험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 역시 오픈소스나 해커 문화는 잘 모르지만) 오픈소스 역시 현장을 만나야 실제 서비스와 사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책에서 예시로 든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는 왜 논란만 가득한채 실제 서비스와 사업으로 이어지지 않는가? 오픈소스와 해커 문화에 대한 입장을 확실히 하지 않은 채 '랩실 엔지니어'를 그 속의 해커들로 바라보고 더 나아가 '산학일체' 해법에도 그 둘을 상당 부분 불러왔기에 책의 주장은 설득력을 일부 잃고 만다.

이후 책은 조선업을 둘러싼 낙관론에 대해 비판적으로 응답하며 산업을 바라보더라도 눈길을 단순히 시장을 비롯한 외부 환경에만 둘 것이 아니라 국내에서 조선업을 구성하는 지역과 조직에도 두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더 나아가 산업과 너무도 강하게 결합된 지역과 조직 체계에서 발생하는 문제 역시 다룬다. 조선업을 바라보는 기존 관점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물론 '조선업 위기'를 다룬 각종 르포를 접한 사람이라면 그 내용은 익숙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책만큼 차별화된 관점으로 깊이 들어간 경우는 드물다. 여전히 저자가 곳곳에 연구가 더 필요한 지점들을 남겨놓았기에,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그 지점을 파고들 수 있기를 희망한다.  

  





대학제도세미나를 위해 정리한 Academic Labor Reference List.

분위기 전환을 위해 일단 이 뮤비부터 보는 것을 추천...ㅋㅋ(Ode to Academic Labor, https://youtu.be/CmlvSrAl9Qo

대충 살펴보니 외국에서도 Academic Labor는 주로 인문학 분야 연구자들의 관심사로 보인다. 테뉴어 교수나 대학원생 보다는 Contingent faculty position이라 불리는 비전임교수와 관련한 주제를 다루는 저작물이 많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STEM 연구자들은 대학이 아닌 곳에서도 일자리가 많아 대학에서의 노동 문제가 그렇게 절박한 상황이 아닌 반면, 인문학 연구자들에게는 몇 없는 선택지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흔히 '시간강사'라 불리는 분들 중 한국문학을 공부하고 글쓰기 강좌를 하는 분들이 많은 것처럼 미국에서 역시 보통 linguistic 등을 연구하고 writing courses에서 강사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 하다.

내가 자료 찾는 스타일이 하나씩 내용을 파악하면서 범위를 늘려 나가기보다 일단 최대한 긁어모으고 추려내면서 내용을 읽기 때문에 각 자료에 대한 간단한 첫 인상은 계속해서 업데이트 할 예정. 일단은 스터디원분들한테 드리는 게 먼저라서...  

1. Journals

- Workplace: A Journal for Academic Labor (Publisher: Institute for Critical Education Studies, The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현재 주소는 https://ices.library.ubc.ca/index.php/workplace, 옛날 Issue는 여기에: http://louisville.edu/journal/workplace/issue5/back_issues.html)

Academic Labor: Research and Artistry (Publisher: Center for the Study of Academic Labor (CSAL), Colorado State University. https://digitalcommons.humboldt.edu/alra/) 

- Journal of Collective Bargaining in the Academy (Publisher: National Center for the Study of Collective Bargaining in Higher Education, https://thekeep.eiu.edu/jcba/)


2. Books

Rhoades, G. (1998). Managed professionals: Unionized faculty and restructuring academic labor. SUNY Press. (http://www.sunypress.edu/p-2726-managed-professionals.aspx)

Managed Professionals is a source book on the negotiated terms of faculty work and a sociological analysis of the restructuring of faculty as a professional workforce. Based on a sample of forty-five percent of the more than 470 negotiated faculty agreements nationwide (which cover over 242,000 faculty), the book offers extensive examples and analysis of contractual provisions on: salary structures; retrenchment; use and working conditions of part-time faculty; use of educational technology (in distance education); outside employment; and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Focused on the ongoing negotiation of professional autonomy and managerial discretion, the book offers insights into the broad restructuring of faculty, with conclusions that extend beyond unionized faculty to all of academe. Faculty are managed professionals, and are increasingly so. Managers have much flexibility, and as they seek to reorganize colleges and universities, the exercise of their flexibility serves to heighten the divisions within the academic profession and to reconfigure the professional workforce on campus.

Krause, MonikaNolan, MaryPalm, Michael and Ross, Andrew, eds. (2008) The university against itself: the NYU strike and the future of the academic workplace. Temple University Press, Philadelphia, USA. (https://www.jstor.org/stable/j.ctt14bszhh)

During the last two decades, many U.S. universities have restructured themselves to operate more like corporations. Nowhere has this process been more dramatic than at New York University, often touted as an exemplar of the "corporate university." Over the same period, an academic labor movement has arisen in response to this restructuring. Using the unprecedented 2005 strike by the graduate student union at NYU as a springboard, The University Against Itself provides a brief history of labor organizing on American campuses, analyzes the state of academic labor today, and speculates about how the university workplace may evolve for employees. All of the contributors were either participants in the NYU strike-graduate students, faculty, and organizers-or are nationally-recognized writers on academic labor. They are deeply troubled by the ramifications of corporatizing universities. Here they spell out their concerns, offering lessons from one historic strike as well as cautions about the future of all universities. Contributors include: Stanley Aronowitz, Barbara Bowen, Miabi Chatterji, Maggie Clinton, Andrew Cornell, Ashley Dawson, Stephen Duncombe, Steve Fletcher, Greg Grandin, Adam Green, Kitty Krupat, Gordon Lafer, Natasha Lightfoot, Micki McGee, Sarah Nash, Cary Nelson, Matthew Osypowski, Ed Ott, Ellen Schrecker, Naomi Schiller, Sherene Seikaly, Susan Valentine, and the editors.

참고용 Review: 
https://doi.org/10.1177%2F0094306109356659aa
https://doi.org/10.1111/j.1748-5959.2009.00231.x

Hutcheson, Philo A. (2000) A Professional Professoriate: Unionization, Bureaucratization, and the AAUP. Vanderbilt University Press.

Starting with the question "How have professors and educational institutions responded to pressures to be professional yet act bureaucratically," Philo Hutcheson uses federal and AAUP records and surveys and blends historical research and sociological analysis to develop a full understanding of the problem. With the dramatic expansion of the professoriate following World War II came increasing tensions between the professor's perceived traditional status as an autonomous professional on the one hand and new role as a bureaucrat subject to institutional authority and responsible for departmental and committee assignments on the other. In this increasingly conflicted realm, the AAUP functioned as a key intermediary, dealing with such issues as tenure, salary, contracts, and even faculty strikes. 

Hutcheson examines how tensions between the requirements of institutional bureaucracies and the norms of the academic profession resulted in contentiousness and conflict within the national AAUP, between administrators and faculty members on individual campuses, within the ranks of faculties themselves, and even deep in the consciences of many concerned individuals. The book analyzes the association's ability to respond effectively and to balance the values of collegial representation with the powers of collective bargaining. It thus offers a detailed and authoritative examination of the AAUP's search for ways to sustain professionalism while dealing with the fundamental changes in the nature of the professoriate in the post-World War II era.

Vostal, F. (2016). Accelerating Academia: The Changing Structure of Academic Time. London: Palgrave Macmillan UK. (https://www.palgrave.com/kr/book/9781137473592)

Academics are reeling under authoritarian management, marketisation and audits. A rewarding occupation is situated in an institutional context that’s not so benign. Speed is a key pressure in a profession where deliberation and a measured pace are especially important. Filip Vostal asks questions about this scenario. His Accelerating Academia: The Changing Structure of Academic Time is an opportune intervention on a pressing issue, assessing the literature and making his own empirical contribution.

(... from 참고용 review: https://blogs.lse.ac.uk/lsereviewofbooks/2017/08/18/book-review-accelerating-academia-the-changing-structure-of-academic-time-by-filip-vostal/)

DeCew, Judith W. (2003). Unionization in the Academy: Visions and Realities. Rowman & Littlefield Publishers (https://rowman.com/ISBN/9780847696703/Unionization-in-the-Academy-Visions-and-Realities)

Unionization in the Academy is an authoritative, balanced, and comprehensive account of academic unions—their history, purpose, and the conflicts they cause. Judith Wagner DeCew takes on the central issues, including unions for part-time and adjunct faculty, graduate student unions, and collective bargaining. The book also includes a history of the rise of academic unions and its watershed moments, such as the U.S. Supreme Court's 1980 Yeshiva decision. A series of important articles by other observers supplements DeCew's insights and arguments. This combination yields a detailed survey of the arguments for and against academic unions of all kinds. Are unions a threat because they create adversity and conflict with academic values? Or do unions support those values by creating community and collegiality? Unions in Academia is the essential reader for faculty, students, administrators, and anyone else trying to answer those questions.

HERMAN, D. M., & SCHMID, J. M. (2003). Cogs in the classroom factory: the changing identity of academic labor. Westport, Conn, Praeger.

Brings together essays by tenure-track faculty, adjuncts, and graduate employees from a variety of disciplines and geographical regions in an analysis of the changing identity of academic labor. The essays included suggest alternatives for responding to the ongoing erosion of tenure and academic freedom and reshaping the academic workplace.


Contributors discuss the impact of today's casualized academic job market on faculty's self-perception, political action, and responses to the changing nature of higher education. The essays included in this collection address a number of topics, including: today's academic labor situation from an educational history perspective, the development of an academic worker identity via the build-up to a strike, the graduate-employee union movement, unionization as a social justice movement, faculty unionization and workplace solidarity, the potential culture clash between professional and blue-collar unions, the faculty's complicity in the creation of a two-tiered job system, and the othering of adjunct and non-tenure-track faculty.

By focusing on the state of the academic job system on their campuses, the contributors to this volume suggest some alternatives for responding to the ongoing erosion of tenure and academic freedom in higher education and reshaping the academic workplace.


How the university works: Higher Education and the Low-Wage Nation

https://academictrap.files.wordpress.com/2015/03/marc-bousquet-how-the-university-works-higher-education-and-the-lowwage-nation.pdf

As much as we think we know about the modern university, very little has been said about what it's like to work there. Instead of the high-wage, high-profit world of knowledge work, most campus employees—including the vast majority of faculty—really work in the low-wage, low-profit sphere of the service economy. Tenure-track positions are at an all-time low, with adjuncts and graduate students teaching the majority of courses. This super-exploited corps of disposable workers commonly earn fewer than $16,000 annually, without benefits, teaching as many as eight classes per year. Even undergraduates are being exploited as a low-cost, disposable workforce.

Marc Bousquet, a major figure in the academic labor movement, exposes the seamy underbelly of higher education—a world where faculty, graduate students, and undergraduates work long hours for fast-food wages. Assessing the costs of higher education’s corporatization on faculty and students at every level, How the University Works is urgent reading for anyone interested in the fate of the university.


Steal this University: The Rise of the Corporate University and the Academic Labor Movement

https://www.researchgate.net/profile/Ivo_De_Sousa/post/Can_we_investigate_corporate_entrepreneurial_intentions_in_educational_institutes/attachment/59d624ce79197b80779831ee/AS%3A314904119054338%401452090400464/download/HE+Steal_This_University.pdf

Steal This University explores the paradox of academic labor. Universities do not exist to generate a profit from capital investment, yet contemporary universities are increasingly using corporations as their model for internal organization. While the media, politicians, business leaders and the general public all seem to share a remarkable consensus that higher education is indispensable to the future of nations and individuals alike, within academia bitter conflicts brew over the shape of tomorrow's universities. Contributors to the volume range from the star academic to the disgruntled adjunct and each bring a unique perspective to the discussion on the academy's over-reliance on adjuncts and teaching assistants, the debate over tenure and to the valiant efforts to organize unions and win rights.


Will Teach for Food: Academic Labor in Crisis 

https://www.upress.umn.edu/book-division/books/will-teach-for-food

Academic labor has never been more vulnerable to exploitation, or more galvanized into action. Threats to tenure, job shortages for new Ph.D.s, and an increasing reliance on poorly paid graduate students and adjunct faculty for teaching are the harsh reality on campuses across the nation. Will Teach for Food provides a clarion call to academic workers, summoning them to take action against the continued decline in working conditions on American campuses.

When graduate students at Yale University held a “grade strike” during the 1995-96 academic year, they were protesting policies such as downsizing, subcontracting, and outsourcing-strategies currently wreaking havoc on the larger U.S. workforce. The debates at Yale mirror those on many campuses: whether graduate student teaching assistants are students or employees of the university; whether faculty are management or staff; what constitutes a reasonable teaching load and fair compensation.

In Part I of Will Teach for Food, participants describe the Yale student strike and examine what workers on other campuses can learn from this action. In Part II, activists and scholars place the challenge to academic workers in the context of U.S. labor history and assess the impact of university “corporatization” on the communities that surround them and on higher education as a whole.

Chalk Lines: The Politics of Work in the Managed University

The increasing corporatization of education has served to expose the university as a business—and one with a highly stratified division of labor. In _Chalk Lines_ editor Randy Martin presents twelve essays that confront current challenges facing the academic workforce in U.S. colleges and universities and demonstrate how, like chalk lines, divisions between employees may be creatively redrawn. While tracing the socioeconomic conditions that have led to the present labor situation on campuses, the contributors consider such topics as the political implications of managerialism and the conceptual status of academic labor. They examine the trend toward restructuring and downsizing, the particular plight of the adjunct professor, the growing emphasis on vocational training in the classroom, and union organizing among university faculty, staff, and graduate students. Placing such issues within the context of the history of labor movements as well as governmental initiatives to train a workforce capable of competing in the global economy, _Chalk Lines_ explores how universities have attempted to remake themselves in the image of the corporate sector. Originally published as an issue of _Social Text_, this expanded volume, which includes four new essays, offers a broad view of academic labor in the United States. With its important, timely contribution to debates concerning the future of higher education, _Chalk Lines_ will interest a wide array of academics, administrators, policymakers, and others invested in the state—and fate—of academia

Professors in the Gig Economy: Unionizing Adjunct Faculty in America. (2018).

(https://jhupbooks.press.jhu.edu/title/professors-gig-economy)

One of the most significant trends in American higher education over the last decade has been the shift in faculty employment from tenured to contingent. Now upwards of 75% of faculty jobs are non-tenure track; two decades ago that figure was 25%. One of the results of this shift—along with the related degradation of pay, benefits, and working conditions—has been a new push to unionize adjunct professors, spawning a national labor movement. Professors in the Gig Economy is the first book to address the causes, processes, and outcomes of these efforts.

Kim Tolley brings together scholars of education, labor history, economics, religious studies, and law, all of whom have been involved with unionization at public and private colleges and universities. Their essays and case studies address the following questions: Why have colleges and universities come to rely so heavily on contingent faculty? How have federal and state laws influenced efforts to unionize? What happens after unionization—how has collective bargaining affected institutional policies, shared governance, and relations between part-time and full-time faculty? And finally, how have unionization efforts shaped the teaching and learning that happens on campus?

Bringing substantial research and historical context to bear on the cost and benefit questions of contingent labor on campus, Professors in the Gig Economy will resonate with general readers, scholars, students, higher education professionals, and faculty interested in unionization.


*Contextualizing and Organizing Contingent Faculty https://rowman.com/ISBN/9781498539548/Contextualizing-and-Organizing-Contingent-Faculty-Reclaiming-Academic-Labor-in-Universities 특이사항: 박성옥, 최소영의 한국 사례 다룬 Chapter 있음 - The Beginnings of Resistance among Part-time Instructors in South Korea)

*Contingent Academic Labor: Evaluating Conditions to Improve Student Outcomes

*The Great Mistake: How We Wrecked Public Universities and How We Can Fix Them

*Reclaiming the Ivory Tower: Organizing Adjuncts to Change Higher Education (http://www.reclaimingtheivorytower.org/)

*Unionization in the Academy: Visions and Realities (https://rowman.com/ISBN/9780847696703/Unionization-in-the-Academy-Visions-and-Realities)

3. Articles and Reports

- The Effects of Graduate-student Unionization on Stipends, Tom Schenk JR.(http://tomschenkjr.net/wordpress/wp-content/uploads/2009/07/egsus-rhe.pdf)

- The state of graduate student employee unions, Economic Policy Institute (https://www.epi.org/publication/graduate-student-employee-unions/)

- ORGANIZING THE PROFESSORIATE: FACULTY UNIONS IN HISTORICAL PERSPECTIVE. Institute of Higher Education, University of Georgia (http://ihe.uga.edu/about/ihe-report-article/organizing-the-professoriate-faculty-unions-in-historical-perspective/)

- NLRB filing on BRIEF OF AMICUS CURIAE AMERICAN, ASSOCIATION OF UNIVERSITY PROFESSORS IN SUPPORT OF PETITIONER UNITED AUTOMOBILE WORKERS, AFL-CIO, (AAUP, https://www.aaup.org/NR/rdonlyres/F81B1D26-9A50-46D5-AA5F-47D28D0D3D78/0/nyu.pdf)

- Rogers 논문 https://digitalcommons.ilr.cornell.edu/ilrreview/vol66/iss2/8/


4. Archives, blogs, related organization websites, and others

- Bibliography of Resources on Labor in College Composition, Conference on College Composition & Communication (http://cccc.ncte.org/cccc/labor/bibliography)

- Readings on Academic Labor, Coalition of Graduate Employees (AFT 6069) (https://www.cge6069.org/resources/readings_on_academic_labor/)

- (Marc Bousquet, the author of How the university works also blogs about university, and this is his own reading list for academic labor: https://www.chronicle.com/blogs/brainstorm/academic-labor-bookshelf-1/6045)

- Center for the Study of Academic Labor, Colorado State University (https://csal.colostate.edu/)

- https://www.aaup.org/

- https://academography.org/

- http://utotherescue.blogspot.com/

- Academic Labor Relation @ Rutgers University (https://academiclaborrelations.rutgers.edu/): 대학 내 노동 관련 부서

- https://tomprof.stanford.edu/

- https://academictrap.wordpress.com/

- Chronicles' list: https://www.chronicle.com/blogs/ticker/category/profession/academic-labor

- NY Times debate session on graduate students and adjuncts' unionization: https://www.nytimes.com/roomfordebate/2015/05/14/should-graduate-students-and-adjuncts-unionize-for-better-pay

- https://www.zotero.org/tomschenkjr/items/tag/graduate-student%20unions (by Tom Schenk, author of one of the papers mentioned above)

- https://www.zotero.org/academography/items (by Academography)

- https://www.theatlantic.com/education/archive/2015/04/graduate-students-of-the-world-unite/390261/

(More to my research interest) 

- http://blogs.lse.ac.uk/impactofsocialsciences/the-accelerated-academy-series/

원래 명절 연휴동안 읽은 다른 책을 리뷰하려다가, 전자책으로 읽고서는 따로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지 못한 움베르토 에코의 <논문 잘 쓰는 방법>이 눈에 밟혔다. 졸업논문 쓰면서 아무도 논문 작성법을 가르쳐주지 않는 현실에 한숨 쉬며 이런 저런 책을 뒤적거렸더랬다. 그 중 한권인데, 나름 실용적인 팁이 많아서 재밌게 읽었다. 물론 학문 분야나 시대 때문에 적용하기 힘든 부분도 많았지만, 그래도 꽤나 유용한 책이었다.

1. 졸업 논문이란 무엇이며 어디에 필요한가

(Ph.D. 논문의 의미) 

"자신이 전념하는 학문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학자라는 걸 보여 주어야 한다." (p.25)

"논문을 작성한다는 것은 자신의 개념을 체계화하고 자료를 정리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p.32)


2. 테마의 선택

"분야를 제한할수록 작업은 더욱 잘 이루어지고 더욱 확실하게 진행된다 (...)" (p.44)

"소박할지라도 한계를 확정하고, 그 한계 안에서 무언가 결정적인 것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p.53)

"연구는 이러한 대상(앞서 켄타우로스 예를 들었지만 모든 연구대상을 의미)에 대해 전혀 언급되지 않은 것들을 말하거나 또는 이미 언급된 것들을 다른 시각에서 재조명해야 한다." (p.72)

"정치적 관심이 많은 학생이 <18세기의 어느 식물학 저술가의 지시 대명사의 반복 사용>에 대한 논문을 쓴다고 해서, 자신의 정치적 관심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p.80)
-> 보다 실천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 정치사회적 관심을 가진 - 학생일 경우 자신의 경험이나 자신이 생각하는 소명과 연결된 논문을 작성하고 싶을 수 있겠지만 지식 습득과 자료 조사 방법을 익혀 과학적 연구를 수행하는 경험을 쌓기 위해서는 오히려 그와 동떨어져 보이는 주제로 논문을 작성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맥락)

(정치적 성격을 가진 논문이 쉽게 피상성의 위험에 빠지는 이유에 대해) "수많은 <미국식> 사회 연구 방법론이 수치 및 통계적 방법을 물신화함으로써, 실제적인 현상의 이해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대량의 연구를 산출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정치화된 수많은 젊은이들은 기껏해야 <사회 측정법>에 지나지 않는 그러한 사회학에 대하여 불신의 태도를 취하고 있으며, 또한 그것은 이데올로기적 껍데기로 둘러싸인 체제에서 단지 기능적인 역할을 할 뿐이라고 비난한다." (p.83)


3. 자료 조사

(재인용은 되도록 피하라) 

"내 연구 대상에 의해 확정된 범위 안에서 출전들은 언제나 직접적인 것이어야 한다(...)" (p.113)

"여러분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단 하나, 마치 원문을 직접 살펴본 것처럼 간접적인 출전에서 인용하는 일이다." (p.115)

"간접적인 출전에 의존할 때(그것을 명백히 밝히면서) 주의할 점은, 하나 이상의 출전에서 확인을 하고, 어떤 인용이나 사실 또는 견해에 대한 언급이 여러 저자에 의해 확인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의심해 보아야 한다. 그래서 그 자료에 의존하는 것을 피한다든지, 아니면 원본에서 확인해야 한다." (p.116)


(징징대지 마라(...))

"어떤 테마에 대해 거의 또는 전혀 아는 것도 없이 지방의 도서관에 가서 세 번의 오후를 보낸 다음에는, 충분히 명백하고 완벽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p.209)


(문헌을 읽어야 하는가? 어떤 문헌을 어떻게 읽어야 하나? - 본문은 책으로 되어 있으나 모든 참고문헌에 해당하기도. 다만, 에코는 문학 분야 논문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은 유의)

"대개 책에 대한 논문은 두 가지 유형의 책들, 즉 언급의 대상이 되는 책들과 언급에 도움을 주는 책들에 의존한다는 사실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연구의 대상이 되는 텍스트들이 있고, 또한 그 텍스트들에 관한 문헌들이 있다. (...) 우리는 원래의 텍스트와 비평적 문헌을 구별해야 한다. (...) 우선 그 배경을 이해하기 위하여 곧바로 아주 일반적인 비평적 텍스트 두세 권을 읽는다. 그런 다음 직접 원래의 저자를 접하여 무엇을 말하는가 이해하도록 한다. 그러고 나서 나머지 비평적 문헌을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새로 얻은 생각들에 비추어 저자를 재검토한다. 하지만 이것은 지극히 이론적인 충고이다." (p.213-4)


4. 작업 계획과 카드 정리

(어차피 계속해서 다시 쓰게 될 서문에 잠정적인 연구 내용과 결론을 담아 생각을 내 중심선에 고정시켜 이탈을 방지하라는 의미)

"졸업 논문 작업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들 중의 하나는 바로 제목, 서문, 그리고 최종적인 차례를 쓰는 일이다 - 말하자면 모든 저자들이 마지막에 하는 일들이다." (p.216)

"테마의 범위에 초점을 맞춘 다음에 거기에서 단 하나의 구체적인 관점만을 다루기로 한다는 의미이다." (p.219)

"서문이란 단지 차례에 대한 분석적인 언급일 뿐이다." (p.221)

"차례와 서문을 쓸 수 있을 때까지는 여러분은 그것이 여러분의 논문이라고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여러분이 서문을 쓸 수 없다면, 그것은 어떻게 출발해야 할지 아직 명백한 생각을 갖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 여러분이 어떻게 출발해야 할지 명백한 생각을 갖고 있다면, 최소한 어디에 도달하게 될지 <의혹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의혹을 토대로 여러분은, 마치 이미 달성한 연구 작업의 서평을 쓰듯이 서문을 써야 한다. 지나치게 앞으로 나아간다고 두려워하지 말라. 여러분이 뒤로 되돌아갈 시간은 언제나 있다." (p.223)

"(최종 버전에서의) 서문은 신중해야 하고, 또한 논문이 나중에 줄 수 있는 것만을 약속해야 한다. (...) 서문은 또한 무엇이 논문의 중심이고 무엇이 주변인가 확정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p.224)

"(가설적인 차례의 의미) 실험적인 성격의 논문에서는, 몇 가지 증거에서 출발하여 이론을 제기하는 귀납적 계획을 세우고, 반면에 논리적이고 수학적인 논문에서는, 먼저 이론을 제기한 다음 구체적인 실례들에 대해 가능한 적용을 하는 연역적 계획을 세울 수 있다." (p.225)


(인용 문헌 정리하기)

"여러분은 각 장들의 번호가 잘 매겨진 작업 계획(또는 가설적인 차례, 4.1 참조)을 준비한 다음에, 차례차례 책들을 읽으면서 밑줄을 치고 또 각 장들에 해당하는 약자들을 모서리에 표시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작업 계획의 각 장들 옆에다 주어진 책에 해당하는 약자와 페이지 숫자를 기록할 것이고, 그럼으로써 원고를 작성하는 순간에 어떤 인용 또는 생각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지 알게 된다. (...) (이는) 작업 계획이 이미 결정적으로 작성되어 있을 것을 전제로 한다." (p.232-3)

"복사물의 소유는 책 읽기를 방해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일이 발생한다. 그것은 일종의 수집 현기증이며, 정보의 신자본주의다. 복사물에서 자신을 지키도록 하라. 일단 복사를 하자마자 읽고 곧바로 기록하라. 정말로 시간에 쫓기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전의 복사물을 소유하기(말하자면 읽고 기록하기) 이전에는 새로운 것을 복사하지 말라. 어떤 텍스트를 복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사실은 내가 많은 것들을 모르고 있는 경우가 있다. 마치 내가 그것을 읽은 것처럼 안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p.247)

"참고 문헌 카드는 책을 찾는 데 필요한 것이고, 독서 카드는 최종적인 참고 문헌 목록에 기록하듯이 그 책에 대해 말하고 인용하는 데에 필요한 것이다." (p.267)

"누구든지 우리에게 무엇인가 가르쳐 줄 수 있다." (p.274)


5. 원고 쓰기

"논문이란 우연하게도 단지 지도 교수 또는 심사 위원만을 대상으로 하는 작업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많은 사람들, 또 그 학문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은 학자들까지 읽고 참조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작업이다. (...) 무엇보다도 대상 학문의 규범적이고 이론의 여지가 없는 용어들이 아닌 이상, 사용되는 용어들을 정의해야 한다. (...) 우리 논의의 핵심 범주들로 사용된 모든 용어들을 정의해야 한다. (...) 당신의 논문을 펼쳐 보는 누구든 그와 친숙해지도록 서둘러야 한다." (p.276-8)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모두 쓰라. 다만 최초의 원고를 쓸 때에만. 강한 주장이 여러분의 손을 사로잡았다가 여러분을 테마의 중심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것을 나중에야 발견할 것이다. 그렇다면 괄호 안의 부분들, 이탈된 부분들을 없애고, 그것들을 주 또는 부록에 넣도록 하라. 논문은 여러분이 처음에 제기한 하나의 가설을 증명하려는 것이지, 여러분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걸 보여 주려는 것이 아니다. (...) 외로운 천재 놀이를 하지 마라." (p.286-7)


(어떤 언어로 논문을 쓸 것인가?)

"논문의 언어는 메타언어, 말하자면 다른 언어들에 대해서 말하는 언어이다. 어떤 정신 분석가가 정신병자에 대해 설명할 때 정신병자들처럼 표현할 수는 없다." (p.284) -> 논문은 예술과 다르다는 의미

"(반어가 아닌 절대적으로 지시적인 언어 또는 비유적인 언어를 쓰라) 지시적인 언어라는 말로 필자가 의미하는 것은, 모든 사물들이, 그것들의 가장 일반적인 이름, 즉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고 오해의 여지가 없는 이름으로 지칭되는 언어이다." (p.287)

"어떤 용어를 처음 도입할 때에는 언제나 그 용어를 정의하라. 만약 그 용어를 정의할 수 없다면 그 용어를 피하도록 하라. 만약 그것이 여러분 논문의 주요 용어 중의 하나인데 정의를 내릴 수 없다면,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도록 하라. 여러분은 논문(또는 직업)을 잘못 선택한 것이다." (p.293)


(인용의 열가지 규칙)

"비평적 문헌의 텍스트들은, 그것의 권위와 함께 우리의 주장을 뒷받침하거나 확인해 주는 경우에만 인용한다. (...) 실제적으로 인용에는 두 가지가 있다. 즉, (1) 하나의 텍스트를 인용하고 그것에 대해 해석을 가하는 것, (2) 자신의 해석을 뒷받침하는 텍스트를 인용하는 것이다. (...)" (p.298)

"해석적 분석의 대상이 되는 구절들은 상당히 방대하게 인용한다. (...) 비평적 문헌을 인용할 때 그 인용문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말하거나 또는 여러분이 말하는 것을 권위 있게 확인해 주는 것이어야 한다." (p.298-9)


(학문적 자부심)

"입을 열기 전에는 겸손하고 신중하도록 하라. 그러나 일단 입을 열었을 때에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져라. (...) X라는 테마에 대해 논문을 쓴다는 것은, 그 이전에는 누구도 그 테마에 대해 그토록 명료하고 완벽하게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의미이다." (p.350)


6. 최종적인 원고 작성

"첫머리를 시작한다는 것은, 여러 문장으로 구성된 하나의 일관적인 문단이 유기적으로 완결되었으며, 논의의 다른 부분이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말을 하면서 어느 순간에 이르러 잠깐 중단하고, <알았는가? 동의하는가? 좋다, 그렇다면 계속하기로 하자>하는 식으로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p.355)


'과학기술정책'의 범위를 명확하게 정의하고 구분짓는 노력만큼이나 바보같은 짓도 없을 것 같다. 나는 학부 입학 후부터 꾸준히 과학기술정책에 관심을 가져왔지만, 뭘 알고 그랬다기 보다 그냥 '과학기술정책'이라고 불릴 만한 것들이면 좋아라하고 관심에 두었다. 내 정체성의 일부로 여겼달까.

그렇게 학부 부전공을 하면서 접한 과학기술정책은 결국 같은 대학에 있던 과학기술정책대학원에서 연 수업들이었으니, 대학원에서 의도한 바대로(?) '과학기술정책'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을 공부해야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또한 나는 여전히 학문분야로서의 과학기술정책이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름 과학기술정책으로 유명한 해외 대학원 프로그램을 살펴보더라도 대학마다 강세를 띠는 분야가 있을 뿐 다들 여러 학문분야의 집합이다 (아래 0번 항목 참고). 그러니 다른 학문분야에서도 마찬가지지만 과학기술정책 관련 대학원은 특히 랭킹을 염두에 두고 대학원을 선택해서는 안된다.

그러니 아래 내가 대충 작성한 '과학기술정책'을 공부할 수 있는 국내 대학원 리스트는 참고만 하시라.

0. 해외 유명 대학

전통적으로 영국의 두 개 대학(Sussex SPRU, Manchester MIOIR)에 더해 매우 주관적인 평일 수도 있겠으나 미국의 Georgia Tech SPP가 잘 알려져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규모가 엄청 크다는 것이다. 다른 학문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과학기술정책과 같은 넓은 범위의 응용학문에서 대학원 규모가 가져다주는 장점은 굉장히 크다. 큰 제한없이 자유롭게 필요한 공부를 하거나 연구주제나 방법 등을 정할 수 있다는 점과, 대학원 자체가 하나의 허브가 되어 여러 학문적, 직업적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 SPRU(Science Policy Research Unit), University of Sussex 

http://www.sussex.ac.uk/spru/

일단 오래되기도 했고(2016년에 50주년 행사를 대대적으로 열었다), 그만큼 alumni 풀도 넓다. 우리나라에도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 요즘 Energy & Sustainability policy에 역점을 두는 것 같다. 세칭 Innovation studies라고 불리는 분야(역시 과학기술정책만큼이나 범위가 불분명하긴 하지만 대충 암묵적으로 정해진..?) 최고 저널인 Research Policy의 뿌리이기도 하다.

- MIOIR(Manchester Institute of Innovation Research), University of Manchester

http://www.research.mbs.ac.uk/innovation

SPRU와 마찬가지로 50년 정도 역사를 자랑하는데, 이전에 있었던 PREST와 CRIC가 합쳐지면서 2007년에 새롭게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 한다. SPRU와 마찬가지로 alumni 풀이 넓고 우리나라에도 꽤 있는 것으로 안다. 애초에 맨체스터 대학이 비즈니스 스쿨로 유명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때문인지 느낌상 SPRU에 비해 좀더 management-ish하다. 

(실제로는 4개 분야로 research theme을 나눠서 설명하고 있다 - 1) INNOVATION MANAGEMENT & COMPETITIVENESS, 2) EMERGING TECHNOLOGIES DYNAMICS & GOVERNANCE, 3) SCIENCE, TECHNOLOGY & INNOVATION, POLICY & ORGANISATIONS (STIP), 4) SYSTEM TRANSITIONS AND SOCIETAL CHALLENGES)

- School of Public Policy, Georgia Tech 

https://spp.gatech.edu/

검색하다보니 이런 quora 질문-답변이 눈에 띄는데(https://www.quora.com/What-are-the-best-and-most-well-regarded-graduate-level-programs-for-science-technology-policy), 사실 이런 거는 정말 미국에 있는 사람들 말고는 알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답변하는 사람 말마따나 미국에는 워낙 학교가 많다보니 과학기술정책을 한다 하더라도 대학별로 강세를 보이는 특화 분야를 참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만 몇 없는 과학기술정책 분야 국제학회가 2년마다 한 대학에 의해 그 대학이 있는 곳에서만 나름 성공적으로 열리고 있다면? 그 대학을 대표 주자라고 불러도 큰 오류가 없을 것이다. 그곳이 바로 Georgia Tech이며, 학회 이름은 지명을 앞세운 Atlanta Conference다. (http://www.atlconf.org/)

앞서 쓴 두 영국대학과는 다르게 이름에 대놓고 과학기술정책이라고 하지는 않는데, 공대라 그런지 내가 알고 있는 한 faculty 대다수 연구주제가 과학기술정책이라고 부를 수 있다. 조지아텍 역시 Scheller College of Business가 유명한데, 맨체스터와 달리 SPP가 Business 대학 소속이 아니라서 필요할 때 협력이 이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학생 입장에서도 이건 장점이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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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국내 대학의 경우 크게 두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분류가 어떤 우위를 암시한다거나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니 연연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말그대로 해당 대학이 '과학기술정책'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지, 아니면 세부전공으로 과학기술정책이 가능하도록 되어있는지만 나누었다. 어쩌다보니 후자에 협동과정으로 개설된 대학원 과정이 많이 포함되어 있긴 한데, 이건 사실 당연한 현상 아닌가 싶다. 다른 전통 학문을 하더라도 과학기술정책 전공 못하리라는 법은 없으니깐...(오히려 그게 나을지도...)

1. '과학기술정책' 명시 국내 대학 


-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일명 'STP') 

https://stp.kaist.ac.kr/

- UST 과학기술경영정책 전공

https://www.ust.ac.kr/policy.do

- 한양대학교 과학기술정책학과

http://hystp.hanyang.ac.kr/


2. 세부전공으로 '과학기술정책' 가능 국내 대학

-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과학사 및 과학철학 전공(일명 '과사철')

http://phps.snu.ac.kr/ver3/

- 전북대학교 과학학과

https://ss.jbnu.ac.kr/

-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기술경영경제정책대학원(일명 'TEMEP')

http://temep.snu.ac.kr/

- 고려대학교 과학기술학협동과정

https://sts.korea.ac.kr/ (과거 홈페이지: https://sites.google.com/site/stskoreauniv/)

- 부산대학교 과학기술학 협동과정

http://cafe.daum.net/pnusts

- 부경대학교 과학기술정책 협동과정

http://stp.pknu.ac.kr/ko/

- 충남대학교 국가정책대학원 과학기술정책전공

https://gnppcnu.org/new/sub02/sub02_0203n.php


3. 그 외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전문대학원

http://itpolicy.seoulte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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